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2010. 10. 5. 08:44책 · 펌글 · 자료/문학

 

 

 

만해 한용운 문학의 근원
─ 「조선불교유신론」을 중심으로


                                                  崔 秉 魯



(1) 서 론


만해 한용운은 시집 『님의 침묵』을 쓰기 전에 『조선불교유신론』이란 한국의 명저(名著)를 출간하였는데

그것은 한용운의 최초의 저술로서 만해의 사상을 조명함에 있어 필독의 저서이다.

본서의 내용을 읽어본 독자라면 누구나 그 새롭고 충격적인 한국 불교 개혁론에 관하여 경이적인 생각을 지니게 되거니와

한편 비판 받아야 될 부분도 다소 발견된다.
하지만 본 평설은 만해의 문학사상의 근원을 조명함에 있으므로 종교론이며 기타 비판의 대상이 되는 부분들은 일단 보류하고

중점적으로 다룰 문제는 『조선불교유신론』을 중심으로 한 『님의 침묵』과의 문학적인 면에서 비교되는 점들을 분석하고

발굴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이어서 앞으로 인용될 『조선불교유신론』의 텍스트를 밝혀둔다.

본서의 초판본(1913년)인 불교서관본(佛敎書館本)을 원본(原本)으로 하였지만

원본만 가지고는 독자의 이해를 구할 수가 없으므로 한글 번역본을 실제적인 텍스트로 하였는데

본서의 최초 번역본은 1969년 현암사(玄岩社) 간행 서경수(徐景洙) 번역이 있으며,

1973년 「창작과 지평」(8권 1호) 이원섭(李元燮) 번역이 있는데

그 이원섭 번역본은 신구문화사 간행 「한용운전집」본과 운주사간행본(附原本收錄)으로 구분되며

필자는 운주사본을 텍스트로 하였으며 필요에 따라서는 기타본들도 참조하였다.

 



(2) 유신론(維新論)


오늘의 세계는 과거의 세계가 아니며 미래의 세계도 아니오, 어디까지나 현재의 세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천만년 이전의 일을 연구하는 이가 있고, 천만년 뒤의 일을 연구하는 이도 있어서,

천지 사이의 형이상(形而上)․형이하(形而下)의 문제치고 연구하여 유신(維新)하지 않을 것이 없어서

학술의 유신을 외치는 이가 있고 정치의 유신을 외치는 이가 있고 종교의 유신을 외치는 이가 있고,

그 밖에도 각 방면에서 유신을 부르짖는 소리가 천하에 가득하여 이미 유신을 했거나 지금 유신을 하고 있거나

장차 유신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도록 종접(踵接)하고 있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조선의 불교에 있어서는 유신의 소리가 조금도 들리지 않으니, 모르겠구나 과연 무슨 징조일까?

조선불교가 유신할 것이 없는 탓일까, 아니면 유신할 만한 것이 못되는 까닭일까,

곰곰히 생각해 보나 그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
「조선불교유신론」 1. 서론에서

정연한 논리와 유려한 문장력이 돋보이는 유신론의 첫머리를 읽어 보았다.

상기의 유신론을 평설하기 앞서 유신(維新)이란 낱말의 출처부터 밝혀본다.
주나라 도읍지는 옛땅 그대로이지만 천명(天命)을 받은 정치제도는 대단히 새로워(維新)졌다.

周雖舊邦 其命維新
「맹자」 등문공 상편에서

이상과 같이 孟子가 등나라의 임금 文公에게 토지개혁론을 말하면서 詩經의 한구절을 인용한 말인데

그후 일본인들이 가장 먼저 유신(維新)이란 말에 관심을 가졌으며

마침내 1891년(명치 23년) 동양제국 중에서 가장 먼저 국회(國會)를 개원하였고 유신헌법(維新憲法)이 제정되니

그 때부터 일본의 명치유신이 시작되었으며,

이어서 4년후인 1894년 한국 땅에서 동양세력의 패권 다툼인 청일전쟁이 돌발하였는데 그 결과는 일본군의 대승리로 끝났으며

청일전쟁에 대패한 중국인들은 그 때부터 서둘러 일본의 유신 정치를 모방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중국 유신파의 대표적 인물은 강유위(姜有爲)와 양계초(梁啓超)이며

