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이상주의자의 억울한 죽음 앞에서

2009. 5. 27. 11:04책 · 펌글 · 자료/ 인물

 

 

 

[특별기고]  한 이상주의자의 억울한 죽음 앞에서

                                               - 하일지 소설가
 
 


지금 우리는 이 민족 반만년 역사를 두고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역사적 비극의 현장에 서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스스로 몸을 던져 서거한 것이다.

오늘 이 끔찍한 역사적 참사를 목도한 사람으로서 우리는,

누가 그분을 그 참혹한 죽음으로 내몰았는가 하는 데 대하여 후세 사람들에게 무엇이라고 증언할 것인가?

 

일찍이 데카르트는, 비록 지성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판단의 면에 있어서는 저마다 자기가 훨씬 우수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비록 지적으로는 남들보다 떨어진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사람들도

옳고 그름, 선과 악을 구별하는 도덕적 변별력에 있어서는 각자가 모두 완전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양식(良識)이라는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인류역사는 양식을 가장한 범죄를 끊임없이 저질러왔다.

수많은 유대인들을 독가스실로 몰아넣으면서도 히틀러는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믿었을 것이고,

수많은 광주 양민을 학살하고 집권했던 사람도 죽는 날까지 자신은 도덕적으로 옳다고 믿을지 모른다.

수많은 전과 기록을 가진 대통령마저도 말끝마다 ‘법과 원칙’을 내세우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제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벼랑 끝에서 몸을 던질 때까지 지난 수개월을 돌이켜보면,

사람들은 어지러울 만큼 많은 말들을 쏟아냈다.

근엄한 검찰은 정의감에 찬 표정과 목소리로 ‘빨대’짓을 했고,

굶주린 하이에나 같은 언론은 빨대 소리를 확대 재생산했고,

말 잘하는 정치인들은 고인을 향하여 악의에 찬 독설을 퍼부어댔다.

신바람이 난 보수 논객들은 온갖 말로 그를 모욕했다.

그런데 그들이 뱉어내는 그 많은 말들을 가만히 듣다보면,

그들 자신이야말로 완벽한 도덕적 변별력을 가지고 있다고 경쟁적으로 자랑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양식을 가장한 그들의 언어 폭력은 한 고독한 이상주의자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이상주의자였다.

그는 이 민족이 나아갈 길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지역주의를 타파하려 했고, 권력을 만인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려 했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려 했고,

남과 북으로 갈린 이 민족이 나아갈 길은 호혜(互惠)의 원칙밖에는 없다고 판단하고 그것을 실천하려 했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당당한 자세로 대미관계를 재정립하려 했다.

그의 이런 이상은 우리의 아이들을 위하여, 이 민족의 장래를 위하여 반드시 실현해야만 하는 가치였지만,

사사건건 기득권자들의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그의 시도는 오래 전에 부동산 투기꾼들이 사놓은 황무지에다 매화를 심고 있는 것만큼이나 무모했던 것이다.


기득권자들의 눈으로 본 그의 이상주의는 확실히 위험했을지 모른다.

그가 기도하는 이상 하나하나는 곧 기득권자들의 권리를 밑바닥부터 허물고 있다는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했을 테니까 말이다.

고향으로 돌아가 평범한 농부로 여생을 마치려 했던 그의 그 소박한 ‘낭만적 이상주의’마저도

이 땅의 기득권자들은 허락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고독한 이상주의자의 죽음 앞에서 나는 문득 이런 시를 떠올린다.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보랴/ 오오 불설워/ 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는 오랩 동생을/ 죽어서도 못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산 저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소월의 ‘접동새’)


누나를 죽음으로 내몬 의붓어미마저도 자신은 손톱만큼도 잘못한 것이 없다고 말하면서 평생을 살아갈 것이니,

이산 저산 옮겨가며 섧게 울고 있을 한 불쌍한 이상주의자의 울음 소리가 귓전에 쟁쟁하게 들리는 것만 같아서

이 글을 쓰면서 나 또한 서럽게 울고 있다.


죽음으로 증명해보인 그의 결백을 나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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