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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회화의 거장 '일리야 레핀'의 예술세계

 

 

『일리야 레핀』은 19세기 시각예술을 대표하는 러시아 회화의 거장 일리야 레핀의 생애와 예술작품, 직접 쓴 편지글들을 소개한다. 인간의 영혼을 통찰했던 레핀의 삶, 하나의 학파에 구애되지 않고 다양한 화법을 구사했던 화가 레핀의 예술, 그리고 100여 편의 걸작들에 대해 자세한 해설을 제시하였다.

 

“어제는 성서를 주제로 그리고, 오늘은 민중이 등장하는 현대적인 장면을 그린다. 그 다음에는 환상적인 영웅서사시, 외국의 생활 풍속도, 민속학적 그림, 그리고 경향성 있는 신문 기사, 그 다음에는 심리학적 습작, 그 다음에는 멜로드라마를 그린다. 그러다가 갑자기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한 장면을 그리는 식이다.” 

 

자신의 그림이 난해하다는 비난을 받은 러시아 화가 레핀은 일정한 목적성도 없고 연속성도 없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리고 결론지었다. “옳은 것도 정당한 것도 좋다. 그러나 자신을 잃지는 않는다. 나는 다양한 것을 좋아한다.”

 

- <제 1부, 레핀의 생애와 예술> 중에서 -

 

 

 

 

 

 

 

 Ilya Yefimovich Repin, Unexpected Return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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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lya Yefimovich Repin,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Unexpected Return>1, Oil on canvas.

 

 

 

그림Ⅰ 언니(딸) 의 귀환

 

 

이 그림은 1870~1880년대 러시아 혁명기에

한 여대생이 유형지에서 집으로 돌아온 순간을 극명하게 묘사한 작품이라고 한다.  

 

혁명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가 형벌을 받고 돌아온 그녀의 등장에

반가움과 동시에 그녀로 인해 앞으로 가족에게 다가올 또 다른 위기 때문에 

무조건 환영할 수만은 없는 가족들의 입장을

너무도 생생한 표정묘사와 팽팽하게 대립하는 긴장된 구도를 잘 표현해 내고 있는 작품이다. 

 

집으로 돌아갈 순간만 기다리며 온갖 고생을 참아오다

마침내 기쁘고 설레는 마음을 한컷 품고 집안 문을 열었으나 

돌아온 그녀를 바라보는 형제들의 모습에서 현실을 직시하고는

귀환의 기쁨과 가족대한 실망,

자신이 겪은 인고의 세월이 교차하는듯한 표정을 자아내는 

돌아온 자의 생생한 표정 묘사와,,

 

언니가 돌아온 사실에 놀라움과 반가움이 앞서지만,

언니라는 존재 때문에 다가올 위기감과 두려움.

언니가 없을 때 만들어진 새로운 가족질서의 파괴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남은 자의 생생한 표정 묘사가 백미인 작품이다.  

 

울러 이러한 긴장된 순간의 표정에 전체적으로 더더욱 강한 긴장감을  불어 넣는 것은

등장인물간의 적절한 구도와 등장인물의 적절한 배치라고 할 수 있다. 

마치 그들 사이에는 건드리면 그림 체가 폭발해 버릴듯한 보이지 않는 실로 엮여있는것 같다. 

특히 이러한 긴장감은 앞에서 계속 이어진 것이 아니라

돌아온 자가 문을 여는 그 짧은 순간에 갑자기 매우 강하게 형성되었고

그 순간을 올가미로 묶어 버려서 더더욱 팽팽한 생동감이 강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가족들의 이러한 돌발적인 만남을 놀랍도록 사실적으로 그린 일리야 레핀은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라는 제목으로 동일한 주제를 반복해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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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ya Yefimovich Repin,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Unexpected Return>2, 1884. Oil on canvas.

The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그림 II  이번에는 아버지다.

 

 

농노 제도의 폐지 이후, 러시아 농민의 삶은 이미 피폐할 대로 피폐해져 있었다.

