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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내 얘기들/네 얘기 · 쟤 얘기

어떤 죽음

by 알래스카 Ⅱ 2008. 6. 27.



어떤 죽음..


연예인중 누굴 좋아하냐 묻는다면
가수중엔 임희숙을,
연기인중엔 안성기와 한석규를 꼽는데
영혼을 흔들겠다는 기세로 깊은 울림을 주는 임희숙의 노래가 좋고
건강한 상식이 바탕하는 긍정적인 삶의 모습이 투영된 안성기의 연기가 좋고
자신의 상품가치를 극대화하는 한석규의 단정하고 야무진
자기관리가 좋기 때문이다.


긍지와 열정 내장된 짙은 페이소스와 냉소 머금은 패러독스를,
때론 진지하여 신뢰를, 갖게하며
작품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그의 세계를 보는 것은
豫期치 않은 銳氣를 내장한 藝氣가 있어 즐겁다.
해서
한석규영화는 거의 놓치지 않고 보고 있는데
얼마전에 본 영화 주홍글씨는
너무나 젊고 아름다운 이은주라는 배우가 상대역이었다.


감흥의 여운이 미쳐 사라지기도 전 접한 그녀의 죽음은
극중 그녀가 부른 애조 띤 멜로디가 아직 귓가에 남아 있어
무엇에 대한, 어떤 갈증과 갈망이 그토록 견딜 수 없게 했을까,하여
안타까운데
그녀의 자살을 두고 철학적, 형이상학적 의미를 찾아
당위를 부여해 상품화하려
매스컴은 저마다 호들갑을 떨고있다.



중환자실..


감염차단과 안정을 위한 규칙은 엄격했는데
대부분 의식이 없거나 희미한 환자들에게 중환자실은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에 놓인 간이역 같은 곳이었다.
실낱같은 희망의 끝자락을 놓치지 않으려 수많은 밤을 하얗게 지새던 기도와
좌절로 터져나오던 가족의 오열은
삶과 죽음이 시시각각 교차하는 중환자실 앞의 풍경이었고,
그 경계를 넘나들며 한줄 호홉기에 의지해 투쟁하는 환자들과
느닷없는 이별이 두려운 가족들은
중중환자실로 실려 올라가는 기적만을 한결같이 희망하고있었다.



중중환사실..


신경외과 병동은 기이한 일들로 적나라하다.
교통사고와 뇌출혈, 뇌졸중과 종양과의 싸움으로 치열한데
머리의 문제가 문제되니
같은 몸이나 전혀 딴사람이 되어 환자나 가족들의 난감하고
당혹스런 고충은 대단하고
웃지 못할 일들의 빈번함으로 현실 아닌 가상세계를 부유하는듯
조용한 아우성이 24시간 계속되는 현장이다.

종일 변의를 호소하는 오토바이사고 환자,
잠을 잃어버려 24시간 걷기를 계속하다 쓰러진 환자,

여기가 어디냐고 밤새며 묻다, 그래도 남편 올 시간 되니 거울 찾던 젊은 뇌경색 환자,
고3짜리 딸을 알아보지 못하고 아줌마는 어디서 오셨냐고 궁금해하던
뇌출혈 환자,
알아보지 못하는 엄마 옆 약한 불빛 아래 엎드려 공부하던 딸,
링거를 바라보며 엉엉소리내 종일을 울던 할아버지,
교통사고로 머리뼈가 부서져 이목구비 배열이 모두 일그러져 외계인 같았던 중학생,
그 학생의 돌출된 눈을 바라보며 울아들 누굴 닮아 이렇게 미남이냐며
밝게웃던 엄마,
머리뼈가 자라지못해 6개월에 한번씩 머리뼈를 늘려주는 수술을
평생 감당해야 할, 갓 돌 지난 선천성장애아 엄마의 희망찬 얼굴이
잊혀지지 않고
깊어 텅빈듯한 환자들의 동공과 무표정으로
시간이 멈춘 어느 세계에 와 있는 착각을 순간순간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빠른 속도로 확대되는 종양사진을 확인하고
복도에 주저앉아 망연하던 어느 엄마는 사흘후 초등 일년짜리 딸을 잃었는데,
두시간 씨름에 눈금 하나씩 잡히던 아이의 고열로 함께 사투를 벌이던 나는
며칠이 지나서야 알게되었던 일도 생각난다.



반가운 방문..



도저히 회복될 것 같지 않았던 환자가 몇년 계속 누웠던 병상에서 일어나
통원치료차 왔다가 병동에 들리는 일들이 가끔 있었는데
그럴때마다 병동은 작은 설레임으로 술렁인다.
병상에서 일어난 그의 쾌거가 내 환자에게 이입되어
곧 일상으로의 복귀가 가능하리란 희망이 자라기 때문이었다.



다시 어떤죽음..



고통이나 통증은 지극히 주관적이며 개인적 기준이 적용된다는
결론에 동의한다.
그러면서도 아쉬운것은
극한 고통을 감내하며 생명을 놓치지 않으려는 인내를 바라보면서
내가 느꼈던 외경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름다움이었다.
살을 베이는 통증이 사라지고 편안히 잠든 평화로운 모습을 보며
참 아름답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내 몫의 감당할 분량에서 겁내어 도피하지 않고 겸손히 견디며
순간을 치열하게 살아내던 병동에서의 기억들은
내게 할당된 시간을 충실히 채우려는 본능적 책임의 발로가 아닌가해서
생명은 아름답다...
눈부시게 아름답다... 를 체득하게 한 사건이었는데,
그러한 경험들이 있어서인지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지 못하고
혹은 자신의 세계를 극복 못한채 이타적 삶과도 상관 없었던
어떤 젊은 죽음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아쉽고 안타까우나
그러나, 그다지 곱지만은 않다...

 


...................


 




(눈부시게 아름다운 어느젊은 여배우의 자살을보고...)

 

 

 

 

 

 

< 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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