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장 신한균이 전해주는 우리 사발 이야기를 담은 책. 과거 일본에 빼앗긴 조선 사발을 최초로 완벽히 재현해 낸 도예가 신정희 옹의 큰아들인 저자는 조선 사기장의 후예로서, 15세기 도자기 종주국의 영광을 누렸던 한민족으로서,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 사발의 신비와 사기장들의 드라마틱한 삶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은 사학자나 미학자가 아닌 도자기 기술자 사기장의 시각에서 재해석한 잊혀질 뻔한 우리 조선 사발들의 기구한 운명과 우리 도자기 역사 되찾기, 그리고 불 때기 등의 전통 기법 재현에 이르기까지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일본으로 건너간 우리 사발들의 진기한 사진 400여 컷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1
“아주 평범한 물건이다.
이것은 조선의 밥사발이다.
그것도 가난뱅이가 예사로 사용하는 밥사발이다.
아주 볼품없는 물건이다.
정형적인 잡기(雜器)이다.
가장 값싼 보통의 물건이다.
만드는 자는 비천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개성 따위는 아무런 자랑거리가 될 수 없다.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것,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것,
누구나 살 수 있는 것,
그것이 이 차사발이 가지고 있는 그대로의 성질이다.
이것은 평범함의 극치인 것이다.
흙은 뒷산에서 파왔고,
유약은 화로에서 꺼낸 재이고,
물레는 심이 느슨해져 있다.
모양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많이 만들어온 물건이다.
일은 빨랐던 것이다.
빚음은 거칠다.
손은 젖어 있는 그대로다.
유약은 흘러서 굽에 드리웠던 것이다.
방은 어두웠던 것이다.
도공은 문맹인 것이다.
가마는 너무도 초라하다.
굽는 방법이 거칠다.
들러붙어 있는 것도 있다.
값싼 것이다.
누구도 거기에서 꿈 따위는 꾸지 않는다.
이러한 일을 해서 먹고사는 것을 그만두고 싶을 지경이다.
도자기는 비천한 사람들이 하는 일로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대부분 소비물이다.
부엌에서 사용된 것이다.
상대는 농사꾼이다.
담는 것은 하얀 쌀이 아니다.
사용한 후에 제대로 씻지도 않는다.
조선의 시골을 여행하면 누구나 이 더러운 광경을 볼 수 있다.
이 정도로 흔해빠진 물건은 없다.
이것이 틀림없는 천하의 명기(名器), 대명물(大名物)의 정체다.
- 야나기 무시요네, ‘기좌이몽이도를 보고’
기자이몽이도(喜左衛門井戶)
그는 “그 더러운 조선의 잡기에서 美를 발견하여 천하의 명물로 승화시킨 우리 일본인들의 심미안은 위대하다”
라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우리의 명품 옛사발을 우연히 만들었다는 뜻으로 ‘무위가 나은 파생물’이
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조선인의 예술혼을 인정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조선에서 우리 일본으로 건너온 고려 다완(조선 사발)은
그것들을 빚은 도공들이 예술 의식 없이 단지 쓰고 버리는 잡기로 빚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일본인들은 사물을 바로 보는 직관이 있기에,
조선에서는 잡기라 하여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잡기 사발에서 와비사비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그리고 가장 고귀한 차사발로 승화시켰다.
그러므로 이 고려 다완의 美는 바로 발견한 일본의 미의식인 것이다.
즉 우리 일본에 있는 고려 다완은 비록 조선인이 만들었으나,
전부 우리 일본의 미학 속에서 다시 탄생했으며,
일본에서 탄생되었기에 우리의 국보나 보물이 된 것이다.
고려 다완이 한국의 미학이 될 수 없는 증거로
한국인들은 이것들을 ‘막사발’이라 부르면서 잡기로 인정하고
이 사발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차를 마시지 않고 커피만 마시는 것을 들 수 있다.”
* 와비사비 = 고독과 외로움
'하나뿐이라 외롭고, 그 외로움이 진해져서 고독이 되고, 그 고독이 너무 아름답다'
이 글에 대한 반박은 각자 알아서 해보십시요.
이 책의 저자도 전문 글쟁이가 아니라서인지 논리가 빈약해 보입니다.
2
이병창씨는 이승만 대통령 비서였는데 일본 영사관의 영사로 있다가 이승만 대통령 하야 후 일본에 눌러앉아
교포로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2005년 사망) .
그는 일본에서 무역회사를 운영하면서 일본 내의 한국 도자기를 수집했습니다.
그가 수집한 한국 도자기는 질적 양적으로 아주 대단합니다.
