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 1. 12:00ㆍ책 · 펌글 · 자료/인문 · 철학 · 과학
일생 (一生)
팔십년 전에는 저 사람이 나였는데 (八十年前渠是我)
팔십년 뒤에는 내가 저 사람이구나 (八十年後我是渠)
- 서산집 -
고령이 되니 제자들이 어느 날 영정을 그려왔는데
거의 자신의 모습을 닮았던 것 같다.
영정을 가만히 보시다가 문득 쓰신 내용인데
영정에 쓰는 글로서는 더 이상 생각할 수 없는 명문이다.
출처. 무비스님
오늘 메일로 받은 글귀입니다.
왜 스님들은 꼭 저딴식으로 말을 한다니?
삐끼질 하시는 것도 아니고.
에이, 공부나 하십시다.
휴정(休靜)의 선시 세계
김형중
1. 휴정의 선시는 조선 시문학의 백미
한시 대가들의 공통점은 유·불·선 삼교에 통달한 사람이요,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이었다.
그리고 선시의 특성인 상징과 함축, 뜻이 말 밖에 있는 언외지미(言外之味) 그리고 묘오(妙悟)의 시를 한결같이 구사하였다.
왕유의 그림 같은 시인의 시화일치론과 소동파의 시 속의 깊은 깨달음을 담는 철리시는
선시론이라 할 수 있는 시선일여(詩禪一如)와 선가에서 추구하는 자연의 색성오도론(色聲悟道論)을 추구하였다.
서산 대사 휴정은 삼교에 통달한 사상가로서, 십 세에 시를 지은 천부적인 시인으로서 한국 선시를 완성한 선시의 대가이다.
그의 시집 《청허당집》에는 당송시대 대가들의 시를 수용, 발전시켜 당시 시호들의 시를 능가하는 훌륭한 시를 창작하였다.
당시 문병(文柄)을 쥔 유성룡·허균을 비롯한 대가들이 한결같이 그의 시를 찬양하였다.
홍만종(洪滿宗, 1643∼1725)은 조선 한시의 비평에 있어 가장 엄정하고 공평한 시평을 한 《소화시평》에서
휴정의 〈상추(賞秋, 가을의 노래)〉란 시를 소개하면서 “뜻이 오묘하고 호젓한 정취[閑趣]를 나타내고 있다.
스님이 재주가 많다는 말이 어찌 참말이 아니겠는가?” 하였다.
조선 한시의 통시적이며 총체적인 시선집 겸 비평서라 할 수 있는 그의 저술 속에서 분명하게 휴정 선시의 문학성과
한시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밝히고 있다.
휴정의 〈상추〉를 감상해 보자.
遠近秋光一樣奇 가을 풍광 멀리서나 가까이서나 하나같이 기이하니
閑行長嘯夕陽時 석양에 휘파람 불며 한가롭게 걷네.
滿山紅綠皆精彩 온 산에 붉고 푸른 아름다운 빛깔과
流水啼禽亦說詩 흐르는 물, 새들의 울음소리 그대로 시를 설하고 있네.
― 《청허당집》 권1, 〈상추〉
7언절구인 이 시는 ‘원(遠)과 근(根)’, ‘일(一)과 다(多)’, ‘만산(滿山)과 유수(流水)’, ‘빛[光]과 소리[嘯]’가 대구를 이루고,
‘기(奇), 시(時), 시(詩)’의 운으로 정확히 압운(押韻)한 가을의 경치를 묘사한 시의 내용이나 시의 격률을 갖춘 형식에서 모두 훌륭하다.
이 선시는 전체적으로 소리와 색깔이 조화를 이루고 시의 품격인 한적(閑寂)을 나타내면서도
산수 자연 그대로가 선의 세계요, 시의 세계임을 읊은 선시론이라 할 수 있다.
소동파는 시냇물 소리[溪聲]와 산빛[山色]을 부처님의 설법이요, 진리의 법신(法身)이라 읊었는데,
서산 대사는 온 산의 곱게 물든 가을 단풍과 흐르는 물소리, 새 우는 소리가 시를 설하고 있다[說詩]고 읊었다.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조선이 소중화국이라 자처했고 모화(慕華)사상으로 존명의식(尊明意識)이 높았다.
당시 시대적 풍조가 민족의 주체성을 내세우기에는 언감생심이었다. 그러나 휴정에게는 민족에 대한 주체의식과 역사의식이 있었다.
현실에 대한 사회의식도 투철하였기 때문에 양종판사가 되어 산승으로 사회 현실에 참여하였고, 전란이 일어났을 때는 전투에 참전하였다.
〈탐밀봉(探密峯)〉과 〈등단군대(登檀君臺)〉의 두 시에는 그의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이 나타나 있다.
千山木落後 산마다 나뭇잎 떨어지니
四海月明時 온 세상 일시에 달이 밝네.
蒼蒼天一色 푸르고 푸른 하늘은 한 빛인데
安得辨華夷 어찌 중화(中華)니 오랑캐니 구분한단 말인가.
― 《청허당집》 권1, 〈탐밀봉〉
披雲登老石 구름을 헤치고 오래된 바위(檀君臺)에 올라
遙想古皇王 옛 요(堯)임금을 생각하네.
山形一翠色 산의 모습은 한결같이 푸른데
人事幾興亡 인간사 흥망이 얼마였던가.
― 《청허당집》 권1, 〈등단군대〉
〈탐밀봉〉의 시에서 휴정은 화이론(華夷論)을 읊고 있다. 불교는 평등사상이다. 중생도 부처도 차별이 없다.
중생즉불(衆生卽佛)이요, 천하동근(天下同根)이다. 일체중생이 개유불성(皆有佛性)이다.
그러나 성리학에서는 신분출신의 차별이 엄연하다. 적서(嫡庶), 남녀, 화이(華夷), 계층 간의 차별을 인정한다.
휴정은 이것을 부정했다.
《장자》에서 대붕(大鵬)이 높은 하늘에서 인간세상을 내려다 보면 모든 색깔이나 대소의 차이가 없이 ‘일색(一色)’이라 하였다.
진여(眞如)의 세계, 공(空)의 세계에서는 모두가 평등한 불이(不二)의 세계인 하나의 세계이다.
이 시는 ‘천산(千山)과 사해(四海)’, ‘화(華)와 이(夷)’ 그리고 ‘목락(木落)과 월명(月明)’이 대구(對句)를 이루고
‘시(時)와 이(夷)’가 압운자(押韻字)이다.
중심 시어는 월명(月明)과 일색(一色)이다. 달이 밝으면 하나의 빛이 되고 하나의 세계가 된다.
월명시(月明時)는 깨달음을 얻은 오도의 순간을 상징한다.
깨달음의 세계에서 보면 중화(中華)도 오랑캐도 없다. 양반도 상민도 차별이 없다.
달은 자성(自性), 진여(眞如), 깨달음을 상징한다.
휴정은 이 시에서 당시 사회가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나누어져서 그것이 곧 귀천과 온갖 차별을 낳고 있는 현실에 대한
비판의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다.
이 시는 자연 속에서 평등의 원리를 발견하고 그것에서 다시 현실적인 문제까지 연결시켜 낸 점에 있어서 그 특출함이 돋보인다.
여기에는 또한 주자학이 지배와 피지배, 중화(中華)와 사이(四夷)의 차별을 강화시키는 이념으로 이용되는 데 대한 도전의 의미도 들어 있다.
탐밀봉은 묘향산에 있는 산봉우리이다. 기구와 승구는 자연을 읊은 시구인데,
전구에서 180도로 전환하여 천하일색(天下一色), 만물동근(萬物同根)의 깊은 철리(哲理)를 내세워
결구에서 대단한 화이론을 빚어 낸 철리시이다.
중화사대주의에 빠져 있는 시대에 휴정은 화이평등론을 〈탐밀봉〉에서 주장하였다.
남인 실학파인 이익(李瀷), 정약용(丁若鏞) 및 북학파의 홍대용(洪大容), 박지원(朴趾源)과 그의 문하에 의해 중화의 개념 수정과 함께
화이관의 새로운 이념이 제시되기도 했다.
이익은 “중국은 대지 중의 한 조각 땅에 지나지 않는다.”(《성호사설(星湖僿說)》)고 하였고,
홍대용은 ‘천원지방설(天圓地方說)’을 주장했다.
청나라는 만주족이 세운 오랑캐 나라라고 반청(反淸)사상이 생겨난 후 이와 같은 화이론이 주장되었다.
휴정의 화이평등론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 혁명적인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휴정이야말로 조선시대 화이론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등단군대〉는 휴정이 묘향산 단군대에 올라 단군의 역사와 인간사의 흥망성쇠, 그리고 무상을 읊은 시이다.
《삼국유사》 〈고조선조〉에서 일연(一然)은 “태백산을 묘향산이라고 부른다.”고 해석해 놓았다.
묘향산이야말로 국조 단군성조가 신시(神市)를 세운 민족의 성지이다.
〈통결〉에서 “뉘라서 이백과 두보 후에 풍월[詩]과 친한 이가 없다고 했나,
천지에 지극한 공물(公物)인데 어찌 한두 사람이 차지하리오(誰言李杜後 風月無相親 天地至公物 豈私一二人).”라고 읊은
‘풍월공물론’은 홍세태(洪世泰, 1653∼1725)의 천기론과 일치한 사상이다.
휴정이 조선 후기 선시에 끼친 영향은 절대적이다. 그에 직제자를 비롯한 선사들의 시문집이 78종에 이른다.
그들은 휴정의 선시의 맥을 이어 선 수행에서 얻은 깨달음의 경지를 시 속에 담아낸 시승들이다.
2. 휴정의 선시문학 세계
휴정의 생애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난 업적과 그의 사상 등을 참작하며, 《청허당집》의 모든 시를 분석하면
내용에 따라 다음 네 가지로 휴정 선시의 유형을 분류할 수 있다.
시법선리시(示法禪理詩) :
선승으로서 그의 깨달음[悟道]의 세계와 대중을 위하여 진리의 세계를 드러내 보인 전형적인 선가시를 여기에 포함시켰다.
산거운수시(山居雲水詩) :
운수자연 속에서 노닐며 자연과의 합일의 경지에서 읊은 서정시나 산중에서 수도하는 산거생활을 읊은 시를 산거운수시라 이름을 붙였다.
