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장환 시 모음

2011. 1. 5. 16:22詩.

 

 

 

 

어머니 서울에 오시다

 

 

어머니 서울에 오시다.
탕아 돌아가는 게
아니라
늙으신 어머니 병든 자식을 찾어오시다.

- 아 네 병은 언제나 낫는 것이냐.
날마다 이처럼 쏘다니기만 하니 ......
어머니 눈에 눈물이 어릴 때
나는 거기서 헤어나지 못한다.

- 내 붙이, 내가 위해 받드는 어른
내가 사랑하는 자식
한평생을 나는 이들이 죽어갈 때마다
옆에서 미음을 끓이고, 약을 달인 게 나의 일이었다.
자, 너마저 시중을 받어라.

오로지 이 아들 위하야
서울에 왔건만
메칠 만에 한번씩 상을 대하면
밥숟갈이 오르기 전에 눈물은 앞서 흐른다.
어머니여, 어머니시여! 이 어인 일인가요
뼈를 깎는 당신의 자애보다도
날마다 애타는 가슴을
바로 생각에 내닫지 못하야 부산히 서두르는 몸짓뿐.

- 이것아, 어서 돌아가자
병든 것은 너뿐이 아니다. 온 서울이 병이 들었다.
생각만 하여도 무섭지 않으냐
대궐 안의 윤비는 어디로 가시라고
글쎄 그게 가로채었다는구나.

시골에서 땅이나 파는 어머니
이제는 자식까지 의심스런 눈초리로 바라보신다.
아니올시다. 아니올시다.
나는 그런 사람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읍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이 가슴에 넘치는 사랑이 이 가슴에서 저 가슴으로
이 가슴에 넘치는 바른 뜻이 이 가슴에서 저 가슴으로
모든 이의 가슴에 부을 길이 서툴러 사실은
그 때문에 병이 들었습니다.

어머니 서울에 오시다.
탕아 돌아가는 게
아니라
늙으신 어머니 병든 자식을 찾어오시다.

 

 

 

 

이름도 모르는 누이에게


움직임이 없는 樹林과 같이
내 마음 스사로 그늘을 지노라.
아 이곳에 나날이 찾어오는
작은 새여!
나는 그대의 이름과 노래를 모른다.
그러나 자연이여
당신은 위대합니다.
작은 새로 하여금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내 마음으로 하여금 그를 평화로이 쉬이게 하여주소서.

 

 

 

 

 

 

성벽(城壁)

 

세세전대만년성(世世傳代萬年盛)하리라는 성벽은 편협한 야심처럼 검고 빽
빽하거니 그러나 보수(保守)는 진보(進步)를 허락치 않어 뜨거운 물 끼언고
고추가루 뿌리든 성벽은 오래인 휴식에 인제는 이끼와 등넝쿨이 서로 엉키어
면도 않은 턱어리처럼 지저분하도다.

 

 

 

 

 

 

 

喪 列     

            

고운 달밤에
상여야, 나가라
처량히 요령흔들며

상주도 없는
삿갓가마에
나의 쓸쓸한 마음을 실고

오날 밤도
소리없이 지는 눈물
달빛에 젖어

상여야 고웁다
어두운 숩속
두견이 목청은 피에 적시여......

(詩人春秋 1938년 1월호)

 

 

 

 

 

 

병상일기 - 오후의 노래

 

 

홑이불 새로 시친 침상에 누워
조용히 돌아가는 제 혈맥에 귀기울이면
아슬한 옛날에 다시 사는 듯
열에 뜬 헛소리로 지난날의 벗을 부를 때
말없이 물수건 축여주는
간호부는 천사의 옷매무새로
내 열이 옮겨진 수은주를 가벼이 뿌린다
자애로운 모습은 담담한 소복을 하고
천사여! 그랬노라 깜깜한 옛날
내, 엄마 소리밖에는 말을 못하던 옛날
아버님이 가셨을 때도 우리들은 이렇게 입었었노라
아니 여느 때도 그렇게 하였었노라

집집마다 문을 닫은 밤 늦게까지
창 옆에 말없이 기대어 스면
아름다운 옛 생각 볼근볼근 머리를 돈다
사랑하라 사랑하는 불을 쓰라
그대 다만 밤에게 소근대는 분수와 같이.

 

 

 

 

 

 

내 나라 오 사랑하는 내 나라

-씩씩한 사나이 朴晋東의 靈 앞에

 

 

내 나라 오 사랑하는 내 나라야
강도만이 복 받는
이처럼 아름다운 세월 속에서
파출소를 지날 때마다
선뜩한 가슴
나는 오며 가며 그냥 지냈다.

