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름나물

2008. 7. 2. 08:15이런 저런 내 얘기들/네 얘기 · 쟤 얘기

 

  

 

 

 

 

 

 

 



집에서 몇걸음 나서면 난전이 늘어서 있다.



칠순 가까운 할머니의, 텃밭을 옮겨온 듯한 아기자기한 채소전에서
과일과 뻥튀기, 순대 국화빵 호떡 찐고구마 찐옥수수..
없는거 빼곤 다 있을 정도로 완전 먹자골목을 방불케하는데

일년 열두달 일요일 제외한 그네들의 근무시간은
조퇴도 결근도 없이 일정하다.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려는 商道義를 보는 것 같아
사뭇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장애를 가진 국화빵 농아 부부가 내 눈앞에 펴보인

손가락 한개의 의미가 덤, 한개 였는지 한동안 알지 못했고

 

간절한 눈빛이 걸려 자정 가까운 시간 어슬렁 나가면

한두개씩 더 챙겨 넣어주는 과일상 부부의 손길이

떨이, 가 아닌 정나눔인지도 알지 못했으며

 

 

고구마 아줌마가 환한 웃음으로

전화번호도 주민번호도 필요없이 외상을 막 주는 것이

낯익어 쌓인 어이없는 믿음이란 것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되었다.

 

 

한겨울 눈발이 날릴때 채소할머니 앉은 자리의 냉기와,

농아부부와 과일부부의 발이 시릴 것에 마음이 쓰이고

장마가 계속될땐 상해 버리게 될 그들의 손실이 또 마음이 쓰이니

이래저래 나도 정이 들었나 보다.

 

 

며칠전엔 풋과일이 나온게 있나, 기대로 나가는데

저만치 과일점 앞에 사람들이 둘러서 웅성이고 있었다.

왠일로 오늘은 손님이 많네.. 생각하며 가까이 가보니

항상 생글거리는 모습이 곱던 아낙은 훌쩍이고

그 앞에선 아낙의 남편은 뭐라 뭐라 고함치고 있었는데

과일들은 깨지고 흩어져

태풍이 쓸고간 뒤의 잔해같이 참담하게 어지럽다.

 

 

무슨일이 있었나..

의자에 기대앉아 턱으로 가르키며 손님을 대하는 남편을 향해

안타까운 눈짓을 보내며 허둥대던 아낙이

오늘은 날잡아 한마디 한 게 남편의 비위를 상하게 한 건 아닌가..

이런 저런 생각으로 돌아서는데

오락가락 하는 장마로 추적거리는 빗물에 씻겨 흐르는

으깨진 과일조각들이 발길에 채인다.

 

 

잠시전, 궁금도 하고

혹시 영영 안 나오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되어 나갔는데, 기우였다.

언제 그런일 있었냐는듯 예의 그 생글거림을 잃지않고

낭랑하게 외친다.

 

- 좋아요, 오늘 수박 좋아요~~

 

의자에 비스듬히 기댄 아낙의 남편도 그 자리에 그대로다.

 

 

- 그날, 이집 깨진 과일 덕에 동네전체가 과일향기로 진동하더만...

내 한마디에 까르르... 자지르지게 웃는 아낙을 뒤로 하고

대여섯 발짝 옆에서 텃밭을 옮겨온듯 싱싱한 채소전으로 향했다.

 

 

참.. 희한하게도 비닐로 텐트를 쳐놓고

부슬거리는 비를 피한 할머니는 그안에 작은몸을 감추고 있었다.

아기자기 작은텃밭 같은 채소전은,

풋고추도 매운것과 안매운것, 가지 호박 부추 비름나물 완두콩...

없는게 없다.

오배건씩 처넌씩 이것저것 고르고 비름나물도 깨끗이 손질 됐길래

한웅큼 담는데 옆에서 지나던 젊은 아낙이 묻는다.

 

- 이게 모예요...?

 

- 비름나물이란 거요.

 

- 어케 먹어요?

 

- 끓는물에 살짝 데쳐 된장 한술에 간장반술,

고추가루 깨소금 마늘넣고 조물조물... 참기름 넣고 무쳐서

밥비벼 보시오.

 

- 맛있어요?

 

- 맛있고 말고. 것보다 이 비름나물에 항암성분이 있어 좋다오..

 

- 그으래에...요..오...?

 

- 그렇다네요.. 옛사람들은 알고 드셨는지 모르고 드셨는지.. 참..

희한하지요.. 해서, 나도 이걸 사러 나왔다오..

 

- 아이고.. 할머니 저 좀 많이 주세요..

 

비를 피하느라 옹색한 자세이던 할머니의 손놀림이 신났다.

덕분에 다 팔았다며

내 봉투를 끌어당기더니 사양하는 내 손을 밀치고

풋고추 한줌을 더 담는다.

 

 

흠.. 내가 장사수완이 있는건 혹시 아닌가,

수다스럽게 사람들과 어울려 장사를 하는게 재주라면

주식판에 기웃거려 그동안 잃었던거 찾을수 있을지도 모르잖은가..

돌아서며 혼자 키들거린다.


 

 



< 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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