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핀, 무소륵스키의 초상

2010. 9. 11. 11:42미술/ 러시아 회화 &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Portrait of the Composer Modest Petrovich Mussorgsky. Oil on canvas. 69 × 57 cm.

The State Tretyakov Gallery, Moscow.

 

 

 

시아 음악가를 그린 초상화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레핀이 그린 <작곡가 무소륵스키의 초상>일 것이다.

워낙 초상화가로서 명성도 대단했지만, 당대의 명망가들과 교유가 많았던 까닭에 레핀은 위대한 음악가들의

초상 또한 많이 남길 수 있었다.

<작곡가 무소륵스키의 초상>은 무엇보다 모델이 된 이의 위대한 예술혼이 우리 앞에 생생하게 살아나오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진정 감탄스러운 작품이라하지 않을 수 없다. 무소륵스키가 살아서 우리 앞에 있다 하여도

과연 이 정도로 예술혼이 느껴질 수 있을까?  

작품의 생동감은 무소륵스키의 한껏 취한 표정과 그 취기에도 불구하고 날카롭게 쏘아보는 눈빛 사이의 긴장에서

나온다. 피아노 모음곡 <전람회의 그림>으로 유명한 무소륵스키는 비타협적이고 고집이 센 한편 파격적이고 즉흥적인

착상으로 이름이 높았다.

이 그림은 무소륵스키가 죽기 직전 병상에 있을때 그려진 것으로, 붉게물든 코와 헝크러진 머리, 풀어진 얼굴이

해체 되어가는 육체의 현실을 생생히 전해준다. 반면 그렇게 육체가 흔들릴수록 더욱 선명하게 살아나오는 영혼은,

위대한 예술은 위대한 정신의 소산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육체와 영혼이 이렇게 뚜렷이 분리되어 보이는 그림도 드물 것이고, 또 육체와 영혼이 이처럼 극적으로 결합되어

보이는 그림도 드물 것이다.

 

글. 이주헌

 

 

 

 

.

.

 

 

 

 
대담한 화성, 근대인상파 음악의 선구자

Modest Petrovich Musorgsky,1839~1881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1852년 근위사관학교에 입학, 1859년 임관되자

곧 예비역에 편입되어 음악공부를 계속 할 수 있었다.

M.A.발라키레프에게서 작곡을 배우고

국민악파 5인조의 일원으로 활약하면서 작곡에 전념하였다.

1861년 농노해방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으로 1863년부터 관리가 되고

1865년 어머니가 죽자 심한 음주벽과 신경쇠약으로 주위로부터 소외되었다.

이런가운데서도 여러편의 피아노곡, 교향곡,오페라, 가곡등을 작곡.

러시아의 고유의 선법과 대담한 화성, 변칙적인 리듬 등을 구사하는 기법으로

근대 인상파의 선두가 선구자가 되었다.

드뷔시를 비롯한 많은 근대 음악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푸시킨의 희곡을 작곡한<보리스 고두노프> <어린의 방>,

<죽음의 노래와 춤> <전람회의 그림.1874>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