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틴 A. 세로프

2011. 4. 16. 13:03미술/ 러시아 회화 &

 

 

작성자: 이진숙     2004-06-01 16:24:46                                           

 

 

누군가 당신의 초상화를 그리려고 한다. 그 작가가 당신을 어떻게 그리면 잘 그렸다고 느낄 수 있을까?

사진처럼 똑 같이 그리면?

아니다. 내가 나라고 느낄 수 있는 무언가, 즉 나의 영혼이 담기길 바랄 것이다.

백 년도 더 지난  미지의 인물의 초상화가 마음을 끄는 것은 거기에 그의 영혼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영혼을 그리는 것은 초상화가가 가지고 있는 특권이다.

작가의 날카로운 시선이 그 사람의 본질에 육박해 들어올수록 감동의 강도는 커지게 마련이다.

많은 서양의 대가들이 동시에 훌륭한 초상화가였다.

그들이 그린 그림들은 동시대 인물들의 영혼에 대한 충실한 보고서이다.

 

여기에 섬세하면서도 가차없이 영혼의 결을 보여주는 하나의 시선이 있다.

바로 러시아 작가 발렌틴 A. 세로프(1865-1911)의 눈이다.

만약 세로프에게 당신의 초상화를 부탁한다면 당신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

당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당신의 이면을 그가 그릴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세로프가 활동하던 19세기말은 두 세대를 거친 이동파의 활동이 완숙기를 넘어서고 있는 시점이어서

새로운 창작 방법과 새로운 예술관이 요구되던 시점이었다.

세기 전환기에 모든 작가들을 몸서리치게 만드는 전통적인 방식의 붕괴와

새로운 표현 형식의 발견의 과정을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진정한 예술가다운 대범함으로 그는 이 과정을 밟아나갔다.

모든 초상 인물이 저마다 다르듯이 그 인물들을 표현하는 방법들도 저마다 달랐다.

여기에 그의 위대함이 있는 것이다.

 

 

 

 

 

복숭아와 소녀, 베라 마몬토바의 초상화 . 1887. Oil on canvas 91 X 85

 

 

이 작품은 22살의 세로프를 스타로 만든 출세작이자 미래의 대가를 예감하게 하기에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사바 마몬토프의 딸인 베라 마몬토바의 초상화이다.

예술 후원가인 사바 마몬토프의 여름 별장인 아브람체보에는 지금도 소녀가 앉아 있는 식탁과 의자, 벽의 장식이

하나의 흐트러짐없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숲으로 창이 난 이 하얀 방에는 금방이라도 소녀가 뛰어들어와 자리에 앉아 호흡을 고를 것 같다.

시간이 영원히 정지되고 하나의 장면의 완성을 위한 동작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 같다.

소녀는 늙지 않고 영원히 젊을 것이고 복숭아의 농익은 냄새는 그녀의 달착지근한 땀냄새와 어우러져서

영원한 청춘의 향기가 될 것이다.

 

세로프는 모든 테크닉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진정한 화가였다.

그는 인물의 개성을 깊이 있게 파악하고 이 개성을 관객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영혼을 꿰뚫어보는 세로프는 얼굴 뒤에 가려진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인물의 사회적인 지위에 가려진 내적인 유약함, 소박함 속의 위대함 등 그의 눈은 인물의 진정한 모습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저렇게 자신의 영혼이 까발겨진 초상화를 보고도 주문자들이 만족하였다는 이야기는 차라리 의아스러울 정도이다.

 

 

 

 

 

이반 모로조프의 초상화. 1910. Tempera on cardboard. 63.5 X 77

 


이반 마로조프는 모스크바의 거상이자 유명한 프랑스 미술 콜렉터이다.

그는 프랑스의 인상주의 작품과 세잔, 피카소 마티스의 작품을 수집하였다.

그의 뒤로 보이는 것은 그가 즐겨 수집한 세잔풍의 정물화이며 인물도 마티스 풍으로 검은 유곽선으로 과감히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세로프에게 마로조프는 그리 예술적인 안목이 있는 인물로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한마리 거대한 곰 같은 포즈의 마로조프에게서는 예술애호가의 섬세함보다는 탐욕스러운 상인, 수집광의 면모가 더 돋보인다. 

 

 


 
 

사샤와 유라의 초상화. 1899. Oil on canvas 


자신의 두 아들 사샤와 유라의 초상화.

자신이 그리는 인물에 대해 엄격하기 짝이 없는 세로프이지만 아이들을 그릴 때만은 관대했다.

세로프는 이런 아이들의 때 묻지 않은 마음을 기쁘게 여기며 그리곤 했다.

설레임과 불안한 마음으로 흐린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는 두 어린 아이를 역동적인 구도와 즉흥적인 붓질로 표현하고 있다. 

아이는 문득 뒤를 돌아본다. 

너는 내게 무엇을 묻고 싶은 거니?  

모든 것을 다 해 줄 수 있지만 또한 동시에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아버지의 애잔한 시선이 여기에 있다. 
 

