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머튼, 장자의 道》

2010. 11. 24. 17:22책 · 펌글 · 자료/인문 · 철학 · 과학

 

 

 

 

'장자(莊子)의 詩는 하루에 아무리 많아도 두 편 이상 읽지를 못합니다.

 비타민을 먹을 때처럼 그저 하루에 한 편 내지 많아야 두 편을 읽는 것이 적당합니다.'

 

 

 

 

1.

 

"한 알의 밀알이 죽지 않으면 새싹은 돋지 않는다."는 말은 동서양의 진리입니다.

죽음이 부활이고, 죽지 않으면 생명의 순환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죽음을 멀리하고 불길하게 여깁니다.

이것이 니체가 말한 비극의 시작은 아닌가요?

아폴로 신의 밝음은 언제나 디오니소스의 어둠과 도취와 쾌락을 덮는 얇은 이불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밝음과 빛, 나비만을 좆고 그 이면인 어둔과 그늘, 텅 빈 공간을 피합니다.

이것이 내가 옳고 네가 그르다고 다투는 모든 분쟁의 원인이지요.

위대한 지식은 죽음과 삶이 한 짝이라는 것을 알고, 반대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하나의 고리로 묶여있음을 아는 지혜입니다.

작용은 하는데 형태가 없는 것, 이것을 아는 것이 큰 지식입니다.

 

 

 

 

 

 

2.

 

문혜군(問惠君)의 요리사가 황소 한 마리를 칼질했다.

손을 내뻗고, 어깨를 구부리고, 한 발은 내딛고, 한쪽 무릎을 굽히면

스르륵 스르륵 고깃덩이가 떨어져나갔다.

뻔쩍이는 칼날에 스치는 소리가 부드러운 바람과 같았다.

리듬, 박자, 뽕나무 숲의 거룩한 춤처럼, 요 임금 때의 율동처럼!

 

"훌륭하구나!" "너의 기술은 완벽하다!"

문혜군은 감탄했다.

 

 

 

요리사가 칼을 옆에 놓으며 대답했다.

기술이라니요? 저는 기술을 넘어 道를 따르는 것뿐입니다.

맨 처음 소에게 칼을 댈 때는 온통 뼈와 살로 된 한 덩어리로 보였지요.

삼 년이 지난 후 소는 더 이상 한 덩어리가 아니라 뼈와 살로 분리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눈으로 소를 보지 않습니다.

내 존재 전체로 소를 파악합니다.

내 감각은 느슨하지요.

정신은 그 자체의 본능을 따를 뿐,

아무런 의도 없이 자유롭게 움직입니다.

자연스런 선과 비밀스런 구멍, 숨은 공간으로 인도되어,

제 칼은 스스로 길을 알아냅니다.

소의 관절을 자르지도 뼈를 자르지도 않습니다.

 

뛰어난 요리사는 일년에 단 한 번 칼을 바꾸는데

그건 살을 자르기 때문이요,

서툰 요리사는 매달 새 칼로 바꾸는데

그건 뼈를 다치게 하기 때문이지요!

 

저는 지난 19년간 이 칼 하나로 수천 마리 소를 잡았습니다.

그런데도 칼날은 방금 숫돌에 간 것처럼 날카롭지요.

 

뼈의 이음새마다 빈틈이 있고, 칼날은 날카로우니,

칼의 예리한 날이 그 틈새를 발견하면

그 공간은 자연 넉넉하게 넓습니다.

칼날은 마치 산들바람처럼 뼈와 살의 틈새에서 움직여 나갑니다.

그러니 19년을 사용했지만 방금 새로 간 것 같을 수밖에요!

 

가끔 단단하게 엉긴 이음새들이 있고

그런게 느껴지면 뒤로 물러나 속도를 늦추고 면밀히 지켜보며

칼을 거의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고 나면 어느 순간 '쩍'하며

소의 살점들이 흙덩어리처럼 분리돼 나가지요.

 

그러면 저는 칼을 거두고 가만히 서서 흐뭇한 마음으로

칼을 닦아 갈무리합니다.

 

 

 

문혜군이 말했다.

"바로 그것이야!" "내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알려주었어,

내 자신의 삶 말이아!"

 

 

 

 

 

 

3.

 

외다리 남자는 남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정치를 하다가 다리를 잃었고,

늪의 꿩은 비록 작은 벌레를 잡아먹느라 고달프지만 자유롭고 행복합니다.

닭은 주인이 주는 모이를 받아먹지만, 닭장에 갇혀 살아야 하고,

꿩은 스스로 먹이를 찾지만 자유롭습니다.

