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첫째날(2)

2009. 1. 16. 11:43북인도

 

 

 

      라즈가트(Raj Ghat) - 간디의 화장터

 

     '라즈(Raj)'는 사전을 찾아보니까 '주권,지배, 통치'로 나와있는데,

     대충 권위를 뜻하는 말로 새기면 될 것 같고

    '가트Ghat)'는 '강가와 맞닿아 있는 계단'을 뜻하는 말인데,

     지금은 계단의 의미보다 화장터를 뜻하는 말로 통용된다.

     바라나시 갠지즈 강가에 가면 가트(Ghat)를 실컷 본다.

 

 

 

 

 

 

 

 

 

 

 

간디를 화장하고 그 자리에 유골을 묻은, 이른바 '영묘(英墓)'다.

물론 여기서도 신발은 벗고 들어가야한다.

다행히 비둘기가 없어서 똥 밟을 일은 없다.

 

저 오른 쪽에 '2009'라고 씌어있는 것은 꽃으로 장식한 화환같은 것이다.

인도는 처음 오는 손님에게 자스민 꽃목걸이를 걸어주는 관습이 있다.

 

단색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종류의 꽃이 촘촘이 박혀있다.

위쪽으로는 꽃이 싱싱하고 깨끗하다. 꽃이름은 쟈스민이다.

그러나 아랫쪽으로는 시들부들한 꽃들이 섞여있다. 

이는 흰색꽃이나 위에 있는 꽃은 사회계급이 높은 사람들의 것이라서 관리인이 늘 챙긴다는 뜻이다.

이런 사소한 일에서도 카스트제도의 단면이 나타난다.

(카스트 제도에 대해서는 나중에 길게 풀어볼 생각이다.)

 

 

 

 

 

 

 

웬간히 넓다.

이 '라즈가트' 주위엔 유명한 사람들의 화장터가  많이 널려 있는데,

특히 북쪽에 인도 초대 수상 자와할랄 네루와 그의 딸이자 수상이었던 인디라 간디,

그리고 인디라 간디의 아들 산자이 간디와 라지브 간디의 화장터가 있다.

그러나 이 마하트마 간디 화장터가 젤 잘 만들어놨단다.

 

 

 

 

 

 

 

 

 

 

 

제단 앞에 씌어진 문구는 '헤이 람 (Hey Ram/ 라마 신이여)' 이란 힌두어다.

저 불火은 일년 내내 24시간 밝히고 지킨다.

 

간디도 화장(火葬)할 때 사리가 많이 나왔다는데,

인도 사람들은 화장할때 보면 거의 모두가 사리가 나온다고 한다.

가이드 미스터 칸이 그 얘기를 무심하게 하는 것으로 봐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는 눈치다. 

 

왤까?

우리나라 사람들도 화장하면 모두 사리가 나오는 것은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혹시 인도 사람들은 요가를 해서?

 

 

 

 

 

 

 

 

 

 

 

 

 

 

밑엣 사진. 나무 이름이 '솜 나무'다.

진짜로 솜이 열린단다. 여름엔가 열리는데 목화솜하곤 다르단다.

검정색이라고 했던 것도 같고..?

 

 

 

 

 

 

 

인도엘 가면 이런 모습의 군상을 많이 보는데, 저이들도 자기네가 왜 사진 찍히는 지를 안다.

입장 바꿔서 생각해봐라. 구한말이나 한국전쟁 중에 우리도 서양사람 눈에 그렇게 보이질 않았나.

당연히 불쾌할 터─ 잘못 걸리면 봉변당하고,, 더러는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더라.

눈치껏 잽싸게 잘 찍어야 한다.


 

 

 

 

 

 

 

 

 

   인도문

 

 

 

 

저렇게 주인에게 대접받는 개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개들은...사람처럼 거지 개다.

 

 

 

 

 

 

 

얘가 바로 걔다.

다들 이러구서 산다.

그런데 과연 어느 개가 행복할까?

