2013. 5. 10. 08:36ㆍ詩.
요샌 글이 통 안되냐?
먼저 달에는 전기 끊는다더니
요번 달에는 전화 자른다더라.
원고료 통장으로 자동이체 했다더니
며느리한테 들켰냐?
글 써달란 데가 아예 없냐?
글삯 제대로 쳐줄 테니까
어미한테 다달이 편질 부치든지.
글세를 통당 주랴?
글자 수로 셈해 주랴?
- 이정록(1964∼ )
시인은 밥벌이터인 천안에서 홍성을 오가며
“세상 모든 말의 뿌리는 모어(母語)”기에 어머니가 불러주시는 입말을 옮겨 적기만 하면 시가 된다며 큰 자랑이다.
그러니 세상 모든 어머니가 생명학교이자 어머니학교이고, 인생학교이자 시인학교이겠다.
가격을 물으면 “알아서 주구 가유”라고 했다가
작정한 가격에 못 미치면 “냅둬유, 개나 주쥬” 하는 게 충청도 화법이란다.
애매하고 모호한 게, 마음을 헤아려달라고 은근슬쩍 한 자락 까는 게 꼭 시 같다.
용돈 안 부치냐, 마누라랑 싸웠냐, 전화 자주 혀라, 라는 말 같지만
한 번 더 새겨듣고 헤아려야 한다.
실은 사는 게 힘에 부치냐, 마누라한테 잘혀라, 나 돈 많으니 내 걱정 말어라, 힘내서 글 많이 써라 당부하시는 말씀이다.
스리쿠션으로 돌아드는 충정도 엄니의 입말이다.
“알아서 줘유” “그럼 냅둬유” ← 골때리쥬?
요즘은 신문을 통 안 보는 편인데, 본다 해도 맨 뒤에 문화면이나 읽을까,
어제 날짜 신문을 버리면서 휘리릭 뒤적이다보니 이게 눈에 띕디다.
이정록. 제 블로그에도 시 여러 편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시를 아주 맛깔스럽게 쓰는 유머 위트가 넘치는 분입니다. 딱 제 취향이죠.
.
더딘 사랑
돌부처는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모래무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도 없다.
그대여, 모든 게 순간이었다고 말하지 마라.
달은 윙크 한 번 하는 데 한 달이나 걸린다.
도서출판 열림원(2012.10.25) / 값 11,000원
시 - 어머니학교 10
시란 거 말이다
내가 볼 때, 그거
업은 애기 삼 년 찾기다.
업은 애기를 왜 삼년이나 찾는지
아냐? 세 살이 돼야 엄마를 똑바로 찾거든.
농사도 삼 년은 부쳐야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며
이 빠진 옥수수 잠꼬대 소리가 들리지.
시 꺔냥이 어깨너머에 납작하니 숨어 있다가
어느 날 너를 엄마! 하고 부를 때까지
그냥 모로쇠하며 같이 사는 겨.
세쌍둥이 네쌍둥이 한꺼번에 둘러업고
젖 준 놈 또 주고 굶기누 놈 또 굶기지 말고.
시답잖았던 녀석이 엄마! 잇몸 내보이며
웃을 때까지.
사그랑주머니 - 어머니학교 1
노각이나 늙은 호박을 쪼개다 보면
속이 텅 비어 있지 않데? 지 목 부풀려
씨앗한테 가르치느라고 그런 겨.
커다란 하늘과 맞닥뜨린 새싹이
기죽을까 봐, 큰 숨 들이마신 겨.
내가 이십 리 읍내 장에 어떻게든
어린 널 끌고 다닌 걸 야속게 생각 마라
다 넓은 세상 보여주려고 그랬던 거여.
장성한 새끼들한테 뭘 또 가르치겄다고
둥그렇게 허리가 굽는지 모르겄다.
뭐든 늙고 물러 속이 텅 빈 사그랑주머니를 보면
큰 하늘을 모셨구나! 하고는
무작정 섬겨야 쓴다.
* 시그랑주머니 : 다 삭은 주머니란 뜻으로, 속은 다 삭고 겉모양만 남은 물건을 이르는 말.
