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언

2010. 11. 1. 18:18미술/한국화 옛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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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왕산도 강희언 종이에 담채 24.6cm x 42.6cm 서울 개인 소장
 

 

 

강희언의 〈인왕산도〉는 정선의 실경산수화풍을 계승한 것으로, 늦은 봄 서울의 도화동에 올라 인왕산을 바라보며 그린 것이다.
인왕산을 그린 그림으로는 정선의〈인왕제색도〉가 있는데, 정선의 작품에서는 인왕산의 넓적한 바위를 강조하여 묘사한 반면,
이 그림에서는 인왕산의 세세한 골짜기들을 꿰뚫어 보고 이를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바라보는 시점도 더 동쪽에서 바라보았고, 능선을 따라 북한산성의 성벽이 흘러내리듯 둘러져 있다.
그러면서도 산골을 표현할 때는 붓을 뉘어 미점을 사용한 점이나, 소나무 그리는 법 등에서 정선의 영향도 찾아 볼 수 있다.
엷게 칠한 푸른 하늘과 희고 붉은 복숭아꽃이 어울려 신선하고 산뜻한 수채화의 느낌을 갖게 한다.

 

강희언(1738-1784 이전)은 조선시대 후기의 화가로서 자는 경운(景運), 호는 담졸(澹拙)이며,

1735년 천문이나 지리 분야의 시험인 음양과에 급제하여 감목관을 지냈다.
지금의 삼청동에서 나이가 34세나 위인 선배 화가 정선(鄭敾)과 이웃하여 살면서 그림을 배웠다고 한다.
강세황(姜世晃)과도 교류가 두터웠고, 그보다 35세나 아래인 김홍도(金弘道)와도 교분이 있었다고 한다.
이들 당대 최고 화가들과의 교류로 인해 그의 화격은 날로 성장하였고 그의 그림에는 이들의 영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유작은 많지는 않으나 정선의 실경산수화풍을 따른〈인왕산도(仁王山圖)〉와 풍속화의 전통을 따라

선비들이 모여 글 짓고 활 쏘는 모습을 담은 《사인삼경도첩(士人三景圖帖)》 등이 알려져 있다. 

  

출처 :신인류회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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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인휘호 강희언 / 종이에 담채 26cm x 21cm 서울 개인 소장

 

 

 

 

1740년대 강희언의 〈사인휘호〉는 글쓰기와 활쏘기, 그림그리기 등 선비들의 문, 무, 예의 모습을 담은

《사인삼경도첩(士人三景圖帖)》이라는 화첩 가운데 그림 그리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선비들이 크고 작은 종이에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있다.
엎드려서 붓을 두 자루 들고 그리는 모습은 그림 그리는 습관의 하나로 순수한 우리말로 '발림질한다'고 하는 것이다.
먹이나 채색으로 그림을 그린 후 붓 자국을 없애기 위해 물을 적신 붓으로 경계를 없애주는 방법으로, 이를 표현한 것이다.
또한 정선에 대한 기록에서 정선은 붓을 두 자루를 들고 그렸다고 하는데,

서로의 관계로 미루어 혹 정선의 모습을 그린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따라서 이 《사인삼경도첩》은 특별한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강희언 본인을 포함한 몇몇 젊은 선비들의 어떤 모임을 기념하기 위해서 그린 기록화적인 풍속화라고도 볼 수 있다.
각 폭마다 친분이 두터웠던 강세황의 발문(跋文)이 적혀 있다.
필력이 딱딱한 느낌을 주기는 하나 인물들의 다양한 자세나 마루의 세밀한 묘사에서 사실적인 묘사 태도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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