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스완
2008. 10. 25. 10:54ㆍ책 · 펌글 · 자료/정치·경제·사회·인류·
당신도 ‘검은 백조는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 ||||||
입력: 2008년 10월 24일 17:43:23 | ||||||
ㆍ과거의 관찰로 미래를 단정짓지 말라 ㆍ누가 예상했겠나 그런데 여전히 놀라운 사건들이 엄습하고 있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 동녘사이언스 백조(Swan)는 흰 새다. 그러니까 ‘백조(白鳥)’다. 그런데 수 천년간 다져진 이 통념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신대륙 호주에서 ‘검은 백조’(Black Swan)가 발견되면서다. 인간의 지식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인간의 예측 능력을 비웃는 ‘검은 백조’는 우리 삶 곳곳에서 출현한다. 히틀러의 등장과 그에 이은 또 한 차례의 세계대전을 누가 예상할 수 있었는가? 사회주의권의 급속한 붕괴는? 9·11 테러도 예상치 못했던 건 마찬가지다. 아니, 바로 지금 세계를 엄습하고 있는 미국발 금융위기야말로 ‘검은 백조’의 전형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의 투자전문가인 저자는 말한다. “특정 사상과 종교의 발흥, 역사적 사건들 사이의 격동적 관계, 인간 삶을 관통하는 원리 등 세계의 모든 영역에 ‘검은 백조’ 효과는 위력을 발휘해 왔다”고. 특히 세계화로 인해 취약성이 서로 얽히면서 ‘검은 백조’의 파괴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블랙 스완>은 바로 이 ‘검은 백조’라는 독특한 개념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그 불확실성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태도를 통찰하고 있는 책이다.
책이 특히 문제 삼는 건 “우리가 ‘검은 백조’란 없다고 가정하고 행동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예상되는 것이 지배하는 ‘평범의 왕국’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것이 지배하는 ‘극단의 왕국’에 속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현실을 앙상한 ‘형상’에 끼워맞추는 ‘플라톤주의적 태도’를 보인다. 책은 다양한 사고 실험을 비롯해 심리학·수학·경제학·통계학·철학·프랙털이론 등을 동원해 인간의 인식 체계가 얼마나 부실한지를 꼼꼼하게 입증해나간다. 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입증하는 증거만 찾고(‘확인 편향의 오류’) 명확한 패턴에 부합되는 이야기를 만들어 스스로를 속이기도 한다(‘이야기 짓기의 오류’). 미래를 예측할 때도 실제로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안다고 스스로를 기만하기도 한다(‘인식론적 오만’). 저자는 특히 “우리가 ‘검은 백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유일무이한 이유는 과거의 관찰을 미래를 결정짓는 것, 혹은 미래를 표상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1000일 동안 매일 먹이를 받아먹는 데 익숙해진 칠면조는 그것이 ‘보편적 규칙’이라고 확신해 1001일째 목을 내줘야 하는 비극을 예상치 못한다. 과거 내내 통했던 것이 예기치 않게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순간이 온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사건이 발생하고 나면 자신들을 놀라게 했던 돌발사건이 발생한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또 다른 돌발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을 ‘예견’하려고 한다. 사건이 다른 방식으로 일어날 가능성은 보지 못하고 말이다. 저자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다루는 사람들은 결코 미래를 예측하지 못한다”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금융기관마다 매년 <200X년 대예측>이라는 책자를 내놓지만 그 뒤에 지난 예측치가 어떻게 빗나갔는지는 거론하지 않는 사실을 꼬집는다. 1988년 두 명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이 개발한 ‘위험관리 기법’을 사용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의 파산 사례도 덧붙인다. 저자가 보기에 전문가들은 ‘검은 백조’가 나타날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한 방책을 내놓는다. 그들이 들이대는 ‘정규분포’는 마치 우리가 불확실성을 길들이고 있다는 확신을 주는 ‘거대한 지적 사기’다.
삐딱하고, 신랄하고, 위트로 가득찬 책을 통해 저자는 말한다. “거창하고 위험천만한 예측에 쓸 데 없이 의존하는 것을 피하고 항상 당신이 하는 일을 장악하라”고. 그리고 또 한 방의 독설을 날린다. “일기예보관, 애널리스트, 경제학자, 사회과학자들과는 농담을 주고받을지언정 그들의 주장과 싸우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마라. 평형 상태, 정규 분포 따위의 용어를 구사하는 저명한 경제학자의 말은 한 귀로 흘려듣고 셔츠에 쥐 한 마리를 넣어 주자.” 스스로를 레반트(레바논의 옛 지명) 출신이자 ‘경험적 회의주의자’라 부르는 저자는 어린 시절 17년이나 끈 레바논 내전을 두고 어른들이 “전쟁이 불과 며칠이면 끝날 것”이라고 말하는 걸 들으면서 사람들이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는 사건들이 매일 일어나는 데도 그 사건들이 예상 밖의 사건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리고 투자은행에서 일하던 87년 주가 대폭락 사태인 ‘블랙 먼데이’를 겪으면서 ‘검은 백조’ 개념을 구체화시켰다고 한다. 2007년 이 책이 출간됐을 당시 저자는 ‘월가의 이단아’로 불리면서 언론과 학계의 혹평을 받았지만 그의 경고가 사실로 드러나면서 ‘월가의 새로운 현자’로 부상했다. 오늘날 ‘검은 백조’ 개념은 “뉴욕에서 울란바토르까지 ‘검은 백조’를 이야기하고 있다”(블룸버그 통신)고 할 만큼 위기를 설명하는 ‘보통명사’로 자리잡았다. 한국 경제와 금융 위기의 미래를 그럴 듯하게 예측하는 말들이 여전히 쏟아지고 있는 바로 지금 이 책을 주목하는 이유다. 차익종 옮김. 2만5000원 <김진우기자 jwkim@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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