교화수증시(敎化酬贈詩) :
제자를 교화하기 위하여 불교교리나 교훈적인 내용을 읊은 시나 사대부와 교류하면서 서로 주고받은 시,
다른 사람의 시의 운(韻)을 가져다가 읊은 차운시(次韻詩)도 포함시켰다.
배불숭유정책으로 불교가 유교로부터 수난을 겪을 때 휴정은 《삼가귀감》이란 저술을 통해
불·유·선 삼교합일(三敎合一)의 융화(融化)사상을 제시하였고, 시를 통해 유불선 삼교의 합일을 읊었다.
삼교합일을 노래한 시도 여기에 포함시켰다.
제세애국시(濟世愛國詩) :
휴정의 호국불교사상이나 충성심 그리고 임진왜란 속에서 나라를 걱정하고 중생을 사랑하는 마음을 읊은 시나
전쟁의 비참한 모습을 읊은 시이다.
휴정은 어려서부터 시를 잘 짓는 시동(詩童)이었다. 성균관에 입학하여 정통으로 유교 경전과 시학(詩學)을 공부했다.
출가해서는 불교 경전과 수많은 선서를 통독했고 승과 선종 시험에서도 대선(大選)에 수석으로 합격한 천재였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참선 수행을 통해 오도를 이룬 대선사이다.
휴정은 유·불·선 삼교의 방대한 저서를 섭렵한, 역대 한국인으로서는 보기 드문 최고의 독서가였다.
따라서 그의 시는 깊은 사상과 묘오의 세계를 함축하고 있다.
휴정의 선시는 선사상이나 선가 용어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이해가 불가능하다.
서규태(徐珪邰)는 《한국근세 선가문학》에서 휴정의 문학을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휴정의 선가사상은 근세 선가문학의 집성이다.
선가문학사에서 휴정의 위치는 근세 선가문학을 완성하고 그 후의 선가문학에 이어진다는 교량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의 유가·도가와 《선가귀감》에 나타난 사상의 폭의 넓음과 깊음은 작가론과 문학론의 체계화와 종합을 가능하게 한다.
휴정은 시문학보다 산문문학에 관한 비중이 훨씬 크다.
문집 제4권의 〈선교게어(禪敎偈語)〉 가운데의 〈선교결(禪敎訣)〉과 〈선교석(禪敎釋)〉 그리고 〈심법요초(心法要抄)〉 등은
선가문학의 이론이자 수상류의 실제 작품이다.
근세의 다른 작가와는 달리 휴정은 선문학(禪文學) 이론에 관한 글을 많이 남겼다.
본 글에서는 휴정의 한시 가운데 선시에 가장 가까운 시법선리시, 산거운수시만 살펴보겠다.
1) 시법선리시(示法禪理詩)
시법시(示法詩)는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대중에게 내보이는 시이기 때문에 깨달음을 전제로 한다.
선 수행자는 깨닫기 전에 자신의 경계를 남에게 이야기하거나 자랑하는 것이 금기이다.
더군다나 자랑삼아 시를 읊는 행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다.
선시는 승속을 막론하고 누구나 참선 수행을 통해서 선지(禪旨)를 얻으면 그 경계를 시화(詩化)할 수 있겠지만,
시법시(示法詩), 송고시(頌古詩), 전법게(傳法偈), 출가시(出家詩), 오도송(悟道頌), 임종게(臨終偈) 같은 시는
선가(禪家) 출가자 고유의 영역이라 하겠다.
세속을 떠나 출가 사문이 될 때 입산출가시를 남긴 승려가 있다.
보통 이 시는 세상을 절연하고 청산백운(靑山白雲) 속에서 공왕(空王)을 받들며 세상의 무상함과 깨달음을 구하는
출가 사대부의 장한 기개가 나타나 있다.
휴정의 출가시는 《청허당집(淸虛堂集)》 권2에 노수신(盧守愼)에게 자신의 행적을 글로 밝히는
〈상완산노부윤서(上完山盧府尹書)〉에 있다.
忽聞杜宇啼窓外 갑자기 창 밖에 두견새 우는 소리 들으니
滿眼靑山盡故鄕 눈 앞의 봄산이 모두 고향이네.
― 《청허당집》 권2, 〈상완산노부윤서, 출가시〉
汲水歸來忽回首 물을 길어 오다 문득 머리를 돌리니
靑山無數白雲中 푸른 산은 무수히 흰구름 속에 있네.
― 《청허당집》 권2, 〈상완산노부윤서, 출가시〉
휴정은 출가를 하기 전인 15세부터 3년간, 두류산(頭流山)에서 숭인(崇仁) 장로를 만나 불경을 받고 공부를 했다.
그래서 출가할 때(18세, 19세)는 이미 상당한 선리(禪理)를 익힌 상태였다.
그래서 그의 출가시는 오도시의 선지를 느끼게 한다.
휴정은 ‘삼몽록(三夢錄)’에서 스스로 자신의 출가시와 오도송을 밝히고 있다.
이 시가 휴정이 지은 최초의 선시이다.
모든 시승에게 출가시는 최초의 선시라고 해야 할 것이다.
휴정은 출가하기 이전에 이미 시작에 대한 공부가 있었다.
성균관에서 유교 경전을 수학하여 과거시험에까지 응시했기 때문에 시를 짓는 능력이 있었다.
갑자기 두견새 울음소리를 듣고 선정에서 깨어나 그 동안 마음 속에 맺혀 있던 의혹의 먹구름이 활짝 걷히고,
평화롭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아무런 집착이 없는 정토를 발견했다.
청산대지(靑山大地)가 자신이 머물 진짜 고향임을 깨달았다.
깊은 산이야말로 휴정이 몸 담을 고향임을 확신하고 삭발 출가를 결심하였다.
여기서 ‘회수(回首)’는 세속의 마음을 절연하고 산사로 머리를 돌린다는 뜻이다. 전환의 의미를 상징한다.
출가 후에는 출가자에게 참선 수행이 본분사(本分事)이기 때문에
시를 읊고, 그림을 그리는 일 등은 참선 수행에 어긋나는 잡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시승에게 읊은 수 있는 시가 있다면 수행시가 있다.
힘든 수행의 과정과 자신의 심경을 읊은 시이다.
휴정의 선가시에는 《전등록》 《무문관》 《선문염송》 《벽암록》 《조주록》 《임제록》 등에 나오는 공안(公案)을 인용하여
깨달음의 심경이나 제자들에게 깨우침의 방편으로 읊는 시가 많다.
선가에서 인구회자하는 조주(趙州)의 정전백수자(庭前柏樹子) 공안을 인용하여 읊은 〈휘원부천도인(輝遠扶天道人)〉을 살펴보자.
祖師西來意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은
庭前柏樹子 뜰 앞의 잣나무니라.
問答甚分明 문답이야 분명하지만
龍藏未有底 대장경에는 없는 것이네.
盡力起疑處 힘을 다해 의심을 일으키는 곳에
永消瓦解去 얼음이 녹듯 풀리리라.
― 《청허당집》 권2, 〈휘원부천도인〉
《선가귀감》에 어느 스님이 조주 화상에게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입니까?” 하고 묻자, “뜰 앞의 잣나무니라 하였는데,
이것이 이른바 격외선지(格外禪旨)들이다.”라고 하는 정전백수자의 화두가 나온다.
뿐만 아니라 같은 책에 “부처님은 활과 같이 말씀하시고 조사들은 활줄과 같이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걸림이 없는 법이란 바로 한 맛에 돌아감이라.
이 한 맛의 자취마저 떨어내려야 비로소 조사의 한 마음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뜰 앞의 잣나무니라’라고 한 화두는 용궁의 장경에도 없다고 말한 것이다.
활과 같이 말했다는 것은 굽다는 뜻이고, 활줄 같이 말했다는 것은 곧다는 뜻이며,
용궁의 장경이란 용궁에 모셔 둔 대장경이다.”라고 하여 〈휘원부천도인〉의 시가 해설되고 있다.
조주 화상은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즉 불법의 대의를 묻는 질문에 마침내 눈 앞에 서 있는 ‘정전백수자’라고 분명히 답하였다.
논리와 상식을 초월한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이는 기존의 관념과 의식의 세계를 부수고 초월하는 화두인 것이다.
화두(話頭)는 보통 상식으로 사량(思量)하고 촌탁(忖度)하여 무슨 뜻이라고 풀어 사족(蛇足)을 붙이면 사구(死句)가 되고 만다.
그러나 《맹자》에 “도는 가까운 곳에 있다.”고 했고, 《무문관(無門關)》에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라고3) 한 말이 있듯이
‘조사서래의’는 바로 눈 앞에 보이는 잣나무, 즉 가장 가까운 곳에 진리가 숨어 있다는 말이다.
〈초당영백(草堂詠柏)〉의 시에서 휴정은 “정전백수자(庭前柏樹子) 독야사시청(獨也四時靑)”이라고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진여세계를 상록수인 잣나무에 비유하여 읊었다.
정전백수자의 화두는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한 대장경에는 없다. 당(唐)나라 조주 선사가 창안한 화두이다.
휴정은 이 화두를 깨치면 생사의 윤회와 마음의 정체가 얼음이 녹듯이 풀리고,
사시상청(四時常靑) 늘 푸른 깨달음의 세계에 이를 것이라고 읊고 있다.
휴정이 제자들에게 주는 시는 제자들의 근기에 따라 능소능대(能小能大)하게 공안 화두를 구사하고 있다.
그래서 혹 시구가 우아하지 않은 데도 있지만 자자구구(字字句句)마다 생동하는 선기(禪機)를 뿜는 것이 휴정시의 특징이다.
고족제자 벽천(碧泉) 의천(義天) 선자에게 주는 시는 〈증벽천선화자(贈碧泉禪和子)〉 〈시벽천선자(示碧泉禪子)〉(3수)를 포함해서
총 7수의 시가 있다.
歷歷提公案 공안을 역력히 들었는가
莫浮亦莫沈 뜨지도 잠기지도 말아라.
虛明如水月 비우고 밝기는 물 위에 비친 달같이 하며
緩急若調琴 늦추고 급하기는 거문고 고르듯 하여라.
病者求醫志 병자가 의사를 구하는 뜻이요,
창兒憶母心 아이가 어미를 그리는 마음이라.
做工親切處 공부를 열심히 하는 곳에
紅日上東岑 붉은 해 동녘의 뫼뿌리에 오르리라.
― 《청허당집》 권1, 〈증벽천선화자〉
〈증벽천선화자〉의 시는 심지를 밝게 깨닫게 하는 기연(機緣) 방편인 공안을 주제로 하여 선(禪)을 참구하는 실천 방법과 자세를
자상하게 설하고 있는 한편의 법문이다.
