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5. 20:05ㆍ詩.
뜨거운
순대국밥을 먹어본 사람은 알지
혼자라는 건
실비집 식탁에 둘러앉은 굶주린 사내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식사를 끝내는 것만큼 힘든 노동이라는 걸
고개 숙이고
순대국밥을 먹어본 사람은 알지
들키지 않게 고독을 넘기는 법을
소리를 내면 안돼
수저를 떨어뜨려도 안돼
서둘러
순대국밥을 먹어본 사람은 알지
허기질수록 달래가며 삼켜야 한다는 걸
체하지 않으려면
안전한 저녁을 보내려면
내가 그를 사랑한 것도 아닌데
미칠 듯 그리워질 때가 있다
바람의 손으로 가지런히 풀어놓은, 뭉게구름도 아니다
양떼구름도 새털구름도 아니다
아무 모양도 만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찢어지는 구름
을 보노라면
내가 그를 그리워한 것도 아닌데
그가 내 속에 들어온다
뭉게뭉게 피어나 양떼처럼 모여
새털처럼 가지런히 접히진 않더라도
유리창에 우연히 편집된 가을 하늘처럼
무작정 눈물이 날 때가 있다
가을에는, 오늘처럼 곱고 투명한 가을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으로 문턱을 넘어와
엉금엉금, 그가 내 곁에 앉는다
그럴 때면 그만 허락하고 싶다
사랑이 아니라도, 그 곁에 키를 낮춰 눕고 싶다
내가 연애시를 써도 모를거야
사람들은 그가 누군지
한 놈인지 두 놈인지
오늘의 그대가 내일의 당신보다 가까울지
비평가도 모를거야
그리고 아마 너도 모를거야
내가 너만 좋아했는 줄 아니?
사랑은 고유명사가 아니니까
때때로 보통으로 바람피는 줄 알겠지만
그래도 모를거야
언제나 제자리로 돌아오는 건 습관도
뭣도 아니라는 걸
속아도 크게 속아야 얻는 게 있지
내가 계속 너만을 목매고 있다고 생각하렴
사진처럼 안전하게 붙어 있다고 믿으렴
어디 기분만 좋겠니?
힘도 날거야
다른 여자 열 명은 더 속일 힘이 솟을거야
하늘이라도 넘어갈거야
그런데 그런데 연애시는 못 쓸걸
제 발로 걸어나오지 않으면 두드려패는 법은 모를걸
아프더라도 스스로 사기칠 힘은 없을걸, 없을걸
아침상 오른 굴비 한 마리
발르다 나는 보았네
마침내 드러난 육신의 비밀
파헤쳐진 오장육부, 산산이 부서진 살점들
진실이란 이런 것인가
한꺼풀 벗기면 뼈와 살로만 수습돼
그날 밤 음부처럼 무섭도록 단순해지는 사연
죽은 살 찢으며 나는 알았네
상처도 산 자만이 걸치는 옷
더이상 아프지 않겠다는 약속
그런 사랑 여러번 했네
찬란한 비늘, 겹겹이 구름 걷히자
우수수 쏟아지던 아침햇살
그 투명함에 놀라 껍질째 오그라들던 너와 나
누가 먼저 없이, 주섬주섬 온몸에
차가운 비늘을 꽂았지
살아서 팔딱이던 말들
살아서 고프던 몸짓
모두 잃고 나는 씹었네
입안 가득 고여오는
마지막 섹스의 추억
고개 숙이며 온다
아스팔트를 데웠다 식히는 힘으로
장롱문이 소리없이 닫히는 힘으로
초조한 이마 위 송송한 구슬땀 몇 개로
사랑은 온다
첫번째 사과의 서러운 이빨자욱으로
초생달 둘레를 둥글게 베어내며
뚱뚱한 초 하나로 밤이 완성될 때
보채는 아이의 투정처럼
식은 차 한잔의 위로처럼
피곤을 넘어 반성을 넘어
어쩌면 사랑은 온다
망설이는 마음 한복판으로
어제의 사랑을 지우며
더듬거리며 오늘, 사랑이 내게로 온다
주저하는 나보다 먼저, 그것이 내게로 온다
진달래가 이쁘다고 개나리는 안 이쁜가
내가 아는 어떤 부르주아는 연애시를 쓰려고 연애를 꿈꾸는데
행을 가른다고
고통이 분담되나
연을 바꾼다고
사랑이 속아주나
아, 그러나 작은 정열은 큰 정열이 다스려
그리고... 그런데...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이혼한 줄만 알지
몇번 했는지 모른다
아도니스를 위한 연가
너의 인생에도
한번쯤
휑한 바람이 불었겠지
바람에 갈대숲이 누울 때처럼
먹구름에 달무리질 때처럼