 

 

 

 

 

인도도 자유연애한다더라.

이쪽은 사랑이 꽃피는 단계, 저쪽은 갈라서는 단계.

 

 

 

 

 

 

 

인도문,

1차 대전때 전사한 장병들을 위한 위령비인 셈이다.

높이가 42미터란다.

인도엔 '인도문'이란 것이 두 개가 있는데, 이것 말고 타지마할에 가면 또 있다.

이것은 위령비이고 타지마할에 있는 것은 환영문이다.

영국애들 쫒겨갈 때 이 문으로 나갔단다.

 

 

 

 

 

 

 

이건 뭐냐니깐 그냥 작은문이라더라. ㅋ

 

 

 

 

 

 

 

인도-파키스탄 국경에 「와가」 국경 검문소라고 있는데, 거기 근무교대식 할 때 보면 꽤나 웃긴다.

얘네들 보니까 그 생각이 떠올라서 미스터 칸에게 가봤냐고 물었더니 뭔 말인가 못 알아듣더라.

 

 

 

 

 

 

 

 

 

 

 

  

 

 인도 인구가 13억이라지?

 진짜로 사람 많더라.

 대부분 사람이 깡말랐다. 뚱뚱하면 일단 부자로 보면 된다.

 

 

 

 

 

 

인종이 다양한데, 피부색이 흰 사람은 아리안族으로 아프간 계통이다.

 

 

 

 

 

 

 

 

 

 

 

 

 

    대통령궁

 

 

 

 

 

 

 

 

 

 

 

좌우로 똑같이 생겼다.

인도 사람들은 대칭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1911년이라던가? 100년 전쯤 영국왕조때 지어진 건물인데

왼쪽엔 왕(총독)이 살고 오른쪽엔 왕비가 살았단다.

방 갯수가 350개나 된다는데, 그 모두가 대통령의 접견실로 쓰인단다.

출신이나 신분에 따라 각기 방이 정해져 있어서,

예를 들면, 수상은 수상 전용 접견실에서, 미국 대사가 오면 미국 대사 전용 접견실에서,

각기 따로 만난다는 얘기다.

 

 

 

 

 

 

  

이게 도대체 뭔 꼴이냐?

인도 사람들은 아무도 마스크 쓰고 다니는 사람이 없다.

갸들이 볼때는 우리를 이상하다거나 오버한다고 할 거다.

 

인도 환경문제 정말 심각하다.

얼마 전에 소개했던『6도의 악몽』라는 책에 보면 아프리카 다음으로 인도가 희생양이 된다고 나왔다.

물론 겨울이라 더욱 건조하긴 하겠지만, 어디를 가봐도 푸석푸석한 것이, 사막화라는 말이 실감난다.

아무리 도를 깨치면 뭐하냐? 사막에서 굶어죽으면 끝나는 거지.

 

 

 

 

 

 

  

 

지금 여기는 대통령궁 근처라서 차량이 뜸한 것이고, 다른 곳은 난리도 아니다.

온통  버스, 트럭, 택시, 오토바이, 오토릭샤, 사이클 릭샤, 자전거, 마차, 소, 말, 낙타, 코끼리, 개, 

거기에 모두가 먼저 가겠다고 크락숀 빵빵대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딱지 끊는 교통경찰이 없더라니?

 

 

 

 

 

 

  

 

점심식사 하던 중국식당 앞뜰에 있는 나무인데, 이름이 '반얀나무'란다.

참 희한하게도 생겼다.

나무줄기에서 저렇게 뿌리(?)가 주렁주렁 내려온다.

당연히 저 혼자만의 생존력이야 강하겠지만,

보다시피 물을 아주 많이 먹게 생겨서 주변의 식물들은 살 수가 없겠다.

글쎄? 저걸 목재로 쓸까?

 

 

 

 

 

 

 

  

구걸하는 애들인데, 도처에 널렸다.

요가하는 나라라서 그런지 애들이 덤블링을 유연하게도 잘한다.