마침내 정부주도형 유신정책인 무술변법(戊戌變法)이 시행되었고

그로부터 백일후 다시 西太后에 의하여 戊戌政變이 일어나니 그것이 바로 중국의 백일유신이라고 하는 것이며,

1898년 9월 21일 유신파 양계초는 일본으로 망명하였는데

그 무렵 한국의 실정을 보면 1898년 11월 4일 한국의 유신파라고 말할 수 있는 독립협회가 해산당하고

독립협회 간부들이 투옥당하게 된다.
이상과 같이 유신(維新)이란 낱말은 당시 동양의 모든 나라들이 추구하는 이상으로서

일본인들이 가장 먼저 성공적으로 이룩하였으며, 이어서 중국인들이 일본인들을 모방하였고,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원인은 잘 알 수 없지만 한국인들은 유신이란 낱말보다는 개화(開化)라는 낱말을 즐겨 사용하였다.

때문에 그들을 개화파 또는 개화당이라고 칭하였다.

그러나 유일하게 한용운만은 남들이 쓰는 개화 또는 개혁이란 낱말보다 유신이란 낱말을 즐겨 사용하였다.
당시 한용운의 유신론과 비슷한 저술들이 많이 나왔는데 유신론이 발간된 1913년을 기준으로 고찰하여 볼까한다.

1913년 이전에 한용운보다 먼저 쓴 유신론이 있다.

박은식(朴殷植)이 1909년 사북학회일회록(1권10호)에 「유교구신론(儒敎求新論)」을 썼으며,

이어서 1910년 권상로(權相老)의 『조선불교개혁론』이 「조선불교월보」에 연재되었다.

그리고 1913년 이후에 나온 유신론으로서는『조선불교현대화론』 박한영 지음과『조선불교혁신론』박중빈 지음이 있는데

이것은 1913년 이후의 저술이므로 한용운의 유신론과는 비교할 수 없으므로

1913년 이전의 유신론과 한용운의 유신론을 비교하여 볼까한다.

먼저 「유교구신론」과 『조선불교유신론』을 비교하여 보겠다.

우리 공자의 도가 어찌 땅에 떨어질 것인가?
장차 온 세계에 그 빛을 크게 나타낼 시대가 올 것이다……
저 서양의 기독교를 보더라도 구교시대에 유럽의 암흑시대였고 만일 마르틴 루터의 대담함과 역할로 새로운 개량이 없었다면

유럽은 지금까지 암흑시대로 머물렀을 것이다.
「유교구신론」에서

이어서 한용운의 『조선불교유신론』을 읽어보면

만약 불교가 장래의 문명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에는…… 마르틴 루터나 크롬웰 같은 이를 지하에서 불러 일으켜

불교를 유신코자 한다 해도 반드시 실패할 것이기 때문이다…….
불교가 인류문명에 있어서 손색이 있기는 커녕 도리어 특출한 점이 있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조선불교유신론』 1. 서론에서

이상과 같이 박은식의 「유교구신론」은 공자의 가르침인 유교의 우수함을 주장하며

루터의 종교개혁과 같이 낡은 유교를 대담하게 개량하자는 주장이며,

한용운은 불교가 세계적인 종교임을 주장하면서 루터와 같은 종교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므로『조선불교유신론』보다 일년(1909년) 앞서 저작된「유교구신론」이 한용운의『불교유신론』에 영향을 주었다고

추측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용운의 유신론을 읽어보면 다른 사람들의 개혁론과는 전연 다른 점이 발견된다.
첫째는 문장력이다. 독자의 심금을 울려주는 감동적인 문장력이다.

이어서 두번째는 다른 개혁론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파괴론(破壞論)이다.

한용운의 파괴론은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특징이 있다.

허황하고 신통치도 않은 신들 앞에 종처럼 무릎꿇어 아첨하고 있으니,

소회(塑繪)를 받는 폐단이 이에 이르러 극단에 달했다고 할 수 있다.

