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11. 11:58ㆍ책 · 펌글 · 자료/인문 · 철학 · 과학
Karl Heinrich Marx (1818-1883)
나, 마르크스는…
그리스 신화와 셰익스피어 작품을 즐겨 읽었고
일찍이 기독교를 윤리학으로 보기 시작했어!
한때 철학자가 될 것이냐, 시인이 될 것이냐 고민했지
그리고 내 사랑, 예니!
간절한 이 내 마음을 시와 노래에 부쳐 그녀에게 전해다오
“나는 모든 것을 얻고 싶다.
가장 아름다운 신의 총애 모두를,
그리고 과감히 지식 안에 파고들며
노래와 예술을 붙잡고 싶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정치적 국가는 자연적인 가족과 인위적인 기초인 시민사회 없이는 성립이 불가능함에도
헤겔은 국가이념에 의해서 가족과 시민사회가 성립한다며 전혀 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었다.
헤겔은 국가이념을 주어로 그리고 가족과 시민사회를 술어로 보지만, 마르크스는 오히려 가족과 시민사회가
주어이고 국가는 술어라고 보았다.
간단히 말해서 마르크스는 정신적 이념이 원리이고 현실세계가 이 원리에 따라 전개된다는 헤겔식 법철학에
정면으로 반대했다. 마르크스는 어디까지나 경제현실, 곧 노동해서 먹고사는 현실이 바탕이 되고 그런 바탕
위에서 가족과 시민사회가 성립되고 이를 기초 삼아 정부나 법이 생긴다고 보았다.
“철학이란 포이어바흐가 지적한 것처럼 관념적 생각 안에 들어와서 관년적 생각 안에서 전개되는 일종의 종교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철학은 인간 본질의 소외를 뜻하는 또 다른 형식과 양태일 뿐이다. 철학은 종교에 대립되는 것이 아니고 종교와
거의 유사한 것이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세계를 해석하기만 했다. 문제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나의 철학은 그리스 에피쿠로스에서 출발!
인간에게 불을 갖다준 프로메테우스는 일종의 성인이자 순교자
그리고 헤겔의 이성관에 찬성하지만 그의 종교관엔 반대야
철학의 과제는 종교비판을 넘어 경제비판, 정치비판에 있다고 할까
그리하여 난, 이렇게 외쳤지!
“공산주의는 사유재산을 긍정적으로 지양하여야 한다
공산주의는 완성된 자연주의여야 하며
완성된 휴머니즘이어야 한다.”
노동자는 일정한 임금을 받고 노동하여 상품을 생산한다. 그러나 생산된 상품가치는 노동자의 임금보다 훨씬 높다.
상품가치에서 재료 기계 임금 등을 뺀 가치가 바로 잉여가치이다. 자본가는 전혀 노동하지 않고 잉여가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때문에 노동자를 착취하는 셈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생산방식은 신비롭게 포장되어
마치 자본가가 자비심을 갖고 노동자에게 임금을 주는 것처럼 이야기되고 있을 뿐 아니라 노동자와 자본가의 내면
적인 실제관계는 은폐되어 있다. 자본주의는 대중의 자유를 옹호하고 보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단지 표면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상품의 물신숭배를 붕괴하고 노동자의 주체적 활동으로서의 노동을 인정할 때 상품가치의 진정한 원천은 노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사실은 단순한 과학적 진리문제라는 것이 마르크스의 주장이다. 상품의 물신숭배는 상품의
내면관계를 보지 못하고 표면만 바라보는 객관적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마르크스는 오직 노동자만을 위한 천국을
실현하자는 의도에서 주장한 것이 아니다. 그는 자본가든 노동자든 한 인간 주체로서의 인간이 직접 노동하고 노동과
상품의 주인이 되는 사회를 실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노동자의 독재 내지 공산당의 독재는 과학적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마르크스의 주장은 문제가 많다.
