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년

2011. 2. 19. 19:44책 · 펌글 · 자료/문학

 

 

 

 

 

 『꽃들의 웃음판』- 한시와 시조 등를 계절별로 엮은 책입니다.

『한시미학산책』을 쓴 "그" 정민 교수가 냈습니다.

한시는 한번쯤 봤던 것들이라서 그저 그랬는데, 

책속에 들어 있는 그림이 기가막히게 좋은 거예요.

그것도 삽화로 그린게 아니고 온전한 그림입니다.

화가분 이름은 김점선이고, 머릿말도 두 분이 각기 따로 쓰셨더군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공저인 거죠.

김점선이라는 화가를 저는 몰랐습니다.

알고보니 유명한 분이셨어요.

이게 웬 횡재래? 하려는 참인데,

아, 안타깝게도 두 해 전에 돌아가셨답니다.

 

 

 


 

 

 

 

 

  

 

 

무서운 년


마흔을 훌쩍 넘겼던 해의 어느 날, 부모님이 우리집에 왔다.

구석방에서 남편을 앉혀놓고 내 이야기를 했다.
나는 관심도 없었다. 부모님이 가고 난 후 남편이 내게 말했다.
"자기는 무서운 년이래"


내가 대학을 졸업하자 아버지는 내게 한 푼의 돈도 더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대학원에 가야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더없이 완강했다.

아무리 그런다고 내가 포기하겠나. 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동생들을 다 모아놓고 연설을 했다.
"너희들은 오늘부터 다 학교에서 자퇴해라. 너희들의 월사금은 다 내가 쓰겠다.
너희들 중 한 놈도 밤새워 공부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우수한 놈도 없고, 학문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놈도 없다.
미래에 대한 야망도 없는 너희들은 어정쩡한 놈들이다.

그러니 너희가 돈을 쓰는 것은 국가와 민족의 낭비다.
너희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교통표지판과 날아오는 고지서만 읽을 줄 알면 충분하다.
너희들은 이미 한글을 깨쳤으니 그만 공부해라.

그렇지만 나는 너무나 우수하다.
지금 공부를 중단한다는 것은 민족 자원의 훼손이다. 내 민족의 장래에 먹구름이 끼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이 더 이상 돈을 안 쓰는 것은 애국 애족하는 길이다."

동생들은 입을 쩍 벌리고 멍하니 나를 쳐다봤다.

그 광경을 부모님이 보고 말았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않고 내게 등록금을 줬다.


그날 남편은 부모님으로부터 그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도 부모님이 그렇게 선선히 등록금을 준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내가 동생들에게 한 일장 연설을 들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부모님은 남편에게 "재는 무서운 년이니까 너도 조심해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부모님은 남편이 나처럼 무서운 년과 10년이 넘도록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존경과 연민을 표했다.
백수였음에도 남편은 평생 내 부모님으로부터 무한한 동정과 연민을 받았다.
오로지 나와 살아준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김점선 수필)

 

 

 


 

 

 

1946년~2009년3월22일 


김점선  이화여대에서 공부하였으며 1972년 홍익대 대학원에 입학하여 서양화를 전공했다.

그해 여름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린 앙데팡당 전에서 제8회 파리 비엔날레 출품 후보로 선정되어 화단에 데뷔했다.

1983년 이후 20여 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50여 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1987~1988년 2년 연속 평론 가협회가 선정한 미술 부문 올해의 최우수 예술가에 선정되었다.

산문집 [나, 김점선] [10cm 예술1. 2] [나는 성인용이야] 등이 있으며,

박완서, 황석영, 최인호, 정민 등의 책에 그의 그림을 싣기도 했으며, 최근 신간으로 [바보들은 이렇게 묻는다]이 있다.

 

 

 

 

 

 

 

그림은 내 영혼을 만나기 위한 순례 

 

                                             김점선

 


나는 말 위에서 죽었다.
내가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죽어가는 나를 태운 채 말은 달리고 있었다.
그때 말과 나는 구별이 되지 않았다.
말이 내 자신인지 내가 말인지……

또 다시 사람으로 태어났다.
화가가 되었다.
말을 그린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 자신의 의지로 살아야 하는 때가 되었을 때,
나는 죽음 밖에는 떠오르는 말이 없는,
낙오자가 되어 있었다.
머릿속에는 잡념과 잡지식 만이
썩은 지푸라기처럼 쑤셔 박혀 있는
아웃사이더가 되어 있었다.

