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마할

2009. 2. 1. 07:08북인도

 

 

 

 

 

"매일마다 매 순간마다 그리고 매번 바람이 불 때마다

타지는 타지만의 특별한 색을 발한다.

돔이 광대한 지주와 같이 별들 속에서 매달릴 때

새벽의 부드러운 꿈으로부터

그리고 오후의 눈부신 순백함을 지나

달빛 안에 광채를 더하는 냉기까지

아름다운 색을 발하는 타지.

그러나 이 모든 아름다움도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인도의 저녁 노을을 대신할 수 없다.

엷고 활기찬 장미의 황홀한 배합과도 같은 매혹을."

 

 

 

 

 

 

 

근처에 와서 다시 셔틀버스로 갈아타고 3분 정도 가야한다.

저런 마차를 타도 된다.

 

  

 

 

 

 

 

그리곤 도보로 200 미터정도 더 가면 되는데

보다시피 그 유명한 타지마할의 출입구 주변환경 꼬라지가 이렇게 생겼다.

'불가사이'하다. 

 

 

 

 

 

 

 

 

뭐 하지 마라, 뭣도 하지 말라는 이런저런 'NOTICE'가 여섯 개도 넘게 다닥다닥 붙어있다.

입장료는 750루피, 우리 돈 2만5천원 정도. 

다른 관광지는 250루피 했던 걸 생각하면 여긴 겁나게 비싸다.

여기도 호텔처럼 검문검색을 공항에서 입국심사하듯이 한다.

 

개장시간 : 동틀녘 부터 해질녘까지

금요일은 휴업

15세 이하 어린이 무료 

 

 

 

 

 

 

 

개는 개끼리 한다.

 

 

 

 

  

 

 

  

 

들어와보니 생각한 것 보다 엄청 넓다.

똑같이 생긴 문이 사방으로 나있다. 대부분은 서문으로 입장한다.

미스터 칸이 나올때 헷깔리지 말라고 신신당부 한다.

 

 

 

 

 

 

 

이게 말하자면 타지마할 대문이다.

자금성에 가면 천안문이 있고 오문이 따로 있듯이.

 

 

 

 

 

 

 

내가 사진을 바꿔놔서 그런데, 여긴 바로 안쪽으로 들어와서 좌측에 있는 회랑이다.

끝에 화장실이 있는데 거기부터 갔다와야 한다. 여기 말곤 화장실 없다.

가다보니 옆에 박물관이라고도 써있지만 거기엔 들를 여가가 없다.

 

 

 

 

 

   

 

 

 

봐라, 딴 거 볼 정신이 있겠냐?

 

 

 

 

 

 

 

 

  

  

 

 

 

입구부터 사진들 찍느라 바쁘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관광객이 없다.

세계적인 불황 탓이겠지.

평소에는 소매치기가 들끓는 곳으로 유명하다는데...

외국인으로 가장한 소매치기를 특히 조심하라더라. 

 

 

 

 

 

 

 

이걸 환상적이라고해야 하나 몽환적이라고 해야하나?   

 

 

"묘당 앞에 조성된 네모반듯한 사분정원은 +자형으로 교차되는 수로에 의해서 사등분된다.

사분정원은 이슬람교에서 '천상의 정원'을 상징하고, 네개의 수로는 생명의 원천을 나타낸다.

그리고 수로가 교차되는 지점은 인간과 신이 만나는 장소이다.

즉 중앙 연못이 있는 지점이 바로 인간과 신이 만나는 장소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 본 묘당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 안영배, 인도건축기행 -

 

 

 

 

 

 

 

역시 멋진 사진을 찍으려면 겨울에 오면 안된다.

이 <타지마할>을, 여름에  파란 하늘 배경으로 뭉게구름과 함께 보면 두둥실 떠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단다.

거울 같은 물에 반사되는<타지마할>의 모습도 환상적이고.... 날씨가 아쉽다.

 

 

 

 

 

 

 

 

<아그라>는 무굴제국 3대 황제 악바르(Akbar)때 터를 잡고,

그 손자 샤자한(Shah Jahan) 때 전성기를 누렸는데,

<아그라>의 큼직한 건축물은 모두 샤자한이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한마디로 샤자한 황제는 건축광이다.

