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 아우슈비츠

2008. 9. 6. 18:34발칸반도/동유럽

 

 

 

 

젠가 아우슈비츠를 꼭 가봐야겠다고는 했지만 막상 현장에 도착하고 보니 긴장이 되고 착찹해진다.  이번에 다행히 괜찮은 가이드를 만났다. 친절하진 않지만 학식이 풍부하고 똑똑하다. 폴란드에 유학 갔다가 그냥 눌러 앉았다는 분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안내하자니 자연히 공부를 할 수 밖에 없었다는데, 하면 할수록 의문이 수없이 떠오르더란다. 그렇게 한발 한발 빠져들다보니 "아, 이게 단순히 아우슈비츠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구나!"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종교, 철학, 이념, 정치, 역사, ... 유럽 사회의 모든 것이 뭉뚱거려진 복합적인 문제다는 얘기다.  책으로 한번 내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자기도 계획 중이란다. 짐작에 소설로 쓰려는 눈치다.

 

 

 

 

 

 

 

 

 

 

 

난날 햇볕정책으로 통일 독일을 이끌었던 빌리 브란트가 폴란드를 방문했을때 무릎 꿇고 눈물로 사죄했던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폴란드 국민들은 물론 독일 국민들까지도 전혀 예상 못한 일이었단다. 독일은 지금도 전체 예산의 1%인가를 과거사에 대한 반성의 자금으로 지출을 하고 있다는데, 특히 폴란드에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이번에 갔을때도 여기저기 도로공사로 인해 막힘이 좀 있었는데, 그 모두가 독일 돈이라더라. 일본애들도 많이 오는지 궁금해서 가이드에게 물어봤더니, '개인'으론 더러 오는데 '단체관광객'은 거의 못 봤다면서, (넘겨짚는 것인지는 몰라도) 일본정부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한다.

 

 

 

 

 

 

 

 

  

여기서는 가이드의 설명을 이어폰으로만 듣게 되어있다. 혼잡을 덜기 위한 방편으로 보이는데, 아주 잘된 방식이다.  그리고 아래 사진의 앞에서 걸어가는 두 사람 중에 왼쪽의 퉁퉁한 여자가 폴란드인 가이드인 셈인데, 의무적으로 동행해야 하는 일종의 감시역이다.

 

 

 

 

 

입구에 씌여있는 'Arbeit Macht Frei'(노동이 자유를 가져다 준다)는 꽤 유명한 글귀인데, 단순한 속임수만이 아니라 인종적 종교적으로 증오와 경멸의 뜻이 담겨있는 것으로 안다. 유럽 사람들의 유대인에 대한 적대적 감정은 역사가 아주 깊은 것인데 주로 종교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자세한 내막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세계의 모든 기독교인들 공통의 문제는 아닌 것 같고, 아마도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오면서 느낀, 뭔가 누적된 정서가 있는 모양이다.

 

 

 

 

 

 

 

당시 폴란드에 '콜베'라는 신부가 있었단다. 수감자 중에 탈출자가 생기면 그 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굶겨죽였다는데 한 사람을 대신해서 콜베 신부가 자청해 죽었다고 한다. 그분이 머물던 감방 건물 앞에 조그만 추모 공간과 조각품을 만들어놨다. 근래에 마련한 듯하다. 카톨릭에서는 순교라고 하던데, 순교가 맞나?

 

 

 

 

 

 

이 날이 마침 카톨릭 뭔 기념일이라서 그곳에 참배하러 온 것이다. '성모 기사단'이라는 단체 회원들이라는데 세계적인 조직이라고 한다.

 

 

 

 

  

우슈비츠가 독일에 있는 걸로 오해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독일이 폴란드 점령했을때 지명을 전부 독일어로 바꿔놔서 그렇다. 폴란드 남부에 '크라카우'라는 폴란드 제2의 도시가 있는데 아우슈비츠는 거기서 버스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시골 마을이다. 원래는 폴란드 지식층들을 정치범으로 몰아서 수용하는 시설이었다고 한다. (1940. 6.) 유대인 등의 수용시설로 사용한 것은 불과 3년밖에 안된다. 그러니까  그 3년 동안에 수백만명을 죽였다는 얘기가 된다. 왜 하필 여기를 살인공장으로 선정했을까? 위 사진에서 보듯이 온갖 곳에서 유대인 등을 끌어오기에 거리상으로 적당했고 교통이 좋았다. 또 하나는 독일 점령지역 중에서 유대인이 폴란드에 가장 많이 거주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과거 흑사병때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흑사병으로 3년 동안에 유럽의 1억 인구 중에서 3천만명인가가 죽었다는데 지금도 원인 규명을 못하고 있다고 한다. 당시의 흉흉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서 떠돌이 생활을 하던 유대인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데 폴란드왕국이 종교나 주거에 대해서 관용정책을 썼던 탓으로 폴란드로 이주한 유대인이 많았다는 것이다.

