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리겐차

2011. 4. 23. 14:57책 · 펌글 · 자료/정치·경제·사회·인류·

 

 

 

일러두기

 

실천적 지식인을 뜻하는 'intelligentsia'의 올바른 한국어 표기는 '인텔리겐치아'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70~80년대 사화화된 용어로서 광범위하게 통용되었던 '인텔리겐차'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인텔리겐차!

이 단어는 지식인 혹은 지성인과는 다른 느낌을 가지게 합니다.

어원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 단어에서 앎과 삶을 하나로 만들기 위한 인간들의 피와 땀, 눈물을 봅니다.

지식인이 기능인으로 격하되는 이 시대에 우리는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역사를 하나로 묶으려고 시도하는 이들을

감히 '인텔리겐차'라고 부르려 합니다.

 

 

 

인텔리겐차 

 

 

 

대담.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윤해동 (서울대 강사)

고미숙 (수유연구실 연구원)

장석만 (종교문화연구연구소 연구위원)

 

사회.

류준필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상임연구원)

 

 

 

 

1. 마르크스주의와 80년대 이후의 한국학

 

눈앞에서 학생들이 몸을 던져 죽고, 여학생들이 질질 끌려가는 상황에서

도서관에서 책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게 문제 있는 거 아닙니까?

제 주변에서도 정말 똑똑하고 샤프한 친구들은 지금 학계에 남아 있는 사람 별로 없어요.

그때 전부 감방에 가거나 공장에 들어갔으니까요. (장석만)

 

 

2. 한국의 근대성

 

지금 국민국가를 비판하면,

"자본의 논리에 놀아나는 것이 아닌가"라는 오해나 비판을 받을 여지가 있다는 것을 인정은 합니다.

그러나 헌법을 입안할 수 있는 주권성 자체가 국가에 위임되는 것인데, '주권의 독재'라고나 할까요?

그리고 현재는 국가 자체가 '국민 만들기 전략'을 통해 국민화 된 사람들에게 더 이상 장미빛 꿈을

가져다 줄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국가의 '주권'에 갇혀 있지 않고 세계 시민적 발상을 가질 때, 제대로 된 개인의 자율성이나

자기 주권 발휘가 가능하다는 겁니다.  국민국가의 틀 안에 닫아 놓고서 제대로 '인간'을 사유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20세기적 사고입니다. 국가가 우리한테 뭘 더 줄 수 있겠습니까? (윤해동)

 

저는 '세계시민'이라는 말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한반도가 전쟁터로 변하는 상황이 전개될 때 우리가 '민족'을 넘어 중국이나 일본 사람들과 연대해서

그런 상황을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이 현재로선 희박합니다. 그런 점들 때문에 저는 '실천적으로' 본다면

또 전술적으로 민족 · 국가 단위의 문제의식이 전혀 허황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춘)

 

자본의 블록을 깨면서 세계화 전략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세계적인' 흐름을 만들어내는 게

지식인들이 앞서서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래야만 '세계 시민인가 주권국가 국민인가'라는 이분법 안에서

가질 수밖에 없는 수동성에서 벗어나 다양한 전략이 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고미숙)

 

 

3. 글쓰기, 오늘날 지식인의 삶

 

강준만씨는 현재의 한국 정치상황 속에서 자기 스타일을 만들어낸 거죠.

굉장히 도발적이면서도 사회에 기여한 바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정권이나 자본과 야합했던 교수 ·지식인 사회에 대해 폭로하고 자극을 주었으니까요.

가준만씨가 하는 일은 마치 촛불처럼 자기 몸을 태우는 거라고 보입니다.

타인에 ㄷ한 그런 식의 비판이 자기에게 돌아올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런 일을 하니까요. (장석만)

 

 

4. 권위화된 지식의 생산공장 '대학'

 

현재로서는 대학 안에서 과거와 같은 지적인 열정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희망이 없다고 봅니다. (고미숙)

 

어떤 교수들은 '돈 되는 것'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뭐든지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견제할 수 있는 힘이 대학 안에는 없어요.

말하자면 한국 학생들처럼 온순하고 말 잘 듣는 학생이 없거든요.

그런 엉터리 교수들을 다 용납해주는 게 한국 학생들이거든요.

또 그런 교수들이 보복은 확실하게 해요. (웃음) (김동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