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6. 4. 15:43ㆍ이런 저런 내 얘기들/내 얘기.. 셋
지팡이는 본인이 만들어 짚지 않는다.
50세가 되면 자식들이 만들어 부모에게 드린다고 해서 가장(家杖)이라고 했다.
60세가 되면 동네에서 만들어준다고 해서 향장(鄕杖)이라고 했고,
70세가 되면 나라에서 만들어준다고 해서 국장(國杖),
80세가 되면 임금님이 만들어 내린다고 해서 조장(朝杖)이라고 했다.
지팡이 중에서 각종 고사에 많이 등장하는 지팡이가 '청려장(靑藜杖)'이다.
1년생 풀인 명아주의 줄기를 말려서 만든 지팡이다.
명아주의 잎이 돋아날 때 색깔이 푸른색이라서 靑자가 들어가는데,
도교에서 푸른색은 영원함을 상징하고 장생불사를 나타낸다.
현재 전국에서 청려장의 주산지는 경북 문경이다.
1년에 1200~1500개를 만들어 낸다.
한 5년 전에…
우리동네에 사시다가 자식네 집으로 들어가신 할아버지가 계셨습니다.
할머니랑 두 분이서요. 할머니는 한번도 뵌 적은 없죠.
숙환으로 집안에만 계셔서 할아버지가 병수발을 하셨습니다.
그때 할아버지 연세가 88세셨던가였으니까 지금은 93세 정도이신데, 아직 생존해 계시는 걸로 압니다.
자제분들이 의사니 뭐니 살만해서, 두 분이 사시는데 곤궁한 티는 없으셨습니다.
할아버지가 참 곱게 늙으셨지요. 아니 아주 예쁘게 늙으셨습니다.
말그대로 동자 얼굴같은 '동안(童顔)'이셨어요.
수염을 기르진 않으셨어도 머리칼이 아주 새하얗고 얼굴이 희면서도 발그레하셔서
꼭 만화영화에 나오는 신선 같으셨습니다.
인품도 인자하고 넉넉하셔서 늘 허허 웃으시며 말씀하셨어요.
그런게 있잖습니까? 누구나 꿈에 그려보는 '우리 할아버지' 같은.
그 할아버지가 어느 날 지팡이를 짚고 오셨는데, "와~ 명품이다!" 소리가 보자마자 튀어나옵디다.
산신령 나타날 때 들고 나오는 지팡이 안 있습니까?
길이는 그보다 약간 짧지만 꼭 그런 스타일입니다. 정말 탐납디다.
가볍긴 또 얼마나 가벼운지, 전혀 무게가 느껴지지 않더군요.
제가 욕심을 내는 걸 보시더니, "주랴?" 하십니다.
에이, 아무리 탐나기로서니 어떻게 노인네가 짚고 다니는 지팡이를 달랄 수가 있습니까?
할아버지 하시는 말씀이 집에 몇 개가 또 있다는 겁니다.
시골에 할아버지 사시던 집이 있는 모양인데, 그곳에 명아주가 많답니다.
여러개 만들어와서는 그동안에도 경로당에다 여러개 나눠주셨었다는군요.
그래서 얻었습니다. ㅎㅎㅎㅎㅎ
할아버지가 믿으시는 종교가 '남녀호랑교'였습니다.
그 말을 듣곤 웃다가 가만 생각하니 옛날에 신도안에서 봤던 기억이 나더군요.
물어봤죠. 옛날에 신도안에 있던 거, 그거 맞냐고요.
맞답니다.
와아~ 그 교(敎)가 여태 명맥을 이어왔구나!, 너무도 의외였습니다.
그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놀랍고 반가웠습니다.
지금, 이름이 정확한가 싶어서 검색해보니까 정식 이름은 <남묘호렌게쿄>라고 나오는군요.
그러고보니 옛날에 신도안에서도 그런 간판을 본 듯 합니다.
실제로 '남녀호랑교'라는 간판도 있었고, 또 그 비슷한 이름도 본 기억이 납니다.
