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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내 얘기들/네 얘기 · 쟤 얘기

환향녀와 나비부인

by 알래스카 Ⅱ 2008. 6. 20.

 

   

 

 

 

 

 

 

  


  

 

 

 

  

 

 

 

서방질을 하는, 도덕적으로 치명적 결함이 있는 여인을 두고
화냥년이라 비난하는 욕설이 우리에겐 있는데

이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때 전리품으로 잡혀가 갖은 고초를 겪다
속전을 물거나 도망쳐 고향으로 어렵사리 돌아온 여인들인
환향녀(還鄕女)에서 유래되어 변형되었다는 설도있다.




어렵게 환향하나 이웃의 질시와
가족의 묵시적 동조에 내몰리어 목을 멘 여성들이 많았으니
이는 역사적 폭행의 억울한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시각을 엿볼 수있는 경우이고
어떤 경우이든(자발적 행위든,폭행이든) 막론하고
성性 에대해 엄격함을 요구하는 우리네 인식의 반영이라 하겠다.

 

    

      



후손을 위한 모태를 소중하게 인식했기에
순결과 정절을 여성의 최고 덕목으로 훈육하며 칭송으로 고무하였고
여성 스스로도 타협의 대상으로 성性을 용납치 않아
강제 앞에선 목숨 걸고 저항했을 것이다.


자기 결정권을 침해 받을 위기 상황에서 분노하는 춘향이의 처절함은
이 대목의 절정을 이룬다.
권력앞에서 강제에 항거하는 춘향의 기개는 성性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단호함이
의식의 기저를 지배했기 때문에 나타낼수있었던 용기가 아닌가 한다.

 

 
우리여성들의 성에대한 태도는 이처럼 매우 분명해서
학자들이 추구했던 학문 세계와 압제에 저항하는 서민들의 의기와 궤를 같이하여
사회도덕의 근본을 구축하고 드높은 기상으로 충만한 문화적 뿌리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치밀한 계획아래 우리의 국모를 강간 살해한후,
우리의 모태를 유린함으로 근본적 수치를 자극하여
체념의 문화를 이 땅에 이식하려 우리딸들을 군수품으로 전장에 징발하는,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부도덕한 패덕에 의해 정신대라 이름한 환향녀가 생겨났고
그후 동란의 와중에 헐리웃의 여배우인 그레타가르보의 이름딴 욕설인
갈보라는 환향녀가 양산됐으니 


병자호란과 임진왜란 이후에도 계속된 난세에
남달리 성도덕에 무장되었던 우리네 여인들이 겪었을
혼란과 곤혹은 실로 가슴아픈 일이다.

   

    

 

 


에도 막부시대에 발흥된
일본의 여러 문화 중의 한가지인 꽃꽂이를 잠시 배운 적이 있다.
잎사귀 모두 떼어내 발가벗긴 꽃을
댕강댕강 잘라내 종(種)이 다른 꽃들과 높이를 맞추고

물 머금은 줄기를 구부려 끝내는 날카로운 침봉에다 뉘여서 꼿고 앉혀서 꼿아
설정한 구도의 규칙에 따라 모양새를 만든 다음 거실 한켠에다 두곤 했었는데
어느날 자다말고 나와 앉아 본래 모습 상실하여 초라하고 조악한 어둠속 꽃을

바라보다 모두 쓰레기통에 쳐박았고
그후 꽃꽂이 배우는 일을 그만 두었었다.

 




쭉쭉 뻗어나가는 특성 가진 소나무의 사지를 철사로 묶고 비틀어
왜소한 앉은뱅이로 만든 소나무 분재의 기이하게 왜곡된 모습에
전율할때도 있으며
간결미의 극치라는 하이쿠(일본시)를 대하면서는
언어의 생략이 안타까울때도 있는데

이는 우리네 시조와는 달리 질펀한 감상이 묻어있지 않아 불안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자신의 문학적 한계를 죽음으로 해결했던
노벨수상작인 雪國의 작가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철학과
자위대의 궐기를 외치며 할복한 그의 제자 미시마 유키오의 추구와
상명(上命)에 죽음으로 화답한 가미가제의 강신무(降神巫)에서
죽음의 미학에 집착하는 그들 의식의 저변에 흐르는
탐미적인 문화의 특성을 발견하게 되는데,

 

작품의 완성도를 욕심내지 않는 우리네 문객들과는 그 철학이 사뭇 다르고
자연에 순응하고 외경심으로 생명을 존중하는 우리네 정서와는 무척 다른,
소멸과 파괴의 문화를 갖고 있는 듯하다.

