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 5. 19:22ㆍ詩.
詩人들 가운데에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이들이 많다.
기형도, 김만옥, 남궁벽, 박인환, 윤동주, 이경록, 이상, 이장희, 전봉래 같은 이는 20대에,,
김관식, 김민부, 김소월, 박용철, 송유하, 신동엽, 심훈, 오장환, 윤곤강, 이육사, 임홍재,
정영상, 진이정, 채광석, 함형수, 동시작가 권태웅, 남대우 같은 이는 30대에,,
고정희, 김남주, 김상용, 김영랑, 김현구, 박정만, 이상화, 일길택 같은 이는 40대에 삶을 마쳤다.
함형수처럼 시 몇 편 남기고 간 이도 있고, 이상이나 기형도처럼 세상 떠난 뒤에 시집이 나온 이도 있다.
이장희, 김소월처럼 스스로 목숨을 거둔 이도 있고, 윤동주, 이육사처럼 감옥에서 숨진 이도 있다.
또 심훈 김수영처럼 병이나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도 있다.
어느덧 가을은 깊어
들이든 뫼이든 숲이든
모다 파리해 있다.
언덕우에 오뚝히 서서
개가 짖는다.
날카롭게 짖는다.
빈 들에
마른 잎 태우는 연기
가늘게 가늘게 떠오른다.
그대여
우리들 머리 숙이고
고요히 생각할 그때가 왔다.
- 이장희 <쓸쓸한 시절>全文
이 세상 산다는 것, 나 도무지모르갓네.
어듸서 예 왔는고? 죽어 어찌 될 것인고?
도무지 이 모르는데서, 어째 이러는가 합니다.
- 김소월 <生과 돈과 死>에서
古月 이장희와 素月 김정식.
'낡은 달'과 '흰 달', 스스로를 달이라 하던 두 시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 사람은 극약을 먹고 또 한 사람은 아편을 술과 함께 먹고,
유언 한마디 없이 다른 세상으로 떠났다.
또 시인 전봉래는 6.25가 난 다음 해 부산 밀다원 뒤 지하다방에 앉아 바하의 음악을 들으며
수면제를 먹고 삶을 마감했다. 그 자리에서 시 한 편을 남기고.
나는 페노발비탈을 먹었다
30초가 되었다 아무렇지도 않다
2분 3분이 지났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다
10분이 지났다
눈시울이 무거워진다
찬란한 이 세기에 이 세상을 떠나고 싶지는 않았소
그러나 다만
정확(正確)하고
청백히 살기위하여 미소로써 주검을 맞으리다
바하의 음악이 흐르고 있소
- 전봉래 <유서> 全文
어느 봄날 김포 들판에서 객사한 송유하,
그리고 어느날 홀연 지리산으로 들어가 숨을 거둔 고정희,
그들은 왜 홀연히 집을 떠났는가.
사십대/고정희
사십대 문턱에 들어서면
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기다릴 인연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안다
아니, 와 있는 인연들을 조심스레 접어 두고
보속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
씨뿌리는 이십대도
가꾸는 삼십대도 아주 빠르게 흘러
거두는 사십대 이랑에 들어서면
가야 할 길이 멀지 않다는 것을 안다
방황하던 시절이나
지루하던 고비도 눈물겹게 그러안고
인생의 지도를 마감해야 한다
쭉정이든 알곡이든
제 몸에서 스스로 추수하는 사십대,
사십대 들녘에 들어서면
땅바닥에 침을 퉤, 뱉아도
그것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안다
다시는 매달리지 않는 날이 와도
그것이 슬픔이라는 것을 안다
(고정희 유고시집遺稿詩集)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
李箱은 폐병으로 죽고 박용철은 胃를 앓다 죽었다.
박인환은 심장마비로 죽고, 신동엽과 김남주와 임길택은 癌으로 죽었다.
김관식과 박정만은 가난과 질병과 술 사이를 오가다 죽었다.
폐 속 뼁끼칠한 십자가가 날이면 날마다 발돋움을 한다
폐 속엔 요리사 천사가 있어서 때때로 소변을 본단 말이다.
나에 대해 달력의 숫자는 차츰차츰 줄어든다
- 이상 <각혈의 아침>에서
회색의 배경 앞에 나란히 앉은 두 마리 새
이 두마리 새는 세상을 서로 등지고 있다.
하나는 심장이 병들고 하나는 가슴이 아프다.
- 박용철 <두 마리의 새>에서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출렁이는데
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
- 박인환 <목마와 숙녀>에서
들길에 떠 가는 담배 연기처럼
내 그리움은 흩어져 갔네.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멀리 놓고
나는 바라보기만
했었네.
- 신동엽 <담배 연기처럼>에서
나와 함께 모든 별이 꺼지고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내가 어찌 마지막으로
눈을 감는가
- 김남주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에서
날아가던
새 한마리
마당에다
똥을 누고 간다
언덕을
넘어서 간다
- 임길택 <새> 全文
오늘은 춘분! 낮과 밤이 같은 날.
나의 임종은 자정에 오라!
가장 소중한 손님을 맞이하듯
너를 위해 즐겨 마중하고 있으마
비인 방에 호올로 누워 천고의 비밀을 그윽히 맛보노니……
- 김관식 <나의 임종(臨終)은>에서
나이가 들면서 점점 그런 몰입의 순간이 줄어든다. 노래가 차 오르는 날도 별로 자주 오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게 내 삶인 것을……. 이런 생각을 하다 문득 시인 박정만을 떠올렸다.
그가말년에 소주 500병을 '쳐죽이고' 불과 한 스무 날 동안 300여편의 시를 쏟아내던 때를.
"몇 달 동안 밥은 한 끼도 안 먹고 끼니때마다 소주 두 병씩 마시던 때.....
앉아서 쓰고 누워서 쓰고 서서 쓰고 자다가 깨어서 쓰고......
시가 쏟아져 나오더라니까요......"
시 한 편을 쓰면 한 40번쯤 퇴고를 거쳐 제 입성에 맞아야 시를 세상에 내놓는다는 시인.
그래서 시를 쓴 지 20년 동안 고작 시집 두 권을 낸 시인이 여섯 달 동안 시집 여섯 권을 내고는 이듬해,
88올림픽 폐막식이 있던 날 낮에 혼자 봉천동 집 화장실 변기에앉아 훌쩍 다른 세상으로 떠나버렸다.
접신의 경지에서 썼다는 그의 말년의 시들을 읽으며 마음이 아득해 오는 걸 느낀다.
난 필요한 양만 갖고 싶어
그것이 물이건 소주건 빨래줄이건
삼삼한 여자건
- 박정만 <필요한 양>에서
『백창우, 시를 노래하다』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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