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여행기 (5) ..셀쭉 (에페소)

2009. 10. 4. 11:25발칸반도/터키

 

 

 성모마리아의 집

 

 

가 실제로 2천년 전에 성모 마리아가 배를 타고 건너와서 돌아가실때 까지 살았다는 집이라더군요.

차를 타고 한참을 가파르게 올라가야 되는데 산 이름이 불불산이랍니다.

그래선지 2년 전에 산불이 크게 났었는데 신기하게도 불길이 성모 마리아집 100 미터 전방에  이르렀을때

비도 안왔는데 저절로  자연 진화가 돼서 신문에도 크게 났었다네요.

아닌게 아니라 나무들이 모두 불에 탄 흔적이 있더군요. 

 

원래 스케줄에는 없었는데 가이드가 천주교 신자분들을 특별히 배려해서 일정을 서둘러서 방문을 하게되었는데,

왕언니네 2명, 나라네 2명, 수인이네 2명, 그리고 우리 2명,, 그렇게만 갔지요.

그 먼데까지 가서 어찌 이런 유서 깊은 곳을 그냥 지나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봤자 입장료 10$인데요,

혹시 압니까? 나중에 독실한 신자가 또 될런지도. 만일 그렇게 된다면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지요.

 

수인이 엄마와 나라 엄마가 기다려준 일행에게 고맙단 뜻으로 점심때 맥주 한 병씩 돌리더군요.

그분들이 보기에도 저희는 날라리 같이 보였는지 아예 물어보지도 않아서 전혀 몰랐습니다.  

 

 

 

  

 

 

 여긴 내부촬영 금지입니다. 

 

 

 

  

 

원을 써붙이고는 왔는데 아직까지는...

 

 

 

 

 

성수라캐서 수도꼭지 세개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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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소

 

에페소는 기원전 1500-1000년 사이에 처음 세워졌다고 알려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아테네 왕자 안드로클로스(Androklos)의 지휘하에 그리스의 이주민들이 아나톨리아에 처음 정착하게 되었는데

그때 그가 현인들에게 그들의 새도시가 어디에 세워질 것인가에 대해 물었다고 한다.

현인들이 예언하기를 야생 멧돼지 한마리와 물고기 한마리가 그들을 새도시로 이끌것이라고 했다.  

어느날 야외에서 안드로클로스가 생선을 굽다 그 중 한마리가 팬에서 미끄러져 가까운 숲속으로 떨어졌고 이와함께 튄 불똥이 숲에 번지자

사나운 멧돼지 한마리가 불을 피해 뛰쳐나왔다.

예언자들의 말을 기억한 안드로클로스는 도망치는 멧돼지를 쫓아 죽이고 바로 그 자리, 즉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서쪽으로 1200미터 떨어진 고대 에페소가 있던 곳에

그들의 새도시를 세웠다.

기원전 7세기, 에페소는 키메르(Cimmerian)인에 의해 아르테미스 신전을 포함하여 완전히 파괴되었고 이후 이곳은 그리스의 참주들에 의해 다스려졌다.

기원전 6세기경 에페소는 리디아왕국의 군주 크로이소스(Croesus)의 지배를 잠시 받긴 하였으나 곧 페르시아에 정복되었고 다시 알렉산더 대왕의 손으로 넘어갔다.

아나톨리아 지방을 지나가던 알렉산더 대왕은 크로이소스에 의해 재건된 아르테미스 신전의 아름다움에 빠져 이 곳을 정복, 에페소는 평온을 되찾고 융성해지기 시작했다.

이후 리시마쿠스(Lysimachos)는 피온산(Mt.Pion)과 코레쏘스산(Mt.Koressos) 중간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이 곳을 높이 10미터, 총 길이 9Km의 성벽으로

요새화시켰다.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원형극장, 경기장과 체육관 등의 유적은 이 당시 지어진 것이다.

기원전 88년, 에페소인들은 폰터스(Pontus)와 연합하여 로마인들에게 대항하였으나  로마의 세력 팽창이 엄청날 것을 알아차린 에페소인들은 곧 로마편으로 돌아섰다.

