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 20. 19:26ㆍ이런 저런 내 얘기들/내 얘기.. 셋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저는 이 말을 김남희의 국토종단 기행문에서 처음 들었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시「선암사」를 읽어보질 않았단 얘기죠.
그런데 왜 하필 선암사 변소를 찾아가서 울으라고 했을까,가 무척 궁금했습니다.
제가 선암사 해우소에 가서 오줌까지 싸본 사람입니다.
아무리 기억을 되돌려봐도 울만한 '건덕지'가 없었더란 말입니다.
도대체 왜 거기에 가서 울라는 것일까?
오늘 그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정호승님이 쓴 산문 모음집『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에 나오더군요.
여름날, 전남 승주읍에 있는 선암사에 간 적이 있습니다.
나는 느린 걸음으로 부처님의 화원 같은 경내를 이곳저곳 돌아다녔습니다.
공양간으로 선뜻 들어섰다가 "여긴 들어오면 안됩니다" 하는 말에 뒤로 물러나, 공양간에 딸린 방을 몰래 엿보기도 했습니다.
널찍한 그 방엔 마침 한 젊은 스님이 스무여 개의 상 위에 정성스레 수저를 놓고 있었는데,
숟가락과 젓가락을 얼마나 열심히 반듯하게 몇 번이나 고쳐놓는지 그 모습에 숙연해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내 느린 발걸음은 '해우소'라는 표지판을 따라가다가 한 건물 앞에 딱 멈춰 섰습니다.
그곳은 고어체 한글로 '뒷간'이라고 쓰인 목조건물 앞이었습니다.
그런데 선암사 해우소 건물은 다른 절간의 해우소 건물과는 달리 우아하고 고풍스런 기개가 엿보였습니다.
얼핏 '뒷간'이라는 글씨만 보이지 않는다면 부처님을 모셔놓은 법당이라고 해도 뭐라 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저는 마침 소변이 보고 싶어 해우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정오의 맑은 햇살이 엷게 해우소 안으로 비추고 있었습니다.
마루바닥이 삐걱거리는데다 아래가 너무 깊어, 혹시 발이라도 헛디뎌 떨어지기라도 할까봐 조심조심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때 시선이 닿은 곳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쓰인 낡은 종잇장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대소변을 몸 밖으로 버리듯 번뇌와 망상도 미련 없이 버리세요.' 저는 그 글을 읽는 순간,
분뇨 특유의 암모니아 냄새가 은은히 나는 해우소 안이 마치 내 늙은 어머니의 품안처럼 느껴졌습니다.
아니, 부처님 품속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래, 소변을 몸 밖으로 버리듯 지금까지 내가 지녀온 온갖 욕심을 다 버리는 거야.
내 욕심에서 모든 고통이 시작되는 거야. 욕심은 이런 소변에 불과한 거야.'
저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소변을 보고 해우소를 나왔습니다.
그러나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해우소 앞에 한참 동안 쭈구리고 앉아 마음 속으로 울었습니다.
그동안 제 가슴속에 웅크리고만 있던 마음껏 울지도 못하고 남의 눈치만 보던 모든 울음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왔습니다.
그 울음은 20대 때 동해의 푸른 바다를 보고 울었던 그런 낭만적인 울음이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돈 벌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말 못할 고통에서 오는 울음이었습니다.
남을 사랑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울음. 내 사랑이 전해지지 못하고 증오로 변질되어 되돌아오는 고통에서 오는 울음이었습니다.
저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습니다.
그러자 가슴이 시원해졌습니다.
몸 속의 소변뿐만 아니라 마음 속의 소변까지도 몸 밖으로 시원하게 빠져나간 듯 마음이 가뿐해졌습니다.
문득 생전에 딱 두 번 주례를 선 성철 스님의 주례사가 떠올랐습니다.
"서로 덕을 보자는 마음으로 결혼하고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다툼이 일어납니다.
손해 볼 마음이 눈꼽만큼도 없이, 아내는 남편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덕 보겠다고 하는 마음이 다툼의 원인이 됩니다.
베풀어주겠다는 마음으로 결혼하면 길가는 사람 아무하고나 결혼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저는 성철 스님의 이 말씀을 몇 번이나 마음 속으로 곱씹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사랑으로 만나 사는 고통이 저 또한 살아갈수록 점점 커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앞으로 눈물이 나면 선암사 해우소에 와서 울어야지.'
저는 그 날 집으로 돌아와 선암사 해우소를 생각하면서「선암사」라는 제목의 시를 지었습니다.
선암사
정호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믈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
.
정호승 시인이 당시에 아내와 이혼을 염두에 둘만큼 갈등이 컸었던 듯합니다.
아내에 대한 원망이 많았던 게지요.
'대소변을 몸 밖으로 버리듯 번뇌와 망상도 미련 없이 버리세요.'라는 글귀를 보는 순간에 성철 스님의 말씀을
떠올렸던가 봅니다.
요즘 마누라가 미워죽겠는데, 저도 가서 한번 울고와야겠습니다..... 날풀리면.
2011. 02. 21.
정호승 시인이 이혼을 하셨답니다. 오늘 알았습니다.
제 지레 짐작인가 몰라도 아마 이 시를 쓰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헤어졌을 것 같군요.
저 글귀를 보고 퍼질러 앉아 엉엉 울 정도였으면 극복하기가 어려웠을 겝니다.
아무리 자기 최면을 걸어본다 해도 한계가 있었겠지요.
선암사 가서 실컷 울었던 이유는 그것이었군요.
.
.
아내는 과거에 내가 했던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를 잊어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툭하면 "그때 당신이...., 그때 당신이....." 하고 말을 꺼냅니다.
그러면 저는 "또 그 소리!" 하고 눈쌀을 찌푸립니다.
어제를 힘들어하면 오늘도 힘이 듭니다.
과거를 미워하면 현재도 미워집니다.
과거 속에 가두어놓고 바라보는 미운 사람은 오늘 현재 속에서도 미워집니다.
그래서 과거의 감옥에 갇혀 사랑할 수 없게 됩니다.
.
.
제가 같은 남자라고 해서 정호승님 편을 드는게 아니라 실제로 저런 추접한 여자들 많습니다.
남자들은 젊었을때 다들 실수 한두 번씩 하기 마련입니다.
여자들이 저런 소리를 하는 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상쇄해보려고 하는 억지죠.
예, 상쇄는 됩니다. 남자가 댓거리를 안하니까요.
아픈 상처 다시 들춰내서 추궁하는 거...... 그거 맛들이면 절대로 안됩니다. 남자들이 젤 싫어합니다.
집행유예나 선고유예 하고도 다르죠. 사안이 별개인 겁니다.
이거, 아주 못 된 버릇이예요.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런 추접지근한 짓을 잘 안합니다.
의견 다툼이 있을 때마다 저런 식으로 나온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잖습니까?
부부간에 대화가 끊어질 겁니다.... 말 수도 점점 사라질테구요....
지금 이 정호승 시인의 경우처럼 회복불능으로 갑니다.
정호승 시인, 재혼하셨을까요?
또 울고불고 했단 얘기가 없는 걸 보면 혼자 사시는 것 같긴 한데요.
산산조각
정호승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창비, 200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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