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기쁨에게 (정호승)

2012. 8. 1. 12:43詩.

 

 

 

 

슬픔이 기쁨에게 

                              정호승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현대사회는 자기 보호 본능만을 훈련시키고 타인의 고통을 자기 것처럼 느끼는 공감의 능력을 점점 축소시킨다. 문학은 이러한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슬픔이 기쁨에게」(1978)는 타인의 고통에 대처하는 현대인의 자세에 대해 깊이 성찰하도록 독자를 이끈다. 이 시는 슬픔의 해방적힘에 대해 깊이 성찰하도록 독자를 이끈다.

 

 

 

과연 이런 의도로 썼을까요?

정호승 시인의 말을 직접 들어봅시다.

 

 

 

저는 해우소 앞에 한참 동안 쭈구리고 앉아 마음 속으로 울었습니다. 그동안 제 가슴속에 웅크리고만 있던 마음껏 울지도 못하고 남의 눈치만 보던 모든 울음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왔습니다. 그 울음은 20대 때 동해의 푸른 바다를 보고 울었던 그런 낭만적인 울음이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돈 벌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말 못할 고통에서 오는 울음이었습니다. 남을 사랑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울음. 내 사랑이 전해지지 못하고 증오로 변질되어 되돌아오는 고통에서 오는 울음이었습니다. 저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습니다. 

아내는 과거에 내가 했던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를 잊어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툭하면 "그때 당신이...., 그때 당신이....." 하고 말을 꺼냅니다. 그러면 저는 "또 그 소리!" 하고 눈쌀을 찌푸립니다. 어제를 힘들어하면 오늘도 힘이 듭니다. 과거를 미워하면 현재도 미워집니다. 과거 속에 가두어놓고 바라보는 미운 사람은 오늘 현재 속에서도 미워집니다. 그래서 과거의 감옥에 갇혀 사랑할 수 없게 됩니다.

- 정호승 산문집,《내 인생에 힘이 되어 준 한마디》-

 

 

 

그렇습니다. '아주 매정하고 못된 마누라한테다 쏜 시'입니다.

참고 참고 참다가 결국 2011년말엔가 이혼했더군요.

이 시를 쓴 것이 1978년이니까,

그러니깐 35년 세월을 부부가 서로를 경멸하고 미워하며 살았네요.

못된 마누라가 창작에 보약이란 걸 뒤늦게 알고 후회했을런지도.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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