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19. 13:55ㆍ책 · 펌글 · 자료/ 인물
간디와 함석헌의 민족주의는 보편적 민족주의다.
(함석헌은 국립묘지 독립유공자 묘역에 묻혀있다.)
진리와 하나님을 찾고 받드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은 이들에게 왜 또 나라인가.
나라가 곧 진리와 하나님을 찾는 통로요 삶의 현장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진리와 신의 속성인 사랑과 자비의 실현 대상인 가장 가까운 이웃들의 집합체,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일차적으로 무엇보다 민족주의자일 수밖에 없었다.
간디는 명시적으로, 함석헌은 함축적으로 민족주의자임을 들어냈다.
동시에 이들에게 민족과 나라는 궁극적 목표라기보다는 인류와 진리의 경지로 넘어가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요 디딤돌이었다.
간디는 “나는 인도의 겸손한 신하이며, 인도를 섬기려 하는 과정에서 나는 인류전체를 섬긴다”고 하였고,
함석헌은 정리했다: “나라는 나의 진리 위한 싸움에 있어서 내가 붙어있는 부대 이름이다.
그 부대가 곧 내 목숨을 바치는 목적은 아니다.
그러나 그 부대에 충성치 않고 그 싸움을 할 수는 없다.”(전집4:392)
간디는 보편적인 원리를 탐구하고 실험하면서 세계적인 인물로 존경받는 인물로 부상되었지만
현실적으로 일생을 인도와 인도국민을 위해서 투쟁하고 헌신했다.
그는 일생 동안 세 가지 운동을 전개한 셈이었다.
세 가지는 남아프리카에서 인도인 공동체를 위하여 체재하는 동안 벌인 인종 차별 철폐,
인도의 독립, 인도내부의 갈등과 분열을 막는 일이었다.
모두 인도와 관련이 있다. 그에게 인도는 현실의 전부였던 것이다.
세 가지 실천운동의 도구는 진리파지(satyagraha) 운동으로 대표된다.
간디 스스로 민족주의자임을 당당히 밝혔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배타적 민족주의자가 아님을 표명했다.
“나의 애국심은 배타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두를 포용하는 것이며 나는 다른 국민들의 간난과 착취를 등에 업고자 추구하는 애국심을 절대 배격한다.
나의 애국심은 항상 인류전체의 최대의 선과 일치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나라를 위하여 자유를 원하지만 다른 나라들의 착취를 대가로 하거나 지위를 떨어뜨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만약 그것이 영국의 멸망이나 영국인의 멸종을 의미한다면 인도의 자유를 원하지 않는다.”
“나는 인도의 자유를 위하여 살고 그것을 위해서 죽기를 마다하니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절대 진리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내가 인도의 자유를 위해서 일하는 것은 그 속에서 태어나고 그 문화를 전수받은 내가 그 나라를 섬기는 데 가장 적격자이고
그 나라는 나의 봉사를 받을 우선권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애국은 배타적이 아니다.
다른 국민에게 상처를 주고자 한 것일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이로움을 주고자 한 것이다.”((1990:108-109)
간디의 민족주의는 국제주의와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 전제조건이다.
“우리가 민족주의자(nationalist)가 되지 않고는 국제주의자(internationalist)가 되기는 불가능하다.
국제주의는 민족주의가 사실이 될 때에만 가능하다.
악한 것은 민족주의 자체가 아니다. 악한 것은 근대국가들의 해악이 된 속 좁음, 이기주의, 배타성이다.
각기 다른 나라를 희생하여 이익을 얻고 그 폐허 위에 올라서기를 바란다.”(108)
작은 것이 아름답다.
그가 말하는 국제주의는 국가들이 정치, 경제적 독립성과 문화의 독특성을 보존하면서
공존과 평화를 유지하는 국제질서를 선호하는 형태이지
자유무역이 대표하는 (경제, 정치, 문화의) 통합적인 세계화는 아니었을 것이다.
기계화, 산업화로 인한 일자리의 축소보다는 물레가 상징하는 수공업 산업이 차라리 일자리의 고른 보장을 담보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대규모 산업화는 경쟁과 마케팅 문제가 대두되면서 반드시 마을주민들의 직간접적 착취로 이끌 것이다.”(1990:117)
간디의 예측이 정확하게 들어맞지 않았는가.
‘세계통상’(world commerce)이란 것도 약소민족을 착취하기 위한 미사여구로 간주했다.(111)
그것이 오늘의 현실이 아닌가.
간디의 경제관은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는 저술의 바탕이 되었다.
함석헌도 한편으로는 세계주의를 내다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도가철학에서(도덕경 81장) 말하는 소단위 생산과 생활 방식을 동경했다.