너는 보았느냐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랴는 이들이
아 살기 띄운 얼골에
장총을 들고 선 것을 ......

그들은 장총을 들었다.
그리고
그 총 속엔 탄환이 들었다.

파출소 앞에는
스물네 시간
그저 쉬지 않고
파출소만 지키는
군정청의 경찰관!

어디다 쏘느냐.
오 어디다 쏘느냐!
이것만이 애타는 우리의 가슴일 때
총소리는 대답하였다.
- 여기는 삼청동이다.
죄없는 학병의 가슴 속이다.

그리하야 죽어가는 학병들도 대답하였다.
 - 우리 학병 우리 동무 만세!
조선인민공화국 만세!

내 나라 오 사랑하는 내 나라야,
강도만이 복 받는
이처럼 화려한 세월 속에서
아 우리는 어찌하랴
우리는 어찌하랴
우리의 원수를 우리의 형제와 우리의 동무 속에 찾어야하느냐.

 

 

 

 

 

 

 

나의 길 -3.1기념의 날을 맞으며

 

 

기미년 만세 때
나도 소리높이 만세를 부르고 싶었다.
아니 숭내라도 내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 전해에 났기 때문에
어린애 본능으로 울기만 하였다.
여기서 시작한 것이 나의 울음이다.

광주학생사건 때
나도 두 가슴을 헤치고 여러 사람을
따르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중등학교 입학시험에 미끄러져
그냥 시골구석에서 한문을 배울 때였다.
타고난 불운이 여기서 시작한 것이다.

그 뒤에 나는
동경에서 신문배달을 하였다.
그리하야 붉은 동무와
나날이 싸우면서도
그 친구 말리는 붉은 시를 썼다.
그러나
이때도 늦은 때였다.
벌써 옳은 생각도 한철의 유행되는 옷감과 같이
철이 지났다.
그래서 내가 우니까
그때엔 모두 다 귀를 기울였다.
여기서 시작한 것이 나의 울음이다.

8월 15일
그 울음이 내처 따러왔다.
빛나야 할 앞날을 위하야
모든 것은
나에게 지난 일을 돌이키게 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울음뿐이다.
몇 사람 귀기울이는 데에 팔리어
나는 울음을 일삼어왔다.
그리하야 나는 또 늦었다.
나의 갈 길,
우리들의 가는 길,
그것이 무엇인 줄도 안다.
그러나 어떻게? 하는 물음에 나의 대답은 또 늦었다.
아 나에게 조금만치의 성실이 있다면
내 등에 마소와 같이 길마를 지우라.
먼저 가는 동무들이여.
밝고 밝은 언행의 채찍으로
마소와 같은 나의 걸음을 빠르게 하라.

 

 

 

 


 

8월 15일의 노래

 

 

기폭을 쥐었다.
높이 쳐들은 만인의 손 우에
깃발은 일제히 나부낀다.

"만세!"를 부른다. 목청이 터지도록
지쳐 나서는
군중은 만세를 부른다.

우리는 노래가 없었다.
그래서
이처럼 부르짖는 아우성은
일찍이 끓어오던 우리들 정열이 부르는 소리다.

아 손에 손에 깃발들을 날리며
큰길로 모이는 사람아
우리는 보았다.
이곳에 그냥 기쁨에 취하고, 함성에 목메인 겨레를 ......
그리고
뒤끓는 환희와 깃발의 꽃바다 속에
무수히 따러가는 이동과 근로하는 이들의 행렬을 ......

춤추는 깃발이여!
나부끼는 마음이여!
이들을 지키라.

너희들은, 자랑스런 너희들 가슴으로
해방이 주는 노래 속에서
또 하나의 검은 쇠사슬이 움직이려 하는 것을 ...

 

 

 

 

 

 

나의 노래

 

 

나의 노래가 끝나는 날은
내 가슴에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

새로운 묘에는
예 흙이 향그러

단 한번
나는 울지도 않었다.

새야 새 중에도 종다리야
화살같이 날러가거라

나의 슬픔은
오직 님을 향하야

나의 과녁은
오직 님을 향하야

단 한번
기꺼운 적도 없었더란다.

슬피 바래는 마음만이
그를 좇아
내 노래는 벗과 함께 느끼었노라.