 

작은 것이 자유롭습니다.

어떤 직업이든 그 직업의 비중이 자기 자신보다 커지면 직업의 노예가 됩니다.

정치가, 학자, 예술가들 가운데 이름을 떨치게 되면 그 명성과 일 때문에

삶의 중요한 부분을 희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야망은 필요하지만 자신의 존재보다는 작아야 합니다.

자연의 모든 생물이 神보다 작을 때 우리는 신의 보호를 받습니다.

거두어들이지 않아도, 씨를 뿌리지 않아도 살아가는 많은 생물들이 그렇습니다.

가장 자유로운 삶은 큰 삶이 아니라 작은 삶입니다.

몸에 지닌 보석이 가벼울수록 자유롭고, 등에 진 짐이 가벼울수록 멀리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 우리는 세상을 짊어지려고까지 착각을 합니다.

 

 

 

 

 

4.

 

"조용히 서서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흙을 묻히지 않고 걸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창문을 보아라. 비록 벽에 뚫린 구멍은 한 개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 때문에 방 전체가 환하지 않느냐?

빛이 가득 차면 그것은 드러나지 않게 남을 변화시키는 힘이 되는 것이다."

 

                                                                    孔子

 

 

 

 

5.

 

무위(無爲)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느 한쪽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주인과 하인의 변증법을 제안한 헤겔은 이런 의미에서 무위를 깨달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삶을 일컬어 죽음에 종속된 하인이라 했습니다.

죽음에 대한 충동을 삶의 에너지로 보았던 프로이드와 라캉 역시 죽음을 삶의 주인이라 믿었습니다.

무위는 어둠과 밝음, 죽음과 삶이 함께 자리하는 것입니다.

하루가 낮과 밤으로 나뉘듯이 삶에는 이면이 있습니다.

어느 한 사람을 지나치게 미워하는 것도, 지나치게 사랑하는 것도 무위가 아닙니다.

연인을 위해서 사랑한다는 생각을 버릴때, 진정으로 연인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사랑과 증오가 겹쳐 자신도 괴롭고 연인도 괴롭힙니다.

무위는 세상 모든 이치를 상반되는 것에서 찾고,

유가 무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아 삶의 균형을 취하는 도리입니다.

한 사회를 획일적인 색깔로 만들면 결국 그 사회는 멈추게 됩니다.

산다는 것은 몸 안의 피가 정상적으로 순환하는 것입니다.

만일 오른쪽과 왼쪽이 서로 다른 면이 없다면 피는 순환하지 못하고 멈춥니다.

세상의 피를 제대로 돌게 하는 것이 무위입니다.

또 그것이 공격과 집착에서 해방되는 길입니다.

 

혼돈을 인정하지 않으면 나치즘과 같은 파시즘을 낳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노자가 말한 '조직하는 것이 파괴하는 것이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6.

 

지갑을 훔치고, 가방을 뒤지고, 금고를 터는 도둑을 막기 위해

사람들은 모든 재산을 밧줄로 묶고, 자물쇠로 잠그고, 빗장을 지른다.

이것은 기본적인 대비책이다.

그러나 큰 도둑은 물건을 통째로 들고 달아난다.

금고를 등에 지고 길을 가면서 오히려 자물쇠나 빗장이 열리지나 않을까 걱정한다.

그러므로 세상이 '슬기'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약탈물을 모아 하나로 묶고, 편리하고 안전하게 꾸려서,

더 뛰어난 도둑에게 주는 것뿐이다.

큰 도둑을 위해 약탈물을 쌓아놓느라고 애를 쓰는 셈이다.

 

제나라 땅에는 마을과 마을이 서로 이어져

닭 울음소리와 개 짖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어부는 그물을 던지고 농부는 쟁기로 넓은 들을 갈았다.

사방 이천여 리 나라 안에는 조상을 위한 사원이 있었고

현, 군, 지역들은 모두 법과 규칙에 의해 다스려졌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법무장관인 전성자가 왕을 없애고 나라를 차지하였다.

전성자는 법과 규칙도 없애버리고 경찰과 법관을 지배했다.

모조리 꾸러미의 약탈물이 된 것이다.

물론 사람들은 전성자를 약탈자라 불렀지만

별 수 없이 그를 대왕으로 모셨다.

그에게 말 한 마디 거슬리게 하는 나라도 없었다.

그래서 12대 동안 제나라는 그의 가문의 것이었다.

아무도 그가 차지한 권력을 간섭하지 못했다.

 

저울과 잣대의 발명은 도둑질을 쉽게 만들고,

서류에 서명하고 도장을 찍는 것은 도둑질을 보증한다.