이로써 에페소는 로마의 동맹국이 되었을 뿐 아니라 로마제국 아시아속주의 수도로 부상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 곳은 거대 항구가 있는 아시아 무역항로의 종착지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번영도 서기 17년에 일어났던 대지진으로 한순간에 무너져

폐허로 변하였다.
교회 역사에서 에페소는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제자 사도 요한과 관련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사도요한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바울로 인해 복음이 왕성히 전해지고 있다는 에페소로 오게 되었다.

에페소에 도착한 요한과 마리아를 위하여 에페소 성도들은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

이후 바오로 2세가 성모마리아의 집을 방문하여 신성하고 중요한 곳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이 곳은 카톨릭교회의 성지로 지정되었다.

(자료인용)

 


 

 

 

 

 
 

 

 

 

검정색 옷 입고 설명하는 친구가 가이드입니다. 자기 말로 30살이라니까 대략 35살 정도 됐을 겁니다
참 똑똑합디다. 말이 그야말로 청산유수인데, 네시간 동안을 한 땀도 쉬지 않고 썰을 풀더군요. 
제 말마따나 허기지게 생겼습디다.

어쩜 그렇게 아는게 많은지,
터키의 역사 뿐만 아니라  로마며, 그리스며, 유럽과 중동 전체의 역사를 풀어헤치는데,

어느 한 구석 막힘이 없더군요.

그리스 신화부터  <기독교-이슬람교>의 <성경-코란>에 이르기까지, 아무튼 대단한 여자애를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듣고보니 다른 팀의 가이드들도 다같이 그렇게 똑똑했답디다.

 

 

 

 

 

 


 

뒤로 보이는 산을 다 파낼 거랍니다.

그 속에 이와 같은 유적이 온통 다 묻혀있다는 겁니다.
터키가 원래 지진이 유명한 곳이잖아요.
근처 어딘가에 화산도 있다는군요.

 

5천년 세월 동안을 역사의 중심에 섰던 아나톨리아 반도이니 유물이며 유적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모두 발굴하자면 대략 200년은 잡아야 한다는군요.
이미 100년을 넘게 진행해왔는데도요.
런데 웃기는 것은,

터키는 이슬람 국가이기 때문에 느긋한 입장인데 반해 오히려 영국이나 독일등의 유럽국가들에선 난리랍니다.
왜 빨리 발굴 안하냐고 안달이 났답니다..

 


 

 

 


 


 

하드리안 신전

2세기 경에 지어진 이 건물은 하드리안 황제와 에페소의 시민, 아르테미스 여신을 위해 지어졌다.
건물은 다른 유적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부분 손실되었지만 남아있는 부분만으로도 그 아름다움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입구에 있는 기둥은 아치를 이루고 있는데 조각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안으로 들어가면 아테네, 아폴로신등

여러 신들이 조각되어 있으며, 데오도시우스 황제와 그의 아버지, 아내, 아들도 조각되어 있다.

  

 


 

 


  

운데 부조가 보이죠? 메두사예요.
신화에 보면  메두사를 마주보면 모든 사람이 돌로 변한다고 하잖습니까?
그러니 안 쳐다볼려고 모든 사람이 고개를 숙이게 되는 거지요.
다시 말해서 여긴 로마 황제가 머물던 곳이다 그런 말이지요.

경의를 표하고 설설기어 들어와라 그런 뜻이랍니다.

 

 

 



 

 

 

 

 

 

 


 

셀수스 도서관


「에페소 유적의 대표적인 유적 격으로 135년 줄리우스 이퀼라가 그의 아버지인 셀수스를 위해 지었다고 한다.

셀수스는 당시 이 지역의 총독으로 부임해 통치하였으며 이곳에서 생을 마쳤다고 한다.
도서관은 많은 부분 무너졌지만 외벽은 아직도 굳건히 서 있으며 벽에는 화려한 문양과 글자들이 새겨져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리저리 연결된 도서관의 지하가 홍등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도서관이 궁금했습니다.