수행 방법으로 뜨지도 잠기지도 말고 늦추고 급하게 하는 데도 거문고의 줄을 고르듯이 하라는 ‘거문고의 비유’4)를 들어
중도(中道)의 실천도를 말하고, 수행하는 자세로 병자가 의원을 구하듯 하고, 아이가 어미를 그리듯 하라 하였다.
그러면 자연히 심지(心地)는 밝아져서 천진면목(天眞面目)이 드러나 마치 붉은 해가 동녘 하늘에 떠오르듯 한다는 가르침이다.
휴정은 제자들에게 이러한 수증시(酬贈詩)를 통해서 선지의 궁극에 이르는 길로 나아가도록 지도하였다.
벽천 선자는 휴정의 시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제자이다. 열심히 스승을 추종했던 제자임에 틀림이 없다.
〈시벽천선자〉(3수)에서도 임제종의 정통 선법을 제시하여 벽천 선자를 깨달음의 길로 이끌고 있다.
閃電光中坐 번쩍이는 번갯빛 속에 앉아
對人能殺活 사람을 대하면 능히 죽이고 살리네.
無頭無尾棒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는 몸둥이로
打破虛空骨 허공의 뼈를 쳐서 깨뜨린다.
十年呑栗棘 십 년을 밤송이를 삼키며 수행했건만
猶是野狐精 아직도 참선이 그릇된 야호정일세.
若欲敵生死 만약 생사의 이치를 깨달으려면
寒灰爆一聲 불꺼져 차디찬 잿 속에서 임제의 할을 들어라.
莫要會佛法 불법을 더 알려 하지 말고
大臥三條椽 세 서까래 위에 크게 누우라.
道人宜痴鈍 도 닦는 수행자는 마땅히 어리석고 둔해야 하나니
令我憶南泉 나는 남전(南泉) 선사를 생각한다.
― 《청허당집》 권1, 〈시벽천선자〉(3수)
첫번째 시는 대단히 난해한 선시다.
깨달음을 얻은 조사는 제자를 제접함에 있어 수단이 무궁무진하여, 할(喝)을 쓰기도 하고, 방(棒)을 쓰기도 하는데,
그 기봉(機鋒)이 매서워 사람을 능히 죽이기도 하고 살릴 수도 있는 역량을 지녔다.
활인검(活人劍)을 거머쥐고 제자의 망상(妄想)의 쇠사슬을 끊어 줘서 깨달음의 길로 이끈다.
‘방(棒)’은 덕산선감(德山宣鑑) 선사(782∼865)가 학인을 지도할 때 자주 몽둥이[棒]로 때렸다.
몽둥이를 얻어맞은 제자는 즉석에서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에 ‘덕산방(德山棒)’이라고 한다.
임제의 할(喝)은 역시 제자를 맞이하여 고함을 지르면, 제자가 깨달음을 얻었다 하여
《벽암록》 8에 “저개시중(這箇示衆) 직득천고무대(直得千古無對) 과어덕산방임제할(過於德山棒臨濟喝)”이 나온다.
휴정은 이 시에서 머리도 꼬리도 없는 몽둥이로 허공(虛空)의 뼈를 쳐서 깨뜨린다고 하였다.
‘무두봉(無頭棒)’이나 ‘무미봉(無尾棒)’ 그리고 ‘허공골(虛空骨)’은 격외선어(格外禪語)이다.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이 선어들은 언어문자로 나타낼 수 없는 자성(自性), 불성(佛性), 진여(眞如)의 절대세계를 상징하는 선가의 약속된 언어이다.
‘허공골(허공의 뼈)’은 휴정이 창안한 선구인 듯하다.
함허당득통(涵虛堂得通) 선사(1376∼1433)의 선시에 ‘타거타래공자희(打去打來空自噫 : 쳐 가고 쳐 올 때 절로 이는 허공의 딸꾹질)’란
언어는 있지만, ‘허공골’은 어떤 선시나 선사어록에도 찾아볼 수 없다.
〈청학동폭포(靑鶴洞瀑布)〉에서도 “색탈허공골(色奪虛空骨 : 경치는 허공의 뼈를 빼앗는다.)”는 시구가 나온다.
여기서는 하얀 폭포수를 허공의 흰 뼈에 비유한 것이다.
두번째 시는 그릇된 참선인 야호선(野狐禪)을 십 년 수행해도 깨달을 수 없으니 정통 선법인 임제종풍에 따라 수선을 하면
무(無)에서 유(有)를 얻을 수 있듯이 불꺼진 차디찬 잿속에서 툭 터지는 소리, 즉 한 소식을 들을 수 있다는 시이다.
야호정은 진실한 수행은 하지 않고 깨달음을 얻은 듯한 태도로 남을 속이는 사이비 선을 뜻한다.
참선을 할 때 여우처럼 사량분별(思量分別)하여 촌탁(寸度)하면서 하는 그릇된 선이란 뜻이다.
‘일성(一聲)’은 임제의 할을 상징한다.
세번째 시는 교리 공부를 그만하고 참선수행에 매진하라는 계도교시적(啓道敎示的)인 시이다.
‘눕는다[臥]’는 말은 잠잔다는 뜻이 아니라, 선가에서는 와선(臥禪) 즉, 참선 수행을 한다는 의미이다.
3조연(三條椽 : 세 서까래)은 승당에 앉는 자리가 한 사람마다 길이 6척, 너비 3척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너비로 보면 머리 위 천정의 서까래 세 개의 넓이에 해당하므로, 한 사람의 자리를 이렇게 말한다.
세 서까래 위에 누우면 ‘왕(王)’자가 된다. 법왕(法王) 즉, 깨달음을 얻는다는 상징적 뜻이 담겨 있는 파자어(破字語)가 된다.
‘남전(南泉)’은 남전보원(南泉普願) 선사(748∼834)인데,
천하의 고불(古佛) 조주 선사의 스승으로 ‘남전참묘(南泉斬猫)’의 공안으로 유명하다.
“남전을 생각한다.”라는 뜻은 선종의 정통가풍에 따라 수행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참선 수행은 소처럼 끈기있고, 진득하고 뚝심 있게 앉아서 공안 화두를 참구해야 조사의 관문을 뚫을 수 있다.
휴정은 이렇듯 참선 수행의 요목을 멋진 선시를 통해 제자를 깨달음의 길로 이끌기 위해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또 〈시의천선자(示義天禪子)〉(2수)란 제목으로 벽천 선자에게 준 시 2수가 있다.
유정의 《선가귀감》 발문에 보면 “문인(門人) 벽천선덕(碧泉禪德) 의천(義天)이 《선가귀감》을 교정했다.”고 하였다.
〈시의천선자〉도 전형적인 선가시로 조사선의 정수를 시법하고 있다.
火裏生蓮雖好手 불길 속에서 연꽃을 피게 하는 솜씨 비록 뛰어나나
爭如千劍日中行 천 개의 칼로 해의 운행을 막는 것만 하겠는가.
山僧指示無端的 나의 가르침은 바로 이것이니
斬却心頭辦死生 심두(心頭)를 베어 버리고 생사를 결판하라.
定眼三年能射? 삼 년 선정으로 눈이 밝아져 능히 화살로 이를 쏘고
凝神五月可粘蟬 정신을 집중한 지 다섯 달 만에 매미를 받을 수 있었네.
山僧日用無多字 나의 하루 생활이 별 것 아니라
念念常看火裏蓮 생각 생각마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연꽃을 보네.
― 《청허당집》 권1, 〈시의천선자〉(2수)
“화리생련(火裏生蓮 :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 연꽃이 피어난다.)”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말이다. 상식을 벗어난 말이다.
그러나 선시에서는 생각이 끊어지고, 언전(言詮)이 끊어진 절대세계를 표현하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십우도(十牛圖)》의 열 가지 수행 단계 가운데 마지막 단계인 입전수수(入廛垂手)는
깨달음을 완성하고 나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거리[都市]로 나서는 것이다.
확암(廓庵) 선사는 입전수수의 경계를 송으로 읊으면서 ‘고목방화계(枯木放花開)’라 하였다.
露胸跣足入廛來 가슴을 헤치고 사람이 사는 거리로 들어오니
抹土塗灰笑滿욍 흙투성이 재투성이지만 웃음이 만면하네.
不用神仙眞벙訣 신선의 비결을 쓰지 않고
直敎枯木放花開 마른 나뭇가지에 꽃을 피게 하네.
― 확암 선사, 《십우도》, 〈입전수수송〉
〈시성눌선자(示性訥禪子)〉의 결구(結句)에 “신심여방하(身心如放下) 고목정생화(枯木定生花)”의 시구가 나온다.
고목에서 꽃을 피게 하는 재주도 어려운 일인데, 불길 속에서 연꽃을 피게 하는 일은 중생이 부처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선구(禪句)에 “철수개화(鐵樹開花 : 쇠나무에 꽃이 피다.)”라는 말이 있다.
‘화중생련(火中生蓮)’과 같은 언어 구조를 가진 선가의 전용선구이다.
왕유(王維)의 눈 속에 서 있는 파초를 그린 〈원안와설도(袁安臥雪圖)〉 속의 ‘설중파초(雪中芭蕉)’는 유명한 그림이다.
파초는 여름에 큰 잎사귀를 드러냈다가 가을이 되면 줄기까지 오무라드는, 속이 빈 강정과 같은 나무다.
불교의 무상 진리를 비유하는 경전에 파초가 나온다.
겨울 눈 속의 파초는 ‘설중연화(雪中蓮花)’와 같이 상식을 초월한 격외언어이다.
‘화리생련’ ‘고목방화’ ‘철수개화’ ‘설중파초’ ‘설중연화’ 등은 언어가 끊어진 진여세계,
즉 깨달음의 세계를 상징하는 선가의 언어로 선시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휴정은 자신의 선적 경계는 천검(千劍)으로 일월(日月)의 운행을 막을 수 있는 불가사의하고 일반인들의 관념 인식세계를 초월해 있음을
시로 나타내 보인 것이다.
그리고는 자신의 가르침이란 것이 별 것 아니라고 겸사하면서 잡되고 산란스런 생각머리[心頭]를 금강도로 싹 잘라내고
무생의 이치를 깨달으라고 교시한 시이다.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이다. 성불하여 부처되는 길은 참선 수행이 가장 빠른 길이다.