나의 노래가 끝나는 날은
내 무덤에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

 

 

 

 


 

귀촉도(歸蜀途)

 - 廷柱에게 주는 시

 

 

巴蜀으로 가는 길은
서역 삼만리.
뜸부기 울음 우는 눈두렁의 어둔 밤에서
갈라래비 날려보는 외방 젊은이,
가슴에 깃든 꿈은 나래 접고 기다리는가.

흙몬지 자욱히 이는 장거리에
허리끈 크르고, 대님 크르고, 끝끝내 옷고름 떼고,
어두컴컴한 방구석에 혼자 앉어서
窓 넘어 뜨는 달, 상현달 바다다보면 물결은 이랑 이랑
먼 바다의 향기를 품고,
巴蜀의 印朱빛 노을은, 차차로, 더워지는 눈시울 안에 -

풀섶마다 小孩子의 관들이 널려 있는 뙤의 땅에는,
너를 기두리는 一金七十圓也의 쌀러리와 쬐그만 STOOL이 하나
집을 떠나고, 권속마저 뿌리이치고,
장안 술 하롯밤에 마시려 해도
그거사 안되지라요, 그거사 안되지라요.

巴蜀으로 가는 길은
서역 하늘 밑.
둘러보는 네 웃음은 용천病의 꽃 피는 울음
굳이 서서 웃는 검은 하늘에
상기도, 날지 않는 너의 꿈은 새벽별 모양,
아 새벽별 모양, 빤작일 수 있는 것일까.

 

 

 

 

 

 

The Last Train

 

 

저무는 역두에서 너를 보냈다.
비애야!

개찰구에는
못 쓰는 차표와 함께 찍힌 청춘의 조각이 흩어져 있고
병든 歷史가 화물차에 실리어 간다.

대합실에 남은 사람은
아즉도
누귈 기둘러

나는 이곳에서 카인을 만나면
목놓아 울리라.

거북이여! 느릿느릿 추억을 싣고 가거라
슬픔으로 통하는 모든 路線이
너의 등에는 지도처럼 펼쳐 있다.

 

 

 

 


 

    구름과 눈물의 노래 

 


城돌에 앉어
우리 다만
구름과 눈물의 노래를 불러보려나.

산으로 산으로 따러 오르며
초막들 죄그만 죄그만 속에
그 속에 네 집이 있고
네 집에서 문을 나서면 바로 성 앞이었다.

어디메인가
이제쯤은
너 홀로 단소 부는 곳 ......

어둠 속 城줄기를 따러 나리며
오로지 마음속에 여며두는 것
시꺼먼 두루마기 쓸쓸한 옷깃을 펄럭어리며
박쥐와 같이
다만 박쥐와 같이 날러보리라.

城돌에 앉어
우리 다만
구름과 눈물을 노래하려나

산마루 축대를 쌓고
띄엄띄엄 닦아놓은
새 거리에는
병든 말이 서서 잠잔다.

눈 감고 귀기울이면 무엇이 들려올까
들컹거리고 돌아가는 쇠바퀴소리
하염없이 돌아가는 廢馬의 발굽소리뿐.

城돌에 앉어
우리 다만
페가사쓰와 눈물의 노래를 불러보려나.

 

 

 


 

매음부(賣淫婦)

 

푸른 입술. 어리운 한숨. 음습한 방안엔 술잔만 환하였다.

질척척한 풀섶과 같은 방안이다.

顯花植物과 같은 계집은 알 수 없는 웃음으로 제 마음도 속여온다.

항구, 항구, 들리며 술과 계집을 찾어다니는 시꺼믄 얼굴.

윤곽된 보헤미안의 절망적인 심화.

- 퇴폐한 향연 속.

모두 다 오줌싸개 모양 비척어리며 얇게 떨었다.

괴로운 분노를 숨기어가며 ......

젖가슴이 이미 싸늘한 젖가슴이 이미 싸늘한 매음녀는 파충류처럼 포복한다.

 

 

 

 

 

 

 

밤의 노래

 

 

깊은 밤중에 들려오는 소리는
시냇물 소리만인가 했더니,
어두운 골짜기
노루 우는 소리.
또 가차운 산발에 꿩이 우는 소리.
그런가 하면
두견이의, 소쩍새의, 쭉쭉새의,
신음하듯 들려오는 울음소리

아, 저 약하디약한 미물들이,
또 온 하로를 쫓겨다니다
깊은 밤 잠자리를 얻어
저리도 우는 것인가.
아니, 저것이 오늘 하루를 더 살았다는
안타까운 울음소린가.
피곤한 마음은 나조차
불을 죽이고 어둠 속에 누웠다.