누가 능히 만천하의 이런 소상(塑像)들을 불살라 날려 보내고 물에 던져 가라앉혀서,

다시는 세상에 머물지 못하게 하여, 우리 종교의 진리로 돌이켜서 흠이 없게 할 것인가.
『조선불교유신론』 제10장에서

불당 안에 모셔놓은 소회(塑繪) 및 사찰의 소상(塑像)의 무용론을 말한 것인데

그 표현이 얼마나 파괴적인가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불교유신론』은 총 17장으로 구분되는데

1장으로부터 4장까지는 본론이며 5장으로부터 17장까지는 조선불교유신의 해결책이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필자가 중점적으로 평설하고자 하는 것은 1장~4장까지의 유신론 및 파괴론이다.

왜냐하면 본문은 불교론이 아니고「조선불교유신론」을 중심으로 한 한용운 문학론이기 때문이다.

 



(3) 파괴론(破壞論)


유신(維新)이란 무엇인가 파괴의 자손이요. 파괴란 무엇인가 유신의 어머니다.

세상에 어머니 없는 자식이 없다는 것은 대개 말들은 할 줄 알지만, 파괴 없는 유신이 없다는 점에 이르러서는 아는 사람이 없다.

어찌 비례(比例)의 학문에 있어서 추리(推理)해서 이해함이 이리도 멀지 못한 것일까.
그러나 파괴라고 해서 모두를 무너뜨려 없애 버리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다만 구습(舊習)중에서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을 고쳐서 이를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이름은 파괴지만 사실은 파괴가 아니다.

그래서 좀더 유신을 잘 하는 사람은 좀 더 파괴도 잘 하게 마련이다.

파괴가 느린 사람은 유신도 느리고 파괴가 빠른 사람은 유신도 빠르며,

파괴가 작은 사람은 유신도 작고, 파괴가 큰 사람은 유신도 큰 것이니

유신의 정도는 파괴의 정도와 정비례(正比例)한다고 할 수 있다.

유신에 있어서 가장 먼저 손대야 하는 것은 파괴임이 확실하다.
「조선불교유신론」 제4장에서

파괴란 깨뜨려 버린다는 뜻으로서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문화가 탄생할 때면 낡은 사상과 낡은 문화를 파괴시켜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문화의 창조자들이 항상 외치는 구호가 된다.
이상과 같은 한용운의 파괴론은 유신론의 핵심 사상이며 한용운만의 특론인데

한용운은 어디서 이와 같은 특론이 나왔으며 누구로부터의 영향일까?

한용운은 남들과 같이 일본 유학을 한 것도 아니고 겨우 5개월 동안의 일본 견문 정도이며

그가 받은 교육이라야 강원도 산속으로 다니며 전수받은 불경 공부였다.

그와 같은 한용운의 의식속에 파괴론과 같은 특이한 이론이 어떻게 나올 수 있었는지 몹시 신비로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저술인 『조선불교유신론』을 제대로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와같은 의문은 문제될 것이 없다.

한용운의 서구철학사상에 대한 식견이 너무나 방대하기 때문이다.

16세기 독일의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를 비롯하여 영국의 청교도 혁명을 주도한 크롬웰이며 칸트의 관념철학을 논하고

베이컨의 인식론과 데카르트의 철학사상을 불교철학 사상과 비교하며

플라톤의 대동설을 말하고 룻소의 평등론을 이야기하며 다윈의 진화론에 이르기까지

서구 사상가들의 제론을 종횡으로 구사하는 것을 보면 누구나 감탄을 연발하게 된다.
그러면 이와같은 서구 사상을 한용운에게 전수시킨 인물은 누구일까 하는 점인데

한용운의 문학사상을 연구한 모든 논설을 보면 양계초(梁棨超)의 『음빙실문집(飮氷室文集)』을 말한다.

양계초의 사상은 한용운에게 다대한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의 소설 「신중국미래기」를 읽어보면 소설의 주인공 황거창으로 하여금 유명한 파괴론을 말한다.