 

 

  

 


목덜미 슬쩍슬쩍 보여 유혹을 의도하고 등뒤에 베개를 항상 휴대하여
묘한 상상을 부르는 기모노를 보노라면 난 항상 웃음이 나온다.
속옷을 입지 않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을 만큼 혼미한 역사를 가진 그들의 생존 욕구가
도덕적 가치관을 확립할 기회를 가지지 못한채 성문화의 근간을
형성했던 건 아닌가 싶다.



쇄국을 끝내고 개방하면서 그들의 성의식과 맞물려
별다른 거부감 없이 타(외부인)를 수용했고
급기야 이차대전 패전후 생존의 수단으로써, 그리고 은밀한 정책적 수단으로
점령군을 수용하는 대목에서 그 특이성은 절정을 이룬다.
부부의 관계도 주종(主從)으로 보는 그들의 수직적 계급의식의 영향으로
우월한 종족(種族) 에 의해 스스로 종(種)개량의 기회로 삼고자 한 건
아니었던가 라는 혐의를 갖게 하는데
환향녀란 비난은 커녕 국가유공자에 버금가는
긍정적인 그들의 시각에서 그러한 논거를 찾을 수있을 것같다.

 

 


  

 


오페라 <나비부인>은,
이태리 작곡가 풋치니가 존 루터 롱의 소설을 각색하여
명치시대 나가사키를 무대로 미군장교와
妓女의 연애담을 화려하고 애처러운 음율로 작곡한 비극이다.
타국에서의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한 현지처 정도로 가벼이 여긴 장교는
귀국후 다른여자와 결혼하여 소식을 끊었고
아이를 보내기로 결심한 절망한 여인은

장교와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에 맞춰
아이의 눈을 가리고 그 앞에서 스스로 목을 긋는다는 지극히 통속적인,
그네들이 너무나 자랑스러워하는 줄거리이다.

 



매춘을 사랑으로 정당화 한 그들 인식의 단면을 그린 작가에 의해
예술작품으로 탄생되었는데
환향녀에 대한 우리의 의식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성문화의 차이를 말해주는 단편적인 예라 할 것이다.

 

 

  

 


적장을 제거한 논개의 의분이나 행주산성에서의 여성들의 활약,
몸뻬라는 바지로 몸매를 감추고 숯검뎅이 칠한 얼굴로 생활 일선에 뛰어들어
주린 자식들의 배를 채워 생명을 잇고 보호하려던 동란때의 우리네 여성들의,
생존 위해 성을 수단화하지 않았던 분명한 의지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흔히들 나비부인을 연애담이라 하지만
나는 죽음의 미학을 노래한 작품이라 보는데,
특히 자식 앞에서 목을 긋는 어미로서 차마 못할 짓인 무책임한 자행을
그리 보는것은 죽음을 탐미하는 그들 정서의 뿌리가 이해 되어서이다.

 

 

  

     


집요한 왜곡과 굴절로 그 특성을 해친 소나무 분재
가위질로 향기 잃은 꽃의 기묘한 변형
언어가 생략당해 풀어헤치지 못하는 하이쿠
명분보다 형식을 중시하여 벌이는 죽음의 잔치  할복
이지매로 나타나는 집단가학증
복종의 극치인 일왕의 무조건 항복
사육되는 스모 선수들
남편을 자신의 주인으로 섬기는 마조히즘...

 



문화에 우열은 없으며 다만 특성이 비교될 뿐이고
어떠한 문화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걸 염두에 두지만,
생명을 상징하는 것이 성性이고
여성성은 우주의 배태를 함의하는데
대동아 공영권이란 기치아래
이웃에 수많은 환향녀를 양산해온 그들에게서
생명에 대한, 그 근원적 에너지에 대한
몰이해하고도 미성숙한

문화적 뿌리와의 개연성을 짐작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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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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