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 서적 몇 권

2011. 4. 2. 14:24책 · 펌글 · 자료/정치·경제·사회·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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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비판(Unjust Deserts) - 가 알페로비츠·루 데일리| 민음사 -



주인 없는 땅에 사과나무 한 그루가 있다고 치자.

마침 탐스러운 사과들이 주렁주렁 열렸다.

누구나 그 사과를 따 먹을 수 있다.

한데 어디선가 한 사내가 나타나 열심히 사과를 따서 자루에 담는다.

그 사내는 “내가 노력해 얻은 것”이라며 “이 사과들은 내 것”이라는 도덕적 권리를 강하게 내세운다.

‘노력’이라는 두 글자를 특히 강조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게 과연 온당한 일일까?

<독식비판>이 던지는 물음표는 바로 그것이다.

공동저자인 알페로비치와 데일리는 “(사회적으로 축적된 지식이야말로) 오늘날 부의 압도적 원천”이라며,

그 지식은 “우리 자신의 노력을 거치지 않은 채 그냥 다가온 것들”이라고 본다.

말하자면 그것은 일종의 ‘공짜 점심’이라는 것이다.

두 저자는 1987년 노벨상 수상자인 로버트 솔로가 제기한 ‘잔차’(殘差, residual)라는 개념에 주목한다.

잔차는 역사적으로 축적된 지식, 그것이 부의 산출에 미치는 총체적 효과를 일컫는 개념이다.

그것은 경제성장을 노동과 자본의 공급에 따른 것으로 설명했던 애덤 스미스의 이론과 궤를 달리 한다.

주지하다시피 스미스의 <국부론>은 토지·노동·자본의 요소에 집중할 뿐이며,

 ‘기술’은 다른 생산 요소에 종속된 것으로 본다.

하지만 솔로는 노동과 자본 같은 전통적 요소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산출량의 변화에 주목했고,

“‘잔차’야말로 전통적 투입 요소를 질적으로 결합해 효율성을 증가시킨 본질”이라는 이론을 펼쳤다.

두 저자는 솔로가 제기한 ‘잔차’의 개념을 “진짜 확실한 것의 발견”이라고 격찬하면서,

세대를 거치면서 축적된 과학, 기술, 문화의 발전을 이어받은 덕택에 현재의 부가 가능해졌다는 논지를 펼친다.

 

우리가 거둔 부의 상당 부분이 “유산으로 물려받은 기술적 역량과 지식의 진보에 의해 창출된 것”이라면,

누가 그 혜택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알베로비츠와 데일리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분배’의 문제,

즉 “축적된 지식의 열매”를 어떻게 나눠야 할 것인가의 문제다.

“위대하고 너그러운 과거의 선물을 어떻게 사회 전체적으로 사용하고 나누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생각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정한 보상’이라는 것에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성공을 개인적 과정으로 보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했거나, 더 똑똑했기 때문에 성공했을 거라는 믿음을 갖도록 길들여졌다는 뜻이다.

그래서 ‘공정성의 오류’라는 것이 생긴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창조하거나 노력해서 생산한 것에 대해서는 마땅한 권리를 갖는다는

 (도덕적) 관념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데,

이 ‘당연한 대가’라는 판단이야말로 “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이 감옥에 가는 것은 잘못”이라는 도덕적 논리를

경제적 보상에 그대로 적용한 오류라는 것이 두 저자의 지적이다.

‘공정한 보상’은 복지 프로그램에 비판적인 보수주의자들의 근거로 자주 활용된다.

일을 해서 소득을 얻는 빈민은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지만,

할일없이 빈둥대는 빈민에게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는 주장이다.

1990년대 미국은 ‘복지도 응분의 보상’이라는 논리를 강하게 펼치면서 이른바 ‘생산적 복지’로 정책을 선회했다.

일을 열심히 했지만 가족을 부양할 정도가 되지 못하는 이들을 보조해주는 ‘근로 소득 지원 세제’ 같은 경우가 그 대표적 사례다.

