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 15. 09:35ㆍ이런 저런 내 얘기들/네 얘기 · 쟤 얘기
몇년전 어느 동네에서의 일이다.
같은 층, 마주보는 앞집에서 하루 걸러 오밤중에 전쟁이 벌어지는 통에
만만찮게 괴로웠는데,
어느날 다급한 발소리에 이은 문 두드리는 소리에
잠자길 포기하고 거실에서 짜증을 삭히고 있던 나는
생각할 틈도 없이 문을 열었다.
맨발로 뛰어든 앞집 아줌마는
간간히 마주치면 눈인사만 할 정도의 관계라는 걸
의식 못한듯 했고, 나 역시 그랬는데
작은방으로 안내하고 집안의 불을 모두 끄고
우선 냉수를 갖고 들어간 후 먹을 걸 준비했던,
일사불란 주도면밀하게 움직였던 건
평소의 예단이 실재로 나타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곧이어 아저씨의 행패가 있었는데
현관문을 발길질해 동 전체가 잠을 깨 항의가 빗발치고
경비들이 뛰어 올라오고
버티고 버티던 아저씨는
결국 우리 현관문과 계단 사이에 걸쳐 잠이 들었다.
남편의 알콜중독은
수간호사 출신의, 정갈하고 단아한 그녀를 피폐하게, 황폐하게 만들어
세상으로 내동뎅이 쳤고
힘없는 친정어머니외, 도움을 청할만한 형제들은 그녀를 기피했다.
겨우 얻은 일터인 병원마다 찾아다니며 술값을 요구하며 떼를쓰고
급기야 출근을 방해하여 겨우 얻어 온갖 수모를 감당했던
평간호사 자리마저 잃게 되었는데..
어느날 그녀의 전화를 받고 들어가보니
아이들은 밤이 이슥하도록 밖에서 돌고
설겆이는 쌓이고 쌀은 한톨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이중살림?을 시작했다.
시장을 두 몫으로 보며
아이들을 불러들여 내 아이와 밥상을 같이 차렸고
내 두살 위인, 절망적인 나이가 주는 고단한 그녀의 통곡에
내 설움이 겹쳐 목놓아 함께 울었다.
작은 동네 초등학교에서 상이란 상은 모두 휩쓸만큼
재주있던 큰 아이를 받쳐주지 못하는 죄의식과
앞날에의 불안이 더욱 그녀를 암담하고 서럽게 만드는 듯했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은
슈퍼마다 아이들 이름을 대거나
병원 이름을 대며 외상술을 날랐고,
장롱과 싱크대, 베란다와 세탁기..기발하게 술병을 감추다
들키곤 했다.
어느날 슈퍼집 아낙이 찾아왔는데 우리집 호수를 대고
외상장부에 사인을 했던 것이다.
그녀에게 심각하게 말했다.
- 버려라, 희망이 없다면 함께 매몰되지 말고 버려라...
아이들과 성님은 살아야 않느냐..
그후 그녀와 나는 이상하게 소원해졌는데
난 그이유를 몰랐을 뿐더러 괘씸하기 까지 했다.
각자 이사를 해 헤어지고.. 그리고 어느날 나는 깨달았다.
어떤 그림이 떠올라서 였다.
거실에서 머리를 맞대고...
아이들과 함께 엎드려 물감으로 그림을 지도하던 아저씨,
너무나 천진한 표정으로 아이들과 눈 맞추며
그림을 그리던 모습과,
의기양양, 크나큰 시혜나 베풀듯 쌀말을 내리며, 냉장고를 채우며
뱉었던 내 한마디, 한마디의 기억들이 나를 타격했다.
왜 다 늙어서야 깨달음을 주는가,
좀더 일찍 깨닫는다면 무수한 시행착오는 피할 것 아닌가.
만날 기회가 있다면 나는 두 손 잡고
용서를 청할 것이다.
내가 입힌 상처야 말로 치명적이었을, 그녀의 손을 잡고
사죄를 청할 것이다.
무릎을 꿇은 마음으로 지극히 조심스러운 자세에서의
도움이 도움이며
내 도움이 절실했던 그녀로 하여금
내 앞에 서서 나를 내려보며 당당하게 받도록 했어야 했다..
그녀가 회복되어 보상심리와 물질적 복수심 아닌,
경험한 위기가 이타적 행위로 이어질 수 있도록
그 도움의 파장이 이어지길 바란다면 말이다.
결국 내가 한건 이타 아닌 이기였구나.. 라고 깨달은 건
수년이 지나서였다.
............
< 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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