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동시 모음

2010. 10. 6. 22:49詩.

 

 

 

 

 

 

 

  

 

         가을 하늘

 



토옥
튀겨 보고 싶은,

주욱
그어 보고 싶은,

와아
외쳐 보고 싶은,

푸웅덩
뛰어들고 싶은,

그러나
머언, 먼 가을 하늘.

  


       (윤이현·아동문학가)

 

 

 

 

 

 

 

 

 

기다려주기

 

 

 

할 일 못다 한
여름 뒤에서

가을은
가만히 걸음을 멈추어요.

매미 울음 걷느라 이리저리
훗훗한 바람 담느라 허둥지둥
급해진 여름을 위해

가을은
살며시 언덕에 걸터앉아요.

"찬찬히 해."
가을은
뒤돌아보는 여름에게
보오얀 쑥부쟁이 한 송이 꺼내 흔들어 주어요.


(박소명·아동문학가)

 

 

 

 

 

 

 

 

    맑은 날



가을은 저 혼자서도
잘 논다.

앞으로 나란히 나란히 줄지어 선 옥수수들에게
-어디 보자,
뻐드렁니가 났나
안 났나?

치과 의사 같은 햇볕이 찾아가
들여다보기도 하고
심심하면
아무 곳에나 고추잠자리 떼를
풀어놓기도 한다.

가을은 그렇게
가을끼리 잘 논다.

 


          (손동연·아동문학가, 1955-)

 

 

 

 

 

 

 

 

새 손톱



한여름 무더위가
물러갑니다.

설렁설렁 신선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손톱에 들인 발간 봉숭아 꽃물이
물러납니다.

초승달 하얀 세 손톱이
돋아납니다.

 


                 (이상교·아동문학가, 1949-) 

 

 

 

 

 

 

 

 

가을 하늘



옹달샘에
가라앉은
가을 하늘.

쪽박으로

마시면

쭉---
입 속으로
들어오는

맑고
푸른
가을 하늘.

 


           (손광세·아동문학가, 1945-)

 

 

 

 

 

 

 

 

해바라기꽃

 


벌을 위해서
꿀로 꽉 채웠다.

가을을 위해서
씨앗으로 꽉 채웠다.

외로운 아이를 위해서
보고 싶은 친구 얼굴로
꽉 채웠다.

해바라기 꽃

크으다.  

 

 

             (이준관·아동문학가)

 

 

 

 

 

 

 

 



가을볕이 따갑다.
모자 위에 흰 수건을 덮어 쓴 아주머니들이
쑥쑥 무를 뽑는다.
그 동안 아프지 않고
얼마나 싱싱하게 잘 자랐는지
목이 말라도 얼마나 잘 참고 참다운 무가 되었는지
아주머니 한 분이 쓰윽 흙을 닦고
한 입 베어먹고는
살짝 웃으신다.

 


                   (정호승·시인, 1950-)

 

 

 

 

 

 

 

가을 숲

 


"엄마 내려가도 돼요."
열매들이 나무에서 묻고 있어요.

"단단히 익었니?"
"예!"
"예!"
"예!"
대답 소리 들려요.

"뛰어내릴 자신 있니?"
"예!"
"예!"
"예!"
대답 소리 들려요.

-톡!
-톡!
-톡!
......
열매들이 뛰어내려요.

"겨울 동안
콜콜 잠자야 한다."

열매를 덮어 주려
지는 나뭇잎.

 


          (신현득·아동문학가, 1933-)

 

 

 

 

 

 

 

 

가을 나무

 


잎도 열매도
떠나 보내고
이제 할 일이 없어 조용하겠다.
나를 쳐다보는
모든 이의 눈빛이 그랬습니다.

허나, 잎이 떠난 자리에
열매가 떠난 자리에
햇볕이 화안하여
더욱 허전한 그 자리

둘레 둘레
싸늘한 바람이 일어
아픔이 더해지는 그 자리에

겨울이 오기 전
꼭꼭 바느질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박두순·아동문학가)

 

 

 

 

 

 

 

 

빛은



가을빛은
녹아서
단맛이 된다
사과 속에서.

가을빛은
녹아서
향기가 된다
국화 속에서.

어머니 눈빛은
녹아서
사랑이 된다
내 가슴속에서.

 


          (정현정·아동문학가, 1959-)

 

 

 

 

 

 

 

 

가을 밤

 


착한 아기 잠 잘 자는
베갯머리에
어머님이 혼자 앉아
꿰매는 바지
꿰매어도 꿰매어도
밤은 안 깊어.

기러기떼 날아간 뒤
잠든 하늘에
둥근 달님 혼자 떠서
젖은 얼굴로
비치어도 비치어도
밤은 안 깊어.

지나가던 소낙비가
적신 하늘에
집을 잃은 부엉이가
혼자 앉아서
부엉부엉 울으니까
밤이 깊었네.

 


            (방정환·아동문학가, 1899-1931)

 

 

 

 

 

 

 

 

절간

 


암자는
구름을 이고
조는 듯 한가롭고

가을빛은
너무 고와
타는 듯한 노을인데

뽀르르
다람쥐 한 마리
놀다 간 빈 뜨락

부처님
닮으신 스님
부처님처럼 앉았다가

착한 아기
왔다면서
주시는 머루 한 송이

까아만
알알에 서린
전설 같은 산내음.

 


          (정석영·승려 시인)

 

 

 

 

 

 

 

 

 

풀벌레 핸드폰

 


가을 풀숲에
풀벌레가 핸드폰을
숨겨 두었다.

찌르르 찌르르
호르르 호르르
삐리리 삐리리

핸드폰을 받으려고
가만 다가가면
뚝 끊어버리는

번호도 알 수 없는
풀벌레 핸드폰
언젠가 꼭
통화하고 싶은.

 


            (이경숙·아동문학가)

 

 

 

 

 

 

 

 

풀벌레 소리



풀벌레들이 숙제를 한다

구구단을 외우고
동시를 외고
애국가를 사절까지
부르고, 또 부른다

밤새도록 저러다간
낼 아침 지각하겠다

 


             (고미숙·고전 평론가, 1960-)

 

 

 

 

 

 

 

 

수북수북


길가에
가랑잎이 수북하다
가랑잎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발 밑에 수북하다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무릎까지 수북하다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귓속까지 수북하다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온몸에 수북수북하다

 


           (신형건·아동문학가, 1965-)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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