이에 진취적인 성향의 교사, 의사, 점원, 노동자가 앞장서서

러시아의 독자적인 농민 자치 공동체를 기초로,

자본주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사회주의로 이행이 가능하다고 믿고

'브 나로드(v narod)'운동을 펼쳤다. 

그림속의 아버지 또한 브 나로드 운동에 참여했다는 죄목으로 유배당했고,

어느날 예고없이 집으로 불쑥 들어온 것이다.

 

초췌한 몰골로 집안으로 성큼 걸어 들어온 이 사람을 누가 이 집안의 가장으로 생각했겠는가.

가족들은 마치 낯선 이방인처럼

자신의 아들을, 자신의 남편을,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를 맞이하고 있다. 

두려움과 조심스러움이 치열하게 교차하고,

경계심과 놀라움이 분주히 섞이는 지점에서

우리도 서서히 상황을 공감하게 된다.

어떤 예술 장르가 이처럼 단시간에 이와 같은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레핀 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 내면의 본질에 대한 탐구였고,

이러한 탐구의 최종 목적은 19세기 러시아의 현실과 시대 정신에 대한 발언이었다. 

레핀은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기까지 수많은 드로잉과 밑작업으로 남겼다.

우리는 이를 통해 그림이 어떻게 구성되었고,

어떻게 수정되었나를 한눈에 살필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모델의 시선과 표정, 복장과 태도,

그리고 배경에 대한 작가의 철저한 작업 절차도 알 수 있다. 

 

1893년 그린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의 주인공 여대생은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쳐 자신의 딸인 나자를 모델로 완성한 것이며, 

1884년에서 1888년 사이에 그린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의 주인공인 자는

1885년, 1887년, 1888년에 세 차례의 수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직접적인 사회 상황 반영과 간접적인 심리 표현이 돋보이는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에서 레핀은 음을 철저히 감상자의 몫으로 남겨 둔다. 

우리가 이 그림에서 마주치는 상황은

오랫동안 부재하던 가족 누군가의 급작스러운 출현과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인해

아직 긴장이 깨지지 않은 상태일 뿐이다.

 

 

- 공주형, <사랑한다면 그림을 보여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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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lya Repin - Unexpected Return

 

 

 

1884년부터 5년에 걸쳐 개작을 거듭한 레핀의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는

이제 막 유형지에서 돌아온 한 젊은 혁명가를 가족들이 놀란 눈으로 맞이하는 장면의 그림이다.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을 달성할 국가, 전조를 드리우던 시대의 암울함과 혼란스러움이

이 그림의 긴장된 실내 분위기 속에 진하게 녹아들어 있다.  

그림 속의 젊은 혁명가는 억압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타오르는 신념의 불길을 거두지 않고 있다.

그의 이글거리는 눈은 신념의 빛이요, 빛의 표정이다.

 

 

 

 

 

 

그를 맞는 가족들의 표정은 그 미묘한 차이로 상당히 다양한 자장을 형성하고 있다.

문가의 여인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또는 잊었던 '상처'가 되살아나는 듯,

상당히 복잡한 표정으로 목석처럼 가만히 서 있다.

 

 

 

  

 

 

반면 혁명가와 마주한 검은 옷의 여인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나 그에게 막 다가서려 한다.

아마도 어머니일 것이다. 정치 현실과 이데올로기를 떠나 모정은 본능이다.

여인의 엉거주춤한 자세에서 보이지 않는 표정근의 떨림을 읽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재회의 반가움이 무엇보다 크게 스치고 지나간다.

단지 막내로 보이는 하얀 옷의 어린 소녀만이 기억을 되살려

눈앞의 '낯선 이'를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듯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다.

 

이들의 이런 표정이 모여 이룬 화음은,

마침내 한 가정의 표정을 19세기 말 러시아, 그 거대한 역사와 시대의 표정으로 승화하고 있다. 