알페로비츠와 데일리는 “우리 모두에게 선물로 주어진 거대한 몫을 어느 개인에게 과도하게 건네줄 이유는 없다”고 강조하지만,

이런 주장은 여전히 반발에 부딪히는 게 현실이다.

대개 실용적이고 기능적 차원에서 제기되는 반발이다.

‘무모한 분배 정의’가 경제에 해악을 끼치고 사회 전체에 손실을 입힌다는 ‘비관적 협박’이 바로 그것인 것이다.

미국의 2004년 기업 CEO의 평균 소득은 노동자의 평균 소득보다 431배 높았다.

2005년에는 상위 1%의 소득이 하위 1억2000만명의 소득을 합친 것보다 더 많았다.

이토록 극단적인 부의 집중화는 미국의 사회경제적 고통을 더욱 증가시키면서 이뤄졌다는 것이 두 저자의 진단이다.

“중산층 임금은 정체되고 제조업 일자리는 사라졌으며, 의료비는 올라가고 대학 수업료는 천정부지로 뛰었으며,

시간당 실질 임금은 지난 30여년 동안 거의 인상되지 않았다”는 지적인 것이다.

그래서 두 저자는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책무를 새롭게 해야 할 때”라면서,

진보적 분배 프로그램은 이제 “아무도 피할 수 없는 현실적 의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저자 중 한 명인 가 알페로비츠는 미국 메릴랜드 대학교 석좌교수이며

민주주의 연대(Democracy Collaborative)의 초대 이사장을 지냈다.

루 데일리는 공공정책을 연구하는 초당파적 조직 ‘데모스’(Demos)의 선임연구원으로 있다.

 

원용찬 옮김. 1만8000원

 

(경향신문)

 

 

 

 

 

 

 

 

 

 

언어의 감옥에서- 어느 재일조선인의 초상

서경식 지음·권혁태 옮김/돌베개·2만원

 

 

 

“침략과 수탈의 역사를 엄정하게 인식하고 자신들의 역사를 자기부정하는 것은,

일본인 스스로의 도덕적 갱생과 영구적인 평화를 확보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일본인은 장래에도 ‘항일투쟁’에 계속 직면할 수밖에 없다.”

 

서경식(사진) 도쿄경제대 교수가 이런 글을 쓴 것은 1989년이었다.

서 교수는 ‘네 번째 호기’라는 제목을 단 이 글을 20여년 뒤 한국에서 엮어낸 자신의 두 번째 평론집 <언어의 감옥에서>에 다시 수록했다.

그때의 문제의식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 2월 책 서문을 쓰면서 그는 지금의 일본을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상태로 진단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파의 야비한 욕설이 울려 퍼지고 리버럴 세력은 공허한 양비론을 중얼거리며 방관한다.

결과적으로 이런 무참한 사회를 젊은 세대에게 남겨주게 되었다.”

그래서 “이 황량한 현실을 살아가야만 하는 젊은 세대에 대한 책임감에서 무거운 마음을 북돋아” 썼노라고.

 

우리는 그 실상의 일단을 지난 30일 발표된 일본 중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를 통해 엿볼 수 있었다.

대지진과 해일(쓰나미), 원전 사고라는 3중 재난이 부른 비극 속에서도 일본 우파의 집요한 독도 공작은 멈추지 않았고

다수의 중간파 리버럴들은 공허한 양비론을 읊조리며 거기에 가담하거나 침묵했다.

대지진의 비극이 동아시아 연대를 위한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기를 바랐던 이들에게 그것은 ‘야비한 욕설’로 들리지 않았을까.

당연히 ‘항일투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 유구한 항일투쟁을 멈추게 할 결정적 계기가 세번 있었다고 말한 사람은 와다 하루키 교수다.

와다 교수는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이 터지자,

“침략과 수탈의 역사를 부정하고 조선반도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창조해나갈 호기(好機)” 가 다시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런 호기는 일본 패전(1945) 때도, 한-일 국교정상화(1965) 때도 찾아왔으나 일본인들은 이를 모두 놓치고 말았다며,

그는 김대중 납치사건을 제3의 호기로 삼자고 호소했다.