 

 


 

마리아 에르몰로바의 초상화. 1905. Oil on canvas 224 X 120

 


마리아 예르몰로바는 당시에 모두의 존경을 받는 국민배우였다. 

세로프는 위를 향해  쳐다보는 시선으로 그리고 기념비처럼 당당한 포즈로 이 노여배우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있다.

디테일을 과감히 생략하여서 여성적인 느낌을 지웠으며,

회색과 검은 색의 거의 모노톤에 가까운 색조는 자신의 삶에 자부심을 느끼는 예인의 내적인 엄격함을 보여준다. 
 

 

 


 

안나 파블로바의 초상화, 1909. Pastel on canvas.

 


세로프의 아버지는 유명한 작곡가였으니, 예술은 태어날 때부터 그의 피 속을 흐르고 있었다. 

세로프는 작곡가인 아버지의 오페라 “유디트”의 오페라의 무대 장치(1907)를 하기도 하였다.

또한 파리에서 있었던 러시아시즌에 상연될 림스키-콜사코프의 발레 '세헤라자드’의 무대 장치(1911)도. 

놀라운 재능으로 그는 완벽한 무대 장식을 하였다.

이 러시아 시즌을 위한 일련의 명작 중의 하나가 1909년의 세계적인 발레리나 안나 파블로바의 춤추는 모습이다.

무대 위의 조명을 받은 안나 파블로바는 아무런 존재감이 없는 가볍고 투명한 영혼처럼 표현되어 있다.

오직 신비롭고 신비로운 푸른 빛만이 그녀를 감싸고 있을 뿐이다.  
 

 

 


 

이다 루빈쉬타인의 초상화 1910. Tempera and charcoal on canvas.

 

 

이다 루타인은 현대무용가이다.

매혹적인 댄서이자 자유분방한 사생활로 잘 알려진 그녀를 세로프는 아주 파격적인 방식으로

당시에 미술세계파를 중심으로 많은 작업이 이루어졌던 일러스트레이션처럼 그려냈다. 

고전적인 여성미를 잃어버린 각이 진 어깨, 뱀같은 느낌의 스카프, 손가락의 무거운 반지등은

 ‘팜므 파탈’로서의 이다 루빈쉬타인의 이미지를 완성하고 있다.

그녀는 고혹적이지만 위험하다.

세로프의 이 작품을 보고 스승이었던 레핀은 몹시 분개했다고 한다.

그러나 세로프는 이미 스승인 레핀이 알 수 없는  다른 세계로 가고 있었다. 

 

 


 
 

막심 고리키의 초상화  1905. Oil on canvas.

 


이미 몇 편의 장편으로 새로운 문학을 이끌어가던 문단의 기린아의 고리키의 모습이다.

1907년의 대표작 “어머니”는 그의 머리 속에서 윤곽이 잡혀가고 있었을 것이다.

추측컨대 세로프가 고리키라는 인물에 대해서 심도있는 이해를 할 수는 없었을 것 같다.

그러나 세로프는  고리키가 지금까지 숱하게 그린 귀족들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유형의 인물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

거칠면서도 역동적인 실루엣, 드라마틱한 색채의 대조, 맹세를 하는 듯한 확신에 찬 커다란 손.

그는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금욕적이면서도 열정적인 사람으로 표현이 되고 있다.  

 

 


 
 

자화상 1885.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그러면 세로프는 자신은 어떻게 그렸을까?

이 거칠은 초상화의 주인공이 20살 청년이라고 믿어지기 어려울 정도로 깊은 우울이 담겨져 있다.

그는 좀처럼 어둠에서 나오려 하지 않은 채, 그 속에서 세상 밖을 응시하고 있다.

그의 첫 출발은 시대가 끝나는 지점이었다.

언제나 끝은 분명히 보이지만 시작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 법이다.

초상화를 그리면서도 잔재주꾼으로 전락하지 않고 진정한 예술가로 살아 남기 위해서

그는 하나 하나의 작품에 목숨을 걸었다.

모두가 그의 초상화에 열광하였고 밀려드는 초상화의 주문에 그는 시간이 모자를 지경이어서

진정 그가 하고 싶었던 새로운 것들을 뒤로 미루어야만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도 하였다.

그의 많은 초상화 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만족했지만 정작 세로프는 끊임없이 자신에 대해서 불만족스러웠다.

만족을 모르는 이 예술가는 새로운  예술을 갈구하였다.

그는 46세의 아까운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하나 하나의 초상화들은 나에게는 지독한 병이다” 라는 말처럼

그는 자신의 생명을 소진 시키면서 인물을 대면하고 그려나갔다.

그것은 어쩌면 어마 어마한 기 싸움의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초상화 속의 인물들이 ‘드러내 보이고 싶어하는 모습’과 세로프에게 ‘보이는 모습’ 사이의 투쟁말이다.

주체가 누구이든 진실한 모습을 본다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인지도 모른다. 

세로프처럼 타인의 영혼을 보는 경우이든 자신이 자신의 진실한 본 모습을 보는 경우이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