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의 블랙워터 대원들

2011. 5. 17. 08:59책 · 펌글 · 자료/정치·경제·사회·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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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워터』는 미국 정부의 지원 아래 성장하여 이라크 등지에서 활약을 한 최강 용병부대 ‘블랙워터’에 관한 이야기를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정리해 담은 책이다. 언제든 소집 가능한 전직 특수부대 요원과 군인 및 은퇴 경관 2만 1000명, 9개

국에 파견되어 있는 2,300명 이상의 민간 용병과  중무장 헬리콥터 등의 20여 대 항공기 등을 소유하고 있는  블랙워터의

상세한 정보를 수록했다.  또한 법적 보호를 받으며 현역군인과 달리  살인과 고문을 마음대로 자행할 수 있는 용병들의

무자비한 학살을 소상히 고발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민간군사기업을 통해 용병을 제공받는 미국과 블랙워터의 검은 거래를 파헤치고 있다. 블랙워터의

창립 배경에는 부시 행정부의 딕 체니 국방부 장관 시기에 추진된  대규모 군대 민간화 사업이 있다.  당시 체니는 비롯한

네오콘은 미군을 직접 해외로 배치하는 데서 오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정치적 방편으로 군의 민간화, 곧 용병을 생각

한 것이다. 결국 블랙워터는 공화당의 강력한 지원을 받는 광신자 집단이며, 이들이 이라크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세계

경찰을 자임하며 학살과 여러 잔인한 행동을 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칠레의 블랙워터 대원들

(p268~305 에서 발췌함.)

 

 

살바도르 아옌데가 칠레의 대통령 후보로 선거운동을 시작할 당시에

아옌데는 25년 동안 칠레의 상원의원이었다.

그는 가난으로 고통받는 수 백만 명의 칠레인의 생활을 향상시키겠다는 공약을 걸고

"인민연합" 공동전선으로 선거운동을 벌였다.

1970년 9월 4일, 아옌데는 우파당과 미국 CIA 및 다국적기업들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았던 반대 후보를

접전끝에 근소한 차로 누르고 칠레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아옌데의 승리느 남미 정치사의 역사적인 사건으로 워싱턴의 권력집단과 미국의 거대기업들을 놀라게 했다.

닉슨 정부는 즉시 아옌데의 대통령 취임을 막거나,

취임하더라도 아옌데 정부를 전복시킬 극비계획 실행에 들어갔다.

그러나 대통령 아옌데는 "칠레식 사회주의"라고 명명한 프로그램에 착수하여 거대산업을 국영화하고,

정부가 운영하는 의료보험과 교육제도를 실시했다.

토지재분배와 문맹퇴치, 어린이 무료 우유급식도 실시되었다.

미국정부에 도전해 쿠바와 다시 수교를 맺고 카스트로와의 관계를 공고히 했다.

닉슨 행정부는 산디에고의 미국거대기업들과 방송매체를 동원하여 

칠레의 사회불안을 조성하고 경제적으로 고립시키는 공작을 폈다.

E.코레이 미국 대사는 칠레 당국자들에게

"아옌데가 집권하는 동안에는 나사 하나 볼트 하나도 칠레로 들어갈 수 없게 할 것이다.

칠레인들은 극도의 가난과 궁핍을 경험할 것이다"며 협박을 서슴치 않았다.

미국의 공작으로 물가는 천정부지로 뛰었고,

칠레의 방송매체는 곧 정부가 무너질 것이라면서 언론플레이를 펼쳤다.

1973년 9월 11일 아침에 피노체트 장군은 대통령궁을 포위하고

 "그 개새끼를 죽이고 이당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아예데는 몇개 안되는 라디오 방송국을 통해서 전국에 방송을 했다.

"역사적인 선택을 했던 나는 오로지 국민에게 충실하기 위해 내 삶을 희생할 것이다.

수없이 많은 칠레인의 고귀한 양심으로 우리가 조국에 뿌린 씨앗이 싹트리란 것을 국민 여러분에게 분명히 밝힌다.

그것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흐름이다."

그로부터 수 시간 후 아옌데는 사망했고,

이로부터 칠레 역사에서 가장 어둡고 고통스런 시대가 시작되었다.

피노체트 정권 초기에 사망한 칠레이의 숫자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CIA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까지 4000명이 사망했고, 계속 쿠테타 반대세력에 대한 소탕작업이 뒤따랐다.'

다시 나흘 후에는 '미국 CIA 지부가 추정한 사망자수는 2000명에서 1만명에 이른다.'

 

 

부시 행정부는 "기꺼이 참여하는 연합군"을 구축해서 미국의 이라크 침략과 점령을 지지받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부시 행정부는 연합군 대신, 인권 탄압으로 악평이 자자한 나라의 전직 군인들과 보안군들로 용병을 모집하는 민간

군사기업을 고용해서 이라크 점령군을 지원했다.

「블랙워터 」가 이라크에 배치한 외국용병 가운데 가장 큰 부대의 일부는 

피노체트 정권에게 복무했던 칠레의 전 특공대원들이었다.

미군의 비밀작전과 미국 정부의 압박정책을 대리할 외국군대를 훈련하는 일은 새로울 것이 없는 프로젝트였다.

대표적인 예로서 특별히 남니를 꼽을 수 있다.

거의 60년 이상을 존립해온 '美 육군 아메리카 군사학교'는 6만명 이상의 남미 군인들에게

폭동진압과 저격수 훈련, 특공전과 심리전, 정보전과 심문 고문기술을 가르쳤다.

이들은 남미의 자국에서 인권탄압을 했던 장본인들이다.

1980년대와1990년대에 미국정부는 자국의 이익에 위협이 되는 남미 인민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남미 군대를 비밀리에 무장시키고, 자금을 대고 훈련을 시켜 '죽음의 특공대(death squad)'를 구성,

당시 남미에서 벌어지는 '더러운 전쟁'을 지원했다.

 

이라크 점령군은 민간부문에 의해 고용된 외국군의 유용성을 깨달았다. 

이제 미국이 후원했던 죽음의 특공대와 미국의 억압정책의 희생자인 남미 국가들은

 ─ 그리고 2003년 이라크 침공에 반대한남미의 정부들과 국민들─

이라크 전쟁에서 싸울 용병들의 새로운 훈련지이자 모집기지가 되었다.

 

 

 

 

부시 행정부는 대중적인 토의를 거치지 않은 채 역사적으로 軍의 기능에 속했던 많은 일을 민간부문에 외주를 주었다.

이들 민간 기업이 미국의 납세자들로부터 엄청난 이득을 보아야할 어떤 책임도 없느데 말이다.

이라크 주재 미국 대사들 역시 블랙워터의 경호를 받았다. 월급이 형편없이 낮은 현역 군인과는 대조적으로 블랙워터

용병들은 하루 수당 600달러를 받았다. 그리고 미국 정부는 이 회사를 면세사업체로 분류했다.

 

[시행규칙 17조] 쿠시니치 의원은 미군에는 교전에 관한 법률이 적용되고 이라크에서 법률을 어겼을시 기소되었으나

 민간 계약직 용병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국무부는 법을 어기면서 민간인을 죽인 것이 분명한 계약직 용병을 기소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요?"

"의원님 그 물음에는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와─, 그 말은 살인을 하고도 민간 계약직 용병들은 벌을 면할 수 있다는, 다시 말해서 계약직 용병에게는 어떤 법도

 적용되지 않는다 말입니까?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