오늘날 중국은 파괴하여도 파괴되며 파괴하지 않아도 파괴될 수밖에 없다.

분명히 한용운은『조선불교유신론』을 쓰기 전에 양계초의『신중국미래기』를 읽었고,

유신론의 파괴론은 그 소설을 읽으면서 얻어진 생각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용운의 파괴론은 양계초의『음빙실문집』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16세기 루터의 종교개혁사를 보다 철저히 공부하였고, 그 곳에서 얻어진 사유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왜냐하면 루터의 종교개혁 과정과 『조선불교유신론』의 내용을 비교하여 보면

똑같은 모티프가 너무나 많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우선 파괴론의 경우를 살펴볼까 한다.

「하나님은 더욱 파괴할 때 그만큼 더 구원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의 고유한 일을 하시기 위하여 이질적인 일을 하심으로써 신비스럽게 그 뜻을 행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이질적인 일을 하시는 분은 누구인가 하는 데 대해서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구구하다.

하나님은 그 고유의 일만 하시는데 파괴적인 일은 자연적으로 원수가 하는 것일가?
전경연(全景淵) 해제(解題)
「루터의 사상과 그리스도인의 자유」에서

인간은 오직 신앙에 의해서만 정당화되는 것이지 행위에 의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을 때

그가 의미했던 것은 무엇이었던가?

왜 이것은 전체 중세교회제도를 파괴하는 슬로우간이 되었던가?
E.H 할비슨(Harbison) 지음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에서

이어서 또 다른 종교 개혁사를 읽어보자.

그는 그의 시대를 거대한 파괴의 시기로 간주하였다.
한스, 릴게 지음 「마르틴 루터」에서

종교 개혁은 실제면에서나 사상면에서나 중세나 중세 기독교 왕국을 파괴시킨 대변동을 초래……
죠지. L. 모스 지음 「종교개혁」에서

이상과 같이 파괴론은 루터의 종교 개혁사를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접하게 되는 모티프로서

한용운은 『조선불교유신론』을 쓰기 전이나 그렇지 않으면 쓰면서 틀림없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 것이 분명하다.

한 가지 사실만 더 비교하여 본다.

『조선불교유신론』의 제11장은 불가의 각종 의식에 대한 간소화론인데

루터의 3대 저술의 하나인「교회 바비론 감금」도 역시 기독교 의식의 타락을 간소화 시키자는 주장인데

두 저술의 내용을 비교하여 보면 루터의 생각과 한용운의 생각은 너무도 일치한다는 점을 들수 있고

이어서 또 하나 밝혀둘 사항이 있다.
한용운의 기독교에 대한 관심은 초기의 기록과 중기와 후기로 구분할 수 있는데

초기의 관심은 『조선불교유신론』을 들 수 있고,

그후 중기 후기의 기록에서 많이 표출되는데 중기의 경우는 시집『님의 침묵』속에 나타나 있는 성서적 이미지를 말할 수 있고,

후기의 경우는 1933년을 중심으로 자신이 발행한 잡지『불교』지에 기독교에 관한 많은 논설들을 발견할 수 있다.
「현대 아메리카의 종교」「신러시아의 종교운동」「나찌스 독일의 종교」「세계 종교계의 회원」「유태민족의 건국운동」등인데

상기의 논설에 대하여 지면 관계로 구체적인 해설을 가할 수는 없지만 한용운의 서구 종교개혁사에 대한 연구와

구약성서의 모세 출애굽기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다대하였는지를 충분히 증명할 수 있는 기록들이다.

앞으로 시집 『님의 침묵』의 작품들을 평설하는 과정에서 좀더 깊이 재론될 것이다.

 



(4) 비교론(比較論)


『조선불교유신론』과 시집『님의 침묵』을 비교하여 본다.

전편의 내용은 1910년대의 한국불교 개혁론으로서 종교적인 저술서이고 후편은 같은 저자의 시집으로서 문학작품에 속한다.

그러므로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더구나 전편은 한문체의 기록이며 후편은 한글체의 기록이다.

그리고 논(論)이란 이성적이며 논리적인데 반하여 문학(文學)이란 감성적이며 상상력의 창작품이다.