그의 할아버지 아버지인 악바르(Akbar)와 자한기르(Jahangir)도 유명한 학자였단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이 '타지마할'은 샤자한이 그의 아내 뭄타즈를 애도해서 지었다는 무덤궁전이다.

전 세계적으로 설계공모했는데, 터키 출신의 '우스타드 이사 환디(Ustad Isa Afandi)'의 작품이 선택됐단다.

기초 자재인 하얀 대리석은 인도의 라자스탄 지방에서, 사암재료는 파테푸르시크리에서 가져왔지만

금은 보석이나 기타의 재료는 전부 외국에서 최고급으로만 수입해왔다. 

하루 2만명을 동원해서 꼬박 22년 걸렸다는데, 부수적인 건물까지를 포함하면 30년도 넘는다.

샤자한이 이거 완공하고나서 3년인가 뒤에 죽었다더라. 

 

 

 

 

 

 

 

 

 

 

 

「 묘당은 한 변이 95미터, 높이가 7미터인 기단 위에 세워져 있고,

   건물의 평면은 62평방미터로 방형이고, 높이가 65미터나 되는 거대한 건물이다.

   중앙의 큰 돔 주변에 4개의 작은 돔이 있으며, 중앙 돔은 바깥지름이 30미터, 높이는 27미터나 된다.

   돔 내부는 텅 비어 있는데,  크기는 아래에 있는 묘실 공간보다 크다.

   중앙 돔은 순전히 외관을 위한 허구의 구조다.」

 

「 기단 네 모서리에는 높이가 42미터나 되는 첨탑이 있어 묘당의 영역을 분명히 보여준다.

   첨탑의 상부는 밖으로 약간 휘어져 있는데,

   이는 안으로 휘어져 보일 수 있는 착시 현상을 방지함과 동시에 지진에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

 

「 멀리서 볼때와 달리 가까이서 보면 상상외로 큰데,

   그것은 규모를 알 수 있는 요소가 건물에 잘 표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 균형잡힌 비례, 돔과 아치로 된 수려한 곡선미, 우아하고 하려한 대리석 장식 등

    타지마할의 조형미는 그야말로 아름다움의 극치이다.

    또한 구석구석이 고도의 건축기술로 완벽하게 마무리 되어 있어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타지마할은 지나치게 페르시아 양식을 따랐고

    외관은 웅대하지만 내외 공간의 변화가 단조로워 인도 건축의 최고 걸작으로 보기 힘들다는 평가도 있다.

    나 역시 이와 비슷한 생각이다.」

 

                   - 안영배, 『인도건축기행』-

 

 

    

 

 

 

 

 

  그러나  현지에서 사온 '타지마할' 책자를 보니 이렇게 소개한다.

 

「 타지는 인도와 페르시아 건축술의 완전한 융해작품이다.

   설계자인 우스타드이사와 그의 일행이 페르시아 출신이지만 동시에 이슬람으로 개종한 인도인이었다.

   그러므로 타지는 인도의 영혼이 페르시아의 육체를 입은 것과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축가들이 힌두의 학술적 경전인 쉴파 샤스트라를 인식하고 있었던 것은 기정 사실이다.

   타지마할에서 볼 수 있는 네 모퉁이의 첨탑들과 중앙 건물은 판치-프라사다(Panch-Prasada)라고 하여

   순수한 인도문화의 산물이다.」

 

               -  히이라 넨드 아스와니 -

 

 

 

 

 

 

  

 

 

 

 

    

 

 

 

 

물론 신발 벗고 들어간다. 아니면 덧신을 신던가.

(어휴 이 사진 찍으면서 피차 민망해서 혼났네.)

 

 

 

 

 

 

도대체 여기에 들어간 대리석이 얼마일런지 상상이 안간다.

그것도 전부 흰색으로만.

 

 

 

 

 

 

 

뭄타즈는 준비된 황비라고도 할 수 있는데

페르시아 계통의 명문가 출신으로 첨서부터 예상을 하고 황비가 될 교육을 받았다는 거다.

