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0. 11. 10:31ㆍ詩.
가을의 시
강은교
나뭇가지 사이로
잎들이 떠나가네
그림자 하나 눕네
길은 멀어
그대에게 가는 길은 너무 멀어
정거장에는 꽃 그림자 하나
네가 나를 지우는 소리
내가 나를 지우는 소리
구름이 따라나서네
구름의 팔에 안겨 웃는
소리 하나
소리 둘
소리 셋
無限
길은 멀어
그대에게 가는 길은 너무 멀어
가을 저녁의 시
김춘수
누가 죽어 가나 보다.
차마 다 감을 수 없는 눈
반만 뜬 채
이 저녁
누가 죽어 가는가 보다.
살을 저미는 이 세상 외롬 속에서
물같이 흘러간 그 나날 속에서
오직 한 사람이 이름을 부르면서
애터지게 부르면서 살아온
그 누가 죽어 가는가 보다.
풀과 나무 그리고 산과 언덕
온 누리 위에 스며 번진
가을의 저 슬픈 눈을 보아라.
정녕코 오늘 저녁은
비길 수 없이 정한 목숨이 하나
어디로 물같이 흘러가 버리는가 보다.
가을사랑
도종환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할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바람부는 저녁숲이었으나
이제 나는 은은한 억새 하나로 있을 수 있읍니다.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눈부시지 않은 갈꽃 한 송이를
편안히 바라볼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끝없이 무너지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조용히 다시 만나게 될
아침을 생각하며 저물 수 있읍니다.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입니다.
가을 날
R. M. 릴케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아주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드리우시고,
들판에는 바람을 풀어 놓아주소서.
마지막 열매들이 완전히 영글도록 命해 주소서 ;
그들에게 더 남쪽의 낮을 이틀 더 베푸시어,
그들이 무르익도록 재촉하시고,
묵직한 포도송이에는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더 이상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오래도록 그렇게 남아,
깨어나고,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나뭇잎들이 뒹굴 때면 가로수 길 들 사이로
이리 저리 불안스레 거닐 것입니다.
***
간신히 낙엽
복효근
벌레에게 반쯤은 갉히고
나머지 반쯤도 바스러져
간신히 나뭇잎이었음을 기억하고 있는
죄 버려서 미래에 속한 것을 더 많이 기억하고 있는
먼 길 돌아온 그래서 가야 할 길을 알고 있는 듯
언제든 확 타오를 자세로
마른 나뭇잎
낙엽
구르몽
시몬!
나무 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
낙엽은 버림받고 땅 위에 흩어져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해질 무렵 낙엽 모양은 쓸쓸하다
바람에 흩어지며 낙엽은 상냥히 외친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낙엽은 날개 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낙엽
도종환
헤어지자
상처 한 줄 네 가슴 긋지 말고
조용히 돌아가자
수없이 헤어지자
네 몸에 남았던 내 몸의 흔적
고요히 되가져가자
허공에 찍었던 발자국 가져가는 새처럼
강물에 담았던 그림자 가져가는 달빛처럼
흔적 없이 헤어지자
오늘 또다시 떠나는 수천의 낙엽
낙엽
낙엽
이생진
한 장의 지폐보다
한 장의 낙엽이 아까울 때가 있다
그 때가 좋은 때다
그 때가 때묻지 않은 때다
낙엽
정양
어디로 종적도 없이
떠나보았느냐
하던 일 가던 길
다 버리고
인적 없는 초겨울
첩첩 산중을 보았느냐
볼 테면 보고 말 테면
말라고
첩첩 산중 우수수수
낙엽은 지고
보고 싶은 늬 이마 빡 묻어
하던 일 가던 길 모두
낙엽으로 쌓여 있다
낙엽
헤세
꽃마다 열매가 되려 하고
아침은 저녁이 되려 하니
변화하고 사라지는 것 말고는
달리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란 없다
눈부시게 아름답던 여름까지도
가을이 오자
조락(凋落)을 느끼게 하네
나뭇잎이여
바람이 너를 유혹하거든
그냥 가만히 달려 있거라
네 유희를 계속하며 거역 치 말고
그대로 가만히 내버려둘지니
바람이 너를 떨어뜨려
집으로 불어가게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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