그러므로 두 편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두 편의 내용을 자세히 읽으면서 관찰하여 보면 문장의 수사적 표현에 있어 어딘가 대조되는 점들이 많이 발견된다.

특히 문장력의 구성과 표현력에 있어 대조점들이 도처에 감지되었다.

지금부터『조선불교유신론』을 먼저 읽고 그에 대조되는 점을『님의 침묵』중에서 발견하는 일이다.

『조선불교유신론』의 머리말(序)은 총 142자로 간결하게 표현된 문장이다.

 

그중 그림자(影)라는 낱말이 세 번 읽혀진다.

이 논설은 진실로 매화의 그림자(影)에 지나지 않는다……
比論固梅之影……
「조선불교유신론」 서(序)에서

이어서『님의 침묵』을 읽어본다.

서문에 해당되는「군말」은 총 170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문장의 흐름이「조선불교유신론」의 머리말을 연상하게 하며

그림자란 낱말도 읽혀진다.

너에게도 님이 있더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

이상과 같이 한용운은 『조선불교유신론』의 머리말에서 그림자(影)란 시적 은유를 사용하였는데

15년후 다시 시집 『님의 침묵』에서도 그림자(影)란 시적 은유를 재창조하였다.

다시 말하여 한용운은 그림자란 낱말을 무척이나 쓰기 좋아 하였다.

<군말> 뿐만 아니라 기타 시편 속에서도 그림자란 낱말을 즐겨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아 나는 님의 그림자여요 님은 님의 그림자밖에는 비길만한 것이 없읍니다.
시 「님의 얼굴」에서

당신의 그림자는 「광명」인가요 ……
시 「반비례」에서

환상의 여왕도 그림자를 감추었습니다 ……
시 「고적한 밤」에서

그림자가 소리없이 걸어와서 ……
시 「괴락」에서

그 나라는 그림자 없는 사람들이 ……
시 「가지마세요」에서

『조선불교유신론』의 머리말 속의 그림자(影)에 관한 뜻과『님의 침묵』속의 그림자에 관한 이미지를 비교 분석하여 보는 일이

중요한 일이겠지만 그에 관한 비교와 분석은 다른 기회로 미룬다.

왜냐하면 본 지면은 오직『조선불교유신론』의 문장과『님의 침묵』의 문장에 있어 대조되는 점들을 우선 찾아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또 한편을 대조하여 본다.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난다.'

상기의 속담은 한국인이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흔한 속담의 한 가지다.

하지만 이와같은 평범한 속담도 한용운의 상상력 속으로 스며들어 재창조적 과정을 거치면 한용운식 독특한 문장으로 변한다.

복숭아꽃이 피는 곳에 복숭아가 열리고, 오얏꽃이 피는 데는 오얏이 열리며,

오이를 심으면 오이가 열리고, 콩을 심으면 콩이 생기는 것뿐으로서,

꽃은 장미인데 과일은 감 혹은 귤이거나, 뿌리는 저령(猪笭)인데 잎은 파초(芭蕉)이거나 하는 일은 없으니
<명불당의 폐지>에서

『조선불교유신론』의 제7장 명염불당 폐지를 주장한 과격한 불교 개혁론 속에서 읽혀지는 문장으로서

한용운식의 독특한 표현이다.

시집 『님의 침묵』을 읽어 보노라면 그와 대조되는 한용운식 문장들을 만날 수가 있다.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이별이 온다는 뜻으로 우리가 흔히 쓰는 한자 숙어이다.

필자는 누구보다도 그 말을 비교적 많이 들은 편이다.

필자의 지우중에 회자정리(會者定離)란 숙어를 즐겨 사용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보통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숙어이지만 그 말이 다시 한용운의 상상력 속에서 다시 창조되어

또 한 편의 명문이 이루어진다.

우리는 만날 때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시 「님의 침묵」에서

한용운의 대표작이며 「님의 침묵」의 모티프가 되는 시구인데, 한용운이 그와 같은 명시를 창작할 수 있었던 것은

이상과 같은 평범한 일상 용어를 재창조할 수 있는 그와 같은 문장의 수사적 표현력과 상상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조선불교유신론』을 읽어본다.