'자한기르' 황제 못지 않게 존경을 받던 '눌 야한'이란 시어머니가 총애를 했을 뿐더러 

무엇보다 신랑 샤자한과 서로 좋아 죽고못살았다니까 그 위세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둘 사이에 14명의 자식을 두었는데, 막내를 낳고 출산 후유증으로 죽었단다.

그때 나이가 30세 전후였다니까, 그냥 뭐 막 난거다.

 

왼쪽에 샤자한의 큰 대리석 관이 있고 오른쪽에 뭄타즈의 작은 관이 있는데

이것은 빈 관이고 실제 무덤은 지하에 있다.

처음 뭄타즈가 죽고나서 가매장한 이후에 이곳에 오기까지 세번이나 이장을 했다.

여기로 옮기고 나서 최초의 추모식을 할때 우르스(Urs)를 개최했다는데

온갖 나라의 황제나 사절들이 다 방문해서 그 행사의 규모가 어마어마했다고 한다.

물론 돈 많이 썼다.

(그래서 그를 빌미로 샤자한은 아들 아우랑제브가 일으킨 쿠테타로 아그라 성에 감금되는 신세가 된다.)

 

 

 

 

 

 

 

 

 

 

 

 

 

 

 

 

 

 

   

당연히 내부 촬영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는데 (감시인이 여럿임.)

촌놈이 저러구 찍고 있길래 옳다쿠나 저 놈 핑게대면 되겠구나 하고 잽싸게 나도 막 눌렀다.

안팎의 모든 문양은 다 상감세공기법으로 만들었다. 대단하다.

우리와 다른 점은 쟤네는 저 문양을 따로 만들고, 대리석을 파 낸 자리에다 '희귀한 유약'을 사용해서 붙였는데,

(샤자한의 수석 금세공사 Saida의 작품) 이중작업일 뿐만아니라 훨씬 고난이도의 기술이다.

지금도 여기에 있는 문양을 사용하려면 라이센스가 있어야 된다.

 

 

 

 

 

 

아닌게 아니라 내부는 단조롭다.

 

 

 

 

 

 

  

 

 

 

샤자한이 저 강 건너편에다가 자기 몫으로 검정 대리석으로 또 하나를 지을려고 했다는데

사실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저 천정의 대리석 조각 요리조리 아귀 맞춘 거 봐라.

도대체 500년 전 사람들이 저런 계산을 어떻게 했는지... 참말로.

보이는 글씨는 코란을 베낀 것인데 역시 상감기법으로 새겨넣은 것이다.

 

 

 

 

 

 

해뜰때가 좋고 해질녘의 풍광이 멋지다는데

겨울이라선지 해가 타지마할의 정 右편으로 넘어가니까 별로다.

 

 

 

 

 

 

 앞에서도 몇 번 말했지만 거의 모든 성곽건축이 좌우대칭형이다.

 

  

 

 

 

 

같은 모양의 건물이 양 옆에 있는데

하나는 보다시피 사원이고 또 하나는 영빈관으로 지었단다.

 

 

 

 

 

 

 

 

  

 

 

 

 조금만 더 나가서 찍었으면...

 

 

 

 

  

배수시설이다.

중앙 정원에 있던 분수대는 <야무나 강>의 물을 퍼올려서 물레방아식의 낙차를 이용했다고 한다.

 

 

 

 

 

 

 

지금 보이는 이 바닥 아래엔 이렇게 조성되었단다.

젤 밑에는 흙, 그 위에는 나무, 그 위에 사암, 그 위에 대리석, 그리고나서 그 위에다 묘를 얹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닥에 들어있는 나무로 인해서 타지마할의 정확한 높이를 잴 수가 없다고 한다. 

나는 이번에 희한한 경험을 했는데, 사진을 찍어서 확인해 보면 이상하게 한쪽으로 기울어 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몇 번인가를 반복해서 찍어봤는데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여기 소개하는 사진들은  내가 일부러 1~2도 정도 카메라를 약간 기울여서 수평을 맞춘 것이다.