하지만 그 기회도 무산됐다.

서경식 교수는 거기에 빗대 1989년 히로히토 일본국왕의 죽음을 ‘계속되는 식민지주의’를 끝장낼 ‘네 번째 호기’로 삼자고 주장했다.

그 역시 무산됐다.

그리고 다시, 역설적이게도 이번 일본 대재난이 제5의 호기가 될 뻔했으나,

교과서 검정 결과를 통해 재확인된 일본 우파의 야비함과 리버럴의 모호한 공허가 다섯 번째 호기마저 날려버릴 공산이 커졌다.

 

일본 우파에 대해 우리는 좀 안다고 할 수 있다.

국수적 천황주의자인 그들의 행태는 날것으로 드러나 있고 그들의 전략 또한 단순우직하다.

하지만 그 우파에 동조하거나 방관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들 편이 돼버리는 일본 리버럴들에 대해선 잘 모른다.

그들은 누구인가? <언어의 감옥에서>의 핵심 메시지는 바로 이 질문에 응축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 리버럴은 우파의 노골적인 국가주의에는 반대한다.

그들은 비합리적이고 광신적인 우파와 구별되는 이성적인 민주주의자로 자임한다.

정당으로 치면 사민당이나 민주당 왼쪽 세력, 신문으로 치면 중도적 <아사히신문>이 거기에 속할 것이고,

이른바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 대다수가 거기에 포함될 것이다.

 

스테레오타입화한 일본 우파에 대한 경계심이나 비판의식으로 무장하고 일본에 처음 가 본 사람들은

뜻밖의 상황과 조우할 가능성이 높다.

그들이 본 일본인들 대다수는 그들이 간직했던 우파(극우) 이미지와는 아주 다르다.

그들은 대체로 친절하고 배려하며 합리적이고 양심적이며 부드러운 이미지로 다가온다.

그리하여 우파에 대한 고정관념 위주로 형성된 한국인들의 일본인관은 일거에 무장해제당하기 쉽다.

서 교수는 그렇게 해서 형성된 한국인들의 우호적인 일본인관은 대체로 부정확하고 오해에서 비롯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며

“안타까운 일일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조차 하다”고 말한다.

 

서 교수는 지난 20여년 동안 일본 리버럴 지식인들은 사상적으로 끝없이 퇴락해왔다고 본다.

그것이 일본의 비극이다.

중간을 자처하는 리버럴은 우파의 왕당파적 국수주의나 공격적인 국가주의를 거부하지만

그들과 같은 일본 ‘국민’으로서 향유하는 기득권에 집착하면서 자기중심적 ‘국민주의’로 퇴락해갔다.

이 국민주의는 어떤 국면에선 우파의 국수·국가주의와 대립관계를 이루지만

식민지배를 통한 약탈과 노동착취를 통해 축적된 일본 국민의 윤택한 경제생활이나 문화생활,

곧 일본 국민으로서 향유하는 자신들의 기득권이 외부의 타자로부터 위협받는다고 느끼는 순간

우파와 보완관계, 공범관계로 전환한다.

그때 리버럴 다수는 시종 양비론을 앞세우며 방관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그것이 지난 수십년간 일본 우파의 대두를 결정적으로 도왔다.

외부인들의 눈에는 이게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빤히 보이는 우파보다 리버럴이 훨씬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서 교수는 얘기한다.

 

우파 논리를 비판하는 듯하면서도 결국 일본 국민적 공동체 재건에 집착하는 <패전후론>의 가토 노리히로를 비판한

 ‘전후 책임론’의 주창자 다카하시 데쓰야는 “외부의 피해자를 대변해서 일본 동포를 규탄하는 윤리주의자”로 낙인찍히고 고립당한다.

서 교수는 개인적 ‘죄’는 없을지라도 일본 국민으로서의 윤택을 즐기면서 ‘계속되는 식민지주의’를 결과적으로 옹호하는

 ‘일본 국민으로서의 책임’은 져야 한다는 다카하시를 오히려 내셔널리즘의 함정에 사로잡혔다고 비판하는 페미니스트 우에노 지즈코의

생각이야말로 “내셔널리즘 비판과 전후 책임 회피의 뒤집어진 결합”이라고 날카롭게 비판한다.

