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3. 9. 08:10ㆍ책 · 펌글 · 자료/인문 · 철학 · 과학
칸트는 평생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살았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단 한번도 이 도시를 떠나지 않았다.
이곳에서 그의 일상은 마치 시계 같았다.
오전 5시에 기상. 차 두 잔 마시고 파이프 담배 한 대를 피운다.
잠옷과 덧신을 신은 채 오전 7시까지 강의 준비.
7시부터 9시까지 강의.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집필.
오후 1시에 정장 차림으로 방문객을 맞는다.
손님들과 담소를 나누며 점심식사.
오후 3시 반에 보리수 늘어진 산책로를 걷는다.
모두 여덟 차례 왕복하고 난 뒤, 집으로 돌아와 독서를 한다.
그리고 밤 10시에 취침.
쾨니히스베르크의 인간 시계 노릇을 한 사람이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다.
시계보다 더 정확했다는 칸트는 아침 5시가 되면 저절로 눈을 떴을까?
아니다. 그를 깨워주는 사람이 있었다.
'마르틴 람페'라는 이름을 가진 하인이었다.
밤 10시에 칸트를 잠자리에 들게 하는 이도, 또 1시에 시작하는 오찬을 준비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칸트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 깃 펜을 지정한 곳에 꽂아두는 것도 '람페'의 마지막 하루 일과였다.
Der Lindenbaum
Hermann Prey, Baritone / Karl Engel, Piano
칸트 이전에는 철학을 직업으로 삼은 철학자가 없었다.
시쳇말로 하자면 칸트는 프로 철학자고, 그 이전의 철학자는 아마추어 철학자다.
데카르트는 채권 이자로 살아간 금리 생활자였고,
스피노자는 유리알을 닦아서 생활비를 마련한 고된 노동자였지만, 칸트는 대학의 철학 교수였다.
라이프니츠와 흄은 여러 직업을 전전했지만,
칸트는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이 그의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었다.
- 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 -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이 말은 스피노자가 한 것이 아니다.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 마르틴 루터 킹 목사가 한 말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알려졌냐고? 그건 필자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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