나비수건 - 어머니학교 4
고추밭에 다녀오다가
매운 눈 닦으려고 냇가에 쪼그려 앉았는데
몸체 보시한 나비 날개, 그 하얀 꽃잎이 살랑살랑 떠내려가더라.
물속에 그늘 한 점 너울너울 춤추며 가더라.
졸졸졸 상엿소리도 아름답더라.
맵게 살아봐야겠다고 싸돌아다니지 마라.
그늘 한 점이 꽃잎이고 꽃잎 한 점이 날개려니
그럭저럭, 물 밖 햇살이나 우러르며 흘러가거라.
땀에 전 머릿수건 냇물에 띄우니 이만한 꽃그늘이 없지 싶더라.
그늘 한 점 데리고 가는 게 인생이지 싶더라.
짐 - 어머니학교 6
기사양반
이걸 어쩐댜?
정거장에 짐 보따릴 놓구 탓네.
걱정마유, 보기엔 노각 같어두
이 버스가 후진 전문이유
담부턴 지발, 짐부터 실으셔유.
그러니께 나부터 타는겨.
나만한 짐짝이
어디 또 있간디?
그나저나
의자를 몽땅
경노석으로 바꿔야겄슈.
영구차 끌듯이
고분고분하게 몰아.
한 사람 한사람이
다 고분이니께.
집 - 어머니학교 17
돼지집에 돼비만 살네?
뱡아리도 들락거리고 참새도 짹짹거리고.
본시 내 집이란 게 어디 있냐?
은행에 꼬박꼬박 월세 내며 사는
집 잇는 사람들, 부러워할 것 없다.
외양간에 황소만 누워있데?
강아지도 놀고 암탉도 꼬꼬댁거리고.
사람만 집을 대물림하지.
까치며 말이며 새들 봐라.
집은 버리는 거라고, 옛날에
글방 훈장 할아버지가 그러시더라.
그런 한자漢字가 있다고
한문 선생인께 알 거 아니냐?
모르면 옥편 찾아보고.
이별맛 - 어머니학교 26
한나절 고추말목 세웠더니 뻐근하구나.
- 제가 내려가면 하시지.
작년 말목 다 버리고 쇠꼬챙이를 장만했더니
쑥쑥 잘 들어가야.
- 그레도 혼자 망치질하려면 힘드셨을 텐데.
네 고추 말목은 괜찮나 모르겄다.
그 아비에 그 자식이겄지만.
-올해 고추는 쇠맛이 박혀 맵겠네요.
쇠맛 좋지.
녹슨 못을 혀에 대보면 이게 이별맛이다 싶어.
-어머니가 시인이네요.
호랑이도 안 물어갈 겨.
어미는, 녹슨 고철밋이라서.
사랑 - 어머니학교 29
편애가 진짜 사랑이여.
논바닥에 비료 뿌릴 때에도
검지와 장지를 풀었다 조였다
못난 벼 포기에다 거름을 더 주지.
그래야 고른 들판이 되걸랑.
병충해도 움푹 꺼진 자리로 회오리치고
비바람도 의젓잖은 곳에다가 둥지를 틀지.
가지치기나 솎어내기도 같은 이치여.
담뿍 사랑을 쏟아부을 때
손가락 까닥거리는 건 절대 들키면 안 되어.
풀 한 포기도 존심 하나로 벼랑을 버티는 거여.
젖은 눈으로 빤히 지릅떠보며
혀를 차는 게 그중 나쁜 짓이여.
부부 - 어머니학교 37
뿌리 잘린 나무를 옮겨 심고
버팀목을 들일 때에도, 녀석은 혼자가 아니라면
서로의 옆구리를 잇대어 묶어주지.
어느 한 녀석이 아프고 서러워 울먹이면
다른 녀석들이 따라 어깨라도 들먹이라고.
작은 새라도 와서 야윈 가지 출렁이면
같이 웃어도 보며 눈물 쓰윽 닦으라고.
죽어 장작이 되기 전에 어깨걸이부터 가르치는 거지.
형제자매도 한방에서 장작개비처럼 발 쌓고 자봐야
어려울 때 한식구로 숲을 이루는 겨.
부부라면 더군다나 말할 것도 없지.
부부하고 부목하고 다 부씨 아니냐?