깊은 밤중에 들려오는 소리는
시냇물 소리만인가 했더니
잠결에도 편안하지 못하고
흐느껴 우는 소리 ......
이처럼 약하디약한 무리는
아, 짧은 하룻밤의 안식도 있지는 못한가
외저운 마음은 나조차
불까지, 아 이 적은 불빛이 무엇이겠느냐.

차라리 어둠으로 인하야 가벼워지는 마음이여!
만상은 모도가 잠들었나 했더니
먼 발의 노루며
아 소쩍새, 쭉쭉새, 또 두견이
그러나 이들이 운다는 것은 나의 생각뿐이고
그들은 어려운 하로하로를, 무사히 살었다는 즐거움에서 ......
참으로 들거움에서 부르는 노래라 하면 ......
나의 설움이여! 아니 나의 마음이여!
너는 어찌 하느냐.

 

 

 

 

 

무인도(無人島)

 

 

나의 지대함은 隕星과 함께 타버리었다

아즉도 나의 목숨은 나의 곁을 떠나지 않고
언제인가 그 언제인가
허공을 스치는 별님과 같이
나의 영광은 사라졌노라

내 노래를 들으며 오지 않으랴느냐
독한 향취를 맡으러 오지 않으랴느냐
늬는 귀기울이려 아니하여도
딱다구리 썩은 고목을 쪼읏는 밤에 나는 한걸음 네 앞에 가마

표정없이 타오르는 인광이여!
발길에 채는 것은 무거운 묘비와 담담한 상심

천변 가차이 가마구떼는 왜 저리 우나
오늘밤 아 오늘밤에는 어디쯤 먼 곳에서
물에 뜬 송장이 떠나오려나

 

 

 


 

길손의 노래

 

 

입동철 깊은 밤을 눈이 나린다. 이어 날린다.
못 견디게 외로웁던 마음조차
차차로이 물러앉는 고운 밤이여!

석유불 섬벅이는 객창 안에서
이 해 접어 처음으로 나리는 눈에
람프의 유리를 다시 닦는다.

사랑하고 싶은 사람 그리움일래
연하여 생각나는
날 사랑하던 지난날의 모든 사람들
그리운 이야
이 밤 또한 너를 생각는 조용한 즐거움에서
나는 면면한 기쁨과 적요에 잠기려노라.

모든 것은 나무램도 서글픔도 또한 아니나
스스로 막혀오는 가슴을 풀고
싸늘한 미닫이 조용히 열면
낯선 집 봉당에는 약탕관이 끓는 내음새

이 밤 따러
가신 이를 생각하옵네
가신 이를 상고하옵네.

 

 

 

 


 

석양

 

 

보리밭 고랑에 드러누워
솟치는 종다리며 떠가는 구름장이며
울면서 치어다보았노라.

양지짝의 묘지는
사랑보다 다슷하고나

쓸쓸한 대낮에
달이나 뜨려무나
죄그만 도회의 생철지붕에 ......

 

 

 

 

 


 

북방(北方)의  길 
                         
눈 덮인 철로는 더욱이 싸늘하였다
소반 귀퉁이 옆에 앉은 농군에게서는 송아지의 냄새가 난다
힘없이 웃으면서 차만 타면 북으로 간다고
어린애는 운다 철마구리 울듯
차창이 고향을 지워버린다
어린애가 유리창을 쥐어뜯으며 몸부림친다 
                                      1939. {헌사}

 

 

 


 

성탄제

 

 

산밑까지 나려온 어두운 숲에
몰이꾼의 날카로운 소리는 들려오고
쫓기는 사슴이
눈 우에 흘린 따뜻한 핏방울.

골짜기와 비탈을 따러 나리며
넓은 언덕에
밤 이슥히 횃불은 꺼지지 않는다.

뭇김승들의 등뒤를 쫓어
며칠씩 산속에 잠자는 포수와 사냥개,
나어린 사슴은 보았다
오늘도 몰이꾼이 메고 오는
표범과 늑대.

어미의 상처를 입에 대고 핥으며
어린 사슴이 생각하는 것
그는
어두운 골짝에 밤에도 잠들 줄 모르며 솟는 샘과
깊은 골을 넘어 눈 속에 하얀 꽃 피는 약초.

아슬한 참으로 아슬한 곳에서 쇠북소리 울린다.
죽은 이로 하여금
죽는 이를 묻게 하라.

길이 돌아가는 가슴의
두 뺨에는
맑은 이슬이 나리고
눈 우엔 아직도 따뜻한 핏방울 ......