두번째 시 역시 기구(起句)와 승구(承句)에서는 참선 수행의 성과를 읊은 것이고,
전구(轉句)와 결구(結句)에서는 자신의 오도 경지, 일상생활의 모습을 제자 의천 선자에 보인 시법시이다.
“정안삼년사슬(定眼三年能射?)”은 《열자(列子)》에서 기창(紀昌)이 비위(飛衛)에게 활쓰는 법을 가르쳐 준 고사를 인용한 것이고,
“응신오월가점선(凝神五月可粘蟬)”은 《장자》에 나오는 곱사등이가 다섯 달 동안 막대기 끝에 탄환 두 개를 포개어 떨어뜨리지 않게
연습하여 결국 숲 속의 매미를 실수 없이 받는 데 성공했다는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휴정은 격외 선어를 통해서 자유자재하게 선의 오묘한 세계까지 묘사하여 어떤 시승도 흉내낼 수 없는 품격 높은 선시를 구가한 것이다.
〈증덕의선자(贈德義禪子)〉의 시에서는 오조홍인(弘忍) 대사가 육조혜능(慧能) 대사에게 밤중에 아무도 몰래 전법하고 발우를 건네 준
일화를 시화한 것이다. 이 내용은 《육조단경(六祖壇經)》에 있다.
吾家有寶燭 내 집에 보배로운 촛불이 있거늘
可笑西來燈 서래등을 찾으니 가소롭구나.
半夜黃梅信 깊은 밤 황매산의 소식을
虛傳粥飯僧 헛되이 죽반승에게 전했구나.
― 《청허당집》 권1, 〈증덕의선자〉
“오가유보촉”은 내 마음 속에서 항상 빛을 발하고 있는 자성불을 상징한다.
자심불을 찾지 않고 달마 대사가 전한 전등법맥만 찾으니 가소롭다는 선사의 살불살조(殺佛殺祖)의 기개가 나타나 있다.
황매산의 홍인(弘忍) 대사는 무식한 나무꾼 혜능이 심법(心法)의 깨달음을 확인하고
한밤중에 아무도 몰래 달마 대사 이래로 전법의 징표인 발우를 물려 주었다.
‘죽반승’의 원뜻은 밥이나 먹어 치우는 중이란 뜻인데, 여기서는 혜능과 덕의(德義) 선자를 상징한다.
《청허당집》에 〈춘일영회(春日詠懷)〉의 시에서 임제의 할로써 봄날의 회포를 결구(結構)한다.
東風昨夜至 동풍(東風)이 불어오는 어제밤
病客來山中 병든 나그네 산사를 찾았네.
林鳥已新語 숲에는 새들이 재잘거리고
野花奬欲紅 야생화는 이제 막 붉은 꽃봉우리를 터뜨리네.
人間郭郞巧 인간은 곽랑(郭郞)의 꼭두각시 노름이요
世事浮雲空 세상사는 뜬 구름 같은 것이네.
臨濟一聲喝 임제 선사의 외치는 한 소리
直開千日聾 천 일 동안 먹었던 귀가 번쩍 열리네.
― 《청허당집》 권1, 〈춘일영회〉
휴정이 병이 들어 힘든 몸으로 바람이 부는 봄날 산사를 찾아 인생의 무상을 읊은 시이다.
‘곽랑(郭郞)’은 중국의 괴뢰극(傀儡劇)에 나오는 꼭두각시다.
인간은 꼭두각시요, 인생은 뜬 구름 같은 것이라고 회한을 하다가 문득 임제의 할을 생각하니, 막혔던 마음이 번쩍 열린 것이다.
선가에서 임제할은 깨달음의 길로 이끄는 제일구(第一句)요, 무명을 타파하는 천뢰이다.
휴정은 《선가귀감》에서 임제의 가풍을 다음과 같이 설파하였다.
맨손에 한 칼을 들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도 죽이고, 조사도 죽인다.
지난 날과 오늘날을 삼현(三玄)과 삼요(三要)로써 판변하고, 용과 뱀을 손님과 주인으로 알아낸다.
금강의 보검으로 도깨비를 쓸어내고 사자의 위엄을 떨쳐 여우와 너구리의 넋을 찢는다.
임제종을 알려는가? 푸른 하늘에 벼락이 치고 평지에 파도가 이는구나.
또 임제의 할과 덕산의 방에 대하여 설하였다.
임제의 할(喝)과 덕산의 방(棒)은 무생(無生)의 이치를 철저히 체득하여 밑바닥에서 정상까지 꿰뚫은 것이다.
큰 기틀과 큰 작용[大機大用]이 자유자재해서 어디에나 걸림이 없고,
온몸으로 출몰하여 온몸으로 짐을 져서 문수와 보현보살의 경계를 지키고 있다 할지라도,
사실대로 말하면 임제나 덕산도 또한 도깨비의 짓에 불과하다.
따라서 대장부는 부처님에게도 얽매여서는 안 되고, 조사에게도 얽매어서는 안 된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이 있으면, 모두 고통이므로 일없는 것만 같지 못한 것이다.
임제의 할은 무생의 이치를 깨우쳐주고 마음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지만,
깨달음의 길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떤 대상에도 얽매이거나 집착해서는 안 된다.
집착이 없는 조사의 무문관을 쳐부수고 궁극의 절대 자성에 이르게 한다.
2) 산거운수시(山居雲水詩)
산거운수시는 산사에서 참선 수행을 하면서 한적한 산중 생활과 산천운수의 아름다움, 대자연의 이법(理法)을 선적인 사유와
직관을 통해 읊은 선시이다.
시승의 입장에서 선의 시적 원용[引詩寓禪]이거나, 불자 거사 시인의 편에서 선적 사유를 시로 유인(誘引)하는 시의 선적 함축
[援禪入詩]이거나를 막론하고 산수시, 운수시, 자연시, 산거시적인 선시가 가장 문학적 측면에서 성취가 크다.
이 점은 휴정의 선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산거운수시는 시인의 심경(心境)이나 오도(悟道)의 경지를 산수의 아름다움이나 자연의 이법을 통해서 비유 상징하기 때문에
시의 미적 예술이나 격조가 대체로 높다. 또 산거운수시는 다음과 같은 특성이 있다.
깊은 산사에는 인적이 드물기 때문에 대화의 상대가 자연이다.
밤하늘에 홀로 떠 있는 달[月], 흘러가는 구름[雲], 계곡에 흐르는 물[水], 겹겹이 쌓인 청산, 그리고 바람소리[風], 새소리[鳥]이다.
봄이 오면 온 산에 피어나는 꽃[花], 늘 푸르고, 곧은 절조를 나타내 주는 대나무[竹] 등이 시의 소재가 된다.
그리고 시의 분위기는 평화와 안정, 고요함[靜], 한가함[閑], 청정함[淨] 등이다.
따라서 산거운수시에서는 이런 시어를 자주 사용하여 시를 읊는다.
《청허당집》(龍腹寺版)의 시 가운데 시어의 빈도는 산수자연을 나타낸 시어, 동물을 나타낸 시어, 식물을 나타낸 시어,
색채를 나타낸 시어, 계절과 시기를 나타낸 시어, 숫자를 나타낸 시어, 심정(心情)을 나타낸 시어 등이 많다.
휴정의 시 가운데는 운수자연을 노래한 시가 많다.
그 속에는 반드시 깊은 선지가 담겨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휴정이 자신의 한가한 수도생활과 청허한 마음을 읊은 대표적인 시 〈청허가(淸虛歌)〉가 있다.
君抱琴兮倚長松 거문고 안고 큰 소나무에 기댔나니
長松兮不改心 큰 소나무는 변하지 않는 마음이로다.
我長歌兮坐綠水 나는 긴 노래 부르며 푸른 물가에 앉았으니
綠水兮淸虛心 푸른 물은 맑고 빈 마음이로다.
心兮心兮 마음이여 마음이여
我與君兮 나와 그대로다.
― 《청허당집》 권1, 〈청허가〉
〈청허가〉는 태고(太古) 화상이 삼각산(三角山) 중흥사(重興寺) 동쪽에 태고암을 짓고 수도하면서 태고(太古)라 자호(自號)하고
〈태고암가(太古庵歌)〉를 지었듯이
휴정이 내은적암(內隱寂庵)에 청허당(淸虛堂)을 짓고 청허(淸虛)라 자호하고 지은 시이다.
휴정은 〈산중사(山中辭)〉에서 “아, 청산과 백운이 아니면, 누구와 더불어 세상을 친교할까나
(톱, 若非靑山 白雲子兮 吾誰與爲出世之交也哉).”하였고,
〈임하사(林下辭)〉에서 “아, 줄이 없는 거문고와 구멍이 없는 피리가 아니면 누구와 더불어 태평가를 부를꼬
(톱, 若非無絃琴兮無孔笛 吾維與唱太平之曲也哉).”하였다.
이것은 《태고화상어록》 〈태고암가〉의 “수장태고몰현금(誰將太古沒絃琴) 응차합시무공적(應此合時無孔笛)”을 환골한 것이다.
〈청허가〉에서 거문고는 줄이 없는 거문고인 심금(心琴), 즉 마음을 상징함이요,
솔바람을 지음(知音)한다는 뜻은 청정한 자성을 말함이다.
여기서 긴 노래는 태평가요, 환향곡(還鄕曲)이요, 서래곡(西來曲)이다.
푸른 물은 휴정의 벽안(碧眼)과 같은 것이요, 그대로 청허심인 것이다.
휴정은 이처럼 운수자연과 합일되어 물아일체의 진여일심으로 시화하였다.
이 시에서 한가하고 청허한 휴정의 진면목을 노래하는 거문고 소리를 듣는 듯하다.
〈청허가〉에서 나타나는 휴정의 시경(詩境)은 걸림이 없는 선심과, 불심으로 자연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그리고 시어에 나타나는 뛰어난 비약과 절려의 수사법도 이 시에 생동감과 활동소의 운치를 자아내고 있다.
청정한 자연세계가 그대로 청빈한 도인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 시에서 소나무는 변하지 않는 불개심(不改心)인 자성을 상징한다.
임제 선사가 소나무를 심은 재송(栽松)의 교훈은 선가의 수도상이다.
녹수(綠水)는 휴정의 마음인 청허심이다. 물아일체의 경지가 잘 나타난 시이다.
휴정은 〈사야정(四也亭)〉이란 시에서 운수자연을 단적으로 해설하고 있어, 선시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水也僧眼碧 물은 스님의 푸른 눈과 같고
山也佛頭靑 산은 부처님의 푸른 머리일세.