사랑과 의무를 가르치면 그 말을 잘 엮어서 도둑질이 모두를 위해 좋은 일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에 쓴다.

가난한 사람이 허리띠를 훔치면 교수형을 당하지만

부자가 나라를 몽땅 훔치면 당대의 정치가가 된다.

 

모든 사람들을 한 줄로 세우려고 윤리적 원칙들과 책임과 의무를 쌓으면 쌓을수록

전성자와 같은 도둑을 위한 약탈물을 모으는 셈이 된다.

 

 

 

 

 

7.

 

지상에서 삶이 충만했을 때는 아무도 가치있는 사람이 되라고 하지 않았고,

아무도 능력 있는 사람을 가려내지 않았다.

왕은 그저 높이 달린 나뭇가지였고 백성은 숲에서 뛰노는 사슴이었다.

그들은 정직하고 의로웠지만 '임무를 다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고,

서로 사랑하면서도 그것이 '이웃사랑'인 것을 몰랐다.

그들은 아무도 속이지 않았지만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몰랐고,

서로 믿고 살면서도 '훌륭한 믿음'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들은 서로 주고받으며 살았지마 그들이 너그럽다는 것을 몰랐다.

이런 이유로 해서 그들의 행위는 기록되지 않았고,

그래서 그들에게는 역사가 없었다.

 

 

 

 

 

8.

 

뱃속에 든 장기들은 오물을 만들어내는 기관들입니다.

그런데 우리 머릿속마저 질투와 증오, 후회로 가득 찬다면

우리 몸에서 볼 곳은 정말 없지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활을 쏘면 재능을 한껏 발휘하지만

놋쇠고리를 바라고 쏘면 이미 긴장한다.

금상을 걸고 활을 쏘면 눈이 흐려져 과녁이 두 개로 보이니

이미 제정신이 아니다. 

 

 

 

 

 

9.

 

 

도(道)

 

 

닭이 울고,개가 짖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가장 현명한 사람도 이 소리들이 어디에서 오는지 말할 수 없고,

왜 짖고 왜 우는지, 왜 꼭 그때인지 설명하지 못한다.

 

작은 것 가운데 가장 작은 것 너머를 우리는 잴 수 없고,

큰 것 가운데 가장 큰 것 너머를 우리는 잴 수 없다.

 

잴 수 없는 곳에 '사물'은 없다.

이 텅 빔 속에서 '원인'에 대해, 또는 '우연'에 대해 말할 수 있는가?

당신은 '삼ㄹ이 아닌 곳'에서 '사물'에 대해 말한다.

이름을 부르는 것은 '사물'을 한정짓는 것이다.

시작의 너머를 바라보아도 잴 수 없고,

끝의 너머를 바라보아도 잴 수 없다.

잴 수 없는 곳에는 '사물'의 시작도 없다.

당신은 '원인'과 '우연'에 대해 말하는가?

어떤 '사물'의 시작에 대해 말하는가?

 

도(道)는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존재하는 사물'인가?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그렇다면 '존재할 수 없는' '존재하는 사물'이 있는가?

 

도(道)를 부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부르는 것이다.

도(道)는 '어떤 존재'의 이름이 아니다.

'원인'과 '우연'은 도(道)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도(道)는 규정하지 않으며 지시하는 이름이다.

 

도(道)는 사물 너머 단어 너머에 있다.

그것은 단어로, 그렇다고 침묵으로도, 표현될 수 없다.

도(道)는 더 이상 말도 침묵도 없는 곳에서 이해된다.

 

 

 

 

 

10.

 

장자가 숨을 거두려 할 때, 제자들이 화려한 장례식을 준비하려 했다.

그러자 장자가 말했다.

 

"하늘과 땅이 나의 관이요, 해와 달이 내 옆에서 짤랑대는 구슬이고,

행성과 별자리들이 내 주위에서 반짝이는 보석들이며,

만물이 밤을 새워 나를 애도할텐데

무엇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모든게 넘치게 준비되어 있구나!"

 

그러자 제자들이 제자들이 말했다.

"스승님이 까마귀나 솔개에게 먹히면 안되지요."

 

장자가 대답했다.

"그런가? 땅 위에 놓아두면 까마귀나 솔개가 먹을 것이요,

땅 밑에 누우면 개미나 벌레가 먹을 것이다.

어느쪽이든 먹힐텐데,

너희들은 왜 새들에게 더 인색한가?"

 

 

 

 

.

.