상모 돌리는 아이도 몇 봤다. 인도 사람들이 어떻게 상모 돌리기를 알까?

혹시 역으로 인도에서 전래된 것은 아닌지...

 

내가 아이들 몇명에게 10루피짜리 지폐를 한장씩 나눠줬더니

핸드폰도 없는 애들이 어떻게 연락을 주고받았는지 금세 우루루 몰려든다.

인도도 앵벌이 조직이 있단다. 

 

한국 여행객들이 돈을 잘 주나보더라.

한국인이라면 어딜 가도 굿! 굿! 한다. 

 

 

 

 

 

 .

 

 

 

 

 

 

 

 

 

 

 

인도 국민회의당 간디家 5세대 라훌, 총리 향한 발걸음

                                                        (경향신문 2009. 01. 15)

 

 

연초부터 인도가 시끌벅적하다.

오는 5월 치러지는 인도 총선에서 30대 총리의 등장 가능성이 부쩍 높아지면서다.

주인공은 인도 집권 연정의 중심 국민회의당의 라훌 간디 하원의원(38).

이름에서 짐작되듯 그는 인도에서 ‘정치적 왕실’이나 다를 바 없는 네루-간디 가문의 5세대 정치인이다.

라훌 간디가 속한 국민회의당은 지난해 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의 우세를 총선에서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라훌의 총리 당선 가능성에 어느 때보다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인도 일간 메일투데이는 지난 9일 프라나브 무케르지 외무장관의 발언을 인용,

 “라훌 간디가 인도의 총리가 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전했다.

여권의 핵심 인사 가운데 한 명인 무케르지 장관은 “라지브 간디(라훌의 아버지)가 마흔 살의 나이에

총리에 올랐듯 아들인 라훌도 그 길을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디그비제이 싱 국민회의당 사무총장도 무케르지 장관의 발언에 동의를 표했다.

샤킬 아메드 국민회의당 대변인도 타임스오브인디아와의 인터뷰에서

“라훌은 인도를 이끌 만한 자질을 갖추고 있다”면서 “신세대는 그를 대표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당내의 기류는 지난해 라훌 간디의 차기 총리론이 대두됐을 때

 “경험이 일천하다”는 반대의 목소리가 컸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것이다. 


인도 정치에서 네루-간디 가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3명의 총리를 배출하며 37년간 인도를 통치했다.

야당일 때에도 늘 인도 정치의 중심에 서 있었다.

2007년 인도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오른 프라티바 파틸 현 대통령도 네루-간디 가문의 가신(家臣)으로

43년 정치 인생을 국민회의당과 함께 했을 정도로 가문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네루-간디가의 정치적 기초는 모틸랄 네루(1861~1931)가 닦았다.

라훌 간디의 할머니 인디라 간디 전 총리에게 할아버지가 되는 모틸랄 네루는 인도 독립운동 초기

멤버이자 변호사였다.

인도의 국부로 일컬어지는 국민회의당의 정신적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모한다스 간디)와 교류가 깊었던 그는

29년 아들인 자와할랄 네루(1889~1964)에게 국민회의당 대표직을 물려준다.

자와할랄 네루는 마하트마 간디의 후원과 인도 국민들의 사랑으로 독립 직후부터 사망할 때까지

17년간 인도 총리를 지냈다.

그는 국내에서 <세계사 편력>으로 알려진 책의 저자인데, 이 책은 독립운동 당시 9년간 옥살이를 하면서

무남독녀 인디라 간디(1917~84)에게 보내는 이야기 형식의 편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아버지가 죽은 지 2년 만인 66년 총리에 오른 인디라 간디의 원래 이름은 인디라 프리야다르시니 네루였다.

하지만 영국 옥스퍼드대 재학 당시 결혼한 남편 페로제 간디의 성을 따라 인디라 간디가 됐다.

이후 인도의 정치 명문 네루가는 네루-간디가 혹은 간디가로 불리고 있다.