중구난방(衆口難防), 또는 조령모개(朝令暮改), 이전투구(泥田鬪狗)와 같은 흔히 사용하는 말들이 있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말들이 한용운의 상상력 속에서 재창조의 과정을 거치면 『조선불교유신론』 제15장의 문장으로 변화된다.

일이 동쪽에서 생기면 비방이 서쪽에서 일어나고 의론이 아침에 합치했으면 취지를 저녁에 달리하며

개가 이빨을 드러내고 덤비듯 거역해서 하나도 이루는 것이 없는 실정이다
<승려의 단결>에서

한국불교종단의 고질적 치부를 드러내주는 날카로운 비판인데,

한용운은 이같은 비판의 문장을 표현함에 있어서도 일반인들이 흔히 사용하는 숙어를 기초로 하고

그 숙어에 상상력을 더하여 한용운식의 독특한 문장을 만들어낸 것이다.

다시 『님의 침묵』의 경우를 읽어 본다.

'상전벽해(桑田碧海)'

뽕나무 밭이 변하여 바다가 된다는 뜻으로 한국인들 사이에 흔히 쓰는 말이다.

그러나 이같은 평범한 문장이 한용운의 상상력 속에서 명시의 한 구절로 변화된다.

님이여 당신은 백 번이나 단련한 金결입니다. 뽕나무 뿌리가 산호가 되도록 天國의 사랑을 바듭소서
시 「창송」에서


한용운의 문학적 상상력은 뽕나무 밭이 바다로 변하지 않고 뽕나무 뿌리가 바다속 산호로 재창조된다.

한용운의 문학적 상상력과 표현력이 얼마나 독창적이며 풍부한가를 보여주는 예문이다.

『조선불교유신론』속의 또 한 편의 독특한 한용운식 문장을 읽어본다.

밤이 긴데 내게는 잠이 안오고 생각이 참으로 길어지니 도리어 고개드는 시름!
시름은 끝없기에 한숨과 노래 뒤섞이노니 아우여 형이여 들리지 않는가 이는 파리 소리가 아니라 닭의 울음임을
<결론>에서

『조선불교유신론』의 모든 주장은 파리 소리가 아니고 새벽닭의 울음과 같다는 시적 표현이다.

그러면 이상과 같은 감동적인 시적 표현은 누구의 문장으로부터 인유된 것일까?
당시 조선조 선비들이면 누구나 암송하고 있는 시경(詩經) 제풍(齊風)의 첫머리인 계명(鷄鳴)이다.

닭이 우네요(鷄鳴)

닭이 우네요
조회가 시작될 때
닭은 무슨 닭소리?
파리 소리지
鷄鳴
鷄旣鳴矣
朝旣盈矣
匪鷄則鳴
蒼蠅之聲

계명(鷄鳴)은 해석하기에 난해한 시편에 속하며 조선조 시대 지식인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시경의 한 귀절이다.

그러나 한용운의 상상력은 이와같이 누구나 알고 있는 흔한 문장에 자신의 상상력을 더하여 한용운식의 독특한 문장력으로

재창조한다.
『님의 침묵』을 읽어보면 그와 대조되는 또 한 편의 시구가 발견된다.

동지(冬至)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버혀내어
춘풍이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이는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한 황진이의 시조로서 긴긴 동지달의 밤을 허리를 꺾어 둘로 만든다는 뜻으로

황진이의 시조를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감탄하며 그와같은 황진이의 표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것은 엄두도 못내지만

한용운은 황진이의 시조를 인유하여 황진이 이상으로 새로운 한용운식 표현을 만들어 내었다.

나는 영원한 시간(時間)에서 당신 가신 때를 끊어 내었습니다. 그러면 시간은 두 도막이 납니다 ……
시 <당신 가신 때>에서

당신이 오시면 나는 사랑의 칼을 가지고 긴밤을 베혀서 일천(一千)도막을 내었습니다 ……
시 <여름밤이 길어요>에서

남들이 별로 관심없이 읽는 문장을 인유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내는 한용운의 문학적 상상력은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다.

