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3. 15:14ㆍ북인도
<아그라 성>(요새)은 무굴제국의 제3대 황제 악바르 대제가 세웠다.
악바르부터 자한기르, 샤자한 그리고 아우랑제브에 이르기까지 걸쳐 세워진 아그라 요새는 건축의 합동 전시장 그대로다.
동화적인 아름다움과 화려함 뿐 아니라 무굴 통치자들의 박진감을 그대로 전달해주는 거대한 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히이라 넨드 아스와니, 아그라& 파테푸르시크리 -
(이하 출처 생략하고, 이 아줌마 얘기랑 내 얘기랑 막 섞어서 쓸거다.)
타지마할의 북서쪽 자무나(야무나) 강변의 우측에 위치한 아그라城은 높이가 50m이고,
성벽과 성문이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진 관계로 <붉은 요새>라고도 불리웠는데.
진짜 머리카락 한 올 낄 틈도 없이 만들어졌다.
두 개의 큰 도랑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도랑에는 악어들이 가득했었단다. (지금은 아니고.)
이전 아그라 요새는 4개의 주요 출입구가 있었으나 지금은 유명한 <아말싱문>과 <델히문>만을 사용한다.
나머지 2개의 문은 수문으로 사용되고 <달샤니문>과 <달와즈문>은 영구적으로 차단되었다.
진짜 견고하게도 생겼다.
이런 성을 어떻게 타넘을까 싶은데 그래도 세번인가 네번인가 함락 당했단다.
夕陽이 아니고 朝陽이다.
안개땜에 그렇다.
「 자한기르 궁전은 2층 건축물로 악바르 대제가 힘겹게 얻은 아들 자한기르를 위해 건축을 시작했다.
벽들과 천장은 라지푸트風의 금색 밝은 색을 포함한 화려한 물감으로 색칠해졌다.
이 건물은 훗날 악바르의 궁전 중 한 채를 헐어냄으로 인해 자한기르의 통치 중에 완공되었다.」
자한기르가 어렸을때 물놀이 하던 곳.
안쪽에도 똑같이 생긴 계단이 있다.
저건 유대교 문양(紋樣)이 아니다. 힌두교 문양이다.
샤자한까지의 건축에는 이슬람-힌두교-기독교를 상징하는 문양들이 골고루 섞여있는데,
그것은 악바르-자한기르-샤자한이 이슬람-힌두 통합정책을 썼기 때문이다.
희한하게도 가이드 칸이 '연꽃문양'을 힌두교 문양이라고만 하지, 불교랑은 연관지을 생각을 안하더라.
내가 한국에선 불교가 빵빵하게 잘 나간다며 대충 설명을 해줬더니
"아니? 그 거지들이 어떻게?"라는 식으로, 당최 이해를 못하겠다는 눈치다.
또 한가지는,
인도엔 힌두교도 50%, 이슬람교도 25%, 기타 25%라고 하는데
우리가 알고있는 것과는 달리 이슬람에 대한 박해는 없다는 것이다.
내가 인도 가기 바로 얼마 전에 《뭄바이 호텔 테러사건》이 있었쟎냐?
힌두-이슬람의 종교적 차별문제가 원인인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슬람교도인 미스터 칸 얘기는 전혀 다르다.
인도에 사는 이슬람들은 파키스탄과 인도가 뭔 운동경기라도 하면 당연히 인도를 편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오히려 내게 북한과 일본이 전쟁하면 남한은 당연히 일본편을 들지않겠냐고 묻더라.
아무튼 인도에서 이슬람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누구 말이 맞는건지 모르겠다.
「 궁전의 4면은 각기 다른 기능을 갖추고 있다.
서쪽 면은 개인 신전으로, 북쪽 면은 대화의 장소로, 남쪽 면은 그림을 그리는 방으로 쓰인다.
이 궁전은 힌두와 중앙아시아 문화의 조화를 이룬 건축물로 널리 알려졌다.
힌두 신전은 아우랑제브 황제에 의해 파괴되었다.」
먼저 오르차에서 자한기르 궁전도 봤지만 얘네는 꽉막힌 ▣字 형태로 짓는다.
여자들의 노출을 꺼려서 그리한 것 같은데, 그렇다면 또 이슬람문화 건축양식이란 얘기겠고...
터키는 그런 식이 아니던데? 왜 다를까?
사우디나 예멘 가면 그럴라나?
접견실이라더라.
여기서 보면 저렇지만 반대편에서 보면 꽉 막혀 보인다. 절묘하다.
얘는 맨날 문양만 갖고 어쩌구 하는데...
하수구 아니지. 연못이지.
인도 군인은 대우 받더라.
경찰도 끗발 있더라.
무삼만 버즈(쟈스민 타워, 8각형 타워라고도 함.) 모두 한 건물로 8각형의 커다란 탑의 모습을 띄는데
샤자한이 말년에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유폐되어 살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 자리에서 맑은날 보면 타지마할이 잘 보인다.
