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 화사집

2010. 3. 29. 23:30이런 저런 내 얘기들/내 얘기.. 하나

 

 

 

 

화사花蛇

 

 

사향麝香 박하薄荷의 뒤안길이다 !

아름다운 배암 ~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 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어리냐.

 

꽃대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 내던 달변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날름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이다. ......물어 뜯어라,
원통히 물어뜯어,

 

달아 나거라, 저 놈의 대가리 !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 방초 길

저놈의 뒤를 따를 것은

우리 할마버지의 아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석유 먹은 듯...... 석유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

 

바늘에
꼬여 두를까 부다.
꽃대님 보다도 아름다운 빛 ~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이다...... 스며라, 배암 ~

 

우리 순네는 스물 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운

입술...... 스며라, 배암 !

 

 

 

 

 

 

   

 

 

미당 서정주가 죽기 얼마 전에 했던 얘기 중에,

"선생님 왜 친일을 하셨습니까?" 하니까,

"어따 그때는 일본이 그렇게 끝날 줄 몰랐당께." 

 

그야 뭐 그렇다치고,

미당이 두고두고 부끄러웠던 것은 정작 이 시집이랍니다.

이 시집만 생각하면 얼굴이 화닥거려 미치겠다더군요.

"철없어서 썼던 글인데, 이미 책으로 나가버렸으니...,"

 

왜 미당이 이 시집에 대해서 얼굴을 들 수 없다고 했는지를 저는 잘 모르겠는데

여러분은 아십니까?

 

이 시는 우리가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웠던 시입니다. 

본인이 그렇게 낯부끄럽다고 느끼는 시를  온갖 미사여구로 평론했던 사람들은

참으로 입장이 난처해졌을 겁니다. 

 

 

 

 

.

.

 

 

 

 

제가 글이랍시고 쓴 게 오 년 남짓 되는 것 같은데,

처음은 말할 것도 없고 불과 일 년, 아니 몇 달 전에 쓴 글도  마음에 안듭니다.

내용상의 어떤 것이라기보다는 글맵씨가 맘에 안들어서 그렇습니다.

잊고 지내다가도 누군가 스크랩을 해가면  뭔가싶어서 다시 딜다봐지는데,

그럴때 보면 하도 한심해서 그 참에 그 전후의 글들을 다시 손을 보곤 했습니다.

 

바로 그런 순간에 지금 미당의 이 말이 떠오르더군요.

'책을 낸다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거로구나, 도대체 수정이라는 것을 할 수가 없으니, 합니다.

나이 들은 후에 젊은 시절의 글을 보면 누구나 낯부끄럽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여행기를 손보면서는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다시 드는 거예요.

여행에서 바로 돌아와 옮길 때에는 사람이 좀 떠있기 마련이거든요.

글에 그 들뜬 기분이 뭍어나는 거야 당연한 거지요. 조급하고, 과장되고, 계몽하려들고....

그렇더라도 훗날 차분해져서 돌아보면 유치하단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걸 나중에 바꿔버리면 이건 또 아니란 생각이 들더란 말입니다.

물론 이 말은 전문 여행 작가에게는 해당하지 않겠고, 저 같은 경우를 말하는 겁니다만. 

그런데 또 한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남에게 읽히기 위해 쓰지 않는다는 작가가 있다면 칭찬하자. 그러나 그 말을 믿지는 말자."

여행기를 써서 여행하는 처지가 된 지금, 나를 위한 글과 남을 위한 글 사이의 경계는 모호하고 위험하다.

'이건 내가 좋아서 하는 일' 이라고 끊임없이 되뇌었지만

이 책을 읽어줄 이들에게 떠나고픈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싶은 욕망 또한 강렬했다.

 

여행작가 김남희가 한 말인데,

저 냥반이야 자기 말마따나 여행기 써서 돈이라도 번다지만 나는 그것도 아니잖습니까? 

독자로 쳐도 저 냥반 글은 1,000명이 읽는다면 제 글은 10명도 안 읽어준다 이겁니다.

그런데 무슨 훗날 수정씩이나 해가며 꼴깝을 떠냐, 이 말이지요.  

그런데 다시,

순 아마츄어 블로그 글이라 하더라도 노출증이란 게 있지 않습니까?

이왕이면 예쁘게 보이고 싶다 이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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