이상과 같은 한용운의 문장적 특징은 『조선불교유신론』속에 무수히 많이 발견되며,

『님의 침묵』에 이르러 한용운의 그와같은 문장적 특징은 비로소 완숙의 경지에 이른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와같은 한용운의 문학적 근원은 『조선불교유신론』에서 이미 발견된다는 점이며,

본론의 핵심이 되는 결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와같은 한용운의 문학적 상상력은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

한용운의 수필 「선외선(禪外禪)」을 읽어보다가 비로소 그와같은 한용운 문학의 바탕을 발견하게 되었다.

'상치사려' '상치요' 하고 외치면서 지나가는 상치장사가 있었다.

'상치장수'하고 부르면서 어느 여관집으로 부터 빨리 나오는 중년 여자가 있었다.

'예' 하면서 상치짐을 놓은 상치장수는 상치 덮었던 부대조각을 걷어 놓는다. 그 여자는 뒤적거려 보더니
'상치가 잘군' 하더니 뜨악해 하고 섰다.
상치 장수는 껄껄 웃으면서
'예 잘게보면 잘고 크게보면 크고 그렇지요' 한다.

나는 그 광경을 보다가 상치장수의 나중말을 듣고 불각(不覺) 중에 점두(點頭)하였다.

그것은 그 말이 곧 일체유심(一切唯心)의 선어(禪語)가 되는 까닭이다.
<선외선> 첫머리에서

이상과 같이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만난 상치장사의 말에서도 훌륭한 선어(禪語)를 발견하는 한용운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길을 가다가 상치장사의 무심히 하는 말까지도 놓치지 않는 한용운의 우리 말에 대한 관심,

바로 그와같은 관심과 사고와 상상력과 수사적 표현력이 있었기에

『님의 침묵』 『조선불교유신론』과 같은 한국의 명시와 명논설이 창작되고 저술될 수 있었다고 보아야 될 것이다.

 



(5) 배경론(背景論)


어떤 화가의 그림이든지 그 그림에는 배경이 있다. 불교의 불화나 기독교의 성화도 역시 마찬가지다.

부처님과 예수님 머리 부분에는 두광(頭光)이 배경으로 표현되며 몸에는 신광(身光)이 배경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배경이란 미술만이 아니다. 음악이며 문학이며 모든 분야에는 모두 배경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조선불교유신론』에도 물론 배경이 있다.

만일 『조선불교유신론』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유신론의 배경은 틀림없이 서양화가 될 것이다.

『조선불교유신론』을 읽어보면 한용운은 서구 철학사상에 당시 누구보다도 앞선 인물이며

유신론을 쓰기 위하여 많은 서구 철학사상을 연구한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유신론을 읽어가면서 서구의 철학사상 및 종교, 정치, 문학별로 내용을 분석하여 볼까 한다.

(A) 사상 …… 칸트, 파스칼, 스피노자, 홀스, 스펜서, 로크, 벤담, 아담 스미스, 윌리암베트, 베이컨, 데카르트, 플라톤, 룻소,

웨켈, 흄, 데이케트, 벨포 등 수많은 서구 철학 사상가들의 이름이 거론되며 그들의 학설이 소개되는데

그 중 칸트의 이름은 총 7번이나 등장한다.
(B) 종교 …… 예수, 마호벳, 매그라스가르, 구든슨모리스 등인데

그 중 예수의 이름은 3번이나 거명되며 특히 개신교 활동에 대한 많은 사실이 소개되어 있다.
(C) 정치 …… 워싱턴, 나폴레옹, 카부르 등이며 그 중 나폴레옹은 5번이나 거명된다.
(D) 문학 …… 괴테, 볼테에르
(E) 기타 …… 콜롬부스, 와트, 다윈 등의 학설이 소개되어 있다.


이상과 같이 유신론의 근본은 조선불교를 유신하는 데 있지만 그 배경을 살펴보면 서구사상과 서구의 정치문화론 등이

배경으로서 장식되어 있다는 점이다.