 

 

 

 

 

 

 

고향 앞에서

 


흙이 풀리는 내음새
강바람은
산짐승의 우는 소릴 불러
다 녹지 않은 얼음장 울멍울멍 떠내려간다.


진종일
나룻가에 서성거리다
행인의 손을 쥐면 따뜻하리라.


고향 가까운 주막에 들러
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꿈을 이야기하랴.
양귀비 끓여다 놓고
주인집 늙은이는 공연히 눈물지운다.


간간이 잣나비 우는 산기슭에는
아직도 무덤 속에 조상이 잠자고
설레는 바람이 가랑잎을 휩쓸어 간다.


예제로 떠도는 장꾼들이여!
상고(商賈)하며 오가는 길에
혹여나 보셨나이까.


전나무 우거진 마을
집집마다 누룩을 디디는 소리, 누룩이 뜨는 내음새 ……

 

 

 

 

 

 

 
모촌(暮村)

 

 


초라한 지붕 썩어 가는 추녀 위엔 박 한 통이 쇠었다.


밤 서리 차게 내려앉는 밤,
싱싱하던 넝쿨이 사그라 붙던 밤,
지붕 밑 양주(兩主)는 밤새워 싸웠다.


박이 딴딴히 굳고 나뭇잎새 우수수 떨어지던 날,
양주는 새 바가지 뀌어 들고 초라한 지붕,
썩어 가는 추녀가 덮인 움막을 작별하였다.

 

 

 

 

 

 

 

 

병든 서울

 


8월 15일 밤에 나는 병원에서 울었다.
너희들은 다 같은 기쁨에
내가 운 줄 알지만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일본 천황의 방송도,
기쁨에 넘치는 소문도,
내게는 곧이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저 병든 탕아(蕩兒)로
홀어머니 앞에서 죽는 것이 부끄럽고 원통하였다.


그러나 하루 아침 자고 깨니
이것은 너무나 가슴을 터치는 사실이었다.
기쁘다는 말,
에이 소용도 없는 말이다.
그저 울면서 두 주먹을 부르쥐고
나는 병원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어째서 날마다 뛰쳐나간 것이냐.
큰 거리에는,
네거리에는, 누가 있느냐.
싱싱한 사람 굳건한 청년, 씩씩한 웃음이 있는 줄 알았다.


아, 저마다 손에 손에 깃발을 날리며
노래조차 없는 군중이 만세로 노래를 부르며
이것도 하루 아침의 가벼운 흥분이라면……
병든 서울아, 나는 보았다.
언제나 눈물 없이 지날 수 없는 너의 거리마다
오늘은 더욱 짐승보다 더러운 심사에
눈깔에 불을 켜들고 날뛰는 장사치와
나다니는 사람에게
호기 있이 먼지를 씌워 주는 무슨 본부, 무슨 본부,
무슨 당, 무슨 당의 자동차.


그렇다. 병든 서울아,
지난날에 네가, 이 잡놈 저 잡놈
모두 다 술취한 놈들과 밤늦도록 어깨동무를 하다시피
아 다정한 서울아
나도 밑천을 털고 보면 그런 놈 중의 하나이다.
나라 없는 원통함에
에이, 나라 없는 우리들 청춘의 반항은 이러한 것이었다.
반항이여! 반항이여! 이 얼마나 눈물나게 신명나는 일이냐


아름다운 서울, 사랑하는 그리고 정들은 나의 서울아
나는 조급히 병원 문에서 뛰어나온다
포장친 음식점, 다 썩은 구루마에 차려 놓은 술장수
사뭇 돼지 구융같이 늘어선
끝끝내 더러운 거릴지라도
아, 나의 뼈와 살은 이곳에서 굵어졌다.


병든 서울, 아름다운, 그리고 미칠 것 같은 나의 서울아
네 품에 아무리 춤추는 바보와 술취한 망종이 다시 끓어도
나는 또 보았다.
우리들 인민의 이름으로 씩씩한 새 나라를 세우려 힘쓰는 이들을……
그리고 나는 외친다.
우리 모든 인민의 이름으로
우리네 인민의 공통된 행복을 위하여
우리들은 얼마나 이것을 바라는 것이냐.
아, 인민의 힘으로 되는 새 나라

 