함석헌의 민족관은 어떤가.
그가 ‘버리지 못할 것’ 세 가지(민족, 신앙, 과학) 중 첫째 것이 민족이다.
“민족 없이는 나 없으니 나는 민족적 전통을 지킬 의무가 있다.”(전집4:227) 간디와 상통하는 입장이다.
“예수조차 유태민족의 사람”이듯이, “민족적 배경 없이는 인격이 없다.”(1:68)
“하나님은 그 뜻의 한 줄씩을 각 민족의 요람 위에다 쓰셨다.”(마찌니 인용)(69)
그러나 그는 민족을 사랑하고 인정하지만, 간디와 달리 민족주의자는 아니라고 일면 선언한다.
민족과 민족주의를 구분한다.
그러나 진리가 민족을 우선한다는 간디의 소견에 동의한다.
“민족을 주장한 것은 좋지만 그것을 우상화해서는 안돼요.
제 민족 옳게 하려면, 간디의 말처럼 진리에 배치될 경우엔 민족까지 버릴 각오를 해야 한다고 봐요.”
(전집4:354)
(김영호, 내일 계속됩니다.)
"국가주의는 청산되어야 한다."
세계역사는 위대한 교향악이다.
역사가로서 그는 민족주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보기 때문이다.(전집4:69)
그는 사회와 역사의 진화를 신봉한다. 직선적 진화가 아닌 나선형적인 진화이다.
그런데 한민족은 민족주의의 물결을 타지 못하고, 민족국가 시대에 제 노릇을 못하고 민족전체가 남의 종이 되었다.(전집14:111)
그는 세계주의를 말하고 세계화를 예측했다.
그렇더라도 민족이 할 역할은 남아있다.
“나는 민족주의는 아닙니다. 세계주의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세계라도 인격 없는 역사, 문화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인격은 특정적이지 일반적이 아닙니다.
세계의 일원이 되기 위해 나는 나여야 할 것입니다.
세계적이 되면 변할 것입니다.... 그러나 달라질 때는 달라져도 그때까지는 나의 서는 자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입니다.”(전집14:327)
그 주장의 배경으로 다원주의적 독특성과 전통 및 문화의 보존, 발전을 염두에 두고 음악 연주에 비유한다.
“세계역사는 한 위대한 교향악이다.... 한국이라는 악기는 어떤 음색을 가지고 어떤 음색을 내고 있는가....
(각 악기가) 제소리를 내서만 참 조화가 나오는 것 같이, 한국은 한국식을 드러내고,
중국은 중국식을 드러내서만 세계역사는 옳게 진행된다.“(전집1:63)
여기에 근래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제창되는 ‘세계와 지역의 유기적 관계론’(glocalism)의 모형이 들어있다.
민족주의(nationalism)와 더불어 지나가야할 것으로 함석헌은 국가주의(statism)의 극복을 강조했다.
“국가주의, 민족주의는 인간이 아직 어린 시절 한 때 우리를 이끄는 선생이었다.
그러나 이제 인류는 그 정도를 지나쳐 자랐다.
그러므로 이제는 이것이 죄악이다. 청산해버려야 한다.”(전집12:287)
그 청산대상은 엄격히 말해서 민족지상주의, 국가지상(신성)주의 또는 정부지상주의이다.(2:76;14:284).
국가가 중앙집권화를 통해서 개인과 지역의 권리를 약화시키기 때문에
간디도 국가권력의 집중을 반대한다는 맥락에서는 함석헌의 생각과 통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간디는 민족주의를 고수하면서 함석헌처럼 무정부주의에 가까운 국가주의초극론에 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반국가주의는 함석헌이 줄기차게 제기한 주요한 의제로서, 따로 논의해야 할 거대담론이다.)
함석헌은 민족주의와 민족을 구분한다. 민족주의 시대가 가도 ‘민족’은 남을 것이라고 말한다.
민족이 민족국가 시대에 자기 몫을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가 한국역사를 기술할 때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이 고구려 강역의 상실이다.
신라의 통일로 민족의 영토가 3분의 1 정도이하로 줄어진 사실을 민족역량의 축소로서 보고 두고두고 한탄했다.
삼국시대 이후의 민족의 수난이 이로 말미암은 것으로 해석한다.
그의 한국사에는 상실된 국토 회복을 위하여 노력하다 좌절한 인물들이 (묘청, 최영, 윤관, 임경업 등) 역사의 영웅들로 묘사된다.
나중에 그는 앞으로 중국의 강대국화와 국력신장을 경계했다.
