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 16. 18:23ㆍ미술/ 러시아 회화 &
산등성이에 앉아서 서글픈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상념에 잠겨있는 이 아름다운 청년은 악마다.
팽팽하게 긴장된 근육은 출구 없는 열정의 꿈틀거림처럼 느껴진다. 그는 대답을 찾을 수 없는 의문 속에서
길을 잃고 이곳 카프카즈의 돌산 위에 잠시 머물러 있다. 미하일 브루벨(1856~1910)의 이 작품은 러시아
낭만주의 시인 레르몬토프의 서정시 「악마」(1839)에서 직접 영감을 받은 것이다. 레르몬토프의 악마는
신에 대한 반역으로 낙원에서 쫒겨났다. 추방된 천사를 악마로 만든 것은 바로 세계의 모순과 부조화다.
이 악마는 순수한 악을 표현하는 존재가 아니라 선과 악이 대립하는 구역질나는 현실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영웅적인 반항이다. 그는 지상에서도 천상에서도 위안을 찾지 못하는 데카당이다. 세상과 불화
하는 자, '악마'는 브루벨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느 키워드로서 그의 스타일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세기말의 암울한 감수성으로 브루벨은 빛을 어둠으로 바꾼다. 이것은 보랏빛 시간이다. 브루벨의 다른 작품
「 저녁으로」「세이렌」「판」「백조공주」등에도 이 보랏빛 시간이 표현되어 있다. 레르몬토프의 시구
처럼 '낮도, 밤도, 황혼도, 여명도 아닌' 시간이다. 그것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우주의 가장 깊은 곳에 있
는 휴지부 같은 시간이다. 모드 것이 혼돈에 빠져 있으며,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시간이다.
The Swan Princess (1900) 미하일 브루벨(Mikhail Vrubel, МИХАИЛ ВРУБЕЛ)
브루벨이 무대 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데에는 부인 '나제즈다 자벨라'와의 만남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1896년 그는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한 오페라에서 가수 나제즈다 자벨라의 노래를 듣게 된다. 그녀의 목
소리에 반한 브루벨이 무대 뒤로 찾아갔고 반년 후에 둘은 결혼했다. 자벨라는 특히 림스키코르사코프의
노래를 잘 불렀다. 이 작품「백조 공주」는 바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오페라에서 백조 공주로 분한 아내
자벨라의 모습이다.
Pan. (1899) 미하일 브루벨 (Mikhail Vrubel).
넓적하고 순박한 얼굴을 하고 있다. 달이 낮게 뜬 초저녁 판은 피리를 들고 앉아 있다. 유리알같이 파란 눈은
마치 짐승의 그것처럼 투명하고 텅 비어 있다. 거친 손을 보면 금방이라도 그가 나무 등걸로 변해버릴 것만
같다. 판은 자연력의 상징이다. 그는 사람이면서 짐승이고, 동물이면서 식물이다. '판'과 '백조 공주'는 모두
반인반수로 자연과의 조화 속에 살고 있다. 카오스와 코스모스가 공존하는 보랏빛 시간에 그들은 기꺼이 자
연으로 돌아간다. 이는 러시아의 전래 동화와 민중 서사시에 담겨 있는 범신론적 세계관을 표현하고 있다.
Bogatyr 미하일 브루벨 (Mikhail Vrubel)....보가티르는 러시아 고유의 전사.
여섯 날개의 세라핌 (1904) 미하일 브루벨 (Mikhail Vrubel). 러시아 미술관
말년에 그를 사로잡고 있엇던 것은 「예언자」시리즈였다. 이는 푸쉬킨의 동명 詩에서 영감을 얻는 것이다.
「여섯 날개의 세라핌」은 죽음의 천사 아즈라엘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푸쉬킨의 시 속에서 세라핌은
예술가에게 비극적인 의무를 부여하며, 예술가를 새로운 예언자로 이끈다. 낫을 들고 당당하고 위엄있는 죽
음의 천사 아즈라엘은 악마의 새로운 안티테제다. 불의한 세계, 혁명을 향해서 한 걸음 다가가는 위태로운
시대에 예술가는 예언자가 되어야 한다는 순교자적 사명을 노래하고 있다.
브루벨이 러시아의 문학과 미술에 끼친 영향은 실로 크다. 러시아 상징주의 문학이 등장하기 20년 전에 이미
그의 창작의 완성기를 맞았다. 미술이 문학을 앞서간 드문 경우였다.
- 이진숙, 러시아 미술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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