8월 15일, 9월 15일,
아니, 삼백예순 날
나는 죽기가 싫다고 몸부림치면서 울겠다.
너희들은 모두 다 내가
시골 구석에서 자식 땜에 아주 상해 버린 홀어머니만을 위하여 우는 줄 아느냐.
아니다, 아니다. 나는 보고 싶으다.
큰물이 지나간 서울의 하늘아
그때는 맑게 개인 하늘에
젊은이의 그리는 씩씩한 꿈들이 흰구름처럼 떠도는 것을……


아름다운 서울, 사모치는, 그리고, 자랑스런 나의 서울아,
나라 없이 자라난 서른 해
나는 고향까지 없었다.
그리고, 내가 길거리에서 자빠져 죽는 날,
'그곳은 넓은 하늘과 푸른 솔밭이나 잔디 한 뼘도 없는'
너의 가장 번화한 거리
종로의 뒷골목 썩은 냄새 나는 선술집 문턱으로 알았다.


그러나 나는 이처럼 살았다.
그리고 나의 반항은 잠시 끝났다.


아 그 동안 슬픔에 울기만 하여 이냥 질척거리는 내 눈
아 그 동안 독한 술과 끝없는 비굴과 절망에 문드러진 내 쓸개
내 눈깔을 뽑아 버리랴, 내 쓸개를 잡아 떼어 길거리에 팽개치랴.

 

 

 

 

 

 

 

성씨보(姓氏譜)

 


오래인 관습, 그것은 전통을 말함이다
 

내 성은 오씨(吳氏).
어째서 오가인지 나는 모른다.
가급적으로 알리워 주는 것은
해주로 이사온 일청인(一淸人)이 조상이라는 가계보의 검은 먹글씨.
옛날은 대국 숭배(大國崇拜)를 유심히는 하고 싶어서,
우리 할아버니는 진실 이가였는지 상놈이었는지 알 수도 없다.
똑똑한 사람들은 항상 가계보룰 창작하였고 매매하였다.
나는 역사를, 내 성을 믿지 않어도 좋다.
해변 가으로 밀려온 소라 속처럼 나도 껍데기가 무척은 무거웁고나.
수퉁하구나. 이기적인, 너무나 이기적인 애욕을 잊을랴면은
나는 성씨보가 필요치 않다.
성씨보와 같은 관습이 필요치 않다.

 

 

 

 

 

 

 

황혼(黃昏)
 
직업소개에는 실업자들이 일터와 같이 출근하였다.
아모 일도 안하면 일할때보다는 야위워진다.
검푸른 황혼은 언덕알로 깔리어 오고
가로수와 절망과 같은 나의 기-ㄴ 그림자는 군집의 대하에 짓밟히었다.


바보와 같이 거물어지는 하늘을 보며
나는 나의 키보다 얕은 가로수에 기대어섰다.
병든 나에게도 고향은 있다.
근육이 풀릴 때 향수는 실마리처럼 풀려나온다.
나는 젊음의 자랑과 희망을, 나의 무거운 절망의 그림자와 함께,
뭇사람의 웃음과 발길에 채우고 밟히며 스미어오는 황혼에 맡겨버린다.


제집을 향하는 많은 군중들은 시끄러히 떠들며,
부산히 어둠 속으로 흐터저버리고.
나는 공복의 가는 눈을 떠, 희미한 노등(路燈)을 본다.
띠엄띠엄 서있는 포도( 道)우에 잎새 없는 가로수도 나와 같이 공허하고나.


고향이여!
황혼의 저자에서 나는 아리따운 너의 기억을 찾어
나의 마음을 전서구(傳書鳩)와 같이 날려 보낸다.
정든 고삿. 썩은 울타리.
늙은 아베의 하-얀 상투에는 몇 나절의 때묻은 회상이 맺어 있는가.
우거진 송림 속으로 곱-게 보이는 고향이여!
병든 학(鶴)이었다. 너는 날마다 야위어가는……


어디를 가도 사람보다 일 잘하는 기계는 나날이 늘어나가고,
나는 병든 사나이.
야윈 손을 들어 오랫동안 타태(墮怠)와, 무기력을 극진히 어루만졌다.
어두워지는 황혼 속에서, 아무도 보는 이 없는, 보이지 않는 황혼 속에서,
나는 힘없는 분노와 절망을 묻어버린다.