月也一心印 달은 변치 않는 한 마음이고
雲也萬卷經 구름은 만 권의 대장경일세.
― 《청허당집》 권1, 〈사야정〉
〈사야정〉은 한유(韓愈)의 〈사시(四時)〉 결구(結構)를 빌어 세간과 출세간의 동일성을 암시하고 있다.
물은 스님의 눈을 상징하고, 산은 부처님의 푸른 머리를 상징한다고 읊고 있다.
열심히 수행하는 스님의 눈은 맑은 시냇물처럼 깨끗하다. 너무 맑아서 푸른색을 띤다.
‘벽안사문(碧眼沙門)’은 눈밝은 큰스님을 뜻한다.
청산은 변함이 없는 체(體)를 뜻한다. 불두청(佛頭靑)과 같이 늘 푸른 정기를 상징한다.
달을 일심인(一心印)이라 하고, 구름을 만 권의 대장경에 비유했다.
달은 밝고 둥글다. 그래서 불성과 자성을 상징한다.
시에서 달을 희망과 님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월인천강(月印千江)이란 하늘에는 하나의 달이 떠 있는데 천 강(千江)에는 각각 달이 하늘에서 내려와 하나씩 박혀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모든 중생의 마음 속에는 부처의 성품(一心, 自性, 佛性)이 다 있다.
그래서 달을 ‘일심인(一心印)’이라고 했다.
《술몽쇄언(述夢?言)》 〈진여장(眞如章)〉에 “푸른 하늘에 달이 있으니
진여월(眞如月)인가 밝은 거울 내 마음 없으니 자재심(自在心)이로구나(靑天有月眞如月 明鏡無心自在心).”7)라고 하여
달이 진여(불성, 자성)임을 설하고 있다.
구름은 온갖 모습으로 변화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부처님께서 중생의 근기에 따라 갖가지 수기설법(隨機說法)을 하신 말씀을 기록한 것이 대장경이다.
자연은 말없는 스승이다. 성인들은 모두 자연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았다.
자연과의 대화가 이루어지려면 무심의 경지가 되어 물아일체가 되고 물아삼매(物我三昧)가 되어야만 가능하다.
휴정은 운수산천 속에서 자연의 무정설법(無情說法)을 듣고 있다.
〈제일선암벽(題一禪庵壁)〉에서 무심한 나그네가 되어 산사에서 무심히 흘러가는 구름과 눈 앞의 산을 바라보며 읊고 있다.
山自無心碧 산은 스스로 무심히 푸르고
雲自無心白 구름은 스스로 무심히 희구나.
其中一上人 그 가운데 한 상인(上人)은
亦是無心客 또한 무심한 나그네로세.
― 《청허당집》 권1, 〈제일선암벽〉
자연과 시인은 완전히 하나가 된 물아일체요, 주객일여의 경지를 나타내고 있다.
자연은 아무 욕심이 없다. 자연은 스스로 무엇을 만들어 내려고 하지도 않고, 없애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저절로 이루어져서 담담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의연한 자세를 휴정은 산과 구름이 무심히 푸르고 흰 것에 비유하고 있다.
무심이란 집착이 없는 무주심이다. 모든 일상사에 무심할 수 있다면 그것이 해탈의 경지다.
그래서 참선자는 자연을 통해서 무심을 공부하는 것이다.
또 자연을 벗삼아 용맹정진하는 휴정의 모습을 〈각행대사(覺行大師)〉란 시를 통해서 엿볼 수 있다.
雲房高臥遠塵紛 운방(선방)에 높이 누워 세상 티끌을 멀리 떠나
只愛松風不閉門 단지 솔바람 좋아서 선방문(禪房門)을 열어 놓았네.
一柄寒霜三尺劍 서릿발 같은 삼척검(三尺劍)으로
爲人提起斬精魂 마음 속의 정령(精靈, 잡된 생각) 모두 잘랐네.
僧兼山水三知己 스님과 산 그리고 물은 진정한 세 친구
鶴與雲松一世間 학과 더불어 구름·소나무와 지내는 세계
虛寂本心如不識 텅 비고 고요한 본래 마음을 얻지 못하면
此生安得此身閑 이 생에 어쩌 이 몸이 한가하랴.
― 《청허당집》 권1, 〈각행대사〉(2수)
산, 물, 학, 소나무, 구름, 그 공간에 승(僧) 휴정이 있다.
고요함과 한가함이 뿜어 나오는 진여의 세계, 세속을 떠난 산사의 전경이다. 맑고 깨끗한 시상이 잘 나타나 있다.
휴정은 《선가귀감》에서 정진에 대해 정의하기를, “본바탕 천진(天眞)한 마음을 지키는 것이 으뜸가는 정진이다
(守本眞心 第一精進).”라고 하고 다시 해석하기를,
“만일 정진할 생각을 일으킨다면 이것은 망상이지 정진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망상하지 마라, 망상하지 마라’한 것이다.
게으른 사람은 항상 뒤만 돌아보는데, 이런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고 있다
(若起精進心 是妄非精進 故云莫妄想莫妄想 懈怠者常常望後 是自棄人也).”라고 하였다.
휴정은 “스님과 산 그리고 물은 진정한 세 친구다(僧兼山水三知己).”라고 했다.
그리고 학과 더불어 구름, 소나무와 지내는 세계에서 수도하면서 허적본심(虛寂本心)을 얻어 출가 대장부의 본분사를 마치고
한가한 한도인이 되고 싶은 심정을 산수자연의 정취를 읊어 각행 대사에게 자신의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휴정의 운수시에 한산시(寒山詩)를 연상케 하는 〈내은적(內隱寂)〉이란 시가 있다.
頭流有一庵 두류산에 암자가 하나 있으니
庵名內隱寂 암자의 이름은 내은적이라.
山深水亦深 산 깊고 물 또한 깊어
遊客難尋跡 노니는 선객은 찾아오기 어렵다네.
東西各有臺 동서에 누대가 있으니
物?心不? 물(物)은 좁아도 마음은 좁지 않다네.
淸虛一主人 청허라는 한 주인은
天地爲幕席 천지를 이불 삼아 누웠다네.
夏日愛松風 여름 날 솔바람을 즐기노니
臥看雲靑白 구름은 청백으로 조화를 부리누나.
― 《청허당집》 권1, 〈내은적〉
寒岩深更好 한암은 깊어서 좋은데
無人行此道 이 길을 지나는 사람은 없네.
白雲高岫閑 흰 구름 높은 봉우리 한가롭고
靑 ? 孤猿嘯 푸른 멧부리에는 외로운 원숭이 휘파람부네.
我更何所親 내 다시 무엇과 친할꼬
暢志自宜老 뜻을 펴며 스스로 늙어갈 뿐이라네.
形容寒暑遷 우리의 얼굴은 철따라 변해 가나니
心珠甚可保 부디 마음을 잘 보존해야 한다네.
― 《전당시》 제6책 권806, 〈한산〉, p.4249
한가한 도인의 수도생활이 잘 나타나 있다. 자성을 찾은 도인의 생활은 바쁠 것이 없다.
천지를 꿰뚫은 이 길은 아무도 근접을 못했다. 도인은 다만 외롭게 홀로 솔바람 소리와 원숭이 휘파람부는 소리나 듣고 있을 뿐이다.
솔바람이나 원숭이는 육창(六窓)에 나타나는 마음[意識]을 상징함이다.
육창이란 인간의 감각기관인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 육근(六根)을 상징한다.
단순히 운수 자연을 노래한 시 같지만 그 속에는 깊은 선지가 담겨져 있다.
《청허당집》 권1, 〈청야즉사(淸夜卽事)〉에서는 달밝은 밤에 한산(寒山)과 습득(拾得)을 그리워 하는 휴정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청허당집》에 나오는 〈돈교송(頓敎頌)〉에서, “정진이 곧 석가요, 진심(眞心)은 아미타불이다.”8)라고 하였다.
범부중생과 부처가 본래 성품은 다르지 않으나 중생은 어리석어 미(迷)하고, 부처는 깨달음을 얻어 밝다.
중생은 부지런히 정진 수도하면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와 같이 될 수 있다.
올바른 마음과 곧은 마음이 아미타불이다. 설산에서 6년 고행 정진한 결실이 석가모니 부처님을 이룬 것이다.
휴정 85개 성상(星霜)의 삶은 정진의 삶이었다.
휴정은 두류산에 내은적암이란 암자를 짓고 청허당이란 당호를 지어 스스로 ‘청허(淸虛)’라고 자호하였다.
이때 몇 명의 도반들과 새벽에 일어나 염불과 참선으로 용맹정진하던 모습을 읊은〈두류산 내은적암(頭流山 內隱寂庵)〉이란 시가 있다.
有僧五六輩 도반 대여섯이
築室吾庵前 내은암에 집을 지었네.
晨鐘卽同起 새벽 종소리와 함께 일어나
暮鼓卽同眠 저녁 북소리 울리면 함께 자네.
共汲一澗月 시냇물 속의 달을 함께 퍼다가
煮茶分靑烟 차를 달여 마시니 푸른 연기가 퍼지네.
日日論何事 날마다 무슨 일 골똘히 하는가
念佛及參禪 참선과 염불일세.
― 《청허당집》 권1, 〈두류내은적〉
조그만 암자를 지어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염불과 참선으로 수행 정진하는 휴정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청허당집》에서 보면 휴정이 성눌(性訥) 선자에게 주는 시에서 “염불과 참선은 성공하면 그 이치에 다른 것이 없다
(念佛參禪法 功成理不差).”라고9) 하여 염불 수행도 강조하였다.
또 자나 깨나 아미타 부처님이 계신 서쪽을 향해 합장 기도하면서 극락세계를 그리워하는 〈염불승(念佛僧)〉이란 시가 있어
그의 염불관을 엿볼 수 있다.
또 게으른 제자 신수(神秀) 사미승에게 주는 시에서도 “신수야, 너 또한 게으른 자이니 염불을 열심히 하길 부탁한다.”라고 하여
근기에 따라 염불 수행을 권장했음을 알 수 있다.
휴정은 〈산거(山居)〉에서 천하공물(天下公物)인 ‘풍월본무쟁(風月本無爭)’을 읊조리고 있다.
가난한 산승에게 달이 있고, 구름이 있고, 거기다가 봄소식을 알리는 매화가 피어 있으니 더 바랄 것이 없다.
