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인터뷰 중에서,

2011. 9. 9. 16:18책 · 펌글 · 자료/ 인물

 

 

 

"뉴턴은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보고 만유인력을 깨우친 천재지만,

진짜 놀라운 거는 사과가 왜, 그 위에 가서 매달렸느냐 하는 거예요.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고 왜 위로 올라갔느냐 하는 거예요.

과학의 법칙보다 더 대단한 거는 생명의 법칙입니다.

어떻게 물고기가 물의 흐름을 따라 내려오지 않고 역류합니까.

바람개비가 안 돌면 아이들은 자기가 뜁니다. 뛰면 바람이 생겨요.

생명을 가진 것은 절대로 모방하거나 남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인력을 거슬러서 가장 높은 가지에 매달리는 사과, 그게 사랑이고 그게 생명입니다."

 

 

"생명을 우선순위에 놓으면 노동은 작업이 되고 작업은 활동이 되고 예술이 됩니다.

정치활동 예술활동이라고 하지 정치노동 예술노동이라고 안 하잖아요.

생명이 수단이 아니라 보람이 되고 목적이 되는 거죠.

돈 버는 게 목적이라면 얼마나 우스워요, 산다는 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고, 구걸을 해도 죽은 재벌보다 나은 법이죠.

산업자본주의와 금융자본주의의 시스템을 어떻게 생명자본주의로 만들어 가느냐,

교육·경제·정치·사회·문화 전반의 틀을 바꾸는 운동이 정말 절실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죽은 것을 살리고 먹을 걸 주고, 일어나 달리게 하는 것, 아주 평범하게 말하면 경제란 게 그거 아닙니까.

이제 생명이 자본이 되는 시댑니다. 생명이 시장화하고 생산이 돼야 합니다.

한국 사람들이 '자식농사 잘 지었다' 그러잖아요.

생명의 중요성을 본능적으로 가진 민족입니다.

그런데 요즘 보세요. 저출산시대? 그건 생명자본이 사라진다는 거죠. 상실했다는 거예요.

생명자본을 다시 부활시키고 생명애, 바이오필리아를 일깨워야 합니다."

 

 

"36억년 동안 지구에서 생명들이 진화해 오고 지금까지 발전해 오는 원동력은 생명에 대한 사랑이거든요.

장소에 대한 사랑도 있고, 고향에 대한 사랑도 있죠.

이제 추석인데, 길이 막힌다고 너무 화내지 마세요. 그게 다 생명에 대한 사랑이 있어 생긴 현상이니까요.

수백만명이 고향을 오가는 건 사랑이 있다는 거죠.

교통체증은 행복한 겁니다. 도로가 뻥 뚫리고 아무도 안 내려가면 그날로 끝인 겁니다.

 

 

"옛날엔 나무를 자르고 재단해야 자본이 됐어요.

지금은 죽이지 않고 나무라는 생명 자체가 훌륭한 자본이 된다는 거죠.

경치를 통해 감동을 주거나 아름다움을 주고 그 자체가 엔터테인먼트가 되는 것이죠.

디지털로 표현되는 물질자본보다 아날로그식 생명자본이 더 유용하고 사람을 더 행복하게 하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포착해내야 합니다."

 

 

"단순한 업그레이드가 아닙니다.

앨빈 토플러를 대단치 않은 사람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문명을 제 1, 2, 3의 물결로 나누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입니다.

이런 문명론은 사실 대수로울 게 없어요. 문명은 숫자의 업그레이드로 오는 게 아닙니다.

일직선상에서 발전해가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은 곧 제1의 물결이나 제3의 물결이 다를 게 없다는 걸 말하는 거죠.

물결은 한꺼번에 옵니다.

디지털 시대라고 아날로그가 사라지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더 필요하죠. 그게 '디지로그'입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함께 존재하는 것을 아는 것, 이게 문명을 읽는 지혜입니다."

 

 

"에로스가 지배하는 사회는 봤지만 필리아가 지배하는 사회는 아직 못 봤어요.

프랑스혁명의 정신이 자유·평등·박애잖아요.

이 중에 자유와 평등은 구경해봤는데 박애는 못봤어요. 가장 중요한 게 박애, 필리아인데….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정의가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안 됩니다.

이 사랑을 표현하는 언어가 시입니다."

 

 

"선거라는 것은 정치인을 뽑아서 권력은행에 내 권리를 맡기는 겁니다.

은행으로 치면 내 돈을 정기예금하는 건데,

이 맡긴 돈으로 은행이 아무리 잘못된 일을 해도 정기예금 기간 동안에는 마음대로 찾지를 못해요.

그래서 선거는 잘해야 됩니다."

 

 

"유상급식이냐 단계급식이냐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의 입맛도 다르고 환경이 다른데 동일한 메뉴로 동일한 사람이 동일한 시간에 똑같이 밥 먹는 거,

이게 과연 교육적으로 어떠냐는 게 근본적인 거죠.

일본에서는 자녀들에게 도시락을 싸줍니다. 내 아들은 내가 따뜻하게 해주겠다는 겁니다.

평등성 속에서 다양성을 줘야 해요.

어머니 손맛이 교육이고, 도시락 열어서 어머니의 숨결과 사랑을 느끼는 게 교육입니다.

물질자본은 평등을 구현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문화자본은 절대로 안 돼요.

개성, 분위기, 취미 이런 걸 어떻게 평등을 합니까.

경제자본이 문화자본으로 이행하면 절대로 획일적 평등성을 강요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돼요." 

 

 

"산업화, 민주화의 영웅들 미안하지만 짐을 내려놔야 해요.

뗏목을 타고 내를 건넜으면 뗏목을 가져가면 안 돼요. 두고 가야지.

그걸 짊어지고 산으로까지 올라가는 불상사는 없어야지.

자신의 역할이 끝났으면 이를 넘어서는 제3의 힘, 새 인물들이 나와서 새로운 일을 해야 해요.

새 바람이 안 불면 일으킬 수밖에 없죠. 바람개비를 돌리려면 앞으로 뛰어서 바람을 일으켜야죠."

 

 

 

인터뷰 = 허민 사회부장 minsk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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