마르크스는 마지막 자본가까지 사라지고 모든 인간이 노동자가 되어 스스로 주인이 되기까지만 노동자의 독재가 필
요한 것이고 그 다음에는 과학적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가 형성되면 모든 인간은 자유와 평등을 만끽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마르크스의 생각과 달랐다. 일단 공산당 독재가 시작된 나라들에서는 공산당 독재가 임시
과정이 아니라 불변하는 정치체제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공산당의 노동계급에 의해서 자본계급이 타파되기는 커녕
오히려 공산당원들이 또 하나의 사회특권층으로 온갖 혜택을 누린다. 따라서 대부분의 공산주의 국가는 마르크스가
처음부터 주장한 휴머니즘의 실현과는 전혀 달리 오직 공산당의 정권집권에만 집착한다. 이러한 사실은 마르크스주
의가 가져올 결과인데도 마르크스 자신은 정확히 예견하지 못했다.
Friedrich Wilhelm Nietzche (1844~1900)
“당시 나는 고통스러운 경험과 실망에 잠겨 아무런 도움 없이 허고에 매달려 있었다.
아무런 근거도 없었고 희망도 없었으며 친절한 기억도 없었다.
내 자신에게 어울리는 삶을 챙기는 것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가 할 일이었다.
게다가 나는 본에서의 내 지난날을 옭아매었던 버팀목을 부러뜨렸다.
다행히도 홀로 떨어져 있는 내 방에서 나 홀로 자신을 추스릴 수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어떤 고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전혀 낯설지 않게 책을 손에 집어들고 책장을 넘겼다.
나는 어떤 정령이 ‘이 책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내게 속삭이는 것을 들었다.
나는 책을 급히 사지 않는 습관이 있는데 이번만은 달랐다. ( …… )
이 책(『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모든 글귀는 거절, 부정, 포기를 외쳤다.
이 책에서 나는 거울을 보았는데 이 거울 안에서 나는 세계, 삶, 고유한 감정 등에 유독 눈길이 갔다.
이 책에서 예술, 질병, 치료, 추방, 지옥, 천국 등도 보았다.
이렇게 나는 14일간 밤 12시에 침대에 누웠고 아침 6시에 일어나면서 쇼펜하우어 책에 몰두했다.”
“바그너는 쇼펜하우어에게 감사하며 쇼펜하우어는 음악의 본질을 알았던 유일한 철학자라고 말했네.
그리고 나서 바그너는 현재 교수들이 쇼펜하우어를 어떻게 대하는 말하고,
프라하의 철학자 학회에 대해서 비웃었네. 그리고 그는 '철학적 하인들'에 관해서 말했네.”
학문성은 아마도 단지 염세주의에 대한 공포며 그로부터의 도피인가? 진리에 대한 정교한 방어인가?
그리고 도덕적으로 말해서 어떤 나약함과 그릇됨인가? 비도덕적으로 말하자면 간사함인가?
오, 소크라테스여, 소크라테스여, 그것이 아마도 그대의 비밀이었던가?
오, 비밀에 싸인 역설가여, 이것이 아마도 그대의 역설이었던가?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옛 비극을 파악하지 못하고 따라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두번째 관객이었다. …
우리는 소크라테스에게서 디오니소스의 적, 디오니소스에 대항하여 일어나는 새로운 오르페우스를 인식하고…
나의 친구들이여, 디오니소스적인 삶과 비극의 재생을 믿어다오.
소크라테스적 인간의 시대는 이미 지나가버렸다.
개념은 사물 뒤의 보편이지만 음악은 사물에 앞서서 보편을 부여하며 현실은 사물 안의 보편이다.
《이 사람을 보라》(1888년)
머리말 / 나는 왜 이토록 현명한가 / 나는 왜 이토록 좋은책을 쓰는가 /
비극의 탄생 / 비시대적 고찰 / 인간적인, 너무나 이간적인 / 여명 / 즐거운 학문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선과 악의 피안 / 도덕의 계보 / 우상의 황혼 /
바그너의 경우 / 나는 왜 숙명인가 /
이걸루 끝내자
'책 · 펌글 · 자료 > 인문 · 철학 · 과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선의 선택' (0) | 2012.07.12 |
---|---|
'디지털 외도' (0) | 2012.07.12 |
‘메멘토 모리’ (0) | 2012.03.21 |
유언 (0) | 2012.01.17 |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0) | 2012.0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