조주 선사의 ‘조사서래의, 정전백수자’의 화두를 시로 읊은 서산 대사의 〈초당영백(草堂詠柏)〉과
김종직(金宗直)의 제자로 당시 소단의 문병을 지닌 대제학과 영의정까지 지낸 남곤(南袞, 1471∼1527)의 절창시인
〈신광사(神光寺)〉 6수 가운데 한 수를 각각 살펴보자.
月圓不逾望 달은 둥글어도 보름을 넘지 못하고
日中爲之傾 해는 정오가 되면 기울기 시작하네.
庭前柏樹子 뜰 앞에 잣나무는
獨也四時靑 홀로 사시상청 푸르네.
― 《청허당집》, 〈초당영백〉
庭前柏樹儼成行 뜰 앞의 잣나무는 의젓이 늘어서서
朝暮蕭森影轉廊 하루 종일 우뚝한 그림자가 회랑을 도네.
欲問西來祖師意 서쪽에서 조사가 온 뜻을 물으려 하니
北山靈 ? 送凄凉 북숭산(北崇山) 신령한 바람 서늘한 기운을 보내오네.
― 《소화시평》, 〈신광사〉
두 시 모두 달마 대사가 불교의 정수인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는 선불교를 전하려 오는 ‘조사여래의’의 화두를 멋지게 시화한
작품이다.
〈초당영백〉은 전형적인 화두시로 선사가 시의 형식을 빌어서 선지의 내용을 담아낸 인시우선(引詩寓禪)이고,
〈신광사〉는 시인의 편에서 선적 사유의 깊이를 시로 유인한 원선입시(援禪入詩)의 명품이다.
서산 대사는 “뜰 앞의 잣나무는 홀로 사시상청 푸르네.” 하고 결구하였는데,
남곤은 “뜰 앞의 잣나무가 의젓이 늘어서서 하루 종일 우뚝한 그림자가 회랑을 도네.”라고 읊어
정백(庭柏)의 무궁하고 영원한 세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남곤은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을 신령한 바람이 서늘한 기운을 보내오네.’라고 하여
조사가 온 뜻이 중생의 열뇌(熱惱)를 식혀주는 신령한 바람[靈?], 즉 선풍(禪風)임을 상징하고 있다.
참으로 종교적인 목적을 떠나 시 자체로서도 성공한 시로 선적인 함축성을 내포한 자연스러운 선기시(禪機詩) 중의 일품이다.
3. 휴정 선시의 특성
서규태는 《한국근세 선가문학》에서 휴정의 산문문학과 시문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청허는 수필장르를 통해서 문학사상을 심화시키고 그것을 실제로 작품화했다.
산문문학인 수상록이나 시가문학인 가사 장르를 통해서 이론을 심화시키고 실제로 그 가치를 펼쳤다.
아울러 그의 시문학에서는 그러한 사상성과 문학성이 공존하면서도 풍부한 시정을 노래했다.
산문문학이 사상성이 강한 장르라면 그의 시문학은 문학성이 강한 편이다.
노산 이은상도 휴정시의 특색을 “그 시를 사상으로 보기에는 말이 너무 문학적이요,
또 그것을 단순한 서정으로 보기에는 뜻이 너무 깊다.”고 하였다.
휴정의 선시 특징은 다음과 같다.
오언절구의 압축된 시를 주로 읊었다. 오언절구는 당(唐)의 근체시(近體詩)를 대표하는 시체(詩體)이다.
선시의 특성은 불립문자를 표방하기 때문에 함축과 상징을 통해 말을 아껴야 한다.
시를 짓기 위해 고심하여 퇴고하거나 성률(聲律)을 맞추기 위해 일부러 노력하지 않은 즉흥적인 시가 많다.
시 속에 슬픔과 한의 정서가 깃든 시를 읊었다.
삼교합일적(三敎合一的)인 원융(圓融)사상이 담긴 시가 많다.
숭유척불의 국가이념을 타파하여, 유불의 화합과 공존을 소망하는 마음을 시로 담았다.
장자풍(莊子風)의 시를 구사하였고 인생은 대몽(大夢)에 비유하고,
대봉(大鵬)의 경지에서 차별이 없는 평등과 초월적인 마음을 시로 읊었다.
무릉도원의 이상향을 동경하였다. 도가의 신선사상이 시에 나타나 있다.
주체적인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이 뚜렷이 나타나 있으며, 대장부·영웅·주인공 의식이 시 속에 나타나 있다.
운수 자연을 노래한 시가 많고, 음악성과 회화성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시의 문학적 성취가 대단하다.
그의 선가시는 선의 깊은 사유와 선종의 전용적인 공안, 화두나 고사를 용사(用事)하여 뜻이 난해하나 깊은 철리가 함축되어 있다.
시어 선택에 있어 산수자연을 나타내는 시어와 색채와 소리를 나타내는 시어를 많이 사용하였고, 특히 첩어를 많이 사용하였다.
시체(詩體)는 다체(多體)의 시를 구사했고, 시뿐만 아니라 선가문학에 있어 전기문학, 수필문학, 가사문학(회심곡을 지음), 서간문학 등
다양하다.
휴정의 시는 선시의 특성을 잘 살리면서도 당송의 시문학을 수용하여 차원 높은 선시를 창작하였다.
〈여조학사유청학동(與趙學士遊靑鶴洞)〉의 시에서 유교의 시관과 자신의 선시관을 비교하여 밝히고 있다.
山僧雲水偈 산승은 운수게를 읊고
學士性情詩 학사는 성정시를 읊네.
同吟題落葉 함께 읊어 낙엽에 쓰노니
風散沒人知 바람에 흩어 아는 사람이 없네.
― 《청허당집》 권1, 〈여조학사유청학동〉
운수게(雲水偈)는 청산백운 속에서 노니는 산승이 읊는 시로 주로 산수자연을 노래한 것이다.
《한산시집》에서 습득은 “내 시는 본래 이러한데, 사람들이 내 시를 게(偈)라고 하나,
시나 게는 원래 같은 것이네(我詩世是詩 有人喚作偈).”라고 하여 자신의 시를 게라고 하였다.
한산시는 선시의 원형이라 할 수 있으니, 운수게는 운수자연 속에서 아무 걸림이 없이 자유롭게 살면서 시의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생각과 감흥이 우러나온 대로 읊는 선시라고 보아도 된다.
휴정은 자신의 시를 운수게라고 선언하였다.
출가자의 시, 선시란 뜻이겠고, 아직 시법에 부족한 ‘게’라고 하는 겸양이라고 볼 수 있다.
조학사의 시는 성정시라고 하였다. 조학사는 유도를 공부하는 선비이며 유교의 시를 성정시라고 하였다.
조선 초기까지는 고려 말기에 들어와 크게 퍼지기 시작한 성리학으로 말미암아
이치를 따지는 송시(宋詩)가 유행했고 북송 소식(蘇軾)의 시가 주로 읽혔다.
당시(唐詩)의 학두풍(學杜風)이 불면서 조선 중기에는 성정(性情)을 즐기는 시풍이 생겨나 시문학이 크게 발전하였다.
성리(性理)란 본래의 이기(理氣)를 곰곰이 챙겨 시문을 꾸미고, 성정은 느껴진 감응을 그대로 읊는 것이니, 주정적(主情的)이다.
이황(1501∼1570)은 다른 성리학자들과는 달리 시가 성정의 바람을 구하는 데 긴요하다는 문학관을 지녀 시작에도 상당히 힘을 기울였다.11) 성정시는 타고난 심성과 정서를 읊는 시이다.
그러나 운수의 노래나 성정을 읊은 시는 본질에 있어서는 같다.
자신의 시적 욕구에 의해서 마음과 생각을 쓰는 점에 있어서 그렇다.
함께 일심(一心)으로 시를 읊어 낙엽에 썼는데 바람이 불어서 흩어져 버렸기 때문에 그 뜻을 아는 사람이 없다.
전구(轉句)과 결구(結句)는 멋진 구이다. 말 밖에 뜻을 부치는 언외지미(言外之味)를 나타내고 있다.
휴정은 〈새서산노인구회(賽西山老人求懷)〉란 시에서 자신의 시론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通經兼達道 경전을 통하고 도를 알았으니
寫字又吟詩 글씨를 쓰고, 또 시를 읊네.
寫字調眞性 글씨를 쓰는 것은 참 성품을 고르게 하고
吟詩記所思 시를 읊은 것은 생각하는 바를 적는 것이네.
― 《청허당집》 권1, 〈새서산노인구회〉
휴정의 시론은 유교의 재도론(載道論)에서 탈피하여, 시를 읊는 이유를 ‘생각하는 바를 읊는다(吟詩記所思)’라고 밝히고 있다.
《우서(虞書)》에 보면 “시는 뜻을 말하는 것이고, 노래는 말을 읊은 것이다(詩言志, 歌詠言).”라고 시와 노래를 구분하여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시서(詩序)》에는 또 “시라는 것은 뜻이 가는 바이다. 마음에 있어서는 뜻이 되고, 말로 나타내어 시가 된다
(詩者, 志之所之也, 在心爲志, 發言爲詩).”고 했다.
휴정은 글씨를 쓰고, 시를 읊는 것을 자성 진심을 밝히는 구도의 방편으로 생각했다. 휴정은 《선가귀감》 서문에서
“오늘날 불교를 배우는 이들이 외우는 것은 세속 선비들의 글이요,
청하여 지니는 것은 벼슬아치들의 시 뿐이다.”라고 한탄하였다.
휴정은 이러한 세태를 아쉬워하며, 선의 경지가 불입문자의 격외도리이지만 불리문자(不離文字)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중생들을 위해
나름대로 심오한 도의 경계를 시로써 나타내려고 하였던 것이다.
〈가도(賈島)〉란 시를 통해 그의 시작 태도를 알아보자.
黑白投身處 출가는 사문이 몸둘 곳이요
推敲着字時 퇴(推)와 고(敲)를 분명히 할 때라.
一生功與業 일생의 공과 업이
可笑苦吟詩 괴로이 시만 읊다니 가소롭구나.
― 《청허당집》 권1, 〈가도〉
출가승이었다가 환속한 시인 가도가 마상(馬上)에서 “조숙지변수(鳥宿池邊樹) 승고월하문(僧敲月下門)”의 시구를 얻어
‘퇴(推)’로 할까, ‘고(敲)’로 할까 골똘히 궁리하다가 문장가였던 한유(韓愈)를 만나 그의 권고로 ‘고’로 했다는 고사를 끌어대어
시를 짓는 데 있어서 성률(聲律)이나 찾는 가도와 같은 무리를 비웃는 시다.