 

 

 

 

저는 노자나 장자를 읽다보면 자꾸 불교의 부분집합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솔직히 크게 흥미를 느끼지를 못하겠습니다.

처음에는 예문으로 든 우화가 기발하고 재밌어서 읽게는 되는데, 

몇 줄 안 읽으면 바로 불교에서 늘상 하는 얘기로구나, 하게 됩니다.

제가 건방을 떠는 것이 아니라 불교를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저와 같은 느낌일 겁니다.

노자·장자의 얘기인즉도, '명예도 권력도, 지식이나 발전도 다 부질없다' '공즉시색 색즉시공이다' 

다시 말해서 '무위자연'사상이란 것이 '깨쳐서 참자유를 얻어라, 해탈해라' 나 같은 얘기 거든요.

불교는 이후에 교세에 힘입어서 이론이 훨씬 정교해지기도 했고, 또는 신앙을 빙자해서 왜곡된 점도 있을 겁니다만....

 

노자의 도교가  불교에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데, 맞는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노자 老자(병)Laozi(웨)Laotzu.

?~?

BC 6세기경에 활동한 중국 제자백가 가운데 하나인 도가(道家)의 창시자.

 
성(姓)은 이(李), 이름은 이(耳), 자는 백양(伯陽),또는 담(聃). 노군(老君) 또는 태상노군(太上老君)으로 신성화되었다.

도교경전인 〈도덕경 道德經〉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현대 학자들은 〈도덕경〉이 한 사람의 손에 의해 저술되었을 가능성은 받아들이지 않으나,

도교가 불교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통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노자는 유가에서는 철학자로, 일부 평민들 사이에서는 성인 또는 신으로, 당(唐)에서는 황실의 조상으로 숭배되었다.

 

생애

 

노자는 그 역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신원이 자세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생애에 대한 주된 정보원은 사마천이 쓴〈사기〉의 老子傳이다.

그러나 BC 100년경에〈사기〉를 저술한 이 역사가도 노자에 대한 확실한 정보는 제공하지 못했다.

<사기>에 따르면, 노자는 초(楚)나라 사람으로 주(周:BC 1111경~255) 수장실(守藏室)의 史官이었다.

사관은 오늘날 '역사가'를 의미하지만, 고대 중국에서는 천문·점성·성전(聖典)을 전담하는 학자였다.

사마천은 노자의 벼슬에 대해 언급하고 난 뒤,

늙은 노자와 젊은 공자(孔子:BC 551~479)와의 유명한 만남에 대해 말했다.

이 만남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많은 논의가 있어왔다.

이 만남은 다른 문헌에서도 언급되어 있으나, 일관성이 없고 모순되는 점이 많아 단지 전설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진다.

노자와 공자가 만났을 때 노자는 공자의 오만과 야망을 질책했고,

공자는 그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아 그를 구름과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용에 비유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 못지않게 유명한 전설은 노자가 서쪽으로 사라진 이야기이다.

그는 주가 쇠망해가는 것을 보고는 주를 떠나 진(秦)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함곡관에 이르렀다.

관문지기 윤희(尹喜)가 노자에게 책을 하나 써달라고 간청했다.

이에 노자는 5,000언(言)으로 이루어진 상편·하편의 저서를 남겼는데 그것이 도(道)와 덕(德)의 뜻을 말한 <도덕경>이다.

그리고 나서 노자는 그곳을 훌쩍 떠났고, "아무도 그뒤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라고 사마천은 기술하고 있다.

노자가 서쪽으로 간 사실과〈도덕경〉을 저술한 점을 언급한 뒤에

사마천은 가끔 노자와 동일시되는 다른 인물들에 대해 말했다.

"초(楚)에 노래자(老萊子)라는 사람이 있어서 책 15권을 저술하여 도가의 정신에 대해 서술한 바 있는데

공자와 같은 때의 사람이다."

"주나라의 태사(太史)이며 위대한 점성술가인 담(儋)이 진(秦:BC 384~362)의 헌공(獻公)을 만났다는 기록이 있는데,

어떤 이는 그가 곧 노자라고 하고 어떤 이는 아니라고 한다."

사마천은 또 이렇게 덧붙였다. "노자는 150년의 수명을 누렸다고 하는데 어떤 사람은 200년 이상 살았을 것이라고 한다."

고대 중국인들은 초인(超人)의 장수를 믿었기 때문에 도교 신자들은 그들의 스승이 매우 오래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훨씬 뒤에 생겨난 전통으로 여겨지는데,

그 근거로는 BC 4세기경에 활약했던 장자(莊子)가 노자의 죽음에 대해 얘기할 때 그가 아주 오래 살았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노자의 생애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유로 사마천은 그가 은군자였음을 들었다.