“8억을 자랑하는 중국 민족이 민족 감정으로 교만하게 미칠 때 세계의 장래가 어찌하겠나?”(12:287)
그 같은 우려가 현실화하는 징후가 최근 나타나고 있다.
북한정권 붕괴에 대비해 중국이 벌이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이 그 하나다.
최근에는 이시하라 동경도지사가 북한이 붕괴하면 중국이 통치해야한다는 말까지 뱉었다.
(그런데 이 발언에 대해 정부 쪽이나 보수진영이 침묵하고 있다.
이는 진정한 보수가 아니고 나라를 지키지 않는 사대주의일 뿐이다.
보수해야할 대상은 무엇보다 나라와 민족이 아닐 것인가.
이들이 보수파가 아니고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수구파임을 다시 들어냈다.)
말년에 함석헌은 역사가 되풀이될 것을 내다보고,
깨어나는 중국에 맞서는 동남아연방 같은 것이 절실함을 역설하기까지 했다.
간디가 인도의 분열을 아쉬워하는 이유와는 다른 차원이다.
간디는 인종적, 종교적으로 공존해온 다원주의적인 전통을 깬다는 점에서 파키스칸의 독립을 반대했다.
그리고 분리한다고 해서 독립된 두 나라에서 두 종교(힌두교, 이슬람)가 국민구성에서 명확하게 양분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독립 후 파키스탄이 걸어온 역정은 험난했다. 거기에다 나중에는 더 분리되어 한 쪽은 방글라데시로 독립되어 나갔다.
둘 다 인도보다 더 가난한 세계 최빈국에 속한다.
차라리 인도연방 체제에서 인권과 지위를 보장받는 길을 모색했다면 구태여 분리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여하튼 간디의 반대가 타당함이 들어났다.
인도 같은 거대한 나라가 그렇거늘 한국 같은 작은 나라야 어떠하겠는가.
함석헌의 역사해석이 정당화될 수밖에 없게 보인다.
전체적으로 보아서 민족주의와 세계주의에 대한 입장과 접근에서 간디와 함석헌이 합치하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간디가 좀 더 전통주의적인 모습을 보였다면 함석헌은 더 개혁적이고 사회진화론적인 모습이다.
대안 제시의 측면에서는 함석헌은 간디처럼 구체적이지 않다고 볼 부분이 있다.
그것은 그가 역사발전의 기미를 감지하고 마치 미래학자처럼 확신을 가지고 보는 점이 있지만,
그 구체적인 전개는 인간이 알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이나 섭리로 돌리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서 그때 가서 인류 스스로가 의식의 상승과 더불어 선택, 결정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아낼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종교나 정치/경제체제의 경우에도 해당한다. 새 종교, 새 제도가 나와야하고 결국 나오겠지만
그 구체적인 형태는 하나님이 할 일, 즉 성숙해진 씨알들이 결정할 일이라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함석헌은 한민족이 민족국가 시대의 역할을 못 다한 것을 지적하고
그 몫을 완수하고서야 다음 역사발전단계로 이행할 수 있음을 표명했다.
따라서 분단된 민족과 국토의 통일은 필수적이다.
민족주의 시대에 우리에게 맡겨진 임무를 끝내야 그것을 단위로 하여 새로 구성되는 세계주의 체제로 당당히 진입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점에서, 적어도 여기까지는, 간디와 함석헌의 관점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왜 분단과 지역갈등을 극복하고 민족공동체를 굳게 다져놓아야 할 과제를 안고 있는지,
간디와 함석헌의 통찰에서 그 근거를 충분히 찾을 수 있다.
아무 철학도 신념도 없이 지도층이나 국민이 모두 다 이욕과 이기주의의 늪에 빠져 각개약진을 하는 이 형국에서
새롭게 되새겨야할 지침이 또 따로 있을까.
간디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나라와 인류전체 만이 아니라, 버러지 같은 미물이라도, 모든 생명과 하나 됨을 깨닫기 원했다.
생명경외의 전통을 이어받아 온 생명의 일체성을 강조했다.
“나는 나 자신을 민족주의자로 부르고 그에 스스로 자부심을 갖는다.
나의 민족주의는 우주처럼 폭넓다. 그것은 하등동물까지 그 범주에 포함한다.
그것은 지구상의 모든 국가를 그 범주에 포함하며.... 나의 민족주의는 전 세계의 복지를 포함한다.
나는 우리 인도가 다른 국가들의 잿더미 위에 올라서서 상승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는 인도가 한 사람의 인간이라도 착취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는 인도가 강해져서 그 힘으로 또한 다른 나라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기를 원한다.
세계의 다른 나라들은 그렇지 않다.”
(1986:534)(김영호, 내일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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