휴정의 시는 시구를 우아하게 하기 위해 글자나 찾는 수고로움보다는 그의 탈속한 오도의 경계를 표현하는 데 있었기 때문에
즉흥적인 시작이면서도 뜻이 깊은 시가 많다.
〈석춘(惜春)〉이란 시와 아울러 〈영회(詠懷)〉라는 시에서 휴정의 시 성격을 엿볼 수 있다.
病在肉團心 모든 병은 마음에 있거니
何勞多集宇 어찌 힘들게 글자만 모을 것이랴.
五言絶句詩 오언절구 한 수면
可寫平生志 평생의 마음을 담을 수 있네.
― 《청허당집》 권1, 〈영회〉
용복사판 《청허당집》 권3은 오언절구만 편집되어 있는데 무려 315수(총 611수)나 된다.
시 한 수에 천하의 이치를 담을 수 있다는 휴정의 기개다. 그래서 그의 시는 생명력이 있고 뜻도 깊다.
오언절구는 평생지(平生志)를 5자로 표상해야 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참신한 재치와 기발한 시상이 전제되기 않고서는 불가하다.
더구나 절구(絶句)는 운율적이기 때문에 재치만으로는 얽어질 수 없다.
휴정의 선시 가운데 최고의 절창은 정여립모역반사건 때 시화(詩禍)의 고초를 겪고 사대부 유생에게까지 알려져 유명했던
〈향로봉시(香爐峯詩)〉이다.
萬國都城如蟻? 만국의 도성은 개미집이요
千秋豪傑若醯鷄 천추의 호걸은 초파리이네.
一窓明月淸虛枕 청허의 베갯머리에 흐르는 달빛
無限松風韻不齊 끝없는 솔바람 소리 가이 없네.
― 이정구 찬, 청허당휴정대사비명, 〈향로봉시〉
〈향로봉시〉는 금강산 향로봉에 올라 대장부의 기개를 읊은 시이다.
두보(杜甫)의 〈망악(望嶽)〉에 “마땅히 산꼭대기에 올라가 보아야지, 뭇 산들이 얼마나 작은지를 볼 수 있다
(會當凌絶頂 一覽衆山小).”의 시구가 있다. 모든 산이 작은 것을 보려면 태산에 올라가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붕(大鵬)의 눈으로 보면 인간세상이 작게 보이고, 어린아이의 손꼽장난으로 보일 것이다.
휴정은 세상을 구제해 보려고 승과에 응시하여 급제하였고, 승직의 최고 직위인 양종판사까지 하였다.
38세, 한창 능력을 발휘해 볼 만한 나이에 판사직을 사임하고 금강산 미륵봉 아래서 홀로 지내면서
〈금강산미륵봉우음(金剛山彌勒峰偶吟)〉 시를 함께 지었다.
조정의 관리들은 나라의 평안과 백성들을 잘 살게 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들의 부귀와 안전을 위해 패거리를 지어
서로 모함하고 싸웠다.
불교부흥에 대한 좌절과 패배의식으로 휴정은 깊은 산사로 몸을 숨겼다.
천하 명산 금강산에서 한가하게 어제의 일들을 생각하니 허망하고 부질없는 일임을 새삼 깨달았다.
동서고금에 어떤 시인이 임금이 계신 도성을 개미집 같고, 천추의 영웅호걸을 초파리와 같다고 시로 읊은 일이 있는가.
이것이 불씨가 되어 역모에 무고되어 선조의 국문을 받게 되었다.
서애(西涯)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은 휴정의 시가 훌륭하다고 평하면서 〈향로봉시〉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요즘의 승려들 가운데 휴정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선가의 학문을 매우 깊게 알므로 승려들 가운데서도 이름이 났다.
또한 시를 좋아하며, 스스로 청허자(淸虛子)라고 불렀다. 일찍이 향산(香山)에 있으면서 다음의 절구(絶句, 향로봉시)를 지었다.
…… 사물세계 밖으로 높이 뛰어 올라가서 티끌 세상을 내려다보는 뜻이 있으므로, 또한 한때 뜻에 맞았던 작품이다.
서애는 시의 뜻을 이렇게 논하였다.
“나는 시에는 능하지 않지만 대략 시의 뜻은 안다. 대개 시는 맑으며 멀고도 깊음으로써 말 밖에다 뜻을 부치는 것이 귀하게 여긴다.
그렇지 않으면 겨우 진부한 말이 될 뿐이다.”
서애는 시평만 잘한 것이 아니라, 그의 시가 힘이 있어서 세상에 그와 견줄 만한 사람이 없다고 평가받았다.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대가인 서애의 〈향로봉시〉 시평은 휴정의 시에 대한 선조 임금의 마음을 바꿔 놓게 되었고,
오히려 묵죽시(墨竹詩)를 하사하게 된 것이다.
1589년 정여립사건에 휴정이 연루되었을 때 서애 유성룡은 대제학에 대사헌을 거쳐 병조판서·지중추부사·예조와 이조판서에 있다가
1590년 우의정이 되었으니, 휴정의 〈향로봉시〉에 대한 선조의 하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향로봉시〉는 함련(?聯)과 미련(尾聯)으로 이루어진 칠언절구로 운(韻)도 잘 맞고, 대장(對仗)도 이루고 있는 당시(唐詩)에 비견해도
손색이 없는 명품이다.
‘만국’과 ‘천추’는 공간과 시간을 나타내며 대구를 이루고,
‘도성’과 ‘호걸’은 공간적 환경과 그곳에 사는 사람의 뜻으로 대구를 이루고, ‘여의질’과 ‘약초계’도 대구를 이루고 있다.
‘계’와 ‘제’로 압운하였다.
‘청허침(淸虛枕)’의 ‘청허’는 휴정의 자호이다.
바람 소리는 길게 불기도 하고, 짧게 불기도 한다. 가락이 같지 않다.
세상과 자연의 이치를 솔바람 소리로 깨달을 수 있음을 상징하여 읊고 있다.
〈금강산미륵봉우음(金剛山彌勒峯偶吟)〉을 분석해 보면서 휴정이 시를 지을 때 시의 엄격한 율법에 맞추어 지었는지를 알아보자.
坐斷諸人不斷頂 만인이 못 끊는 분별심을 앉아서 끊으니
許多生滅竟安歸 하고 많은 생멸이 마침내 어디로 갔는가.
飛塵鎖隙安禪久 참선이 익으니 나는 티끌이 틈을 막았고
碧草連階出院稀 외출이 드무니 푸른 풀이 층계까지 이어졌네.
天地豈能籠大用 천지가 어찌 대용을 가두겠는가
鬼神無處覓玄機 귀신도 현기를 찾을 곳이 없네.
誰知一衲千瘡裏 뉘라서 알 거요, 헤진 누더기 속에
三足金烏半夜飛 세 발의 금까마귀가 밤중에 나는 줄을
― 《청허당집》 권1, 〈금강산미륵봉우음〉
〈금강산미륵봉우음〉은 칠언율시이다.
‘단(斷, 측성)’과 ‘다(多, 평성)’가 대(對)를 이루고, ‘다(多)’와 ‘진(塵)’은 모두 평성(平聲)으로 점을 이루고,
‘진(塵, 평성)’과 ‘초(草, 측성)’는 대를 이루고, ‘초(草, 측성)’와 ‘지(地, 평성)’도 대를 이루고,
‘신(神)’과 ‘지(知)’는 모두 평성이므로 점을 이루고, ‘지(知, 평성)’와 ‘족(足, 측성)’이므로 대를 이룬다.
‘귀(歸)’ ‘희(稀)’ ‘기(機)’ ‘비(飛)’는 모두 평성운으로 압운하였다.
함련(?聯)과 경련(頸聯)에서 앞뒤 시구가 대장(對仗)을 이루고 있다.
예를 들면 ‘비진(飛塵)’과 ‘벽초(碧草)’가 대구(對句)를 이루고, ‘선구(禪久)’와 ‘원희(院稀)’가 대장을 이루고 있다.
‘천지(天地)’와 ‘귀신(鬼神)’이, ‘기능(豈能)’과 ‘무처(無處)’가 대구를 이루고, ‘농(籠)’와 ‘멱(覓)’이 대구를 이루고,
‘대용(大用)’과 ‘현기(玄機)’가 대장을 이루고 있다.
〈금강산미륵봉우음〉은 시운(詩韻), 대구(對句), 대장(對仗), 점대(點對) 등 시의 율격을 엄격히 갖추고서도,
내용 또한 깊은 선지를 함축하고, 가슴 속에 해를 머금은 웅건한 기운이 잘 드러난 대단히 훌륭한 시이다.
“출가 사문이 헤진 누더기 옷 속에 붉은 해를 한 밤중에 품고 다닌다(誰知一衲千瘡裏 三足金烏半夜飛).”는 대단한 도력과 호방한 기상을
나타낸다.
해가 임금을 비유할 때는 임금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뜻이 되어 역모에 연루되어 시화(詩禍)을 당하게 된 시다.
이 시의 미련은 법륜상전하여 자혜광명으로 온 천하를 태양처럼 환하게 밝히겠다는 휴정의 홍원심(弘願心)이라고 봐야 하겠다.
휴정은 시론(詩論)이나 시율법(詩律法)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일부러 시에서 성률(聲律)이나 대구(對句)를 이루기 위해서 고심하지 않았지만 그의 선시 대부분은 기본적인 시율을 지키고 있다.
이런 점에서 그가 조선의 선시를 한 차원 높인 시승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휴정의 선시 가운데 앞에서 살펴본 〈향로봉시〉 〈금강산미륵봉우음〉 외에도 대장부의 호연지기를 읊은 시로 〈망고대(望高臺)〉
〈상옥계(上玉溪)〉가 있다.
獨立高峯頂 높은 봉우리에 홀로 서니
長天鳥去來 장천에 새만 오락가락.
望中秋色遠 눈길 닿는 곳 아득한 가을 빛
滄海小於盃 잔(盞)보다 작은 푸른 바다.
― 《청허당집》 권1, 〈망고대〉
逆族駒陰裏 빠른 세월 속에 나그네 되어
何人歸去來 누군들 돌아가지 않을 이 있나.
閑窓一睡覺 조용한 창가 한가로운 꿈을 깨니
可散萬封侯 만호를 거느리는 왕후가 부럽지 않네.