할아버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부터 인도 독립 운동에 참여한 인디라 간디는

독립 이후에는 아버지 아래에서 정치수업을 받아왔다.

그는 국제관계에 있어 ‘비동맹주의’를 견지했다.

미국과 소련 중심의 냉전시대에 인도의 위상을 세워놓았던 아버지 자와할랄 네루의 정치적 자산을 그대로

물려받았던 것이다.

덕분에 꾸준히 집권 연장에 성공해왔지만 77년 치러진 총선에서는 패배하고 만다.

경제안정을 위해 강압적인 정책을 쓰고 있다는 야당의 공세와 장기집권에 반대하는 인도 국민들의

변화욕구에 밀려 인디라 간디는 총리직에서 물러난다.

둘째 아들 산자이 간디(1946~80)가 특별한 공직을 갖고 있지 않으면서 이리저리 영향력을 행사한 것도

패배의 원인 중 하나였다.

총리 재임시절 산자이에게 사업상 특혜를 줬다는 혐의로 구속 수감되기도 했다.

그러나 인디라 간디의 결백과 석방을 주장하는 폭동으로 19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집권당의 실정과 인디라의 정치력 회복으로 80년에는 다시 총리직에 오른다.

하지만 이 해 차남 산자이는 뉴델리 인근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인디라 간디 자신도 아들이 비명횡사한 지 4년 만인 84년 시크교도 경호원에게 암살당하는 비운을 맞이한다.

시크교도의 분리독립 움직임을 저지하기 위해 시크교 성지를 침공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이유에서다.

인디라 암살에는 경호원 2명이 가담했으며, 이들은 인디라 총리가 카메라 앞에서는 방탄조끼를 입지 않는다는

점을 노렸다.

그렇지만 인디라 총리의 죽음이 가문의 몰락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마치 자신의 운명을 예견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인디라는 차남 산자이가 죽은 직후

첫째 아들 라지브 간디(1944~91)를 정계로 불러들였다.

민항기 조종사였던 라지브 간디는 정치와는 담을 쌓은 인물이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유학 시절 만나 결혼한 이탈리아계 아내 소냐 간디(1946~) 또한 정치를 혐오했다.

그러나 결국 동생의 죽음과 어머니의 뜻을 고려해 정계에 뛰어들기로 결정한 라지브는

 81년 하원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되며 정치인생을 시작한다.

그는 ‘정치꾼’ ‘책략가’의 이미지였던 살아 생전의 동생 산자이와 대비되는 ‘덕장(德將)’의 면모로

금세 인기를 얻었다.

그는 어머니 인디라 총리의 서거 직후인 84년 10월 의회의 추대를 받아 총리에 올랐으며,

그 해 12월 국민회의당이 하원 총선에서 압승하며 총리직을 이어갔다.

라지브는 다소 소원했던 서방 진영과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바꾸어나가며 경제 발전을 추구했다.

인도의 오랜 문제로 여겨지는 종교적·지역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다.

집권당의 부패 스캔들과 이에 따른 엘리트주의에 대한 비판 여론이 팽배하면서

 89년 총선에서 야당 연합 자나타달에 국민회의당이 패배한 것이다.

이어 91년에는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암살을 당하기에 이른다.

라지브 간디는 타밀라두 지역에서 선거운동을 하던 도중, 스리랑카 분리독립 운동을 벌이고 있는

타밀엘람타이거해방군(LTTE)과 연관된 단체의 단원에 의해 살해됐다. 

인도는 정치인들에 대한 테러가 잇따르며 정치적 혼란은 물론 국가재정도 파산 직전에까지 이르는 등

혼란을 거듭했다.

국가비상사태 해결을 위해 인도의 국민회의당은 또다시 간디가의 문을 두드렸다.

정치권에서는 소냐 간디를 원했다.