레핀이라는 작가의 눈빛이 얼마나 날카로운 것이었는지,

그리고 시대를 향한 작가의 표정이 얼마나 엄중한 것이었는지,

이 그림에서는 어렵잖게 간취된다.

 

 

 

이주헌의 <내 마음속 그림> 中에서

 

 

 

 

 

펌)

 

일리야 레핀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의 하나인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1884년부터 5년여에 걸쳐 완성된 이 작품은 당시 러시아의 긴장된 상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그림의 중심에는 이제 막 유형지에서 돌아온 것으로 보이는 한 혁명가가 자리하고 있다. 농촌에 들어가 인민들에게 사회주의를 전파하다 붙잡혔던 나로드니키 혁명가일까, 아니면 1870년대 초반부터 도입되기 시작한 맑스의 사상을 전파하다 뻬쩨르부르그 어느 공장 지역에서 체포되었던 학생 출신 혁명가였을까?

 

그가 누구였든 짜르의 비밀경찰에 의해 혹독한 고문을 받고 영하 수십도를 오르내리는 시베리아나 바이칼호 저편 어느 유형지로 보내졌을 것이다. 오랜 유형생활은 그의 신체를 쇠약하게 했지만, 혹독한 추위도 그의 정신은 건드리지 못했다. 그림 속의 그는 무척이나 수척하고 지쳐 보이지만 형형한 눈빛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피아노가 놓여져 있는 밝고 환한 거실의 풍경은 이 가문이 가난한 농민이나 노동자의 집안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짜르 정부의 고위 관리를 맡고 있음직한 이 집의 가장은 아마 ‘골치덩이’ 아들 때문에 속 꽤나 썩였으리라. 모두가 잊고 살았던 -아니 잊으려고 노력했던- 지난 세월과 평온(?)이 갑자기 출현한 아들로 인해 깨어지는 순간이다. 때문에 밝고 환한 거실의 한 가운데로 터질듯 팽팽한 긴장이 놓여져 있다. 문밖에서 호기심과 두려움 섞인 눈으로 기웃대는 하녀와 반은 포기한 상태에서 맞이한 남편에 대한 안타까움과 원망, 앞으로의 시간들로 인해 걱정마저 스민 착잡한 표정으로 들여다 보는 아내.

아들과 마주한 어머니의 입에서는 가늘게 아들의 애칭이 새어나오다 막혀버린다. 순간 두 모자의 눈빛으로 수천가지 언어들이 오간다. 마치 베르베르의 개미들이 페로몬을 통해 수천가지 정보와 감정을 순식간에 교환하듯이 말이다. 어머니는 움푹하게 꺼진 눈에서 아들의 유형생활을 읽고 있고, 아들은 골 깊게 패인 주름에서 어미의 고통을 느끼고 있다. 무너질 듯 왜소한 어미가 힘겹게 버티어 섰는 것은 단지 아들에 대한 모정을 넘어서는 시대의 무게가 더한 탓이리라.

 

반갑고도 놀라운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는 어린 아들의 표정은, 스스로보다는 오히려 두려움으로 낯선 이를 바라보는 어린 딸의 표정으로 시선을 집중시키는 역할을 한다. 소녀의 나이를 예닐곱살 쯤으로 보자면, 아마도 최소 5년 전 쯤 아버지를 체포하러 들이닥친 비밀경찰의 난폭함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외국 여행 중이라고 믿고 있던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남루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소녀가 느꼈을 당혹감은 쉽게 이해될 수 있다.

화면 전면의 푹신한 안락의자는 이 집안이 그간 가져왔던 평온함을, 팽팽하게 흐르는 긴장은 앞으로 다가올 운명을 느끼게 한다.

짜르가 누려왔던 절대권력이 심각하게 흔들리기 시작한 19세기 러시아의 운명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레핀은 새로운 시대에 대한 벅찬 기대와 함께 앞으로 닥칠 사건과 민중들이 헤쳐가야 할 험난한 여정을 한편으론 두려움의 시선으로 보고 있었던 것일까?

