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 17. 16:13ㆍ책 · 펌글 · 자료/인문 · 철학 · 과학
1
마리아 테레지아는 자식을 많이 낳았으며, 독실한 신앙을 지녔고, 현모양처였다.
비상한 방식과 근면함으로 국정을 이끌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여군주의 건강은 좋지 않은 편이어서 천식이 폐수종으로 발전했다.
마리아 텔지아는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를 잘 알고 있었다.
"잠을 자기가 두렵구나. 자고 있을 때 죽음이 불현듯 찾아오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지.
나는 죽음을 눈앞에서 맞이하고 싶다."
그녀는 임종 전날 밤에 모든 신하들을 불러 그녀가 공정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면 용서해 달라고 부탁했다.
여왕의 마지막 소원은 창문을 열어 달라는 것이었다.
"나의 기나긴 여정에 좋은 날씨는 아니로구나."
말을 마친 여왕은 일어서려다 침대 모서리에 쓰러졌다.
아들 요세프가여왕을 일으키려 했다. "여왕마마, 잘못 누우신 것 같습니다."
"그렇구나, 하지만 죽으면 제대로 누울거야."
2
처칠은 마지막 순간에도 냉정하고 풍자적인 태도는 여전했다.
"난 나의 창조자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신이 나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그의 말처럼 그 이후로도 신은 그에게 많은 시간을 하사했다.
죽음을 앞두고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그가 보낸 삶과 완전히 딴판이었다.
"모든 것이 지루하구나."
3
첫번째 총알은 케네디의 목에 맞혔다. 총을 맞은 그의 혈관과 기도 그리고 후두가 파열되었다.
두번째 총알이 후두부를 맞혔고 두개골이 산산조각이 났다. 부서진 뼈의 파편들과 뇌수가 바닥에 흘렀고,
그것은 경호원들이 탄 차량에 까지 튀었다.
그로부터 4분 30초 정도가지난 후 병원에서 응급구조차가 현장에 도착했다.
재클린 케네디는 부서진 두개골 파편을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그것을 매리언 젠킨스 의사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여기요. 이게 도움이 될까요?"
4
한 미국의 사형수는 전기충격의자에 앉혀지자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이 자리를 여성에게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 매우 슬프오."
또한 마지막 소원을 묻는 질문에 총살형을 선고받은 어떤 미국인은 눈앞에 총이 보이자 이렇게 부탁했다.
"방탄조끼를 주시오."
이 일화는 실화이다. 그의 이름은 제임스 라저로, 1960년 살인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5
이그네스 기요탱 (1738~1814)
파리 대학 해부학 교수로 1789년 프랑스 혁명 당시 국민회의 의원으로 있을 때,
'법과 죽음 앞에서의 평등'이라는 인도주의 입장에서 참수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모든 사형수를 기계를 이용하여 처형할 것을 요구, 단두대 사용을 통과시켰다.
그 뒤 그의 이름을 따서 기요틴이라 불렀다.
기요틴은 피아노 제조공이었던 독일인 토비아스 슈미트에 의해 설계되고 만들어졌다.
기요탱 자신이 이것으로 처형되었다는 것은 와전된 것으로 전한다.
기요탱은 단 한마디의 말로 기요틴을 정의했다.
"기요틴이 뭐냐고? 목을 가볍게 내리치는 거야."
*
"날 아프게 하시진 않겠죠?" - 마리 뒤바리 백작부인 (루이 15세의 정부)
"이번엔 힘이 좀 적게 드실 거에요. 제 목은 매우 가늘거든요." - 앤 볼레인 (영국왕 헨리8세의 두번째 왕비)
그녀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외모와 에티켓을 지켰다.
오스트리아 女황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이었던 그녀는 형장에 들어서자 우아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은 고의가 아니었어요." - 마리 앙투아네트
6
칸트는 자신의 묘비에 '실천이성'에서 항산 염두에 두고 있었던 구 가지 사실을 새겨 넣었다.
"별이 빛나는 하늘은 내 위에 있고
윤리적 규율은 내 안에 있다."
7
병상에 누운 헤겔은 체념 섞인 마지막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단지 단 한 명만이 나를 이해했다."
그러나 잠시 숙고한 뒤 그는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그 또한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유일한 한 명이 누구였는지를 밝히지 않았는데, 그리하여 아직까지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8
"죽음은 그것이 원하는 대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순수하고 지성적인 정신만은 가지고 있다."
쇼펜하우어는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사망한 뒤 5일이 지나서야 땅에 묻을 것을 부탁했다.
당시로서는 매우 긴 시간이었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는 그렇게 함으로써 가사 상태로 땅에 묻히는 일은 없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자신의 정신이 사후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확신을 했기 때문에
"참나무로 만든 튼튼한 관을 주문하고 영원한 시간 동안 안치될 수 있는 장소를 찾았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나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야."
