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5. 27. 09:30ㆍ음악/음악 이야기
악보에 그려진 음표와 기호들이 나무와 금속으로 된 악기를 통해서 갑자기 음악으로 화하는 순간,
마치 작품 속에 마술의 힘이 숨어 있다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듯한 그 순간 속에
적어도 한번은 있어봐야 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느끼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은 번지점프처럼 말할 지도 모른다.
한 번이면 족해, 내가 다시 이걸 하면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일단 한 번 그 순간의 스릴을 맛본 사람은 결코 그 맛을 잊지 못한다.
문제는 그 맛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더 있을 것인가이다.
한마디로 클래식은 위기를 맞고 있다. 이는 인사이더들도 인정한 지 오래이다.
몇 년 전 영국의 한 저명한 음악비평가는 자신의 저서에서 클래식 음악은 이미 생명줄이 끊겼다면서
콙서트 산업의 종말을 예언했다.
비관주의자들은 점점 높아가는 콘서트 관객의 평균연령을 증거로 들이댄다.
독일의 경우 콘서트 관객의 평균연령은 이미 64세에 이르렀다.
이 통계대로라면 젊은층 관객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20년 뒤에는 관객석이 텅 비게 된다는 뜻이다.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클래식 콘서트를 찾지 않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클래식은 지루하고 '쿨'하지 못하다는 인식? 삼사 분 이상 한 곡을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는 부담감?
아니면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클래식에 관심은 있지만 콘서트를 찾지 않는 사람들은 왜 그런 것일까?
나는 연주가 끝나면 관객들과 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젊은이들이 하는 말은 항상 똑같았다.
음악이야 '상당히 괜찮다' '끝내준다'까지 좋은 평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외 부수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아주 반응이 좋지 않았다.
너무 딱딱하고 형식적이다, 너무 비싸다,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었다.
개중에는 머리가 허연 단골 관객들이 젊은 신참 관객들에게 보내는 시선이 곱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클래식을 모르는 것이 무슨 죄인 양 여겨지는 분위기 속에서 잘못된 타이밍에 박수라도 치게 되면
주위의 반응에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말 속에는 편견과 선입견이 많았었지만 대개는 맞는 말이었다.
곰팡내 나는 분위기와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은 관객뿐 아니라 연단에 서 있는 사람들도 이미 오래 전부터 느끼고 있다.
그리고 이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행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음악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하면 클래식을 이해할 수 없을까?
- 장담하건대 쓸데없는 걱정이다.
음악을 느끼고 즐기기 위해 음악 지식을 알아야 한다?
- 더더욱 말이 안된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준비 없이 콘서트에 가라는 말은 아니다.
미리 CD로 들어보는 것이 좋다. 여러번 들어서 그 음악의 첫인상을 잡아낼 수 있다면 더욱 좋다.
그리고 작곡가에 대해서도 조금이라도 공부를 하고 가자.
작품에 대한 정보도 도움이 된다.
팸플릿은 아주 유용한 정보수단이다. 팸플릿은 공연이 시작됙 전에 읽어야 한다.
팸플릿보다 더 효과적인 형태는 공연소개 프로그램(프리 콘서트 토크)인데,
보통은 음악학자나 극작가, 가끔은 지휘자나 솔리스트가 나와 설명하고 시연함으로써
공연 중에 주요 멜로디를 재인식할 수 있게 한다.
특히 현대음악의 경우 이런 공연소개 프로그램은 효과가 높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콘서트홀에 들어가기 위해 음악점수를 보여줘야 하는 곳은 없다.
건성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옆사람을 흘끔거리거나 천장의 전구다마를 세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중요한 것은 음악을 체험하는 것이다.
모든 감각을 동원해 음악에게 자신을 여는 것, 온몸의 숨구멍 하나까지 다 열고 음악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열광하거나 생각에 빠지거나 흥분에 들뜨거나 차분해지거나 기쁘거나 슬퍼져야 하는 음악이란 없다.
작곡가가 작곡할 때 가졌던 생각과 느낌은 있겠지만 백이면 백 사람이 모두 다르게 경험하는 것이 음악이다.
그것이 바로 음악의 장점이다.
음악에는 수만가지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
어떤 박자에서 어떤 감정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규칙은 없다.
'음악이 표현하는 것은 그 음악을 들었을 때 청중이 느낀 것, 바로 그것이 음악이다.
음악이 우리에게 뭔가를 말하고, 어떤 느낌을 주고 우리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킨다면 우리는 음악을 이해한 것이다."
(레너드 번스타인)
팝과 클래식의 관계는 말하자면 샴페인과 레드와인의 관계와 같다.
샴페인은 빠르게 혈관에 흡수되어 즉각적인 효과를 내지만 그 효과는 짧은 시간에 그친다.
반면에 좋은 레드와인의 효과는 점진적으로 나타나고 훨씬 오래 간다.
좋은 와인의 맛은 다음날까지도, 몇 달이 지나도 그 맛을 기억할 수 있다.
다니엘 호프,『박수는 언제 치나요?』(2010.4)에서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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