 

 

 

 

 

 

 

나의 노래

 

 
나의 노래가 끝나는 날은
내 가슴에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


새로운 묘에는
옛 흙이 향그러


단 한번
나는 울지도 않았다


새야 새 중에도 종다리야
화살같이 날라가거라


나의 슬픔은
오직 님을 향하야


나의 과녁은
오직 님을 향하야


단 한번
기꺼운 적도 없었더란다


슬피바래는 마음만이
그를 좇아
내 노래는 벗과 함께 느끼었노라


나의 노래가 끝나는 날은
내 무덤에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

 

 

 

 

 

 

 

 

심동(深冬)

 

 

눈 쌓인 수풀에
이상한 산새의
시체가 묻히고

유리창이 모다 깨어진
洋館에서는
샴페인을 터트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언덕 아래
저기 아 저기 눈 쌓인 시냇가에는
어린아이가 고기를 잡고

눈 우에 피인 숯불은
빨갛게
주검은 아, 주검은 아름다웁게 불타오른다.
 

 

 

 

 

 

 

향수

 

어머니는 무슨 필요가 있기에 나를 맨든 것이냐!

나는 異港에 살고 어메는 고향에 있어 얕은 키를 더욱더 꼬부려가며 무수한 세월들을 흰머리칼처럼 날려보내며,

오 어메는 무슨, 죽을 때까지 윤락된 자식의 功名을 기두르는 것이냐.

충충한 세관의 창고를 기어달으며, 오늘도 나는 부두를 찾어나와 쑤왈쑤왈 지껄이는 이국 소년의 會話를 들으며,

한나절 나는 향수에 부다끼었다.

어메야! 온 세상 그 많은 물건 중에서 단지 하나밖에 없는 나의 어메!

지금의 내가 있는 곳은 광동인이 싣고 다니는 충충한 밀항선.

검고 비린 바다 우에 휘이한 角燈이 비치울 때면,

나는 함부로 술과 싸움과 도박을 하다가 어메가 그리워 어둑어둑한 부두로 나오기도 하였다.

어매여! 아는가 어두운 밤에 부두를 헤매이는 사람을, 암말도 않고 고향, 고향을 그리우는 사람들.

마음속에는 모다 깊은 상처를 숨겨가지고 ...... 띠엄, 띄엄이, 헤어져 있는 사람들.

암말도 않고 검은 그림자만 거니는 사람아!
서 있는 사람아!

늬가 예 땅을 그리워하는 것도, 내가 어메를 못 잊는 것도,

다 마찬가지 제 몸이 외로우니까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

어메야! 오륙년이 넘두락 일자소식이  없는 이 불효한 자식의 편지를, 너는 무슨 손꼽아 기두르는 것이냐.

나는 틈틈이 생각해본다. 너의 눈물을 ...... 오 어메는 무엇이었느냐!

너의 눈물은 몇 차례나 나의 불평과 결심을 죽여버렸고,

우는 듯, 웃는 듯, 나타나는 너의 환상에 나는 지금까지도 설운 마음을 끊이지는 못하여왔다.

편지라는 서로이 서러움을 하소하는 풍습이려니,

어메는 행방도 모르는 자식의 安在를 믿음이 좋다.


 

 

 

 

 


할렐루야

 

 

곡성이 들려온다. 人家에 人家가 모이는 곳에.

날마다 떠오르는 달이 오늘도 다시 떠오고

누런 구름 쳐다보며
망또 입은 사람이 언덕에 올라 중얼거린다.

날개와 같이
불길한 四足獸의 날개와 같이
망또는 어둠을 뿌리고

모든 길이 일제히 저승으로 향하여 갈 제
암흑의 수풀이 성문을 열어
보이지 않는 곳에 술 빚는 내음새와 잠자는 꽃송이,

다만 한 길 빛나는 개울이 흘러 ......

망또 우의 모가지는 솟치며
그저 노래 부른다.

저기 한 줄기 외로운 강물이 흘러
깜깜한 속에서 차디찬 배암이 흘러 ...... 사탄이 흘러...... 눈이 따겁도록 빨간 장미가 흘러 ......

 

 

 

 

 



첫겨울

 

 

감나무 상가지
하나 남은 연시를
가마귀가
찍어 가더니
오늘은 된서리가 나렸네
후라딱딱 훠이
무서리가 나렸네

 

 

 

 


 

입원실에서

 

 

저마다 기쁜 마음, 싱싱한 얼굴로
 오래나 있었던 병실에서
 나가는 사람들.
 그러는 동안에
 해방을 기약하는 그날이 왔고,
 그 뒤에도 잇대어 여러 가지 병든 사람이나
 흥분된 감격에 다쳐 온 젊은이
 새로이 새로이 왔다는
 모두 다 씩씩한 얼굴로 나간다.
 
