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9. 12. 17:40ㆍ詩.
독자에게
어리석음, 과오, 죄악, 탐욕이
우리 정신을 차지하고 육신을 괴롭히며,
또한 거지들이 몸에 이.벼룩을 기르듯이,
우리의 알뜰한 회한을 키우도다.
우리 죄악들 끈질기고 참회는 무른고야.
고해의 값을 듬뿍 치루어 받고는,
치사스런 눈물로 모든 오점을 씻어내린 줄 알고,
좋아라 흙탕길로 되돌아오는구나.
흘린 우리 정신을 악의 배갯머리에서
오래오래 흔들어 재우는 건 거대한 <악마>,
그러면 우리 의지의 으리으리한 금속도
그 해박한 연금술사에 걸려
몽땅 증발하는구나.
우릴 조종하는 끄나풀을 쥔 것은 <악마>인지고!
지겨운 물건에서도 우리는 입맛을 느끼고,
날마다 한걸음씩 악취 풍기는 어둠을 가로질러
혐오도 없이 <지옥>으로 내려가는구나,
구년묵이 똥갈보의 시달린 젖을
입맞추고 빨아먹는 가련한 탕아처럼,
우리는 지나는 길에 금제의 쾌락을
오렌지처럼 한사코 쥐어짜는구나.
우리 뇌수 속엔 한 무리의 <마귀> 떼가
백 만의 회충인 양 와글와글 엉겨 탕진하니,
숨 들이키면 <죽음>이 폐 속으로 보이지 않는 강물처럼
콸콸 흘러내린다.
폭행, 독약, 비수, 방화 따위가
아직 그 멋진 그림으로
우리 가련한 운명의 용렬한 화포를 수놓지 않았음은 오호라!
우리 넋이 그만큼 담대치 못하기 때문.
허나, 승냥이, 표범, 암사냥개, 원숭이,
독섬섬이, 독수리, 뱀 따위,
우리들의 악덕의 더러운 동물원에서,
짖어대고, 노효하고, 으르렁대고 기어가는 괴물들,
그중에도 더욱 추악 간사하고 치사한 놈이 있어!
놈은 큰 몸짓도 고함도 없지만,
기꺼이 대지를 부숴 조각을 내고 하품하며
세계를 집어삼킬 것이니,
그 놈이 바로 <권태>! -
뜻업시 눈물 고인눈으로,
놈은 담뱃대를 물고 교수대를 꿈꾸지.
그대는 알리, 독자여, 이 까다로운 괴물을
- 위선의 독자여, - 내 동류여, - 내 형제여!
(보들레르의 '악의 꽃'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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