일제시대에 들어온 종교로군요.
털리지 않은 이유가 그 때문인가 봅니다. 찾아보니 이런 기사가 있네요.
「보경 스님은 "불교는 깨달음을 중요시하는 자력 신앙적인 측면이 큰데 불교에서 외부 힘에 의지하는 타력 신앙을
가장 강조하는 것이 법화경"이라면서 이런 성격 때문에 "법화경은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권에서 사랑받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풍토병도 많고 지진도 잦고 땅이 불안정한데 일본 사람들이 타력 신앙을 강조하는 법화경을 아주 좋
아합니다. 일본의 '남묘호렌게쿄'는 법화경 (나무묘법연화경)의 경전 제목을 한 번 외우면 책 한 권을 다 읽는 공덕이
생긴다는 신앙이 하나의 종교 분파로 자리잡은 것입니다." 법화경의 이런 성격 때문에 지치고 불안한 현대인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제가 신도안을 처음 가 본 것은 고등학교 때였습니다.
박정희 정권때 미신 타파니 뭐다 해서 싹 쓸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종교가 아직도 드문드믄 밭 가운데에 꽤 남아있었습니다.
종교라고 하니까 거창한데, 그냥 달랑 집 한 채 뿐인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관우 신상을 모셔놓고, 그 옆에서 살림하는 식이었습니다.
집집마다 전부다 간판이 달려 있었던 듯합니다.
그 모두가 각기 다른 종교였습니다. 왜냐면 총본산(總本山)이라고 써 있었거든요.
철거하기 전에는 신도안 그 좁은 골짜기 안에 30만명인가 10만 가구인가가 살았었답니다.
전부 종교와 연관된 사람들이었죠.
계룡산에 암자 비스름한 것이 9만개나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문열이가 쓴『황제를 위하여』읽어보셨습니까? 그런 내용입니다.
이번에 조용헌의 책을 보니까,
계룡산이 우리나라에서 기도빨이 가장 잘 받는 산이라서 그렇다는군요.
비전을 얻으려면 이러한 화강암 산으로 가야 한다.
계룡산은 모두 통 바위로 되어 있다. 그래서 강력한 지기를 발산한다.
티베트의 오지에 있는 카일라스 산이 바로 그런 산이라고 하는데,
한국의 수미산(카일라스)은 계룡산이다.
나는 아파트에 있다가 계룡산에 가기만 하면 골치가 띵할 정도로 에너지가 강하게 들어오는 것을 느낀다.
마치 자전거 튜브에 바람 넣는 것과 같다.
나와 대자연의 리듬이 같은 박자로 돌아간다.
바위가 주는 강력한 에너지가 없이는 에고를 녹이기가 어렵다.
철이 들어서 보니까 이러한 일을 하는 데에는 계룡산은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종교 천국이었을 계룡산 신도안의 모습이 어땠는지가 몹시도 궁금합니다.
1984년도 신도안 부남리의 정토사
신도안 석계리에 위치했던 삼일전(三一殿)
신도안 석계리에 있었던 법룡사(法龍寺)
연천봉 정상 바위에 새겨진 참구 방백마각 구혹화생, 그리고 나무염불(南無念佛)
일부 선생이 공부했던 거북바위 / 향적봉 오르는 길 좌측에 있습니다.
국사봉 정상에 세워진 오행비와 천지창운비 / 오행비에는 오,화,취,일 네글자가 동서남북방향에
천지창운비에는 불,천계황지,남두육성.북두칠성 글자가 동서남북방향에 새겨져 있습니다.
현재는 울타리를 둘러놓았습니다.
국사봉 아래 4층 돌탑 바위 / 마치 쌓아놓은 것 처럼 보이지만 반대편에서 보면 모두 붙어 있는 바위입니다.
숫용추계곡에 새겨진 동심계(同心契) 명단
숫용이 빠져나왔다는 숫용추
암용이 빠져나왔다는 암용추
사진출처. 대전 둘레길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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