 

 

 

 

 

아우슈비츠에 수용시설이 부족하다보니 제2, 제3, 해서 모두 3개를 지었다더라. 내가 방문한 곳은 지금 손으로 가르키고 있는 제1 수용소다.

그리고 수용소나 살인공장이 여기 아우슈비츠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폴란드 전지역에 40갠가 50갠가가 있었다는데 대부분은 독일군이 철수하면서 증거를 인멸해버렸고 지금 이 아우슈비츠 제1수용소만이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집단으로 수용된 곳이기도 하다.

 

 

 

 

 

 

 

  

곳 아우슈비츠에서의 희생자가 몇 명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찌가 모든 증거를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생존자의 증언이라거나 시설 등을 감안해서 방증으로 유추해 볼 뿐인데 대략 250만명쯤 되는 것으로 본다고 하더라. 유대인이 600만명 죽었다는 얘기는 이스라엘 그들의 주장이고 대체로 400만명 정도 될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그 400만명이란 것도 모두 여기에서 죽었다는 것이 아니라 2차대전 동안에 이렇게 저렇게 희생된 모든 사람을 포함한 숫자다. 이곳에서 유대인이 가장 많이 희생되었다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유대인은 군인으로 참전한 사람이 거의 없었고 전쟁을 피해 도망다녔다는데, 그래서 잡아다가 집단수용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2차대전 중에 인종학살의 최대 피해자가 유대인인 줄로 아는 사람도 많은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최대 피해자는 러시아이고, 두번째는 폴란드, 유대인은 그 다음의 세번째에 해당한다.

우리가 잘못 알게된 이유는 이스라엘의 교묘한 술책도 있겠지만 지난날의 냉전시대 때문이다. 굳이 적성국인 소련이나 폴란드의 피해를 알려서 동정심을 유발시킬 필요가 있었겠는가다. 그래서 일부러 숨긴 것이나 다름 없다. 희생자를 보면 러시아 2천만, 폴란드 800만, 집시나 부랑자 1천2백만 정도 된다고 한다.

 

 

 

 

  

쟁 말기에는 시간이 촉박해서 수용하고 말 것도 없이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분류를  바로해서 가스실로 직행했다고 한다. 노인이나 어린애 장애인 임산부 등은 바로 죽였고, 모면한 나머지 사람들도 기껏 3개월도 못살고 죽었다고 한다. 그만큼 먹는거 없이 일이 고단했다는 얘긴데, 전시해 놓은 사진을 보면 70키로 되던 사람이 25키로 됐다는 말이 실감난다. 아침에 커피 한 대접, 점심에 뭔 국인가 한 대접, 저녁에 두부 한 모 크기의 빵을 줬던데, 그 말은 이해가 좀 안간다. 동남아 일본군 포로수용소에 있던 연합군 포로들도 칸차나부리 같은 오지에서 무지하게 힘든 철로공사를 하면서도  한끼에 비스켓 서너개 밖에 먹지 못한 경우도 허다했다더라.

 

 

 

 

참 맘 아프다. 저 인형은 죽기 전에 뺏은 걸까, 죽고나서 뺏은 걸까.

 

 

 

 

구두약통이다. 그 정황에 구두약통을 다 챙겨오다니,... 상류층이란 얘기다.

 

 

 

 

 

 

 

  

엣 것은 안경테고 아랫 것은 의족인데, 의족 사진을 자세히 보면 밑창이 튿어진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귀중품을 거기에 숨겨왔단 얘기다.

내가 카메라 조작을 잘못해 놓는 바람에 실내에서 찍은 많은 사진들이 못쓰게 됐다. 사실 내부 촬영은 금지되어 있는데 엄격히 통제하는 것은 아니다. 혼잡을 예방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저런 식으로 전시한 물품 중에 큰 가방 더미가 있다. 가로70센티 세로50센티 폭30센티쯤 되는데, 어쩌면 하나같이 모양도 색도 똑같다. 잡아올때 일률적으로 지급한 가방이 아닌가 했는데, 당시에 유행했던 최고급의 명품 가죽가방이란다. 내용물의 무게는 20키로를 넘을 수 없게 했다고 한다. 다신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며 달랑  저 가방 하나에 모든 것을 챙기라 한다면 나라면 무엇을 담아가야 할까. 당시 독일은 물론 유럽 경제의 30%를 유대인이 장악하고 있었다고 한다.

 

 

 

 

머리카락을 담은 자루다. 머리카락 무게가 2톤이면 부피가 얼마나 될까?

 

 

 

 

 

오른쪽에서 두번째 줄에 있는 사람들은 父子지간이란다. 아들보다 애비가 세달 더 살았단다.

 

 

 

 

 

 

남자애들인데 자지를 죄다 잘랐다. 그러고도 죽지 않았다는 게, 뱃속에 차는 오줌은 어찌 되었는지... 궁금해 할 거 없다. 저 사진 찍고 바로 죽었을 거다. 생체실험에 희생된 애들이다.