하지만 그는 1995년 모든 소장품을 오사카 아타카 컬렉션에 기증해버렸습니다.
그 당시 아타카 컬렉션에서 소장한 한국 도자기는 총 793점, 이병창씨가 기증한 양은 351점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문화재를 관리하기 위한 비용으로 자신의 토지와 건물도 아타카에기증했다고 합니다.
그는 일본의 미술관에 기증한 이유에 대해 일본에 있는 교포들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위 책)
이 분의 행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래를 참고하십시요.
펌1)
오사카에 위치한 오사카부립 동양도자박물관은 일본 외의 아시아 지역의 도자기를 전시하고 있는 곳으로,
소장품 중 대다수가 한국의 도자기입니다.
사실 이 박물관이 설립된 것 자체가 한국도자기를 대거 기증받으면서 시작이 되는데요, 이 것이 아카타(安宅)컬렉션입니다.
아카타 산업의 회장이 모은 도자기는 450여점에 이르렀는데,
아카타 산업이 부도가 나가 되자 엄청난 양의 컬렉션이 모두 매각될 위기에 처합니다.
이 때 한국정부에서도 협상에 들어갔는데,
아카타 산업의 민화컬렉션은 상당수가 2002년 이후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도자기의 경우 하나 하나가 국보급이기 때문에 일본정부가 나서 협상을 결렬시켰고,
결국 스마모토 그룹이라는 곳에서 구입하여 오사카시에 기증하게 됩니다.
이 박물관의 두번째 큰 확장은 바로 이병창컬렉션을 기증받으면서부터 입니다.
이병창은 이승만의 비서로 일본에 건너가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번 돈으로 수 많은 한국 도자기를 수집하는데, 역시 하나 하나가 국보급입니다.
그런데 이병창은 이 도자기 전체를 오사카에 기부합니다.
재일교포들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과연 방법이 문화재 기증밖에 없었을까요?
하여튼 여기에 얽힌 사연은 이렇습니다.
현재 한국 도자사를 공부하는데에는 이 박물관의 유물들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하나 하나 사진을 보면서 감사해보시기 바랍니다. 많은 설명은 붙이지 않습니다.
사진은 문화재청과 오사카시립동양도자박물관에서 제공하는 것입니다.
1. 청자
참외모양의 순청자입니다.
고려 인종의 무덤에서 똑같은 것이 발굴되어 현재 한국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동녀 모양의 연적 입니다.
동자 모양의 연적으로 위의 것과 짝을 이룹니다.
커다란 상감청자 매병입니다.
한국에서도 흔하지 않은 대형입니다.
중국 은,주나라의 청동기를 흉내낸 향로입니다.
호암미술관에 비슷한 것이 소장되어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유래가 없는 양각 청자합입니다.
일본의 중요문화재(보물)로 지정된 주전자입니다.
무늬의 배경에 역으로 상감하는 것을 역상감이라고 하는데 아주 드문 수법입니다.
연리청자라고 하는 매우 귀한 청자입니다.
백포와 흑토, 자토를 섞어 반죽하여 대리석의 물결무늬를 만들어 구운 것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도 2~3점 밖에 없는 것입니다.
죽순 모양의 주전자입니다.
오리 모양의 향로 입니다.
2. 분청사기
항아리의 양쪽을 두들겨 만든 편병입니다.
무늬가 소박하고 아름답습니다.
붓으로 백토물을 바른 귀얄 기법의 항아리입니다.
뿔모양의 술잔 입니다. 역시 매우 드문 물건입니다.
반합(밥그릇)입니다.
전체에 꽃무늬 도장을 찍은 인화 기법의 대형 항아리입니다.
왕족의 태반과 탯줄을 보관하던 태호입니다.
3. 백자
높이 45센치미터늰 대향 달항아리 입니다.
본래 청동대불로 유명한 동대사에 보관되어 있던 건데 도둑이 들어 산산조각 낸 것을 복원한 것입니다.
일본 복원기술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문화재로 일본의 국보입니다.
역시 국내에 거의 없는 대형의 항아리입니다.
붉은 진사를 소박하게 연꽃을 그린 항아리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비슷한 것이 1점 있습니다.
조선 중기에 화원이 직접 그림을 그린 청화백자입니다.
아름다운 대형 사발입니다.
한국에서는 본 적이 없는 형태의 접시입니다.
무늬는 불수화라는 꽃입니다.
이런 것이 여기에는 2점이나 있습니다.
철재라는 유약을 하단에 과감하게 바른 대단히 현대적인 항아리입니다.
국내에는 없는 대단한 작품 입니다.
청화와 진사를 섞은 아름다운 필통입니다.