고등학교때 세계사 공부할 때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게 바로 이 셀수스 도서관이거든요.
글쎄요, 나중에 원형이 복구되면 어떨까는 모르겠는데,

보다시피 전면의 벽체만 남아있을뿐 다 허물어져서 아무것도 없더라구요.
짐작에 원래 규모는 어마어마 했을 것 같습니다.  

 

 

 

 

 

 

 

거는 <미성년자 출입불가>란 뜻이랍니다. 
발을 저기에 대봐서 저 싸이즈보다 작은 놈은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런 얘기지요.
돌려 말하면 여기가 사창가 입구다 그런 말입니다.
가이드 말로는 인류 최초의 광고판이라는군요.

그런데 웃기지 않습니까? 도서관과 사창가가 지하통로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 말입니다.

  

 

 


 

 

원형경기장

 

 

 

사도요한의 교회

 

 

 

셀쭉 성


 

 

 

 

 


 

쉐린제 마을과 재래시장

 

셀축 시내에서 8km 정도 떨어진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로 마치 우리나라 1970년대의 농촌마을과 같은 분위기를 보여주는 곳이다.
이 마을이 의미를 지니는 것은 사람들이 몰리는 주요 관광지만 둘러보는 대부분의 터키 여행자들에게 산간에 살고 있는 평범한 터키 주민들의 참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쉬린제 마을의 가옥들은 이곳이 터키 공화국이 수립되기 이전에 그리스 사람들이 살던 곳인지라 아직도 그리스 양식의 가옥들을 다수 찾아볼 수 있다.
사람들에 따라 실망도 할 수 있고 포근함을 느낄 수도 있는 관광지라고 보면 좋다. 
  
 

 

 

 

 

 

인을 시음하고 판매하는 곳이랍니다.

포도주라기보다는 과일주를 판다는 게 맞겠더라구요.
한 잔씩 돌리는데 보니, 오디. 사과. 포도. 체리.... 4홉들이 병으로 병당 만원정도 하더군요.
한 두병씩 사시는 모양이던데,

저는 과일주 종류는 안 먹고 소주만 좋아하는 탓에 그냥 시음만 넉넉히 했습니다. 


 


 

 

 

 

오는 길에 재래시장을 잠깐 들렸습니다. 우리네랑 별 차이 없습니다. 

진열장 안에 두부처럼 보이는 것은 '치즈'랍니다.
그런데 참, 터키의 배는 모과처럼 생겼는데 아무맛도 아니더라구요. 사과도 마찬가지구요.

기후는 괜찮은 지역인데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쉬린제 마을 올라갈때 보니까 올리브 나무 엄청나더군요.
산 전체가 온통 올리브 나무더라구요.
우리나라 과수원의 사과나무 정도 크기 되는데
여름과 겨울, 두 번을 수확한다네요. 여름 건 열매가 파랗고 겨울 건 검답니다.
터키의 서부지역은 토양이 그렇게 비옥할 수가 없다네요.
뭘 심어도 다 잘 된답니다.
견과류가 특히 많이 나서 유럽전역에서 수입해간다더군요.

 


 

 


 

쉬메리호텔 328호

 
 

 

 

 
바라다보이는 바다가 그 유명한 에게海니다.
특히 저희 방은 끝방 코너라서  발코니가 자로 넓었습니다. 다들 와보곤 부러워했지요.
바람이 많이 불고 날씨가 찼지만
'이 밤이 지나가면 나는 가네~' 하는 생각에 

밖에 나가서 소주 한 병 반이나 마셨습니다.
밤하늘에 삼태성인가 오리온좌가 선명하더군요.
아무튼 그렇게..... 에게海는 지고.  

 

 

 

 

 

 

 

 

 

트럼펫이나 색소폰 같은 나팔 한번 불어보고 싶었습디다.

'해변의 길손'도 좋고 '밤하늘의 부르스'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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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ini Rosso / 트럼펫 연주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