 

 

펌)

 

리얼리즘 회화를 확립한 일리아 레핀(1884~1930)의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유배지 수용소에서 형기를 마치고 몇 년만에 소식도 없이 돌연 귀가한 사내와 이를 맞는 가족의 표정을 순간적으로 잡은 팽팽한 긴장감이 넘치는 화면이다. 이 작품을 보면 도스토예프스키나 솔제니친이 유형지에서 소문 없이 돌아와 집으로 들어선 장면이 저럴 것이다. 레닌 트로치키등 당시 사회주의 혁명가들은 혁명진행과정에서 로마노프왕조의 차리(비밀경찰)에 체포되어 처형당하거나 시베리아 유형을 다반사로 겪었고 냉혈한으로 직업혁명가였던 스탈린의 경우 여섯 차례나 유형생활을 겪었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는 깡마른 얼굴 쾡한 눈동자 더부룩한 수염 낡고 찌든 외투와 오랜 행려를 말해주듯 닳아빠진 가죽신 피아노가 있는 거실의 풍경과 귀환자의 날카롭고 준수한 용모로 보아 시골 지주나 도시 상류층 집안출신으로 짐작되어 단순 범법자가 아닌 교육을 받은 지식인 사상범임을 암시한다. 갑자기 나타난 그런 아들을 맞으려 엉거주춤 일어서는 어머니의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네가 내 아들이 맞냐'라는 당혹감을 옆모습을 통해 읽을 수 있다. 남편을 실내로 안내하며 문고리를 잡고 서 있는 아내의 모습.... 한편 돌연 나타난 미성년자 셋의 표정도 다양하다 . 피아노를 치다 고개를 돌린 귀환자의 누이거나 맏 딸 쯤으로 보이는 소녀는 기쁨속에 놀란 표정이고 학생복을 입은 아들은 아버지를 맞는 기쁨이 표정속에 좀더 적극적으로 표현되어있다. 그림책을 보다 고개를 돌린 어린 소녀는 저 험상궂게 생긴 초라한 남자가 대체 누구인가 하는 두려움을 표정에 그대로 드러낸다. 자신이 태어나기전이나 유아때 아버지가 차마 저런 몰골일 수는 없을 것이란 강한 부정을 드러내고 있다. 레핀의 <볼가강의 배를 끄는 사람들>과 <이반뇌제의 아들 이반>에서도 볼수 있듯, 그의 그림은 현실적인 극적 순간을 중량감 있는 구성과 극도의 긴장감으로 압축하고 있다. 이 때문에 레핀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길을 연 선구적 화가로 평가 받는다. 1971년 러시아에서 레닌이 주도한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하자 핀란드에 머물려 작품활동을 하던 이 위대한 조국의 화가에게 소련당국이 귀국을 요청했으나 레핀은 이를 거절했다. 러시아가 대 변혁기를 맞았을 때 굽이치는 역사의 격랑을 지켜보며 민중의 고통과 진보적 지식인의 수난을 꽤뚫고 이를 정직하게 화면으로 재현한 레핀이 러시아 혁명이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조국으로 귀환하지 않았을까. 말년에는 그가 종교적 테마를 추구한 점에 비추어 볼 때 사회주의 가 종교를 말살하고 교조적 전체주의로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왕정시대와는 또 다른 의미로서 자유의 억압 폭력과 공포를 조장할 것임을 탁월한 혜안으로 이미 예견했던 게 아닐까... 레핀(Ilya Yefimovich Repin) 러시아 추구예프에서 태어나 핀란드에서 사망했다. 각국을 순방하며 렘브란트를 포함한 서구의 고전을 연구한 후 귀국하여 극적 긴장과 구성의 중량감에 찬 역작을 발표했다. 깊은 사색과 관조에 의거한 모티브의 선택과 그 해석이 매우 독특하다. 많은 작품에서 제정러시아의 사회악에 대한 비판적 정신을 충격적으로 표현했다.

 

 

 

 

 

 

 

 

 

 

 

                       일리아 레핀의 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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