조선 초기의 청화백자입니다.
그림이 아주 아름다운데 전문 화원의 솜씨입니다.
리움에 비슷한 것이 전해지며 한국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청화가 아름다운 조선전기의 밥그릇 입니다.
용을 조각해 넣은 조선 후기의 필통입니다.
아마도 왕실의 것이었을 겁니다.
백태청자라고 하며, 조선 전기에 소량 만들어진 것으로 백자의 흙에 청자의 유약을 바른 것입니다.
한국에는 1~2점이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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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2)
전북출신 이병창 박사
이른바 문화 유산에 대해서 별반 아는 것은 없지만 해외에 나가면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둘러보는 것이 버릇처럼 되었다.
1999년 5월, 일본에서 유럽으로 떠나기 전 틈을 내어 오오사카(大阪) 시립동양도자(陶磁)미술관을 찾아간 적이 있다.
그때 다른 곳에서와는 전혀 다른 뜻밖의 감동을 체험했다.
수백 점에 이르는 한국 도자기가 거기에 전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병창(李秉昌)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전시실이 한국도자기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우리나라 도자기의 우수함을 제대로 감상하거나 설명할 능력은 없었지만,
어쨌던 한국의 도자기가 일본 제2 도시의 한 미술관에서 그처럼 당당하게 전시되어 있는 것만으로 상당한 자부심을 느꼈다.
뿐만 아니었다.
한국도자기 301점, 중국도자기 50점이라는 많은 옛날 도자기를 수집하여 그 미술관에 기증한 이병창(李秉昌)이라는 분이
바로 ‘전북 전주 출신’이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팜프렛, 도록 그리고 안내판의 설명문에서 ‘전북 전주 출신’이라는 글씨가 유난히도 부각되어 시야에 들어왔다.
자부심은 자랑으로 격상되었다. 나의 동향(同鄕)의식이 너무 강했던가.
그분은 1949년에 우리나라 외교관(주일대표구 초대 오오사카사무소장)으로 일본에 부임한 후
모국의 민족유산이라 할 도자기의 예술적 가치에 눈떠서 그 수집에 힘을 기울였다.
공직에서 퇴임한 후에도 계속 일본에 살면서 학구생활을 한 끝에 도호쿠대학(東北大學)에서 경제학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또한 사업가로서의 수완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이미 1978년 도쿄대학(東京大學)출판부에서 ‘한국미술수선(韓國美術蒐選)’을 냄으로써
한국 도자기 연구자로서도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그 간행물은 ‘한국미술사개설’, ‘고려도자’, ‘이조도자’등 세 권으로, 모두 1천 1백 60쪽에 이르는 대작이었다.
이 출판물은 한국의 위상을 세계에 드높이기 위해서는 훌륭한 문화유산을 널리 소개할 필요가 있다는 신념의 산물이었다.
심지어 그 막대한 출판 비용도 이 박사의 사재로 충당하였다.
그런 염원의 결실로 그 책은 세계의 한국도자기 애호가, 연구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박사는 자신이 수집한 도자기의 보존과 공개에 관하여 한 때 서울대학교의 김원룡(金元龍)박사와도 상의하는 등
심사 숙고 끝에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에 일괄 기증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런 귀한 문화유산을 왜 한국 아닌 일본에 기증했을까 하는 의문을 갖는 사람도 적지 않다.
여기에 대해서 이 박사 본인은 고국을 떠나 사는 2세·3세들에게 오랜 전통과 풍부한 역사문화를 가진 모국을 가졌다는 자랑과
용기를 심어주기 위함이었다고 고백했다.
한편, 그 미술관 관장의 글을 보면 “무한한 조국애와 재일한국인으로서 후진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그런 결심을 하게 했다고
적혀있다. 그 수집 도자기들을 일본에서 상설 전시하는 것이 ‘이국(異國) 땅에 파견된 문화사절’로서의 역할을 다하기에 더욱
알맞다는 생각이었다.
이박사는 심지어 자신이 오랜동안 살아온 도쿄 시내의 자택(토지와 건물)까지도 한국도자기 연구기금의 재원으로 희사했다.
세상엔 이런 분도 있다. 이처럼 혼자의 힘으로 문화적인 국위 선양을 한 분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이미 고령에 접어든 이박사의 나라사랑을 널리 알리는 한편, 이런 훌륭한 분이 바로 우리 고장 출신이라는 반가움을 살려
어떤 형태로던지 존경과 감사의 뜻을 전했으면 싶다.
출처. cafe.daum.net/dudrnthwkd/e62/20 고전(古錢)의 이해와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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