상기의 분석 과정에서 읽어본 바와 같이 한용운이 서구사상 중에도 가장 큰 관심을 가진 것은 서구의 철학 사상이며

이어서 종교사상과 정치 문학 순으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하여 서구문학 분야에는 비교적 관심이 없었다고 생각된다.

서구 문학인 중에는 겨우 괴테와 볼데에르 두 사람뿐인데

그들의 문학세계와 사상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볼테에르의 경우 17세기 계몽주의시대 문인으로서 그의 자유사상과 그의 파란만장한 투쟁경력 정도는 알고 있었을 것이며,

그의 방대한 작품 세계는 접하지 못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한 가지 말할 것은 괴테의 경우를 보면 큰 실수를 범하고 있다.

괴테는 일생 장가를 들지 않은 채 문학으로 아내를 삼았고 ……

제13장 승려의 결혼 문제에서 이상과 같이 괴테를 논하였는데 이것은 괴테를 몰라도 너무나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괴테는 유부녀로부터 시작하여 하녀 처녀 등 수많은 여인들과 사랑의 관계를 맺은 유미주의 문학에 대표적 인물이며

정식 결혼도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용운은 철학, 정치, 종교에는 많은 식견이 있었으나 서구의 문학 분야에는 높은 수준에 이르지 못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와 같이 서구문학 사상에는 전연 문외한이었던 한용운이 어떠한 경로를 거쳐 특히 서구의 시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마침내 『님의 침묵』과 같은 불후의 명시집을 탄생시키었는지를 밝혀 보아야 될 것이다.

 


(6) 결 론


『님의 침묵』속에는 아무리 읽어 보아도 싫증나지 않는 좋은 명시들이 많이 있다.

필자는 그와 같은 명시들이 좋아서 한 편 한 편 읽어 보며 평설을 시도하여 보았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조선불교유신론』이다.

한용운의 문학사상을 좀더 깊이 있게 이해하려면 『조선불교유신론』을 일단 통과하여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유신론은 한용운의 첫 저술이며

정신적인 면이나 육체적인 면에서 가장 순수하고 강력한 힘이 발산하던 시기의 한용운의 저술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쓰고 있던 『님의 침묵』의 평설을 일단 중지하고 『조선불교유신론』을 읽어보면서 분석을 시도한 것인데

서론에서도 잠시 밝힌 바 있지만 『조선불교유신론』에는 한용운과 관련된 비판의 여지가 많이 있지만

그러나 본론의 중심은 문학론에 있으므로 일단 그 문제는 제외하였다.

본고는 1. 서론, 2. 유신론, 3. 파괴론, 4. 비교론, 5. 배경론 등으로 구분하였는데

모두가 중요하지만 그중 2. 파괴론, 3. 비교론이 본문의 핵심이 되었다.

『조선불교유신론』의 특징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파괴론에 있다.

그리고 그 파괴론은 끝난 것이 아니다.

앞으로 한국 불교의 앞날이 좀더 빛을 발하자면 한용운의 파괴론을 과감하게 수용하여야 될 것이다.

한용운은 그 후 그의 파괴론이 3.1운동 과정에 있어서도 작용하였는데 그 때도 그는 실패하고 말았다.

한용운은 최남선이 저술한 「기미독립선언문」를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하였으며 자신이 저술하려 하였지만 실패하였다.

그것은 한용운의 파괴론적인 입장에서 볼 때 「기미독립선언문」은 당연히 못마땅하였을 것이다.

만약에 「기미독립선언문」이 한용운의 주장대로 되었다면 어떠한 결과가 나왔을까 하는 점인데,

역사란 가정이 있을 수 없지만 만약 한용운의 주장대로 「기미독립선언문」이 저술되었다면

3․1운동이 아니라 3․1혁명이란 명칭이 가능하였을 것이다.

이어서 본 평설의 중심이 되는 것은 4. 비교론인데,

『조선불교유신론』과 『님의 침묵』을 대조한 것은 앞으로 『님의 침묵』을 평설하고 작품을 감상하는 데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