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500병을 쳐죽이고 ....

2011. 2. 10. 21:00책 · 펌글 · 자료/문학

 

 

 

 

 

 

나이가 들면서 점점 그런 몰입의 순간이 줄어든다. 노래가 차 오르는 날도 별로 자주 오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게 내 삶인 것을……. 이런 생각을 하다 문득 시인 박정만을 떠올렸다.

그가 말년에 소주 500병을 '쳐죽이고' 불과 한 스무 날 동안 300여편의 시를 쏟아내던 때를.

 

"몇 달 동안 밥은 한 끼도 안 먹고 끼니때마다 소주 두 병씩 마시던 때.....

앉아서 쓰고 누워서 쓰고 서서 쓰고 자다가 깨어서 쓰고......

시가 쏟아져 나오더라니까요......"

 

시 한 편을 쓰면 한 40번쯤 퇴고를 거쳐 제 입성에 맞아야 시를 세상에 내놓는다는 시인.

그래서 시를 쓴 지 20년 동안 고작 시집 두 권을 낸 시인이 여섯 달 동안 시집 여섯 권을 내고는 이듬해,

88올림픽 폐막식이 있던 날 낮에 혼자 봉천동 집 화장실 변기에 앉아 훌쩍 다른 세상으로 떠나버렸다. 

접신의 경지에서 썼다는 그의 말년의 시들을 읽으며 마음이 아득해 오는 걸 느낀다.

 

<백창우>

 

 

 

 

 

난 필요한 양만 갖고 싶어

그것이 물이건 소주건 빨래줄이건

삼삼한 여자건

 

     - 박정만 <필요한 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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