인도의 혼란을 수습하고 국민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그밖에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소냐는 고사했다. 정치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는 소신은 시어머니와 남편이 흉탄에 스러지는 경험을

하고 난 뒤 더욱 견고해진 듯했다.

훗날 그는 라지브의 정치생활 동안에도 집안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 ‘호랑이처럼 싸웠다’고 회상을

하기도 했다.

정치 입문을 거절하면서 그는 뉴델리 자택에 있으며 일부 공식행사 외에는 얼굴을 내밀지도 않았다.

하지만 남편 라지브가 죽은 지 7년째 되던 98년, 그는 은둔에 가까웠던 생활을 청산하고 돌연 정치에 뛰어든다.

100년이 넘은 인도 정치의 중심 국민회의당의 몰락을 더이상 지켜볼 수 없어서였다.

남편의 선거구 우타르프라데시 아메티에서 처음 지지 연설을 시작한 그는 결국 99년 총선에 출마해

의회에 진출한다.

이후 그는 지금까지 국민회의당을 이끌고 있다.

2004년 총선 압승으로 제1당의 대표가 된 소냐가 총리가 되는 것에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총리 자격이 없다는 야당의 공세와 정치적 혼란을 우려한

자신의 판단으로 총리직에 오르는 것은 본인이 사양했다.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소냐 간디를 2004년에는 세계 여성 권력 3위에, 2007년에는 6위에 올려놓았을 만큼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여성이다. 2007, 2008년 연속으로 시사 주간 타임 선정 ‘타임100인’에 오르기도 했다.

5. 총선을 넉달 남겨둔 지금 소냐는 아들 라훌 간디를 두고 여러가지 고민을 하고 있다.

인도 정가에서는 라훌이 총리에 오르는 것은 시간 문제로 보고 있다.

인도 현대정치사와 네루-간디가의 역사를 보면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문제는 70년생인 라훌이 총리가 되기에 아직 어리다는 비판 여론이다.

그 역시 이 같은 비판을 불식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를 쓰고 있다.

이미 2004년 총선 당시 신선한 이미지로 당의 압승에 한 몫을 했다.

또 지난해에는 인도판 ‘민심 대장정’을 나서기도 하는 등 ‘국민과 함께 하는 정치인’의 모습도

국민들에게 각인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판은 역시 그의 짧은 연륜에 집중된다.

특히 지난해 11월 뭄바이 테러 이후 인도에서는 정치인의 경험이 중시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77세의 만모한 싱 총리 재집권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것은 이 같은 맥락에서다.

이 기류를 거스를 수 없을 경우 라훌 간디는 차기 내각에서 주요 장관직을 거칠 가능성이 크다.

만모한 싱 총리가 한 번 더 총리를 한 5년 뒤에도 그는 여전히 40대 중반이다.

물론 공직생활을 통해 능력이 검증돼야 하겠지만 그에게 아직 남은 시간은 많다.

하지만 가장 두려운 것은 역시 간디가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다.

할아버지 페로제는 심장마비로 48세에 목숨을 잃었고 삼촌인 산자이는 34살에 비행기 사고로 숨졌다.

여기까지는 천재지변에 가까운 사고사로 치더라도

총리를 지낸 할머니와 아버지는 모두 암살자들의 총알에 목숨을 잃었다.

라훌의 어머니 소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이것일지 모른다.

게다가 라훌은 현재 미혼이다. 좀더 시간을 보낸 뒤에 총리직에 올라도 늦지 않다는 주장이 나올 법도 하다.

간디 가문과 국민회의당의 원로들은 라훌의 여동생 프리얀카 간디(1972~)에게도 기대를 걸고 있다.

미모에 활달한 성격을 지닌 프리얀카는 할머니 인디라 간디의 면모를 빼닮았다는 평이 많다.

그도 어머니 소냐가 전에 그랬듯이 “정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선거운동 기간이면 어김없이 달려오는 그를 수많은 인파들은 반기고 있다.

인도의 정치 명문 네루-간디가의 앞날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정환보기자 botox@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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