 아 억압이 풀려진 세상은 어떠하련가,
 나 역시 나가게 되리라 믿고
 또 나가고 싶은 마음에
 ―그러면 하루 바삐 쾌차하시오. 우리도 손목 잡고 일합시다.
 하고,
 먼저 나가는 이들 당부를 뼈에 새긴다.

 누워서도 피끓는 가슴
 아, 눕지 않으면 사뭇 불타오르리니
 젊음이여!
 여기서만 성장이 앞서는 자랑스런 시기여,
 다만 흰 벽과, 거기에 걸린 간소한 그림과
 머리속에 아직도 응석하는 쓸쓸함이
 온 하루 나의 벗이라 하나

 병든 몸이여!
 병든 마음이여!
 이런 것이 무어냐
 어둔 밤의 횃불과 같이, 나의 싸우려는
 싸워서 이기려는 마음만이
 지금도 나의 삶을 지킨다.

 

이름도 모르는 누이에게

 

움직임이 없는 樹林과 같이
내 마음 스사로 그늘을 지노라.
아 이곳에 나날이 찾어오는
작은 새여!
나는 그대의 이름과 노래를 모른다.
그러나 자연이여
당신은 위대합니다.
작은 새로 하여금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내 마음으로 하여금 그를 평화로이 쉬이게 하여주소서.

 

 

 

 


여수(旅愁)

 

 

여수에 잠겼을 때, 나에게는 쬐그만 희망도 숨어버린다.
요령처럼 흔들리는 슬픈 마음이여!
요지경 속으로 나오는 좁은 세상에 이상스러운 세월들
나는 추억이 무성한 숲속에 섰다.

요지경을 메고 다니는 늙은 장돌뱅이의 고달픈 주막꿈처럼
누덕누덕이 기워진 때묻은 추억,
신뢰할 만한 현실은 어디에 있느냐!
나는 시정배와 같이 현실을 모르며 아는 것처럼 믿고 있었다.

괴로운 행려 속 외로이 쉬일 때이면
달팽이 깍질 틈에서 문밖을 내다보는 얄미운 노스타르자
너무나, 너무나, 뼈없는 마음으로
오 늬는 무슨 두 뿔따구를 휘저어보는 것이냐!

 

 

 

 

 

 

 

어포(漁浦)

 

 

어포의 등대는 鬼類의 불처럼 음습하였다.

어두운 밤이면 안개는 비처럼 나렸다.

불빛은 오히려 무서웁게 검은 등대를 튀겨놓는다.

구름에 지워지는 하현달도 한참 자옥한 안개에는 등대처럼 보였다.

돛폭이 충충한 박쥐의 나래처럼 펼쳐 있는 때,

돛폭이 어스름한 해적의 배처럼 어른거릴 때,

뜸 안에서는 고기를 많이 잡은 이나 적게 잡은 이나 함부로 튀전을 뽑았다.

 

 

 

 


 

어린 누이야

 

 

어찌 기쁨 속에만 열매가 지겠느냐.
아름다이 피었던 꽃이여! 지거라.
보드라운 꽃잎알이여!
흩날리거라.

무더운 여름의 우박이여!
오 젊음에 시련을 던지는
모든 것이여!

나무 그늘에 한철 매암이
슬피 울고
울다 허울을 벗더라도
나는 간직하리라.

소중한 것의 괴로움,
기다리는 마음은
절망의 어느 시절보다도
안타까워라.

오 나는 간직하리라.

 

 

 

 

오장환


1918 5월 5일 충북 보원군 회북면 중앙리 14 번지에서 출생  
1930 안성보통학교 졸업  
1931 휘문고보 입학  
1933 <조선문학>에 시 <목욕간> 발표  
1936 <낭만>,<시인부락> 동인  
1937 <자오선>동인  
1946 조선문학가동맹 서울시지부 사업부 위원, 동 문학대중화운동위원회 위원 역임. 월북  

주요 저서 시집 목록
시집 <성벽>    풍림사  1937
시집 <헌사>    남만서방  1939
시집 <병든 서울>    정음사  1946
시집 <나 사는 곳>    헌문사  1947

휘문고보를 졸업했으며 명치대학(明治大學) 전문부 수학.
1931년 <조선문학>에 시 <목욕간>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옴.
초기 시는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문명비판적인 시와 보들레르적인
경향의 시를 많이 썼음. 그러나 1940년을 전후하여 서정적 사색을
기반으로 한 건강한 생명력을 추구하는 시를 썼음.
해방 이후 선명한 정치 노선을 드러내며 현실 참여적인 시를 활발히
발표하였고 이후 월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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