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5. 29. 07:40ㆍ책 · 펌글 · 자료/ 인물
>> 한겨레 28면 / 경향 32면 전면광고
......
대한문 앞에 이런 글귀가 있었다.
‘가난한 자들의 친구, 서민의 수호자.’ 그의 성공과 실패의 본질을 말해준다.
가식적인 찬사는 그를 거짓되게 할 뿐이다.
그의 실패에 깊이 절망해 본 자들이야말로 진정으로 그의 고뇌, 그의 슬픔에 닿을 수 있다.
그를 정당하게 비판했던 자만이 그의 죽음의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
그를 올바로 미워한 자만이 그를 사랑할 수 있다.
그의 돈 많은 친구나 한 자리씩 차지했던 고위관료, 그의 은혜를 입은 지인들이 진정 노무현의 가치를 사랑했을 것 같은가.
그들이 이 거리에 감도는 특별한 기운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가.
‘빽’ 없고 돈 없고 힘 없는 이들이야말로 진실로 노무현을 사랑한 이들이었지만,
그들은 정작 그가 죽어서야 그를 되찾을 수 있었다.
대한문 한 모퉁이에서 나지막하고 느린 단조의 읊조림이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 바람에 떨지 마라/ 창살아래 네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몇몇은 수건을 꺼내 눈가를 닦았다.
그렇지 않은 이들은 속으로 울었다.
연대와 공감, 연민과 건강한 분노의 이름으로 그가 살아 돌아왔다.
그의 심장은 지금 이 거리에서 고동치고 있다.
다시는 우리의 벗을 그들에게 빼앗기지 않겠다는 결의에 찬 시민들이 잃어버린 꿈을 찾으러 거리로, 거리로 나오고 있다.
그래, 다시 시작하자.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우리가 이 길로 들어섰던 것일까.
이 ‘살인(殺人)의 권력’ 앞에 이렇게 초라하고 무기력해진 것은 무슨 까닭일까.
오직 순수와 정의의 뜨거움으로 달리던 그 많던 노무현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시대의 요청에 기꺼이 응답하던 열정들은 어디로 갔나.
국가는 다시 압제의 도구로 변했고, 정치는 작동하지 않고 시민사회는 죽어가고 있다.
하나의 노무현이 죽어 수만, 아니 수백만의 노무현으로 부활하는 대반전을 맞이하자.
그래서 피 끓는 청춘의 시대로 돌아가자.
오, 정녕 꿈인가?
<이대근|정치·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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