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1. 22. 14:16ㆍ책 · 펌글 · 자료/인문 · 철학 · 과학
1.
소동파 누이동생 '소소매'
北宋의 대문호 소식(蘇軾)은 사천성 사람으로 자는 자첨, 화중이며 호는 동파거사이다.
그는 시 서 화는 물론 사(詞)와 문(文)에 있어서도 뛰어나 三絶도 아닌 五絶로 당대 제일가는 문인이다.
부친 소순과 동생 소철과 더불어 唐宋 8대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누이동생 소소매(蘇小妹)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그녀 역시도 재화(才華)와 용모가 탁월한 당대의 才女였었다.
어느날 밤 소동파와 그의 제자 황정견이 정원에서 차를 마시며 시에 대해서 논하고 있었다.
소소매가 다가와서 개구쟁이처럼 웃더니 말하였다.
"제가 방금 연구(聯句) 하나를 지었는데 관건이 되는 두 글자가 마땅히 떠오르지가 않습니다.
하여 두 분께 가르침을 청합니다."
이 말에 황정견이 매우 흥미 있어하며 "그래, 한번 읊어보렴."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소동파는 여동생의 장난기와 재능을 잘 알기에 쉽지 않은 문제라고 간파하고 침묵했다.
소소매는 밝게 떠있는 달을 잠시 바라보더니 느릿느릿 읊어나갔다.
산들바람에 가녀린 버들 (輕風細柳)
으스름 달빛에 매화 (淡月梅花)
그러고나서 오빠와황정견을 힐끔 쳐다보더니 웃으며 말하였다.
이 두 구절 중간에 한 자씩 적합한 字를 채워넣어야겠는데 두 분의 가르침을 청합니다.
황정견이 잠시 생각하더니 다음과 같이 읊었다.
산들바람에 가녀린 버들이 춤추고 (輕風舞細柳)
으스름 달빛에 매화가 숨었네 (淡月隱梅花)
소소매는 만족하지 못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너무 통속적이예요."
그러자 이번에는 소동파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요(搖)자와 영(映)자를 넣으면 어떻겠느냐?"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가녀린 버들 (輕風搖細柳)
으스름 달빛에 비치는 매화 (淡月映梅花)
소소매는 마찬가지로 머리를 흔들며 말하였다 "역시 너무 상투적인 표현이예요."
이 말에 두 사람이 묵묵히 깊은 생각에 잠기고 있자
소소매가 천천히 읊어나갔다.
산들바람은 가녀린 버들을 지탱케 하고 (輕風扶細柳)
으스름 달빛에 매화의 모습은 사라졌네 (淡月失梅花)
2.
기묘한 화제시(畵題詩)
소동파가 일찍이 한 폭의 <백조귀소도(百鳥歸巢圖)>, 즉 100마리 새가 둥지로 돌아가는 그림을 그린 적이 있다.
그리고 이 그림에다 윤문숙이라는 학자가 화제시(畵題詩) 한 수를 썼는데, 훗날 사람들이 백조시(百鳥詩)라 불렀다.
이 시의 첫 부분인 두 구는 다음과 같았다.
하늘이 낳은 한 마리 또 한 마리 (天生一隻又一隻)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마리 (三四五六七八隻)
이 두 구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시가 그림에 있는 새가 많은 것을 형용한 것으로만 알았지
별도로 다른 뜻이 있는 줄을 몰랐다.
그러나 이 두 구는 매우 흥미로운 계산 방법을 써서 백 마리 새를 정확하게 표현해낸 것이었다.
'一隻又一隻'은 1+1 = 2가 되고,
'三四五六七八隻'은 3X4 + 5X6 + 7X8 = 98 이 되어, 결국 100마리의 새를 표현한 것이다.
3.
宋 휘종은 정치적으로 무관심하고 무능하여 끝내는 불행한 최후를 맞이하였지만
적어도 서화(書畵0 방면, 특히 회화에 있어서는 후세에 크게 영향을 미칠만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황정견 설요로부터 글씨를 배우고, 왕선 조영양 오원유 등과 같은 대가들로부터 그림을 배워서
상당히 높은 예술적 수준에 도달하였으며, 화조화는 당대의 일인자였다.
18세 되던 해 황위에 오른 후 20여 년간 북송 초에 설립된 화원의 조직과 제도를 개혁하고
과거제도를 도입하여 화원들의 지위를 향상시키고 畵學을 부흥시켰다.
자신이 직접 화학의 입학 고시 대우 등의 조례와 제도를 일일이 규정하였으며,
친히 지도하면서 자신의 회화에 대한 미학사상를 전파하였다.
'야수무인도 고주진일횡', '호접몽중가만리 두견지상월삼경', '답화귀거마제향' ,
'눈녹지두홍일점 동인춘색불수다' 같은 유명한 작품들은 화원 선발시험에서의 장원급제작이다.
휘종(조길)이 제창한 古人의 시구로 화가들이 역량을 측정하는 고시제도는 화가의 화의(畵意)와
시문에 대한 기초지식 및 풍부한 예술 상상력, 창조적 사유 능력에 대하여 절실하게 고찰할 수 있는 것으로,
화가들로 하여금 작품의 의경(意境)에 대한 표현을 중시하고 完美한 예술 구상을 추구하도록 하였다.
이는 조길이 이미 회화와 문학의 진일보 된 결합을 하여 '화중유시(畵中有詩)'의 예술 경계에 진입해야한다는
사실에 착안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문인화가 발전하는데 촉진작용을 하였으며 반대로 현실묘사와 멀어지게 하는 원인도 되었다.
- 『중국 시서화 풍류담』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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