하 이상해서 버스 속에서 칸에게 사진을 비교해 보여주며 물어봤다.

자기도 처음 듣는 얘기지만 그럴 가능성이 있겠단다. 역시 바닥에 있는 나무층이 문제라는 것이다.

 

 

 

 

 

 

 

물그림자가 좀 보이지요?

 

 

 

 

 

 

 

 

위에 4장은 옆으로 길게 찍어본 것이다.

이 자리에서 찍는 사진이 제일 낫다고는 하는데... 글쎄..?

 

 

 

 

 

 

 

 

 

 

 

 

 오호?

 

 

그런 방법도 있는겨?

 

 

 

그렇다면 나는 응용을 해서리,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그렇다고 더 어슬렁거려본들 달라질 것도 없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그러니 어쩌랴?  야속할 뿐이지.

 

 

 

 

 

 .

 

 

 

 

 

 

 

이맘때쯤 다시 만나기로 하자
이제 여기서 헤어지고 나면
가을 깊어가고 겨울이 오고
또 몇 백년 강물이 흐른 뒤
야무나강이든 갠지스강이든
저 멀리 남한강이든
그 강물 흘러가는
어디쯤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자
손톱 밑으로 빠져나가는
시간의 햇살따라
벵골만 건너 캘커타 지나
아그라 붉은 태양 아래
흰 대리석으로 빛나는 타지마할
죽은 다음에도 되살아나는
왕과 왕비의 살냄새 거웃냄새
또 몇 백년 강물이 흐른 뒤
타지마할의 눈부신 대리석 위에
보름달이 솟을 때
여기쯤에서 만나기로 하자
사랑에는 꼭 이별이 있는 법
저승의 푸른 하늘 아래
대리석이나 오동나무 관이 아니면
관솔구멍이 숭숭 뚫린
소나무 관 속에
금은보화 비단옷이 아니면
무명옷이나 삼베옷 두르고
그도저도 아니면
청바지 차림으로라도
또 몇 백년
강물이 흐른 뒤
우리들 사랑이 타지마할에서
이맘때쯤 다시 꼭 만나기로 하자

오탁번 詩<타지마할>

 

 

 

 

 

 

 

 

 

 

 

 

 

 

 

 .

 

 .

 

 

 

 

  

 다음엔 아그라城이다. 

  


 

 

 

 

 

펌.

 

아그라는 인도의 수도 델리에서 약 200㎞ 남쪽으로 내려온 곳에 있는 조용한 도시이다. 한때 무굴제국의 영광을 한몸에 받으며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던 이곳은 무굴제국이 역사의 뒤편으로 물러서면서 함께 몰락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아그라를 지금까지 기억하며 한번쯤 방문하고 싶은 곳으로 여기는 것은 바로 타지마할 때문이다. 만일 이 건물마저 없었다면 아그라는 인도에 널려 있는 유서 깊은 도시들 중 하나로만 기억되는 서러움을 겪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그라의 여행은 타지마할을 위한 발걸음이라 장담할 수 있다.

 

무굴제국의 찬란한 영화가 아그라를 뒤덮을 무렵, 키도 작고 피부도 까만 전형적인 드라비아 여인이 있었다. 무굴제국의 왕이었던 샤자한(Shah Jahan) 의 두 번째 부인이 된 그녀에게 ‘궁전의 꽃’이라는 의미의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다른 왕비들에 비해 빼어난 미모는 아니었지만 왕의 총애를 듬뿍 받았다. 그녀의 꾸밈없는 밝은 성격과 돋보이는 지성은 주변 사람을 늘 즐겁게 하였고 샤자한의 마음을 헤아려 하나부터 열까지 배려하는 모습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샤자한은 이제 더 이상 그녀 없이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결혼 생활을 함께 한 것이 17년인데 무려 14명의 자식을 낳은 것도 그녀와의 돈독한 사랑이 아니었다면 처음부터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 그녀가 열다섯 번째 아이를 낳으려다가 그만 세상을 떠나버렸다. 하늘이 보내주었다고 믿었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았던 그녀와 이제 함께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같은 곳을 바라보고 함께 숨 쉴 수 없다는 사실은 샤자한을 지옥과도 같은 슬픔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녀에 대한 그리움에 그는 2년 동안 상복을 벗지 않았고 그녀를 위해 22년간에 걸쳐 아름다운 무덤을 만들었으니 그것이 바로 타지마할이다. 

