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5. 5. 21:32ㆍ산행기 & 국내여행
채봉님이 잡소리 넣지 말라시니까, 간략히 쓰겠습니다.
오늘은 대둔산 자락을 한바퀴 돌고 왔습니다.
영은사
파이프가 가로 5개 x 세로 7개.
파이프 사이에는 8개의 전구다마.
1일 등(燈) 일만 원.
자, 준비가 끝났습니다.
운주에 있는 영은사「500나한상」입니다.
각각의 표정들이 재밌습니다.
10년 전에는 허룸한 절이었답니다. '영가' 관련 사업으로 큰돈 벌었답니다.
노인 요양원까지 지었습니다.
주지스님의 수완이 탁월한 건지, 끗발이 센 건지,
화암사, 내 사랑
안도현
인간세 바깥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미워하는지 턱 둘러 앉아
곁눌질 한 번 보내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화암사를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세상에 쫓기어 산속으로 도망가는 게 아니라
마음이 이끄는 길로 가고 싶었습니다.
계곡이 나오면 외나무다리가 되고
바람이 막아서면 허리를 낮추었습니다.
마을의 흙먼지도 잊어먹을 때까지 걸으니까
산은 슬쩍 풍경의 한 귀퉁이를 보여 주었습니다.
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
갓 늙은 절 한 채
그 절집 안으로 발을 들여놓은 순간
그 절집 형체도 이름도 없어지고
구름이 어깨를 치고 가는 불명산 능선 한 자락 같은
참회가 가슴을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마을에서 온 옛 벗이
화암사 안 마당에 먼저 와 앉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상의 뒤를 그저 쫓아다니기만 하였습니다.
화암사, 내 사랑
찾아가는 길은 굳이 알려주지 않으렵니다.
도현이가 길을 갈켜주지 말라니께 갈켜줄 순 없고.....
앞에서 본 영은사와는 극과 극입니다.
소중한 문화재와 기막힌 경치를 갖고 있어도 찢어지게 가난한,
화암사입니다.
극락전과 우화루가 보물입니다. 국보급 보물.
백제의 건축양식이었다는데, 백제 양식은 오로지 이거 하나가 남아있다고 합니다.
부여 박물관에 그 내용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굴뚝이 예쁘지요?
잘 지은 절입니다.
배수로도 저 굴뚝 스타일로 잘 되어 있습니다.
우화루 앞에 300년 넘은 전나무가 있었는데, 베어버렸더군요.
그것 때문에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은 모양인데,
절에 살고 있는 보살님 말을 들어보니
양해를 해주어야겠습니다.
한여름에는 방에 물이 흥건히 고일 정도로 습濕하답니다.
나무를 베어내니까 해결되더랍니다.
절 옆귀퉁이로 올라가면,, 아니, 올라갈 것도 없습니다.
야트막히 50미터쯤 올라가면 앞이 확 트이죠.
첩첩이 가로막은 산줄기가 촥 내다 보입니다.
파도가 굽이굽이 밀려오는 느낌입니다.
몇 손가락에 드는 풍광이 아닐까.......
희한하게 그 자리에만 서면 밧데리가 나갑니다.
비경(秘景)이 틀림없습니다..
절 살림이 너무도 빈한해 보이니까 친구가,
'신도회 카페'를 한번 만들어줄까?
이 절에는 딱 두 사람이 삽니다. 비구 스님 한 분과 공양주 한 분.
혼자 살면서 뭔 공양주?
신도회 카페를 만든다면 주지가 반대할 겁니다.
법계사
이 절은 십 여년 전에 지어진 절입니다.
논산시 양촌면에 있습니다.
부모님 사시는 곳에서 멀지 않습니다.
이름이 법계사(法界寺)입니다.
제가 처음 질 때부터 자주 가서 공사하는 현장을 봤습니다.
대웅전 기둥으로 쓸 나무를 깎는데,
그렇게 굵은 아름드리 나무는 처음 봤습니다.
어른 두 아름 반 정도?
나무 건조시키는 데만 3년인가 걸렸습니다.
전면에 보십시요. 그런 기둥이 여덟 개나 됩니다.
크게 짓는구나만 했지,
설마 이렇게까지 큰 절이 지어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정말로 어마어마합니다.
우리나라 절 중에서 가장 큰 대웅전이 아닐까.
돈이 얼마가 들었을지 어림도 안됩니다.
당시의 내노라라는 목공 장인(匠人)은 다 모였죠.
100년 200년 후에는 이 절에서 국보가 여러개 나올 거라는.......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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