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 16. 00:00ㆍ미술/ 러시아 회화 &
수리코프가 그린 역사화는 다시금 역사적인 위기의 순간에 보여준
러시아인의 불굴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그를 가장 위대한 러시아 역사화가로 기억한다.
그가 사랑했던 도시 모스크바는 미술학교를 그에게 헌사한다.
모스크바의 수리코프 미술대학은 상트페테르부르그의 레핀 미술대학과 더불어
유능한 미술 인재들을 배출하고 있다.
Morning of Streltzi's execution/Size of this preview: 800 × 463 pixels
예배나 수도승들의 주거가 아니라 오로지 신에게 봉헌하기 위해서 지어진 바실리카 성당은
건축 후에 그 아름다움에 반해 황제가 이보다 더 좋은 건물을 지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
건축가의 눈을 멀게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이러한 잔인한 전설과 함께 태어난 이 아름다운 성당은 처형대를 앞에 두고 있어서
광장이 피로 물드는 것을 수없이 지켜봐야 하는 운명이었다.
이가 부딫칠 정도로 덜덜 떨리는 차가운 아침이다.
잠시 후면 총기병들의 교수형이 집행된다.
이들은 표트르 대제의 군 개혁에 반기를 들고 폭동을 일으켰다.
반란은 초기에 진압되었고 황제는 본보기를 보여주려고 가차 없이 처형을 집행했다.
첫번째 군인은 제복이 벗겨진 채 셔츠 차림으로 끌려가고 있다.
옆에 절망적으로 고개를 떨군 군인은 초를 떨어뜨릴세라 움켜쥐고 있다.
화면 가운데 검은 수염의 사나이는 우울한 표정으로 자기 번민에 빠져있다.
오직 한 명, 붉은 모자를 쓴 총기병만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드러내며,
화면 오른쪽에 말을 타고 있는 표트르 대제를 노려보고 있다.
젊은 황제는 그 퉁방울 눈으로 맞받아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일개 총기병과 황제가 벌이는 기 싸움이 아니다.
러시아가 나아갈 방향이라는 문제를 놓고 개혁 황제와 민중들이 벌이는 한 판 승부인 것이다.
황제 아래편에 보면 외국에서 온 사신이
황제의 개혁에 반대하는 러시아인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총기병들 사이의 노인과 아이들, 울부짖는 여인들은 황제에게 너그러움을 기대하고 있다.
노란 옷의 여인은 통절한 몸짓을 하고 있는데, 이 의상은 러시아 전통 의상이다.
이는 총기병들의 미적·도덕적 가치를 대변하는 것이다.
표트르 대제의 개혁이 제아무리 훌륭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민중의 동의가 없는 위로부터의 개혁이었고,
그런 급진성이 낳은 비극이 바로 총기병의 처형이라는「구도」가 눈에 들어온다.
노인은 고개를 숙이고 있고, 빨간 두건을 쓰고 있는 여자아이는
'왜 위대한 차르가 내 사랑하는 아버지를 해치려는 것일까?'
어찌할 것인가? 여명은 밝아왔고 이제 촛불은 꺼져야먄 하는데,
시대의 흐름에 뒤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바로 여명이 밝아오는데도 촛불에 의지하고 있는 총기병들이다.
역사는 냉정한 것이라 표트르 대제가 몇 가지 오류를 범했다 하더라도 도도하게 개혁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러나 수리코프는 이 판단하기 어려운 역사적 문제에 대해 신중하다.
비록 역사에서 패배자로 기록되었다 하더라도 그 근간은 민중이었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민중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믿음, 그리고 그 내면에 깃들어 있는 불굴의 저항정신'이
그가 진정 그리고자 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림의 촛점은 처형장면이나 총기병들의 패배가 아니라,
역사를 이끈 사람과 잣니의 이념을 위해 죽어간 인간이 벌이는 팽팽한 긴장의 순간에 맞춰져 있다.
이 작품이 처음 전시되던 순간도 극적인 날이다.
1881년 3월 1일. 이동파 전시회에 출품되었는데, 이 날 황제 알렉산드르 2세가 암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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