은군자인 노자는 작위(作爲)함이 없이 저절로 교화되게 하고, 맑고 고요하게 있으면서 저절로 바르게 되는 것을 가르쳤다.

실제로 중국 역사상 속세를 떠난 은자는 늘 있어왔다.

〈도덕경〉의 저자(또는 저자들)는 생애의 흔적을 남기지 않은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노자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인가 하는 의문은 많은 학자들이 제기해온 것이지만, 그같은 의문은 별 의미가 없다.

현존하는 〈도덕경〉은 1명의 저작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 내용 가운데는 공자 시대의 것도 있지만 다른 내용은 훨씬 후대의 것임이 분명하므로,

이 책은 전체적으로 보아 BC 300년경에 씌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같은 사실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도덕경〉의 저자가 태사 담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학자들은〈사기〉에 나오는 노자의 후손들에 대한 기술이 신빙성있다고 보고

노자의 생애가 BC 4세기말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노자의 가계(家系)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간주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사마천이 살았던 시대에 이(李)라는 가문이 스스로 도교의 성현인 노자의 후예라고 주장했다는 사실이 있었음을

증명해줄 뿐이다. 이러한 사실은 노자가 실제로 존재했었는가를 조사하는 출발점이 될 수 없다.

노자라는 이름은 어떤 개인보다 특정형태의 성인집단(聖人集團)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진다.

 

성인으로서의 전설

 

〈사기〉의 노자전과 기타 오래된 문헌에서 이따금씩 나오는 기술을 제외하고도

2세기 이후부터는 노자에 대한 성인전(聖人傳)이 여러 편 저술되었다. 이같은 전기는 도교의 형성사에서 흥미로운 것이다.

후한(後漢:25~220)시대에 노자는 이미 신화적인 인물이 되어 사람들의 숭배를 받았고 때로는 황제도 그를 숭배했다.

그뒤 종교계에서 성전(聖典)의 계시자이며 인류의 구세주인 노군(老君)으로 추앙되었다.

노자의 출생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그 가운데 부처의 기적적인 탄생신화에 영향을 받은 것이 있다.

노자의 어머니는 노자를 72년간 임신하고 있었고, 노자는 어머니의 옆구리를 통해 이세상에 나왔다고 한다.

또다른 신화는 노자의 성(姓)이 생겨난 유래를 설명한다.

노자는 오얏나무[李木] 아래에서 탄생했기 때문에 오얏을 의미하는 이(李)가 성이 되었다고 한다.

이 두 신화는 도교신앙에서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첫번째 신화에 따르면 노자는 역사상 여러 명의 다른 인물이 되어 지상에 내려와 통치자들에게 도교의 교리를 가르친 것으로

해석된다.

2번째 신화는 노자의 서행(西行:함곡관으로 간 것) 이야기에서 발달된 것으로 이 신화 속에서 부처는 바로 노자라고 간주된다.

3세기경 불교의 포교활동을 방해할 목적으로 이같은 이야기를 조작하여 위경서(僞經書)가 씌여졌다.

〈노자화호경 老子化胡經〉이 바로 그것인데,

이 책에서 불교는 도교의 아류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중국의 역대 정부는 빈번히 이 책을 금서로 지정했다.
노자라는 인물은 모든 계층에게 일반적으로 존경의 대상이 되어왔다.

유생들에게는 존경받는 철학자였고, 평민들에게는 성현이나 신으로,

도교 추종자들에게는 도(道)의 화신이자 도교의 가장 위대한 신들 가운데 하나로 숭배되어왔다.

 

사상

 

도교의 모든 이론은 노자에 의해 마련되었다.

〈도덕경〉을 통해 볼 때, 노장사상의 핵심은 '무위자연'(無僞自然)에 있으며, 그것이 ''(道)라는 개념으로 집약된다.

여기서 '무위'는 우주론적 정향을 지향하는 것, 즉 부자연스런 행위를 조금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무위자연의 구체적인 의미를 말한다면 '사실 자체의 바탕 위에서 떠나지 말라'는 것이다.

사실 자체란 다름아니라 노자에게 있어서는 자연이요, 도(道)요, 기(氣)요, 변화이다.

그리고 무위란 그 바탕 위에 서서 떠나지 않음을 의미한다. 

 

M. Kaltenmark 글 | 李鍾麟 옮김

 

 

 

 

이걸 보니 불교와 도교의 始源에 있어서의 연관성이 궁금해집니다.

이 부분에 대한 연구가 있었는지 한번 찾아봐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