연애할 때는 불불이었는데, 받침을 활활
불쏘시개로 태우고 부부가 된 거여.
주전자 꼭지처럼 - 어머니학교 43
어비 아비가 되면 손발 시리고
가슴이 솥바닥처럼 끄슬리는 거여.
하느님도 수족 저림에 걸렸을 거다.
숯 씹는 돼지처럼 속이 시커멓게 탔을 거다.
목마른 세상에 주전자 꼭지를 물리는 사람.
마른 싹눈에 주전자 꼭지처럼 절하는 사람.
주전자는 꼭지가 그중 아름답지.
새 부리 미운 거 본 적이 있냐?
주전자 꼭지 얼어붙지 않게 졸졸졸 노래해라.
아무 때나 부르르 뚜껑 열어젖힌 채
새싹 위에다 끓는 물 내쏟지 말고.
메주 - 어머니학교 52
메주를 왜 네모나게 만드는지 아냐?
굴러떨어지면 데굴데굴 흙먼지 묻을 것 아니야.
묶어 매달기 편해서도 그러겄지만
각지게 만든 게 장맛이 더 좋아야
각진 놈은 둥그러지고 싶고
둥근 놈은 각 잡고 싶지 않겄냐?
맛이 무슨 군인이라고 혓바늘 세워
각 잡고 군기 세우고 그러겄냐?
맛은 두루뭉술 넘어가는 목넘이가 좋아야지
그래서 둥근 노깡 샘보다
네모난 대동샘 물맛이 더 좋은 거여.
*노깡 : 토관土管의 일본말로, 시멘트를 빚어 만든 둥근 관.
가장 - 어머니학교 58
높은 데 꾸역꾸역 몸 올려놓지 마라.
뭐든 잡아먹으려고 두리번거리는 놈하고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흘깃거리는 것들이나
꼭대기 좋아하는 거여, 상록회장에
이장만 안 했어도 십 년은 더 사셨을 거나.
대통령한테 마을 밤나무단지 하사금 타내려다가 시비가 붙어
코뼈가 가라앉은 것도 책임 떠맡은 죄 때문이 아니냐?
남자는 가장 하나만으로도 허리가 휘고 그늘 벗을 날 없는 겨.
가장 힘들어서 가장인 거여.
가물치- 어머니학교 65
자고로 사내란
사타구니에 두더지 한 마리씩 키우지.
어떤 사내들은 장터루 방목도 다니고 방생도 헌다지만
아버지 두더지는 텃밭을 벗어난 적 없어야.
두더지보다두 아버지가 평생 공들인 건
오른팔 적삼 속에다 키운 가물치 한 마리여.
난생처음 예당저수지루 낚시질 갔다가
눈먼 가물치를 비료푸대에 담아 왔는데
이 사람 저 사람 짬날 때마다 어찌나 호들갑 떨던지.
그 가물치가 해마다 두어 뼘씩은 자라서 나중에는
팔뚝만으론 설명할 길이 없는 거라, 허벅지까지 걷어붙이고는
딱 한 번 잡아먹은 비린 것 자랑이 이만저만 아녔는데
당신이 그 가물치를 잡지 않았으면 배가 뒤집힐 텐데
덕산고등학교 조정선수들이 어찌 노를 저을 것이냐.
막걸리 사발이나 비워댔지. 남자는 풍이 좀 걸쭉해야 사내답지.
그 왕가물치가 꼬리지느러미로 저수지 바닥을 때리면
집채만 한 너울이 일어 예당평야에 물난리가 났을 것이라고
흰소리 늘어놓더니, 간경화에 설암까지 겹쳐 허벅지를 꺼냈을 땐
가물치두 그 옛날 비료푸대로 되돌아간 듯 시름시름 비척대더구나.
가물치가 사타구니 쪽으로 자꾸 주둥일 치대니까
아버지 두더지는 어느 구멍으로 사라졌는지
막내 낳기도 전에 소금 맞은 거머리처럼 가뭇없어졌는데
엊그제 선산에 올랐더니만 글쎄 아버지 무덤 가운데다
기똥차게 가르마를 터놨더구나. 그나저나
가물치가 여자한테 아무리 좋다 한들
두더지 내뺀 뒤에 뭔 소용이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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