― 《청허당집》 권1, 〈상옥계〉
〈망고대〉는 휴정이 금강산 망고대에 올라가 절경을 읊은 시이다. 두보의 〈망악(望嶽)〉이 연상되는 시다.
산정상에 올라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끝없는 창해다. 시인은 창해를 잔보다도 작다고 읊고 있다.
휴정의 시 특성은 시 속에 대장부의 기개가 넘치고 탈속한 고고함이 있다.
〈상옥계〉는 정옥계(鄭玉溪)에게 올리는 시다.
정옥계는 사대부로 높은 관직에 있었던 휴정과 동갑 나이의 친구이다.
《청허당집》에 가장 많은 편지와 시를 주고받은 지우(知友)이다.
편지의 내용에 휴정을 물질적으로 많이 도와준 사람이다.
이백(李白)의 글에 ‘천지는 만물의 역려(逆旅)다’고 하였는데, 역려는 나그네가 잠시 쉬었다 가는 여관이다.
‘구음(駒陰)’은 광음의 뜻이다.
《사기》에 “사람이 한 세상 사는 것이 흰 망아지가 틈 사이를 지나가는 것처럼 빠르다(白駒過隙).”라 했는데,
이 흰 망아지는 햇빛을 뜻한다.
인생이 광음처럼 짧다는 뜻이다.
그러나 대몽(大夢)에서 깨어나, 깨달음을 얻고 나니 천자가 부럽지 않다고 친구 옥계자(玉溪子)에게 자신의 오도의 경계를 보인 시이다.
인생을 꿈으로 인식한 것은 불교뿐만 아니라 《장자》에서도 인생을 대몽에 비유하고 있다. 휴정의 시에 장자풍의 시가 많다.
인구회자하는 〈삼몽사(三夢詞)〉에 대하여 살펴보자.
主人夢說客 주인은 나그네에게 꿈 이야기하고
客夢說主人 나그네도 주인에게 꿈 이야기하네.
今說二夢客 지금 꿈 이야기하는 두 나그네
亦是夢中人 또한 꿈 속의 사람이네.
― 《청허당집》 권1, 〈삼몽사〉
〈삼몽사〉는 《청허당집》 권2 〈재답완산노부윤서(再答完山盧府尹書)〉의 끝부분에 나오는데,
휴정이 노수신(盧守愼)에게 자신의 일생의 행적을 적은 ‘삼몽록(三夢錄)’을 지어 바치면서 또 다시 이것을 시로 읊어
〈삼몽사〉를 바친다고 하였다.
‘삼몽록’이 대략 56세 이전의 기록이므로 〈삼몽사〉도 이때 지은 시라고 볼 수 있다.
노산(鷺山) 이은상(李殷相)은 〈서산의 문학〉에서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인세를 꿈으로 본 시가가 고래로 얼마나 많은지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어렵지마는 휴정의 20자(三夢詞)를 넘어설 작품을 없을 것이다.”
〈삼몽사〉는 오언고시(五言古詩)다.
조선 후기 선사들의 시문집에 나타난 공통점은 대부분이 유생 사대부가 문집의 서문과 발문을 썼다는 점과
시를 통해서 석학고유(碩學高儒)와 선장고승(禪匠高僧)들이 교류를 하였다는 것이다.
휴정의 시에 대하여 사대부 시장(詩匠)들의 찬사는 대단하였다.
《청허당집》 서문에서 허균의 휴정시에 대한 평은 다음과 같다.
대사는 청소년 시절에 유가의 학술을 습득하여 이미 대의를 통달했고, 써 낸 문장은 내용과 형식면에서 훌륭하였다.
…… 도는 앞의 기연(機緣)을 밝혔고, 사색은 초매(超邁)하여 본보기가 되었으며, 도리에 도달하여 간결하게 풀이할 줄 알았다.
이리하여 달마 대사(達磨大師)나 혜능(慧能)의 법맥을 직접 이어받아 불심과 불성을 풀이하였다.
훌륭하여 남악(南嶽), 영가(永嘉), 백장(百丈), 남전(南泉)과 비견할 수 있었다.
다음은 《청허당집》(龍復寺版本)의 서문에 나타난 이식(李植)의 평을 살펴보자.
내가 일찍이 이 책을 한 번 읽어 보고 느낀 바가 있었다. 그 언어는 심오하면서도 말없이 약속해 주는 듯했다.
성율(聲律)에 구애받지 않았고, 잡다한 나열이 없는 반면에 그 의취가 초연하고 법어의 기봉(機鋒)이 날카롭다.
흩뿌려 쓴 서법의 필치는 상등(上等)이어서 관휴(貫休)나 광선(廣宣)은 거기에 비길 수도 없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읊은 시문을 시인묵객들에게 보여 추고(推敲)를 더 알뜰히 하였다.
옛 사람들은 꼭 먼저 쓸 내용이 있어야 후에 글을 썼다.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가 〈회양표훈사백화암휴정대사비문〉에서 휴정의 시를 평한 내용을 살펴보자.
스님의 유고(遺稿)에 대해서는 내가 이미 완미(玩味)하고 또한 읽어 보았다.
시를 읽어 보았으므로 족히 스님께서 자득한 취지를 알 수 있으며,
글을 읽어 보았으므로 넉넉히 스님의 조예 경지가 높음을 짐작할 수 있다.
비록 문장 중 어세가 간혹 아순(雅馴)치 않은 부분이 있으나 언언(言言)이 모두 살아 있으며,
구구(句句)가 날아 움직이고 있어, 마치 고검이 칼집에서 나온 것과 같고,
상풍이 불어오매 왕왕 살결을 오려 내는 듯 혹독한 추위와 같음을 느낀다.
……제불제조 마음 달을 거듭 비추어 중생들의 번뇌망상 녹여 주셨네.
참선하는 여가시간 선시를 읊어 시의 명성 널리 퍼져 왕께 들렸네.
선조대왕 시를 보고 감탄하고서 내려 주신 그 은총은 길이 빛나다.
장유가 〈해남대흥사청허대사비문〉에서 휴정의 시에 대하여 평한 내용을 알아보자.
스님의 시와 게는 매우 상매(爽邁)하고 낭철하여 세상을 경책하는 말씀이 적지 않았다.
그리고 필적은 소략(?略)하고 경직(勁直)하여 운치가 있었다.
장유는 〈운곡시고소서(雲谷詩稿小序)〉에서 “우리 해동에 전대 많은 시승이 있었으나 근래에 와서 모두 몰락하였고,
서산과 송운이 놀던 때가 있었다.”라고 하여 휴정과 사명을 동국의 최고 시승으로 꼽았다.
서애 유성룡(1542∼1607)은 《서애별집》에서 휴정이 시명을 얻었음을 밝히고, 〈향로봉시〉 전문을 소개하며 간략하게 평하였다.
요즘의 승려들 가운데 휴정이 있는데 선가의 학문에 매우 깊게 통달하여 승려들 가운데서도 이름이 났다.
또한 시를 좋아하며, 스스로 청허자라고 불렀다. 향산에 있으면서 절구(등향노봉)를 지었다.
이수광(李쓱光)은 《지봉류설》에서 휴정의 시를 “스님의 시는 선승에 머물지 않고 사직을 생각하는 마음이 유달리 깊었다.
또 벗을 생각하는 마음이 마치 노부가 자식을 대하듯 자상한 바가 있었다.”고 평하였다.
이와 같이 휴정의 시에 대하여 찬사를 보낸 이정구, 허균, 장유, 유성룡, 이우신, 이은상 등은 당대 시단의 문병을 쥔 사람들이다.
또한 휴정과 교류를 하였던 허균, 이황, 조식, 노수신, 박순, 박계현, 양사언, 소세양 등 또한 문형이었거나
문장과 시문으로 이름이 난 사람들이다.
휴정은 이들과의 유불교류를 통해서 시 창작을 연마하고 시학을 상호 탁마했다.
뿐만 아니라 사대부들에게 금기시되었던 불교 선사상을 전해줌으로써 시선일여의 선시풍을 이해할 수 있도록 영향을 주었다.
휴정은 중국 당송시대의 대가들의 시풍을 수용하여 조선 선시의 시풍을 정립하였다.
휴정의 선시는 왕유의 시중유화(詩中有畵) 시풍에 영향을 받았는데, 이는 그의 산거운수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성이다.
그의 《청허당집》에 나타난 시어를 조사해 보면 ‘산(山)’(226회), ‘달(月)’(180회), ‘하늘(天)’(215회), ‘구름(雲)’(175회),
‘물(水)’(74회), ‘비(雨)’(59회), ‘바람(風)’(71회)의 산수 자연을 소재로 하여 시 속에 선의 묘오경지를 담았다.
휴정의 제자인 사명, 편양, 소요 등은 불교 교단의 지도자였을 뿐만 아니라 휴정의 선시를 수용하여 훌륭한 선시를 창작하였으며,
시문집을 발간하였다.
휴정의 선시는 조선 말기의 시승 초의에게도 영향을 주었고, 일제시대 때 3·1운동을 주도하고 시집 《님의 침묵》으로
한국 현대시의 선구자가 된 만해 한용운의 선시에도 영향을 주었다. 만해는 한시에서 현대시로 넘어오는 교량적 역할을 한 시승이다.
선의 돈오적 사유방식은 시 창작에 있어서 번득이는 영감을 제공해 준다.
휴정의 선시문학은 선이 시로써 문학이 되었고, 시가 선으로써 사상과 깊이를 더하여 지고한 시 세계를 펼쳐 내어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그의 선시는 또한 여타의 시승과는 달리 시의 운율과 평측, 대구에 있어 유가시인들에게 뒤지지 않는 격조 높은 시가 많다.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한국 한시사에서 휴정만큼 찬사를 받은 시승도 드물다.
휴정의 시에는 당시(唐詩)에 뒤지지 않는 명시가 많다. 선가뿐만 아니라, 한시단의 사대부들에까지도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던 사실과,
일본에서도 《청허당집》과 《선가귀감》이 수차례 간행되어 유통되었던 점으로 보아 휴정의 시는 한국 한시사에서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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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중
문학박사. 전국교법사단장. 명성여고 교법사.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졸업. 동대학원 석사. 중국연변대학교 문학박사. 저서로
《휴정의 선시연구》 《시로 읽는 서산대사》 《불교를 찾아가는 길》 《석가모니 생애와 가르침》 《한글세대를 위한 한자 공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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