 

‘마할의 왕관’이라는 의미의 타지마할은 눈치를 챘듯이 왕비 뭄타즈 마할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갠지스강과 더불어 인도의 2대 강줄기에 드는 야무나 강변에 세워진 이 신비스러운 건축물은 뭄타즈 마할이 죽은 해인 1631년부터 샤자한이 지극히 사랑하던 아내를 위해 세계 각지에서 귀한 돌을 수집해 짓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작 연도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학설이 분분하지만 타지마할 벽에 새겨진 이야기에 따르면 이때가 가장 정확한 것으로 보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를 만들고자 하는 왕의 의지 덕분에 이 공사는 국가적 대공사가 되었다. 막대한 예산과 노동력은 물론이고 세계 각지의 기술자들이 아그라로 모여들었다. 건축가는 페르시아 출신의 우스타드 아샤와 이란 출신의 이사칸이 초빙되었고 각 분야별로 보르도, 베네치아 등지의 기술자들이 참가하였다.  

 

이때 사용된 돌은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우즈베크, 이탈리아, 프랑스에서까지 구해온 것으로 가히 세계적 공사라고 이야기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타지마할에 사용된 순백의 대리석은 라자스탄에서 운반해 온 것이었다. 내부와 외부는 장밋빛 석류석과 터키산 옥, 산호, 황금빛 호반석과 비취, 그리고 녹색 옥 등의 갖가지 보석으로 장식했다. 이때 동원된 건축가와 인부만 해도 약 2만명이었다고 전해지니 그 공사의 규모를 가히 짐작할 만하다.  


폭 350m, 길이 580m 규모의 타지마할은 정문에서 약 250m 떨어져 있다. 중앙을 중심축으로 하여 좌·우측이 정원, 연못, 나무 등과 함께 완벽한 대칭 구조로 되어 있으며 전체적 대칭 구조와 더불어 건물에 사용된 기하학적 계산의 완벽함은 지금의 건축학자들이 보아도 감탄해 마지않는다. 이 모든 것은 아주 계획적으로 진행된 것이다. 무굴제국의 건축 관행은 나중에 증축하거나 개축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건축가들은 처음부터 하나의 통일체로서 타지마할을 구상하고 설계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중심부에 놓인 기다란 연못 위에 거울처럼 비쳐 보이는 타지마할의 모습은 그 신비스러움을 더하는데, 그 때문인지 몰라도 타지마할의 입구에서 묘까지 거리가 한층 멀게 느껴진다.  

 

건축학적으로도 그 완성미를 높게 평가받는 타지마할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아름다움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건물 자체가 살아있는 듯 불가사의한 생명력을 발산하는데 진짜 영혼이 머물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흔히 ‘백색의 진주’나 ‘꿈의 궁전’으로 불리는 타지마할은 낮에는 흰색으로 보이지만 아침에는 자줏빛, 황혼녘에는 황금빛, 그리고 보랏빛과 푸른빛 등 그 색채가 수없이 변화한다고 한다. 보름달 밤의 달빛에 반사되어 신비로운 자태를 드러내는 모습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타지마할 부근의 높은 언덕이나 다른 건물 위에서라야 이 느낌을 살짝 맛볼 수 있다.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는 영국의 작가 키플링은 타지마할에 대한 소감을 이렇게 적어 놓았다. “순수한 모든 것, 성스러운 모든 것, 그리고 불행한 모든 것의 결정이다. 이 건물의 신비는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왕과 왕비는 타지마할의 지하 묘실에 안치되어 영면의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 비록 수많은 관광객의 방문으로 조용한 시간을 보내지 못할지언정 그들은 지금 또 다시 긴 여행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영원한 사랑, 그것은 분명 인간의 커다란 소망이고 꼭 이루고 싶은 로망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랑을 꿈꾸고 있을 뿐 그것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생이 끝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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