학교 다니는 일 외에는,
아무 준비가 안된 미숙아인 채로 졸업을 당했다.
나는 그런 자신을 숨기기 위해서
공부를 더 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외쳐댔다.
그리고 대학원에 입학했다.
아버지가 한숨을 쉬면서 등록금을 줬다.
그렇게 큰소리 치고 들어간 대학원에서
한 학기만에 제적당했다.
맘에 안 드는 과목을 수강 거부했기 때문이다.
대학원에서 나를 가르치던 미국인 선생님이
나의 제적을 안타까와하면서
동료와 일할 기회를 주었다.
통역 일을 했다. 행복하지 않았다.
돈을 많이 받았지만 모으지 않았다.
다시 죽음과 마주섰다.
나의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 때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림!
그림을 시작했다.
하루종일 그렸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림 그리는 일뿐인 것처럼 그렇게 살았다.

행복했다.
제대로 된 길을 찾은 기쁨을 느꼈다.
다시 회화 전공으로 대학원에 입학했다.
그때 내 나이는 27살이고 지금부터 31년 전 일이다.
아버지는 나를 금치산자 취급을 했다.

누가 봐도 그렇게 생각할 만큼,
나는 헝클어진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럴 때 엄마가 나섰다.
무조건 나를 지원했다.
열심히 그림 그리고 학교 다니는데
그것만으로는 예술가가 안 된다고 했다.
결혼을 해서 인생의 쓴맛을 이겨내고 나서야
진정한 예술가가 된다고 했다.
맞는 소리 같아서 결혼했다.
집 나온 청년과 이름도 나이도 묻지 않은 채 결혼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나의 행동에 경악했다.
아이도 생겼다.
매우 가난했다.

우리가 굶는다고 해도 불쌍히 여기지 않았다.
내가 일부러 굶는 줄 알았다. 재미나 멋으로.
그럴 때 사는 길은 극도로 아끼는 것이다.
어쩌다 5만원 주고 그림 한 점을 팔면
정부미만 사고 반찬 사는 데는 돈을 한푼도 안 썼다.

동네에서 얻은 된장에
산에서 캐온 풀을 넣고 끓여서 먹었다.
그림 그릴 캔버스도 돈을 아끼려고
광목을 사다가 합판에 붙여서 그렸다.
그런 그림을 모아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림이 꽤 팔렸다.
일년 먹을 쌀을 사고
물감과 광목을 살만할 돈이 생겼다.

작업실이 따로 있을 리가 없다.
지붕에서 물이 새는 좁은 셋방에서 살았다.
그 시절에 그린 그림은 제일 큰 게 30호를 넘지 않는다.
100호 짜리 캔버스에 그림 그리는 게 꿈이었다.
비만 오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고인 물을 버리느라고 밤을 새야 했다,
그럴 때 멍히 물을 바라보느니
그림 그리면서 밤을 샜다.

내가 살던 마을의 산과 들에 대해서 환하다.
어디에 무슨 나물이 있는지
언제 어떤 먹을 만한 풀이 나는지를.
그 마을에서 산을 식량창고로 생각하는 사람은 나 뿐이었다
그림 그리다가도 하루에 한시간 쯤 은
산을 헤메면서 반찬감을 구해야 했다.
그렇게 살면서도 해마다 거르지 않고 개인전을 열었다.
그리고 꼭 일년을 버틸 만큼씩의 돈을 벌었다.
내 행동은 변함이 없는데 차츰 그림이 더 많이 팔리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100호 캔버스를 100개나 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해마다 전시회를 연다.
전시회는 내가 먹고살 돈을 버는 길이면서
또한 그림을 보여주는 기회이다.
그림은 경건한 예배다.
자신의 영혼을 만나기 위한 순례다.
내 영혼은 하늘이 내게 내린 숙제다.
평생 풀어나가야 할 대상이다.
내 영혼 속에는 가깝게는
나와 나의 부모의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
멀리는 구석기시대의 내 조상의 경험까지도
흔적으로 남아있다.
나는 내 영혼의 시각화에 몰두한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 그린다.


 

 

 




                          2년인가 암투병하시다가 2009년 3월 22일에 별세하셨답니다.

 

 

 

 

 

 

 


김점선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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