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0. 30. 18:56ㆍ책 · 펌글 · 자료/문학
상신神喪은 1952년에 발표됐습니다.
수상작품으로 선정되기까지 말이 참 많았읍니다.
통속성이 문제가 된 것이지요.
고미 야스스케는 전후 일본에서 검호 소설 붐을 일으킨 작가 입니다.
칼 싸움이나 하는 소설이 어찌 순수문학을 대표하는 아쿠다가와상을 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일부 심사위원 들의 삿대질이었읍니다.
"단색에 치우친 문단에 수혈하는 작품"
"하나의 정신을 잡아낸 단편"
이라고 말한 심사위원 사토 하루오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역성에 힘입어 겨우 수상작이 됐읍니다.
"세나와 겐운사이 노부도모가 다무봉 산 속에 숨어 살기 시작한 것은 분로쿠 삼년.
즉 갑오년 팔월이다. 이때 겐운사이의 나이 쉰한 살".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 같지 않습니까?
"옛날 옛적에 모모가 어디서 살았는데....." 처럼
늘어지는 입담과 달리 생필의 묘미가 있죠.
그렇습니다. 겐운사이의 비상한 삶이 이 소설의 기둥 입니다.
<미야모도무사시>가 속편도 있었네요?
임진년 전쟁을 앞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무예시합을 엽니다.
이때 모습을 드러낸 료인이 <겐우사이>입니다.
그가 어디서 검술을 익혔고, 무슨 일을 하다 왔는지,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시합에서 그는 두명의 칼잡이를 베어버립니다.
실로 무보에도 없는 요기가 그의 검술에서 번뜩였습니다.
진검 승부를 눈앞에 둔 자의 긴장이나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따위가 그의 표정에는 없었지요.
그저 넋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다 일순 뽑은 칼에 상대방은 어깻죽지가 잘려버립니다.
며칠 뒤 누가 그의 검술에 대해 물었습니다.
<겐운사이>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시합은 했지만 상대를 죽인 기억은 없었다.
주막에 돌아와 불현듯 칼을 보니 피기름이 묻었더라."
그때부터 <겐운사이>의 검은 몽상검으로 불립니다.
겐운사이가 산 속에 숨어버린 년의 어느 날, 한 젊은이가 다무봉을 오릅니다.
그의 이름은 <테츠로다>.
시합에서 겐운사이의 단칼에 쓰러졌던 장수의 아들입니다.
복수의 결기가 전혀 뵈지 않는 앳된 홍안입니다.
계곡에서 그는 한 소녀와 조우합니다.
겐운사이의 양녀 유키였습니다.
그 장면이 멋있습니다.
진달래 꽃을 한 아름 안고 빠른 걸음으로 내려오던 <유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심산 유곡에 오르던 데츠로다는 그녀를 보고 멈칫합니다.
가속도록 못이긴 유키의 발걸음이 겨우 멈추고 눈이 마주치는 순간,
유키의 가슴팍을 떠난 진달래 꽃 한송이가 파르르 날려, 데츠로다의 발치에 떨어집이다.
당연히 복수는 실패로 끝나지요.
데츠로다는 적수가 되지 못합니다.
겐운사이와 맞붙은 모든 검객은 목숨을 잃는데,
어쩐 일인지 데츠로다는 귀 한쪽만 잘린채 살아남습니다.
자결하려는 데츠로다에게 겐운사이는 말합니다.
"다시 맞설 기회를 노려라. 같이 살면서 언제든 빈틈이 보이면 나를 쳐라.
그때도 내가 널 살려줄지는 모르지만."
기묘한 동숙이 시작되었습니다.
원수와 원수의 양녀 집에 얹혀 살며 <데츠로다>는4년의 세월을 보냅니다.
칼도 벼르고 마음도 별렀지만 데츠로다에겐 기회가 없습니다.
어떤 작심도 하지 않는 겐운사이의 허심은 변치 않았고.
데츠로다는 그것이 죽음의 유혹임을 깨달은겁니다.
이따금 <겐운사이>는 내비칩니다. 몽상검의 세계를 말입니다.
"사려로는 묘법을 얻지 못한다. 본연의 성정으로 돌아가라.
그 본능을 왜곡하지 말라.
사념은 없다. 극기니 희생이니 하는 것이 사념이다.
검은 제 몸을 지키는 본능에 의한다.
보잘것없는 인지를 초월한 본연의 자태가 검이다."
그러고는 이렇게 끝맺습니다.
"이마까지 날아온 돌멩이 앞에 사람들은 눈을 감는다.
이것이 "정연의 술이다. 틈이 있으면 피하고.피하지 못하면 눈을 감는다.
사람들은 자면서도 얼굴에 앉은 파리를 손으로 쫓아낸다.
그것은 쫓은 줄도 모르는 호신의 경지다.
몽상류의 검이 여기서 비롯했다."
다시8년이 지나갑니다.
<데츠로다>는 배고프면 먹고. 불쾌하면 찡그리고 .
그리고 유키의 육체가 그리우면 탐하면서 살게됐습니다.
대신 지난 시절 반듯했던 그의 얼굴에는 퇴폐의 기미가 서렸습니다.
산에 오르기 전 데츠로다에게 정혼이 있었지만
이제 유키와 아예 한 방에서 지냅니다.
동작은 나태하되 자취가 없는 데츠로다였습니다.
어느 여름날. 데츠로다는 장작을 패기 위해 도끼질을 합니다.
그때 패잔병 두엇이 양식을 구하려 왔다가 불시에 데츠로다를 공격합니다.
방 안에는 겐운사이가 졸고 있었습니다..
일정한 간격으로 장작 패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잠시 멈칫.
곧이어 다시 소리가 들렸습니다.
겐운사이는 감은 눈을 번쩍 뜹니다.
마당에는 잘린 지체들이 나뒹굽니다.
그해 늦가을 <겐운사이>는 <데츠로다>에게 하산을 명합니다.
무표정한 데츠로다가 "그것도 좋지요" 합니다.
산마루까지 배웅하러 나온 겐운사이와 유키.
데츠로다는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 돌아서고.
겐운사이의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가 지나갑니다.
그와 동시에 겐운사이의 칼이 데츠로다의 등을 내리칩니다.
"악" 비명을 지르는 유키. 그러나 쓰러진 자는 겐운사이.
유키의 눈에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칼을 손에 든 채 허친허친 내려가는 데츠로다 의 뒷모습이 보였습니다.
- 손철주, <그림 보는만큼 보인다>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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