남자가 여자를 지나간 자리처럼
시리고 아픈 흔적을 남겼을까
너의 몸 골목골목
너의 뼈 굽이굽이
상처가 호수처럼 피어 있을까
너의 젊은 이마에도
언젠가
노을이 꽃잎처럼 스러지겠지
그러면 그때 그대와 나
골목골목 굽이굽이
상처를 섞고 흔적을 비벼
너의 심장 가장 깊숙한 곳으로
헤엄치고프다, 사랑하고프다
어젯밤
지금
빛나는 이마에
주름 접히지 않아도
밤은 가까이 와 있다
소리없이 기척없이
네 곁에 누워 있다
지금
졸리운 눈까풀에
그림자 드리우지 않아도
생각보다 빨리 네 속에
아예 둥지 틀고 앉아 있다
오지 마, 제발
난 아직 준비가 안됐어
싸울 준비가 안됐어
아무리 터지도록 짖어도
녀석은 목구멍 밑부터 치고 올라와
꿀꺽 널 삼켜버리지
널름거리는 혀로
네 간을 파먹고
네 피를 말리고
천천히 문득, 뼈와 살이 타들어가
삼 가르듯
껍질뿐인 널 말아 먹으리라
네 몸 안엔 이미 다른 피가 고여
녀석과 간음할 생각으로
뱃속이 부글부글 꿇어오를 때
칼이 칼집에 익숙해지듯*
자기 안의 욕망에 익숙해지듯
네 안의 어둠에 너 또한 익숙해지리라
내 나이 서른둘
인생에서 무서운 것은 다 그렇게 오더라
들킬세라 미리 와, 기다리고 있더라
* 바이런의 시 [So, We'll Go No More a Roving]에
"For the sword outwears its sheath"라는 구절이 있음.
새로운 시간을 입력하세요
그는 점잖게 말한다
노련한 공화국처럼
품안의 계집처럼
그는 부드럽게 명령한다
준비가 됐으면 아무 키나 누르세요
그는 관대하기까지 하다
연습을 계속할까요 아니면
메뉴로 돌아갈까요?
그는 물어볼 줄도 안다
잘못되었거나 없습니다
그는 항상 빠져나갈 키를 갖고 있다
능란한 외교관처럼 모든 걸 알고 있고
아무것도 모른다
이 파일엔 접근할 수 없습니다
때때로 그는 정중히 거절한다
그렇게 그는 길들인다
자기 앞에 무릎 꿇은, 오른손 왼손
빨간 매니큐어 14K 다이아 살찐 손
기름때 꾀죄죄 핏발선 소온,
솔솔 꺾어
길들인다
민감한 그는 가끔 바이러스에 걸리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쿠데타를 꿈꾼다
돌아가십시오! 화면의 초기상태로
그대가 비롯된 곳, 그대의 뿌리, 그대의 고향으로
낚시터로 강단으로 공장으로
모오두 돌아가십시오
이 기록을 삭제해도 될까요?
친절하게도 그는 유감스런 과거를 지워준다
깨끗이, 없었던 듯, 없애준다
우리의 시간과 정열을, 그대에게
어쨌든 그는 매우 인간적이다
필요할 때 늘 곁에서 깜박거리는
친구보다도 낫다
애인보다도 낫다
말은 없어도 알아서 챙겨주는
그 앞에서 한없이 착해지고픈
이게 사랑이라면
아아 컴--퓨--터와 씹할 수만 있다면!
내 마음을 받아달라고
밑구녁까지 보이며 애원했건만
네가 준 것은
차와 동정뿐,
내 마음은 허겁지겁
미지근한 동정에도 입술을 데었고
너덜너덜 해진 자존심을 붙들고
오늘도 거울 앞에 섰다
봄이라고
개나리가 피었다 지는 줄도 모르고......
꿈 속의 꿈
꿈 속에서
그대와 그것을 했다
그 모습 그리며
실실 웃다
오늘 아침 밥상머리
돌을 씹었다
그대에게 가는 마음 한끝
콱!
깨물며 태어난
눈물 한방울.
한 남자를 잊는다는 건
잡념처럼 아무데서나 돋아나는 그 얼굴을 밟는다는 건
떠들고 마시며 아무렇지도 않게 한 남자를 보낸다는 건
뚜 뚜 사랑이 유산되는 소리를 들으며 전화기를 내려놓는다는 건
편지지의 갈피가 해질 때까지 줄을 맞춰가며 그렇게 또 한시절을 접는다는 건
비 개인 하늘에 물감 번지듯 피어나는 구름을 보며 한때의 소나기를 잊는다는 건
낯익은 골목과 길모퉁이, 등 너머로 덮쳐오는 그림자를 지운다는 건
한 세계를 버리고 또 한 세계에 몸을 맡기기 전에 초조해진다는 건
논리를 넘어 시를 넘어 한 남자를 잊는다는 건
잡념처럼 아무데서나 돋아나는 그 얼굴을 뭉갠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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