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장영희 교수

2009. 5. 14. 10:36책 · 펌글 · 자료/ 인물

 

 

 

1

 

 

1952년 9월14일 서울 출생. 다섯살 때까지 누워만 있던 소아마비 1급 장애우.

그후 평생 동안 목발에 의지하여 살았던 고 장영희 교수.

며칠 전 그는 9년 동안 긴 암투병을 마치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온 세상이 봄비에 젖은 아침, 물안개 눈부신 오월의 노고산 언덕길을 사랑하는 제자들의 손에 이끌려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장지로 향했다.

몸을 우상화하는 몸의 시대에 그는 우리에게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희망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우리 곁을 떠났다.

그는 평생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받으며 이 땅 위에서 차갑고 가파른 통념의 벼랑길을 목발을 짚고 올라갔다.

서강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학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미국여성학회로부터 국제여성지도자로 선정됐고 서강대 영문과 교수, 번역가, 교육부 검정 영어교과서 집필자,

유명 수필가로서 이 세상에서 자신의 소명을 다했다.

그러나 정작 그가 이 세상에 남긴 유산은 ‘그 어떤 조건에서도 끝까지 희망하는, 불굴의 정신’이다.

그 정신은 단순히 생의 집착이나 오기가 아니라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존엄한 자기존재에 대한 뜨거운 긍정으로 ‘진리의 분화구’에서 솟는 ‘불길 같은 사랑의 힘’이다.

2004년 암이 재발했을 때에도 그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고, 치열한 열정으로 다시 일어났다.

가혹하리 만큼 혹독한 시련으로 우리 모두를 안타깝게 하던 그 순간에도

그는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했다.

그리고 “나쁜 운명을 깨울까봐 살금살금 걷는다”는 어떤 이의 말에

“그렇다면 좋은 운명도 깨우지 못할 것 아닌가.

나쁜 운명, 좋은 운명 모조리 다 깨워가며 저벅저벅 당당하게, 큰 걸음으로 살 것이다”라고 했다.

과연 그러했다.

목발에 의지하여 다시 교단에 선 그는 천천히 걸었지만 눈물겹도록 당당했다.

그는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마침내 그 절벽 위에 아름답고 찬란한 꽃을 피웠다.

검은 단발머리에 유난히 크고 둥근 눈에 늘 웃음이 가득한 소녀 같은 마리아,장영희 교수.

유난히 빠르고 밝고 투명한 그의 서울토박이 말씨는 절제된 그의 몸가짐과 어울려 늘 명징했고, 때로는 단호했다.


세상의 뜻모를 고통과 고난, 장애가 곧 절망이 아니라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이야말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불편한 장애이고,

희망을 버리는 것이 곧 천국을 버리는 것’이라 가르쳐주었고,

영원히 남는 것은 오직 사랑뿐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일러주었다.



<조광호 신부·인천가톨릭대 조형예술대학 교수>

 

 

 

 

 

 

 

 

 

 

 

 

'책 · 펌글 · 자료 > 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덕수궁 돌담길의 招魂  (0) 2009.05.29
한 이상주의자의 억울한 죽음 앞에서  (0) 2009.05.27
함석헌의 민족주의  (0) 2009.02.19
김수환 추기경 선종  (0) 2009.02.17
함석헌 필화사건 (펌)  (0) 2008.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