 

 

 

 

 

가운데 있는 여자는 母女로 잡혀온 여자인데, 마찬가지로 생체실험에 사용되고 죽었다. 이번엔 어미 보다 딸이 두달 반 더 살았단다.

 

 

 

 

 

 

아우슈비츠 1대 수용소장을 했다는 <루돌프 헤스>를 처형한 교수대란다.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받고 수감중에 죽은 것으로 알았는데 누구 말이 맞는 건지 모르겠다.  가스실 근처에 세워져 있다.

 

 

 

 

 

 

 

 

 

  

스실이다. 규모가 소형인걸로 봐서는 초창기에 만든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여기는 제1수용소다. 기차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지은 것은  제2 ,제3수용소이고, 무지막지하게 대량으로 학살한 곳은 제2수용소다. 저 지붕에 올라가서 뚜껑을 열고 가스통을 터트려 붓는 것이다.

하얀 분말이라는데 저 가스통 하나가 250인분이란다. 아마 저 정도의 가스실이라면 하나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독일군이 후퇴하면서 미쳐 없애지 못하고 흘리고 간거다. 

 

 

 

 

 

 

 

 

 

가스실 바로 옆에 있는 화장(火葬) 시설이다. 가스실로 끌려들어가는 사람도 모두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저거 한 통에 두명씩 넣을 수 있는데, 모두 8개다. 2ⅹ8 = 16 이다. 굴뚝에서 허연 연기가 끊어질 때가 없었단다. 미쳐 화장하지 못하는 시체들은 아무데나 매장을 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이 주변 어디서건 유골이 흔하게 발견되다고 한다. 여긴 특히 체리나무가 많은데  체리가 아주 실하고 맛있으며 나무가 잘 큰다더라.

 

 

 

 

  

사진을 다시 보자. 연합군이 찍은 항공사진이다. 무슨 뜻인가? 연합국도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알면서도 방관했단 얘기다. 어쩌면 수고를 대신해주는 히틀러에게 감사했을런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면 연합국 수뇌들의 생각이나 이해관계가 히틀러와 똑같았단 얘기다. 저 사실을 국민들이 알았다해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유럽 경제의 3할을 유대인이 쥐고 흔들었단 얘기는 앞에서 이미 말한 바 있다. 알다시피 유대인이 돈 버는 방식은 고리대금업 아닌가? 어떤가? 살의를 느낄만도 하지 않은가? 수용된 사람들 복장에 보면 표시가 있다. 정치범. 유대인. 전쟁포로. 공산주의자. 집시. 동성애자. 여호와의 증인 등이다.

 

 

 

 

 

 

란드 얘기는 나중에 소금광산을 소개할때 더 하기로 하고 몇마디만 보태고 끝내자. 가이드 신씨가 제기하는 의문이 하나가 있는데 아우슈비츠를 이용하는 세력이 있다는 거다. 최근에 '홀로코스트 산업'이란 책을 읽으면서 더욱 그런 생각을 굳히게 됐다는데, 그렇다면 이것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바로 체코로 넘어가야하는 촉박한 일정 탓으로 자세한 얘기는 나눌 시간이 없었다. 뭔 책인지 읽어봐야겠다. 왜,, 어떻게,, 이용하려는 것일까? 작년에 밝혀져서 폴란드 국민들이 발칵 뒤집어진 일이 있었단다. 2차대전 발발 전에 히틀러-스탈린 간에 독소조약(獨蘇密約)을 체결한 바 있는데, 거기에 폴란드를 둘이 나눠먹자는 내용이 들어있다. 그에 따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마자 소련도 곧바로 폴란드를 분할 점령했는데 내용을 모르는 폴란드 국민들은 소련군을 해방군으로 알고 크게 환영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소련군은 진주하자마자 폴란드 고급장교들을 전부 잡아다가 우크라이나에서 생매장을 시키고, 폴란드인 50만명을 잡아다가 나찌가 아우슈비츠에서 한 짓이랑 똑같은 만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생체실험을 한 것 까지도 똑같았단다. 그러고보니 둘 중에 누가 먼저 저질렀는지를 물어보지 못한게 아쉽다.

아무래도 독일이 먼저 하지 않았을까? 폴란드 국민들에게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었단다. 자식이 독일인이나 러시아인과 결혼을 하겠다고 한다면 어느 나라 사람을 반대하겠냐는 질문에 처음에는 7 :2로 독일인을 기피했었는데, 지금은 역전이 돼서 거꾸로 러시아인을 기피한다고 한다. 

참고로 폴란드는 슬라브인이다. 그리고 폴란드 노인들 중엔 "그래도 히틀러 시대가 좋았지"하는 사람이 의외로 꽤 된단다. 히틀러가 공공사업을 많이 벌여서 고용창출을 많이 했대서 그렇단다. 어슬렁거리면서 돌아다니는 노인이 한 분 계셨는데 당시의 생존자라더라. 그 분도 여기서 가이드 비슷한 역할을 하는 셈인데, 독일에서 수학여행 온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한다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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