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0. 3. 20:43ㆍ발칸반도/터키
이스탄불 공항에 내리면 뭔가 강렬한 압박 같은 느낌이 와닿는데,
그것은 바로 터키 국기와 무스타파 케말의 흔적 때문입니다.
터키에선 과년한 딸이 있으면 지붕에 병을 한 개 올려놓는답니다.
그걸 깨트리는 동네 청년에게 일단 먼저 선을 볼 수 있는 자격을 준다는군요.
병을 깬 청년은 자기 어머니와 함께 색시네 집으로 찾아가서 의중을 타진한다고 합니다.
양가 의 어머니끼리 대화하는 중에 색시감 되는 처자에게 커피를 타오게 시킨다는군요.
눈치를 엿보던 딸은 남자가 맘에 들면 설탕을 많이 넣어서 달게 타고, 맘에 안들면 쓰게 타서 내온답니다.
의사표시를 그렇게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혼사가 결정되면 이번에는 대문에다 터키 국기를 내건답니다. 상황종료를 알리는 것이지요.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냐면,
이렇게 사사로운 일에까지도 국기를 내걸 정도로 터키 국민들의 국기에 대한 사랑과 애국심이 남다르다는 겁니다.
그리고 웬만한 도시의 한복판, 또는 공원에는 반드시 케말의 동상이 있다고 합니다.
주민이 자발적으로 세운 것입니다.
국민들의 케말에 대한 존경심은 절대적이다 못해 신성불가침입니다.
흔히 케말이 결혼을 안한 것으로 아는데, 그게 아니라 만혼(晩婚)을 했다가 두 해만에 이혼을 했답니다.
여자쪽에서 이혼을 먼저 요구했다는군요. 이유는 케말이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해서 반대를 했다는 것입니다.
자식이 생기면 자신이 죽고난 후에 권력 세습의 문제가 생길 것이란 염려 때문이었답니다.
케말은 오로지 조국을 위한 생각밖에 없었던 사람입니다.
자신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나 충성심이 지나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죠.
권력이 자식에게로 세습되면,
자신이 그동안 평생을 바쳐 이룩한 조국의 민주화나 근대화의 개혁작업이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예측을 했던
겁니다.
참으로 보기 드문 훌륭한 분이지요. 그런 지도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혼한 후에 고아 여자애 세 명을 데려다가 양녀로 삼았답니다.
딸들도 성장해서 조종사니 외교관이니 하여, 국민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삶을 살았답니다.
이 역시도 이슬람 사회의 여성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던 것입니다.
터키는 종교의 자유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종교의 자유를 강요하는 나라입니다.
이 역시도 케말의 지시였습니다. 국민의 75%가 이슬람인데, 이 때문에 지금도 갈등이 많지요.
아무튼 케말은 놀라울 정도의 선각자였습니다.
그의 호칭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라는 말을 풀어보면,
<무스타파>는 그냥 아이때 흔히 붙여주는 보통명사랍니다.
<케말>은 중학교때 수학 선생이 '영리하다'는 뜻으로 붙여줬다는데, 그것이 별명이자 이름이 되었구요,
그리고 <아타튀르크>라는 호칭은 國父라는 의미 입니다.
박정희 시절에 우리가 <케말 파샤>라고 배웠던 이유는 <파샤>가 장군이란 뜻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와 똑같이 장군 출신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만든 것입니다.
당연히 터키 국민 중에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한마디로 박정희가 꼼수를 부린 것입니다.
아타튀르크 영묘(英墓)
그의 시신이 묻힌 곳이기도 하고, 그의 업적을 기리는 박물관이기도 합니다.
내부는 온통 금칠로 도배를 해놨습니다.
보기보다 규모가 큽니다. 빙 둘러가며 지하통로 형식으로 되어있습니다.
용산 전쟁기념관이 이걸 모방한 것 같습니다.
영묘에서 내려다보면 앙카라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앙카라는 터키의 수도이자 이스탄불에 이은 제2의 도시입니다.
한국전 참전용사 위령탑
이 탑은 박정희 시절에 만들었는데, 그동안 방치해두다시피 하다가,
이번에 노무현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계기로 새롭게 단장을 한 것입니다.
사진에는 안 나옵니다만 다보탑과 석가탑을 믹서해서 만든 눈치인데,
모양은 아주 볼품없이 생겼습니다.
얼마전에 한동안 <터키가 왜 우리의 형제국인가?>라는 글이 나돈 적이 있잖습니까?
우리도 그랬지만 사실 터키 국민들도 월드컵 前까지는 우리나라가 어디에 박힌 나라인줄 몰랐었답니다.
그들이 한국전에 참전한 것도 당시의 냉전체제하에서 소련과의 관계 및 미국의 댓가적 후원을 바라고 한 것이었을 뿐이지,
형제국이니 하며 <고구려-돌궐>을 들먹이는 것은 가소로운 일입니다.
그리고 한국전에 참전한 지원병의 태반은 터키의 따뜻한 지역인 남부지방의 빈민층 소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참전중에 생겨난 전사자들도 총에 맞아 죽은 것이 아니라 대부분 얼어죽었답니다.
이번에 전사자의 명단을 보니까 14~15세 소년이 많았습니다.
그러거나 어쩌거나 월드컵 이후엔 양 국민간에 형제국 비스무리하게 된 것도 사실이긴 한데,
우리가 <형제국>이란 말을 그냥 '우호적이다'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데 반해서
저들은 즈덜이 (역사적 관점에서) '형뻘'이라고 우기는 눈치였습니다.
터키국가(國歌) - 이스티크랄 마르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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