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릴 지브란 #2

2009. 3. 24. 16:08책 · 펌글 · 자료/인문 · 철학 · 과학

 

 

 알 무스타파 /『예언자』를 위한 표제 그림 / 종이에 연필.

 1923년 /지브란

 

 

 

 

1.

 

어떤 이들은 예술이 자연의 모방이라고 믿는데,

사실 자연은 너무 숭고한 것이어서 인간이 모방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예술이 아무리 고상하다 할지라도, 예술은 자연의 기적 중 단 하나도 흉내낼 수 없다.

게다가 자연이란 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을 모방해서 무얼 하겠는가?

예술은 차라리 자연을 이해하고 그거에 대한 이해를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전달해주어야 할 것이다.

예술의 임무는 나무의 정신을 알아내는 것이지 나무 줄기와 가지와 나무 모양을 한 형체들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다.

예술의 목적은 바다의 의식을 찾아내는 것이지 거품이 부글거리는 파도나 푸른 물을 그리자는 것이 아니다.

예술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잘 알려진 세계에서 알려지지 않은 은밀한 세계로,

또 자연에서 절대의 세계로 내딛는 첫 발자국이다.

 

   

 

2. 

 

당신은 딜레마에 빠진 당신의 레바논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아름다운 나의 레바논을 가지고 있다.

 

당신은 온갖 충돌이 난무하는 당신의 레바논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그 속에 살아 있는 꿈을 간직하고 있는 나의 레바논을 가지고 있다…….

 

당신의 레바논은 어두운 그림자들로 인해 이리저리 끌려 다니게 된 국제 문제이지만,

나의 레바논은 조용하고 신비한 계곡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언덕들에서 차임벨 소리와 개울물의 떨림을 들을 수 있다…….

 

당신의 레바논은 종교 지도자와 군사 지도자 사이에 놓인 체스판이지만,

나의 레바논은 바퀴로 질주하는 이 문명의 얼굴에 내 시선이 지쳤을 때 나의 정신이 마음속으로 찾는 사원이다.

 

당신은 위원회와 당파를 가지고 있는 당신의 레바논을 가지고 있지만,

나의 레바논은 바위를 기어오르고 개울을 따라 달리는 소년들로 이루어져 있다…….

 

당신은 당신의 레바논을 가지고 있고,

나는 나의 레바논을 가지고 있다.

 

   

 

3.

 

당신은 자신의 몸뚱이를 위해 백성의 정직을 가지고 신부복을 짓고,

그들의 소박한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머리에 쓸 관을 만들고,

사탄의 은혜로 살기 위해 사탄을 미워하는 척하는 종교지도자인가요?

아니면 국가의 발전을 위한 기초를 개인의 미덕에서 찾고,

자신의 영혼의 비밀을 탐구함으로써 '보편정신'으로 가는 계단을 찾는 믿음이 강하고 경건한 사람인가요?

당신이 전자에 해당한다면,

비록 낮에 단식을 하고 밤에 기도를 하더라도 당신은 이단자이며 신을 모독하는 사람입니다.

 

레바논의 언덕 위에서 수백 년 동안,

나사렛 예수는  기독교의 예수를 만난다.

정원 중 한 곳에서 오랫동안 만남을 가진 후,

그들은 각자의 길을 간다.

그리고 매번, 나사렛 예수가 기독교의 예수에게 말한다.

"사랑하는 친구여, 나는 우리가 서로 결코 이해하지 못하게 될까봐 두려워."

 

  

 

4.

 

나는 네가 어디에 있든 나의 형제로 사랑한다.

나는 네가 모스크 사원에서 기도를 하든, 기독교 교회에서 기도를 하든, 또 사원에서 절을 하든 너를 사랑한다.

왜냐하면 너와 나는 한 종교, 즉 에스프리의 자식들이므로.

종교의 여러 갈래 오솔길은 초월적 존재의 사랑의 손에 달린 손가락들이다.

그 손은 우리를 위대한 영혼의 충만함을 향해 갈 수 있도록 인도하려고 우리를 향해 뻗고 있다.

 

지브란의 신비주의 신학은 메타 종교적이다.이런 저런 종교들의 지나치게 단순화된 관념을 넘어서서

종교들의 공통점을 포용하려 노력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5.

 

깃털 침대에서 자는 사람의 꿈이 맨바닥에서 자는 사람의 꿈보다 더 아름답지 않은데,

내가 어떻게 인생이 공평하다는 것을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대의 아이는
그대의 아이가 아니다.
아이들이란 스스로를 그리워하는
큰생명의 아들딸이니
그들은 그대를 거쳐서 왔을 뿐
그대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또 그들이 그대와 함께 있을지라도
그대의 소유가 아닌 것을.

그대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는 있으나,
그대의 생각까지 주려고 하지는 말라.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의 생각이 있으므로.
그대는 아이들에게 육신의 집은 줄 수 있으나,
영혼의 집까지 주려고 하지 말라.
아이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에 살고 있으므로.
그대는 결코 찾아갈 수 없는,
꿈 속에서조차 갈 수 없는 내일의 집에….

 

 

 <알렉상드르 나자르 / 칼릴 지브란 / 작가정신 2007>에서 발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