 

한-일 간의 문제는 양심적인 일본 지식인들보다 자기비판과 책임의식이 현저히 부족한 한국 쪽 내셔널리즘 탓이라며

피해자인 한국이 먼저 화해를 청해야 한다는 주장이 얼마 전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서 교수에게 이런 ‘가짜 화해’는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일 뿐이다.

그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일본 리버럴의 사상적 퇴락을 더욱 조장함으로써 일본 우경화를 부추기는 죄악일 수 있다.

 

한겨레신문.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 언어의 감옥에서…서경식 | 돌베개

“구식민지 종주국인 일본에서 태어난 나는 원래는 모어여야 할 언어(조선어)를 이미 박탈당하고

과거 종주국의 언어를 모어로 해서 자라났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일본어로 생각하며 모든 것을 일본어로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일본어라는 ‘언어의 벽’에 갇힌 수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재일 조선인인 서경식 도쿄게이자이대 교수가 1995년 <소년의 눈물>로 일본 에세이스트 클럽상을 수상할 당시 소감문이다.

수상 이유를 ‘뛰어난 일본어 표현’이라고 들었을 때 그는 ‘골수까지 일본어가, 일본적 정서가 침투해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했다고 적고 있다.

 

서 교수는 한국 국적을 가진 재일 조선인이지만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어를 모어로 익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각이 없는 상태에서 익히는 언어인 ‘모어’(일본어)와 국적에 따라 정해지는 ‘모국어’(조선어)가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모어 속에 자신의 민족을 억압한 침략국의 ‘제국주의적 시선’이 반영돼 있을 수도 있다는 참담함을 느끼지만

이를 벗어나기란 어려웠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저자가 진정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은 제국주의·식민주의 피해자들의 ‘증언’을 통한 역사의 반성이다.

그러나 나치 수용소에서 살아나와 실상을 증언했던 프레모 레비가 결국 자살했듯, 사람들은 이에 둔감하다.

“피해자가 피해자임에도 증언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졌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귀기울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증거가 없다든지 허풍 떤다고 한다든지 설득력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 중심은 아직도 과거사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일본이다.

특히 저자가 상당 부분을 할애해 비판하는 것은 일본 내 우익이 아니라 그동안 호의적으로 평가돼 온 리버럴 지식인들이다.

일본인으로서 식민지 지배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대해

일본 내 리버럴 지식인들은 “내셔널리즘(민족주의)의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이라고 반론한다.

국가에 소속된 국민이라는 것만으로 개개인에게 과거의 책임까지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개인의 ‘죄’와 집단의 ‘책임’은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한나 아렌트의 말을 인용해 “죄는 개인에 귀속되는 것이지만

집단의 책임은 오직 망명자이거나 국가가 없는 사람들만이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의 베트남 파병 또한 한국인 개개인이 ‘죄’를 짓지 않았지만 ‘책임’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일본의 역사학자 와다 하루키는 한·일 역사 청산의 좋은 기회가 일본 패전 당시와 한일조약 체결,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 때 있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89년 히로히토 일왕 죽음을 계기로 또 한번의 호기가 있었지만

 “아사히신문조차 일왕의 책임을 변명했던 일본의 태도”로 인해 무산됐다고 지적한다.

최근에도 일본 동북부 대지진에 대한 한국인들의 도움이 답지하면서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가 부풀어 올랐지만

역사왜곡 교과서 검정 통과로 찬물을 끼얹었다.


이러한 비판은 일본에만 머물지 않는다.

저자는 “5·18이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불리게 됐지만

사건의 총책임자인 전두환은 아직도 건재하며 지지자도 적지 않다”는 것과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은 과거의 독재자 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등에 업고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5·16쿠데타가 혁명으로, 광복절이 건국절로, 군사독재가 산업화로 바뀌고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권혁태 옮김. 2만원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