9
"유언이란 살아서 할 말이 별로 없었던,
좀 바보같은 사람들을 위한 것 같네." -칼 마르크스
10
칼 구스타프 융은 마지막 순간가지 자신의 영혼을 직접 관찰했다.
그는 간병인에게 자신의 영혼에 대해 "저 먼 세상에 속하는 황홀하고 고귀한 것"이라고 했다.
1961년, '행복한 꿈'을 꾸고 난 어느 여름날 이후 융은 이를 더 확신했다.
"지금까지 조금은 부족했던 모든 것에 대한 진실을 이제는 알 것 같아.
그렇지만 이 모든 것에 대해 깨닫게 된다면 아마 그때는 이세상 사람이 아니겠지."
"내가 죽어간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11
괴테는 그의 생애동안 매일 2리터의 와인을 마셨고, 그것이 그를 행복하게 하는 적당량이었다.
그의 생애 마지막날 아침 성실한 하인인 크라우제에게 " 내 와인에설탕을 넣은 것은 아니겠지?" 할 정도였다.
괴테의임종때 곁에 있지못했던 두 친구를 통해 그의 마지막 유언은 알려지게 되었다.
"더 많은 빛이 들어오도록 창문을 열게!"
"여기 좀 더 많은빛을,너무 어둡구나."
과부가 된 그의 며느리 오틸리스 폰 괴테는 자신의시아버지가 다른 버전의 유언을 남겼다고 주장햇다.
"이리 오너라, 그리고 나에게 너의 사랑스러운 손을 다오."
"마지막 숨까지 강한 정신력을 잃지 않고 사랑스러울 수 있기를."
그러나 이것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
괴테의 하인 크라우제는 괴테의 죽음 후 알아보기힘든 필체로 실제로 그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기록해 놓았다.
그러나 이 사실을 1928년까지 거의 100년 동안 숨겨져 왔다.
거기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는 나에게 요강을 가져다 줄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서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꼭 붙들고 있었다."
12
하이네를 죽음으로 이끈 병명은척수결핵의 잠행성 매독이었다.
참을 수 없는 고통과경련이그를 괴롭혔으며 마지막 8년은 침대무덤에서 보내야 했다.
그의 하인이 업고 밖으로 나서야만 신선한 바람을 쐴 수 있었고,
눈꺼풀이 마비가 와서 손가락으로 걷어 올려야만 앞으 볼 수 있었다.
결국 하이네는 대부분의 시간을 어둠 속에서 보내야 했던 것이다.
"오 하나님, 나를 땅에 묻을 수 있게, 내 고통을 덜어주소서.
당신도 아시다시피 제겐 순교자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용서하실 거야. 그게 그분의 직업이거든."
13
"예전에 나는 돈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오늘 되돌아보니 새삼 깨달은 게 있어. 그것이 사실이었음을."
"나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내 처지를 넘어 죽음을 맞이한다."
- 오스카 와일드
어느 날 단눈치오는 마지막으로 차를 타고 나들이를 갔을 때 그의 운전수에게 터무니없는 명령을 내렸다.
"차를 거꾸로 돌려, 뒤로 운전하시오!"
그리고 그는 말했다.
"정말 모든 것이 지루해!"
"나의 진정한 병은 바로 나 자신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늙어가는 내 자신이 굴욕스럽게 느껴진다."
- 가브리엘 단눈치오
14
"이것이 끝이로구나. 그리고 니체보." - 톨스토이
니체보란 러시아어로 '산관없다'라는 뜻이다.
"친구들이여,박수치게. 드디어 이 희극이 막을 내리지 않았나." 베토벤
15
피터 우스티노프 (1921~2004, 영국)
배우이자 작가, 연출가인 그는 대법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생애 동안 많은 선행을 남겼다.
백만장자였음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유산을 남기지 않앗다. 그대신 남긴 것은 재치있는 유머였다.
"유언장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은 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오."
그의 말에 따르면 "부자가 재물과 함께 그대로 무덤에 묻히는 것은 아무 의미 없는 일"이었다.
이런 그를 영국 여왕은 기사로 책봉했다.
우스티노프는 할리우드 영화 <네로>와 <스팔타커스>로 두번이나 오스카 상을 탔고,
세계의 모든 아이들을 보살피는 유니세프의 홍보대사로 활동했다.
3개월의 암투병 끝에눈을 감던 날, 그는 마지막 이별을 고했다.
"나는 죽는구나"
생전에 유엔 코피 아난 사무총장과 자신의 묘비에 다음과 같이 새겨줄 것을 농담으로 말하곤 했다.
"잔디를 밟지 마시오."
'책 · 펌글 · 자료 > 인문 · 철학 · 과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철학의 끌림》 (0) | 2012.07.11 |
---|---|
‘메멘토 모리’ (0) | 2012.03.21 |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0) | 2012.01.12 |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0) | 2012.01.09 |
- 최규석, 지금은 없는 이야기 - (0) | 2011.1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