샤자한이 이 건물에만 갇혀있었던 걸로 아는데
실은 그게 아니고 아그라 성 안에서는 맘대로 다닐 수 있었다더라.
본 사람이 있다더라.
실내 분수대다. 샤자한이 이렇게 호사스럽게 해놓고 산 걸 보면
아우랑제브가 알려진 것처럼 제 애비한테 그렇게 막되게 굴진 않은 모양이다.
이곳의 테라스에 서면 타지마할이 아련히 보인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샤자한은 이곳에서 타지마할을 보며 죽은 아내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샤자한이 사랑하는 딸 사잔아라의 무릎에 머리를 떨어뜨린채
사랑하는 아내의 묘지인 타지를 바라보며 마지막 숨을 거둔 장소다.
관광지 어딜 가건 카메라 들고다니는 걸 보면
우리나라 관광객이 단연 최신 기종이다.
<카스마할>은 아름다운 하얀 대리석 구조이다.
왕족 귀부인들에 의해 '아람가'라 불리며 하렘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샤자한이 그림을 그리고 수면을 취하는 방으로도 사용되었다.
「 쉬시마할은 하렘 여성들의 탈의실로 사용되었으며 벽은 아름다운 작은 거울들로 수놓아졌다.
카스마할의 북쪽 방향에 위치했다. 1630년 샤자한에 의해 가족들을 위한 터키식 욕구조로 건축되었다.
2개의 회관이 있고 온수와 냉수를 위한 2개의 물탱크가 있다. 회관의 마루는 물고기 모양을 띄며 대리석으로 포장되었다.
해가 저물녘 뿜어지는 작은 태양빛이 쉬시마할을 덮을 때면 무갈 황제는 많은 아내들과 즐기곤했었다.
분수대는 향료가 섞인 물을 마루에 흐르게 했다.
이 장소는 아름다움과 매력 그리고 성의 자유로운 문화를 이루는 곳으로 통치자들에게만 허락된 곳이다.」
「 미나 바자르(바자르=市場)는 악바르 황제에 의해 하렘의 아름다운 여인들을 위해 지어졌다.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졌으며 귀족과 지배자계층의 아내와 딸들의 구매를 위해 지어졌다.
황제를 제외한 모든 남자는 출입이 금지되었고, 황제 또한 변장하여 들어가 미나바자르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자유롭게 탐닉하곤 했다.」
매일 열리던 것은 아니고 한 달에 한번 정도.
여기서 오줌쌌다간 진짜 뒈진다.
위에 것이 샤자한의 유명한 '공작옥좌'라는데 이건 모조품이고
진품은 훗날 아우랑제브가 델리로 가져갔는데, 거기서 침략자들에게 뺏겨서
지금은 테헤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위에 까만 대리석 옥좌는 또 뭐라뭐라 했는데 잊어버렸다.
여기 문을 열고 들어가면 무굴제국 시대의 책상이나 걸상, 서류뭉치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벽면의 저런 공간엔 거울을 박아놨었다더라.
「 디완이암은 대중을 위한 강연장으로 안팎으로 꽤 넓다.
악바르 대왕에 의해 볽은 사암으로 만들어졌으며 마크키바완의 서쪽에 위치한다.
샤자한에 의해 기둥, 아치 그리고 지붕이 독특한 대리석 상감술로 처리됨으로 개조됐다.
붉은 사암으로 만든 뒤 하얀 치장벽토로 장식을 했으며 내외부가 무척 호화롭다.
민원의 공소 및 탄원을 듣던 왕실로 샤자한에 의해 건축되었다.」
앞에는 델리문,
뒤에 보이는 것은 이슬람 사원 '아그라 자마 마스지드'다.
영국 총독 무덤이라는데 이장을 해갔다던가 안해갔다던가...
이 할아버지는 가이드다. 알바로 뛰는 가이드다.
입구에 동료패로 보이는 사람, 서너명 더 있더라.
여기 다람쥐들은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다. 뭘 주면 포르르 달려온다.
카주라호 다람쥐나 델리 다람쥐나 마찬가지다.
보다시피 문이 두 개다.
첫번째 문이 아말싱門, 안에 있는 문이 아크바리門이다.
.
저거 호박이여 수박이여?
고추여 당근이여?
이건 스카프여 머플러여?
전에 중국 여강에서 만난 내외가 있었는데, 그 냥반들 얘기가 나중에 혹시 인도를 가게 되면 꼭 이걸 사오라고 합디다.
가격대별로 종류가 많은데,
캐시미어로만 만든 거.
캐시미어랑 실크랑 섞은 거,
캐시미어에 무늬 눈 거,
캐시미어어에 실크 무늬 눈 거,
캐시미어 무늬 넣고 실크로 또 무늬 눈거 ...,
국내서 살라믄 3배도 넘는다대. 품질이 좋다더만.
그런데 웬걸? 나중에 딴 데 또 가보니까 훨씬 좋고 비싼 걸 팔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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